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산강에서 전봉준을 만났다"
[김영환의 4대강 르포 시] 영산강을 둘러보고
영산강에서 전봉준을 만나다
영산강에 내리는 비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생기고 나서
마음놓고 흐르지도 못하는 강
2010년 4월, 영산강에는 꽃이 피지 않습니다.
천년을 두고 바다가 되고자 했던 극락강,
지난날의 꿈도 추억도 사라진 황룡강,
두 강이 몸을 합쳐 만든 비운의 강
사행천(蛇行川)으로 굽이쳐 흐르며
제 몸을 마구 흔들던 신명의 강
마한의 강, 백제의 강, 견훤의 강,
동학의 강, 5?18 광주의 강으로 흐르다
하구언으로 가로막힌 통절(痛切)의 강
영산홍 가득 핀 흑산도로 흘러가던 강물이
끝끝내 영산호에 구금되고 시커멓게 썩어들어 갑니다.
강물을 막아 황포돛대를 띄우겠다는 돌관자(突貫者)들,
그들의 피 묻은 갈퀴손이 영산강을 사정없이 내려찍고
해를 넘기지 않고 끝장내겠다는 현수막이
한창 속도전을 펼치는 공사장에 나부낍니다.
지금은 기어이 흐르는 강을 막아야겠다는 돌관자들과
강은 흘러야 한다는 생명연합군이
전선에서 대치 중입니다.
용소(龍沼)에서 발원하여 극락강이 되었다지요?
백양산에서 흘러내려 황룡강이 되었다지요?
담양호로, 광주호로, 장성호로, 나주호로 잘려나가고
영산강 하굿둑으로 영영 막혀 버린 소리 없는 강
이 헐떡이는 강에 승촌보를 세우려 콘크리트 쏟아 붓고
죽산보를 세우려 철제 파일 박아 넣습니다.
가물막이에 갇힌 물고기 수천 마리가 숨을 헐떡이며
강가에 제 몸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준설을 위한 오탁방지막이 철조망처럼 강을 비끄러매었습니다.
2010년 4월의 봄, 남도에 이상기온으로
개나리도 철쭉도 피지 않았습니다.
담양습지에 천진난만한 고라니 한 마리
아비가 세상 떠난 것도 모르고 뛰어 노는 아이들처럼
4대강 사업으로 쪼그라들 습지의 운명을 눈치 채지 못하고
담양습지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천진난만입니다.
대숲은 몸을 묶고 결사항전의 태세입니다.
황조롱이, 매, 삵, 다묵장어, 맹꽁이가
버드나무 군락 어딘가에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자연은 곡선입니다.
강은 굽이쳐 흘러야 합니다.
사행천 영산강은 말합니다.
여울을 없애고, 소(沼)를 없애고
강바닥을 평탄하게 만들면 생태계의 교란이 발생합니다.
강을 직강(直江)하고 하굿둑에 빳빳하게 펴면서
생태계의 죽음의 사열이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크레인 갈퀴손의 위력으로 제압하려는
돌관자들의 행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발 이 자연습지를 그냥 두어라
대나무 숲을 내버려 두어라
담양습지의 갈대가 울부짖고 있습니다.
맹꽁이가 어디에선가 제 몸을 비틀며
맹꽁 맹꽁 진군의 나팔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영산강에서 전봉준을 만나다
116년 전 황토현을 지나 황룡강을 건너던
동학농민군들의 함성이 들려옵니다.
우금치마루, 우묵배미에 쓰러져간 농민군들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려옵니다.
백암산 청류암에 머물다가
순창에서 나주로 끌려가던 형형한 눈빛의 녹두장군이
비자나무, 굴거리 나무숲에서 곧 뛰쳐나올 것 같습니다
“사람이 곧 하늘입니다.” 동학농민군들의 함성이
“하늘이 곧 생명입니다.” 천주교 신부님들과 목사님들의 기도가
“생명이 곧 강물입니다.” 스님들의 독경 소리가
들려옵니다.
지금 4대강은
생명 존중의 세력과 생명 파괴 세력이 대치 중입니다.
영산호에 가서 썩은 물을 마셔 보라
비바람 몰아치는 영산강 하구언에서
등이 굽은 물고기가 떠올랐다는
음산한 소식이 전해져 왔습니다
이제는 농업용수로도 사용할 수 없게 된
오니(汚泥)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영산호
흐르지 않는 강은 썩을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믿지 못 하겠거든
영산호에 가 보십시오.
영산호의 썩은 물을 마셔 보십시오.
왜 이 하구언에 철새가 사라지고
기수(汽水) 지역에 그 많던 어족이 사라졌는지
흐르는 물을 막아 수질을 개선한다고 강변하는 돌관자들이여
강을 갈가리 찢어 호수를 만드는 갈퀴손이여
영산강 하구언, 영산호 썩은 물에 피 묻은 갈퀴손을 씻으라.
2010년 4월, 영산강에는 지금 비가 내립니다.
*도움말
-‘돌관자(突貫者)’는 ‘돌파(突破)’와 ‘관철(貫徹)’을 신념으로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돌관(突貫)정신’은 어떤 장애물이 가로막아도 목표점을 향해 흔들리지 않고 돌진해 원하는 바를 이루어내는 것을 말한다.
-전남 담양군 대전면에 있으며, 면적은 980,575㎡ 이다. 멸종위기종인 매와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 보호 야생 동물인 삵·다묵장어·맹꽁이 등이 서식하고 있다. 강 상류에 형성된 유일한 하천습지이며, 최초로 ‘습지 보호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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