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가리, 모래무지에게도 4대강 투표권 줘야"
[김영환의 4대강 르포 시] 낙동강 공사장을 둘러보니
김 의원은 앞으로도 4대강 사업이 진행중인 한강, 영산강, 금강 등을 계속 둘러보며 르포와 연작시를 계속 올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돌관자들이여! 낙동강에 갈퀴손을 씻으라!
김 영 환(민주당 국회의원, 시인)
프롤로그
숭례문과 낙산사를 태운 우리들 앞에
낙동강마저 처절하게 토막내는
돌관자(突貫者)의 갈퀴손이여.
생명의 강 낙동강에 피묻은 손을 씻으라.
낙동강 1,300리 척추에 여덟 개의 철심을 박고,
지천과 본류가 만나는 관절 마디마디에
낙차공 95개의 족쇄를 채우는
돌관의식으로 무장된 포크레인의 갈퀴손이여.
내성천 맑은 물에 검은 손을 씻으라.
'4대강사업은 미친 짓이다'고 고백하라.
I.
숭례문을 태우는 일보다 더 엄청난 재앙(災殃)이
낙동강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래와 자갈이 한꺼번에 파 뒤집어 지고
강변에 서식하던 달뿌리풀, 갈대, 버드나무 군락이
뿌리 뽑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쓰나미도 지나갔고,
아이티에서는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과학도 포크레인의 갈퀴손도
이 엄청난 자연 앞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낙동강 하중도 모래톱 달뿌리풀도, 안동댐이 완성된 후
노숙하던 은어도, 고니의 일용할 양식, 세습 매작도 사라져 갑니다.
생명을 가진 동?식물과 미생물조차 불안해 떨고 있습니다.
안동 구담 습지의 원앙도, 구미 해평 습지의 흑두루미도,
대구 달성습지의 수리부엉이도 이제 떠나가야 합니다.
안동댐이 생기고 나서 기후가 확 바뀌었다고
‘강아지 똥’의 동화작가 권정생을 기리는 재단의
최 선생이 말해 주었습니다.
임하댐 밑에서는 소나무가 죽어갔답니다.
주민들은 기관지 천식으로, 관절염으로 시달리고 있다 했습니다.
생태계의 일대 교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토종어족은 사라지고 베쓰와 같은 힘센 외래어족이
호수를 맴돌며 집회와 시위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II.
부부처럼 금슬 좋은 모래와 강은 이제 생이별을 하고
흐르던 강은 호수가 되어 녹조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산은 강을 건너지 않고, 강은 산의 허리를 자르지 않는다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은 이제 옛말이 되었습니다.
강바닥은 평균 7내지 8m 수심을 위해 파헤쳐지고
물이 고일수록 강변의 여백은 사라질 것입니다.
돌관자(突貫者), 돌파(突破)와 관철(貫徹)을 신념으로 하는
몇몇의 검은 갈퀴손을 가진 자들이
그 어느 대지(大地) 미술가도 만들지 못할
내성천 회룡포 백사장을 수장하게 될 것입니다.
뿅뿅다리도 어디론가 사라질 것입니다.
아도화상이 지었다는 태조산 적멸보궁(寂滅寶宮) 도리사(桃李寺)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눈부신 금모래 빛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상주군 경천대(擎天臺) 백사장을 파헤치고
신라와 가야가 기우제를 지내던
가야진(伽倻津)이 수몰될 것입니다.
신라군이 가야로 쳐들어갈 때 건넜다는
천년나루터의 옛이야기를 낙동 호수에 묻습니다.
문경새재 조령천과 영강(穎江)이 만나는 산간 협곡
영남의 선비들이 짚신을 신고 걸었던 영남대로 토끼비리
천년 전의 올레길도 이젠 빛 바래게 되었습니다.
III.
안동 하회마을 물도리동 징비록(懲毖錄)을 쓰던
임진란의 유성룡(柳成龍)이 거닐던
부용대(芙蓉臺) 아래 백사장이 사라질 겁니다.
그가 삭탈관직이 되어 낙향하던 그 날
이순신은 악몽을 꾸고 한산도에서 목숨을 거두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그 거대한 연상을….
그 언어와 이야기를 옥연정사(玉淵精舍) 아래 백사장이 없다면
우리 후손들은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돌관자! 불도저로 밀고 발파(發破)에 능한 저들이
수천년을 내려온 우리의 이야기들을 기어이 폭파했습니다.
삼락둔치와 염막지구 등 수백년 삶의 터전을 갈아엎습니다.
함안과 고령의 메론과 수박밭이 쑥대밭이 될 것입니다.
나루터를 지켜온 예천 삼강주막(三江酒幕) 주모(酒母)의
추억과 눈물이 사라진 자리에 모텔과 매운탕집이 들어설 것입니다.
