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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외교적인' 한국의 역사전쟁사령관

김용덕 "중국감정 건드리면 조선족에 피해", "일본과의 역사문제 희망적"

"고구려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측 학자들과의 교류를 추진해야 하나 현재 첨예한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문제이다 보니 직접적 교류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고구려 재단’이라는 이름을 갖고서 접근한다면 학자들의 참여를 어렵게 하는 점이 있다."

"시간적으로 볼 때 몇 년을 전략적으로 준비한 중국에 대해 감정적으로 즉각 대응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자칫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의 민족적 감정을 건드리게 되면 오히려 반한감정을 불러일으켜 조선족에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간도는 중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외교적 마찰로 비화될 염려가 있다. 그러나 간도 문제는 중국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왜곡 문제, 한반도 통일 전후에 대단히 중요하게 쓰일 수 있는 전략적 대응카드인 만큼 간도의 역사와 한국사와의 관계, 간도협약이 국제법적으로 유효한가에 대한 연구는 필요하다고 본다."

"일본과의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희망의 사인을 읽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보수파 신문이라고 할 수 있는 <요미우리> 신문이 3년 전부터 ‘일본이 전쟁의 책임을 져야 한다’ ‘신사참배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일본의 전쟁책임을 공식적으로 묻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책임있는 세계인으로써 독일처럼 과거 일본정부의 유산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누구의 말일까.

중국과 일본의 날로 심화되고 있는 '역사침공'에 맞서 앞으로 역사전쟁을 총지휘해야 할 동북아역사재단의 김용덕 초대 이사장(62)의 말이다. '야전사령관의 치열함'은 찾아보기 힘들고 도리어 '외교가적 언변'만 읽힌다. 정부가 왜 교육부 산하의 고구려재단을 없애고 고구려역사재단을 빨아들인 동북아역사재단을 슬그머니 외교통상부 밑으로 옮겼는가도 감지케 한다.

그의 말들은 왜 시민단체나 사학계에서 그가 이사장을 맡는 데 대해 '우려'와 '반대' 목소리가 컸던가를 절감케 하는 말들이기도 하다.

한명숙 총리가 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김용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언론의 매를 흠씬 맞아 정신 없지만 재단에 대한 광고효과는 100%"

국정홍보처는 13일 <국정브리핑> 홈페이지에 이틀전인 11일 김용덕 이사장과 행한 인터뷰 기사를 톱으로 실었다. <국정브리핑>은 "언론들은 연일 ‘정부의 안일함’을 성토하고 ‘중국 눈치보기’를 비판하면서 즉각적인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동북아역사재단을 놓고 ‘설립 파행’ ‘조직원 갈등’ 을 부각시키면서 동북공정 대응에 큰 구멍이 뚫렸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밝혀, 김 이사장을 인터뷰한 배경을 드러냈다.

다른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세적 입장을 보였던 김 이사장은 그래선 그런지, <국정브리핑>과의 인터뷰에서 “출범도 하기 전에 언론의 매를 흠씬 맞아 정신이 없지만 재단에 대한 광고효과는 100%라는 데 위안을 삼아야겠다” 고 여유를 보였다. <국정브리핑>은 이를 "김 이사장이 여론몰이식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한 아쉬움을 애둘러 말했다"고 해석하며 언론보도를 비난했다.

<국정브리핑>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실 이번에 발표된 논문의 내용은 중국이 이미 오래 전에 주장해 온 것으로 새삼스러운 것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이 얼마나 안이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욱 현 김창호 국정홍보청은 <중앙일보> 기자 재직시절 중국의 동북공정을 특종보도해 언론대상을 받은 바 있기에, 국정홍보처의 이런 주장은 더욱 아이러니였다.

"중국 감정 건드리면 조선족에 피해가 갈 수도"

김 이사장은 인터뷰 곳곳에서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자로서의 '문제점'을 노정했다.

김 이사장은 우선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 2차 침공과 관련, “국민들의 억울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중국은 오랜 준비를 거쳐 2002년 2월부터 5년간 동북프로젝트를 시행해 오고 있다"며 "이렇듯 감정적으로 즉각 대응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칫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의 민족적 감정을 건드리게 되면 오히려 반한감정을 불러일으켜 조선족에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지난 2004년 중국의 동북공정 1차 침공때 외교관료들이 했던 구차한 궤변의 리바이벌이다.

그는 여기서 멈취지 않고 "중국의 동북공정 전략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한국과 중국 일대일의 싸움이 아니다"라며 "동북공정은 결국 동북을 둘러싼 러시아, 북한, 한국, 몽골, 중국사이의 쌍방관계나 다변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될 여지가 크다. 따라서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외교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는 달리 북한, 러시아, 몽골 등은 지난 수년간 이 문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역사문제'는 외교로 풀 수 있는 게 아님을 그는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재단' 이름 쓰면 중국학자들 교류 안해"

김 이사장은 인터뷰에서 '고구려역사재단'을 맹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내내 '고구려역사재단'을 '고구려연구재단'이라 불렸다. 산하에 흡수통합되는 기관 이름마저 잘못 알고 있을 정도로 평소 관심이 뜸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해석가능하다.

