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장사에 이런 불경기는 처음"
추석 맞아 '시장 불황' 최악의 상태
5일 오후 서울 남대문시장 아동복 전문 도.소매상가에서 만난 이모(57.여) 씨는 추석 `대목'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말을 가로막으며 이렇게 반문했다. 이 씨는 이곳에서 25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 씨는 "몇년간 계속 어렵긴 했지만 지난 여름부터 부쩍 더하다"며 "그나마 가을상품도 들어오고 추석도 돌아오고 하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그럴 기미가 안 보이니 장사를 이제 더 할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이 씨의 푸념은 이어졌다.
"하루종일 장사하면 일당으로 10만원 정도는 나와야 하고 관리비랑 월세랑 해서 한 달에 200만원은 팔아야 하는데 지금 원가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파는데도 하루에 일당도 안 나오니 공장유지도 더 이상 못할 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씨 말마따나 이 상가에는 1개 층에 20여개의 아동복 매장이 들어서 있었지만 흥정은 커녕 오가는 사람조차 뜸했다.
여름 이월상품은 `1장에 3천원', `5천원' 팻말이, 가을상품도 세일 팻말이 붙어 있었지만 손님을 찾아보기 힘든 상가의 분위기는 팻말이 무색할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할 일이 없어진 상인들은 서로 잡담을 나누거나 초점없는 눈길로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다. 추석을 1주일여 앞둔 시장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남대문시장에는 활기가 없었다.
일반 회사 퇴직 후 4개월 전부터 남대문에서 장사를 시작했다는 김모(57) 씨는 "하루에 2만-3만원 어치도 못 팔 때가 많다"며 "장사가 너무 안돼서 아예 접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블록 건너 의류상가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여성복을 팔고 있는 양모(58) 씨는 "30년째 남대문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데 올해가 특히 힘들다"며 "다들 평균적으로 작년의 60% 수준밖에 못 팔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저 안쪽 점포들은 올해 들어 10개 중 2-3개 정도가 폐업하고 자리가 계속 비어있는 상태"라며 "남대문은 소매뿐만 아니라 지방 소매상들이 버스를 타고 올라와 한꺼번에 물건을 떼어가는 도매 역할도 하는데 최근에는 지방에서 오는 상인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걸 보면 지방이 훨씬 더 어려운 모양"이라고 전했다.
이날 비슷한 시각 인근 신당동에 있는 중앙시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 시장 입구에는 `추석맞이 제수용품 세일 및 이벤트(9.3-11일)'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지만 시장 안에서는 추석을 맞아 북적대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생선을 파는 좌판 위에서는 파리를 쫓는 바람개비가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생선가게 주인 노파는 맞아줄 손님이 없자 우두커니 의자에 앉아 그 모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20년째 야채 도소매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박모(54.여) 씨는 맞은 편에 천막이 덮여있는 장소를 가리키며 "저 점포가 4-5년 전 만해도 권리금 1억원을 주고도 못 들어올 정도로 인기있는 자리였는데 지난 4월에 문닫은 뒤 아직도 비어있다"며 "여기 시장에서 저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박 씨는 "작년도 잘 안 됐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20%는 더 줄었다"며 "올해 저 위쪽 황학동에 이마트가 들어선 뒤로는 그나마 오던 사람들도 다 그쪽으로 발길을 돌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 건너 점포에서 제수용품을 파는 김모(60.여) 씨 역시 "여기서 30년 동안 장사를 했는데 올해가 가장 안 된다"며 "작년엔 하루에 30만원은 팔았었는데 요즘은 10만원도 못 팔고 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둘렀다.
옆에서 제수용품을 사가던 단골손님 안모(60.여) 씨도 나섰다.
"아주 요즘 경기가 안 좋아 죽을 맛이야. 새 정부 들어서 경제가 좀 좋아지려나 했는데 자꾸 안 좋아지기만 하니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부자들만 점점 살기 좋아지는 것 같고..."
평소에는 일하느라 바빠 미리 차례상을 준비하러 나왔다는 안 씨는 장보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들었느냐는 질문에 "식구들이 많이 모이고 명절 동안 다 같이 먹을 것을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40만원 가까이 든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는 이어 "물가는 계속 오르고 수입은 나아지지 않으니 서민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냐"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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