흐르던 물은 이제 멈춰지고
곳곳에서 발견된 중금속과 비소함량 초과의 오니토 위에
강은 누워 눈을 감게 될 것입니다.
세계에서 보기 드믄 함안보의 하안단구는
형체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겨울 철새들이 찾아오던 강가의 수변공간이
자전거 도로와 운동장, 골프장으로 대치될 것입니다.
돌관자들! 1~2m의 강물을 7m~8m로 가두어
태백에서 부산까지 열흘이면 흘러내리던 물길을
최소한 100일 이상을 불법 구금한 끝에
그들은 강을 호수로 만드는 일에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강은 흐르지 않아도 된다는 새로운 전설을,
흐르지 않아도 썩지 않는다는 새로운 학설을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
IV.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를 무너뜨린 돌관의식으로 무장된 자들이
자연생태계의 자연법을 거스르고, 붉은 완장을 차고
‘하면 된다’를 외치며 속도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강은 모래다. 강은 산이다. 강은 어머니다. 강은 역사다!
강은 헤아릴 수 없는 플랑크톤을 비롯한 미생물과
식물과 동물의 주권으로 이뤄진 거대한 제국이라는 것을
그들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긴 다리의 왜가리와
짧은 발의 청둥오리에게도 발언권이 있고,
밉상인 뱀장어도, 미끈한 몸매의 모래무지에게도
투표권을 주어야 합니다.
세상을 떠난 수천 년을 이곳에 살아 온 조상들도 할 말이 있고,
수억 겁(劫)을 살아 갈 후손들에게도 의견을 물어 보아야 합니다.
강바닥의 자갈과 모래 진흙과 수초들도 참견할 권리가 있습니다.
나는 새와 곤충, 기는 짐승과 서서 걷는 짐승에게도
동일한 발언권이 주어져야 합니다.
에필로그
1968년 여의도 밤섬의 쌍바위를 폭파하던
그 갈퀴손이 이제 낙동강을 토막내고 있습니다.
1972년 저자도의 모래를 파서
압구정동을 매립하던 포크레인의 갈퀴손이
백두대간 낙동정맥을 끊어 내고 있습니다.
해 지는 낙동강의 맑은 물에
포크레인의 갈퀴손을 씻어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낙동강 모래톱에 대고 고백해야 합니다.
강이 하늘이고 역사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가장 낮은 곳에 흐르는
낙동강의 비쩍 마른 강물에 대고 말해야 합니다.
자연 앞에서 우리들의 교만과 독선을 고백해야 합니다.
돌관자여! 돌관자의 무모함이여!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낙동강 흐르는 물에 손을 씻으라!
<단어해설>
*돌관자(突貫者) : ‘돌파(突破)’와 ‘관철(貫徹)’을 신념으로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돌관(突貫)정신’은 어떤 장애물이 가로막아도 목표점을 향해 흔들리지 않고 돌진해 원하는 바를 이루어내는 것을 말한다.
*적멸보궁(寂滅寶宮) : 법당 내에 불상을 모시는 대신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법당을 가리킨다.
*도리사(桃李寺) : 경북 구미시 해평면에 있으며, 중국에서 불도를 닦고 귀국한 고구려의 아도(阿道)가 신라에서 불교를 일으키기 위해 지은 절이다. 아도가 태조산 밑에 이르자 한창 겨울인데도 산허리에 복숭아꽃·배꽃이 만발한 것을 보고 거기에 절을 짓고 ‘도리사’라고 이름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가야진(伽倻津)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에 삼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있었던 나루이다. 가야로 건너가는 나루라는 뜻에서 가야진이라 하였다. 가야진에서는 신라 2대 임금 때부터 국가에서 주관하던 제의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가야진은 1990년대 초까지 낙동강가에 있는 큰 포구 중 하나로 흥성하였다.
*옥연정사(玉淵精舍) : 서애 유성룡이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작은 서당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가세가 빈곤하여 걱정하던 중 탄홍(誕弘) 스님이 10년 동안 곡식과 포목을 시주하여 완공하였다고 한다. 유성룡이 정사 바로 앞에 흐르는 깊은 못의 색조가 마치 옥처럼 맑아서 옥연(玉淵)이라 지었다. 유성룡은 이곳에서 임진왜란의 회고록인 「징비록(懲毖錄)」을 구상하고 저술하였다. 중요민속자료 제88호이다.
*삼강주막(三江酒幕) :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전통주막으로 삼강나루를 왕래하는 사람들과 보부상, 사공들에게 요기를 해주거나 숙식처를 제공하던 건물이다. 1900년 무렵 건축된 작은 건물이지만, 건축사적 희소가치와 옛 시대상을 보여주는 역사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12월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오니토 : 오니퇴적물. 오염된 물 속의 부유물이 침전하여 진흙형태로 된 것, 하수구에 고이는 진흙 또는 기타 물 속에서 침전된 물질을 말하며 단순히 오니 또는 슬러지(sludge)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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