그는 "고구려연구재단에서 이뤄낸 연구 성과는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고구려연구재단은 순수 연구에 치중한 나머지 중국 국책연구기관들의 고구려사 왜곡에 신속하고 전략적으로 대처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비난했다. 앞에서 말한 "중국이 오랜 기간 동북공정을 준비해온 만큼 감정적으로 즉각 대응해선 안된다"고 한 주장과 정면 배치되는 논리였다.

그는 “역사라고 하는 것은 한 나라의 역사, 한 시대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어떠한 연관 아래서 이뤄지고 있는가를 짚어보는 포괄적인 안목이 중요하다”며 고구려역사재단의 편협성을 문제삼기도 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발언은 '고구려역사재단'이란 이름의 잘못을 지적한 대목. 그는 "고구려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측 학자들과의 교류를 추진해야 하나 현재 첨예한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문제이다 보니 직접적인 교류가 어렵다"며 "이런 상황에서 ‘고구려 재단’이라는 이름을 갖고서 접근한다면 학자들의 참여를 어렵게 하는 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고구려역사재단'을 없애고 이를 '동북아역사재단'에 흡수합병한 게 중국측 눈치를 보기 때문이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을 확인해주는 말로도 해석가능한 발언이다.

"간도는 중국이 실효적 지배 하고 있어 영유권 주장은 비현실적"

간도 문제에 대한 인식도 사학계난 시민단체와는 큰 간극을 보였다.

김 이사장은 간도 문제와 관련, "중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외교적 마찰로 비화될 염려가 있다"고 단언했다.

김 이사장은 이어 "간도 문제는 중국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왜곡 문제, 한반도 통일 전후에 대단히 중요하게 쓰일 수 있는 전략적 대응카드인 만큼 간도의 역사와 한국사와의 관계, 간도협약이 국제법적으로 유효한가에 대한 연구는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해, 간도문제를 '외교 협상카드'로 생각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 또한 역사를 직시해야 할 '사학자'보다는 '외교가'적 시각이었다.

"일본과의 역사문제에서 희망의 사인 읽고 있다"?

일본전문가로 통하는 김 이사장은 날로 기승을 부리는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서도 '뜻밖의 낙관론'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일본과의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희망의 사인을 읽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근거로 "일본을 대표하는 보수파 신문이라고 할 수 있는 요미우리 신문이 3년 전부터 ‘일본이 전쟁의 책임을 져야 한다’ ‘신사참배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일본의 전쟁책임을 공식적으로 묻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책임있는 세계인으로써 독일처럼 과거 일본정부의 유산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새역모'를 필두로 한 일본우익의 역사왜곡 시도가 나날이 기승을 부리고, 일본의 모든 교과서가 문부성 지시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는 일본땅"이라고 기술키로 하는 등, 일본의 역사왜곡 공세는 나날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김 이사장 눈에만 이런 극우화 경향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김 이사장은 일본 외무성-문부성 등이 해외 지일파 양성을 위해 만든 '일본국제교류기금(일본기금)'으로부터 4천여만원의 지원을 받은 데 대해서도 "내 외증조가 독립운동을 하시다 돌아가셨다"며 "일본을 제대로 연구하고 알아야 극일도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일본역사를 전공하게 됐고 마음의 부담없이 장학금을 받았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받는 풀브라이트나 로즈 장학금을 받는 것은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왜 일본의 경우만 예외가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우리 사회 일각에서 갖고 있는 일본에 대한 지나친 피해망상증을 경계하고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바른 한일역사 관계를 정립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나는 짜증이 나 역사드라마 안봐"

김 이사장은 요즘 <주몽><연개소문> 등 드라마가 국민들 사이에 폭발적 관심을 얻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도 마뜩찮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난 역사드라마를 보지 않는다"며 "솔직히 짜증이 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역사드라마는 역사적 사실과 픽션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 대중에게 역사를 선보이는 것"이라며 "그런데 요즘 역사물을 보면 역사적 사실도 픽션화되어버리는 경향이 짙다. 역사 기록이 없는 부분은 충분히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역사적 사실은 그대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울대 재학생 중에서도 ‘무슨 드라마에서는 그렇지 않던데요’하면서 의문을 제기하곤 한다. 드라마를 역사로 착각하고 그대로 믿는 경우"라며 "드라마나 영화가 역사에 대한 흥미를 이끌어 내는 것은 고맙고 좋은 일이나 역사는 제대로 된 역사책을 읽고 공부해야 한다. 작가들 역시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하다. 재단에서도 앞으로 학생들, 일반인들이 읽을 만한 역사책들을 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이사장의 주된 관심이 '국내 역사계몽'에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뇌리를 언뜻 스치게 하는 멘트였다.

김 이사장은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일본 근대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역사학회 회장을 거쳐 서울대 국제대학원 원장과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으로 재직하던 중 지난 5일 임명장을 받고 초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박태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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