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단 쇼크'에 보수진영 공황 상태
<중앙일보>-조갑제, 사제단 맹비난. 정부여당 '당황'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30일 서울광장 시국미사 및 평화 가두행진이 정부여당 및 보수신문 등에 가한 충격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바로 '사제단 쇼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면을 대전환시킨 '사제단 시국미사'
그도 그럴 것이 사제단의 서울광장 시국미사는 여러 모로 이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우선 '촛불'을 되살렸다. 이들은 지난 며칠간 전방위로 촛불끄기 작전을 전개했다. 공권력을 총동원해 촛불집회 주최측을 압박했고, 서울광장을 폐쇄했다. 보수언론은 주최측을 폭도로 몰아갔다. 이들은 "이번주에 모든 게 정상화될 것"이라 호언했다. 이같은 믿음을 한순간에 사제단 시국미사가 무력화시켰다.
사제단이 수많은 시민들의 기립박수속에 서울광장으로 진입하는 순간, 공안의 틀은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사제단조차 놀라움을 표시할 정도로 많은 시민이 모여들었다. 서울광장에 모인 3만여 시민은 가두행진이 시작되자 7만명(주최측 추산 12만명, 경찰 추산 8천명)으로 더 불어났다. 며칠간 정부가 진행한 공안적 휘몰이가 도리어 시민들을 분노케 하는 역풍을 불러일으켰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였다.
더욱이, 이날 시민들은 경찰과 한번의 몸싸움도 없이 평화로이 가두행진을 마치고 자진해산했다. 촛불참가자들을 폭도로 몰아온 정부여당을 꿀벙어리로 만든 '비폭력 평화투쟁'이었다. 더이상 촛불참가자들을 폭도로 몰아부칠 수 없게 됐다.
사제단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서울광장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천막'은 정부입장에서 보면 서울시가 며칠 전 용역직원들과 수천 전경들을 동원해 강제철거시킨 '불법'의 상징이다. 그 천막이 다시 세워진 것이다. 불법-합법의 경계선을 한순간에 무력화시킨 것이다.
사제단의 시국미사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들은 매일 저녁 6시반 서울광장에서 시국미사를 갖기로 했다. 서울광장을 사수하려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개신교에선 3일 YMCA와 NCC정의평화위원회 등이 이곳에서 시국 기도회를 열 계획이다. 불교계 역시 조계사 등 주요 사찰과 단체들이 4일 이곳에서 대규모 시국법회를 갖기로 했다. 종교계가 시민들의 맨앞에 방패로 나선 것이다. 아니, 경찰의 폭력진압도, 시민의 폭력저항도 막는 경계선을 만든 것이다.
제 덫에 걸린 정부여당
정부여당과 보수신문은 지금 공황 상태에 빠졌다. 거의 끄는가 싶었던 촛불이 종교계의 전면 개입으로 더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종교인들의 집회도 '불법'으로 규정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쉽게 그럴 수도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종교집회를 막을 수 없는 집시법의 한계 때문만은 아니다. 사제단의 가두행진도 법으로 걸면 분명 불법이다. 하지만 5백만 천주교신자를 적으로 돌리기로 작심하지 않는 한, 사제단을 불법으로 몰아붙이기란 쉽지 않다.
더 결정적 약점은 정부가 앞서 한기총 등 보수 개신교단체들의 촛불 비판집회는 모두 허용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마당에 천주교 등의 서울광장 시국미사를 불법으로 몰아가면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정권을 돕겠다고 나섰던 보수집회가 정권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된 양상이다.
반발하는 <중앙일보>, 조갑제...
당연히 보수 일각의 반발이 시작됐다.
<조선일보><동아일보>는 짧게 사제단 시국미사를 전하며 침묵하는 것으로 우회적으로 자신들이 받은 충격을 드러냈으나, <중앙일보>는 용감하게(?) 사설을 통해 사제단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중앙일보>는 1일자 사설 '성직자들이 불법 부추기는 모양새는 안 돼'를 통해 "촛불집회는 이미 식탁 안전이라는 주제를 떠나 반미· 반정부 폭력투쟁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진격하겠다는 것이 시위대의 행동이다. 야간 집회 자체도 불법일 뿐 아니라 경찰을 상대로 쇠파이프와 각목을 휘두르는 폭력성이 드러나고 있다"며 "건강과 식탁을 염려하던 시민은 집회에서 멀어졌다. 지금 시위는 반미· 반정부 투쟁을 일삼는 단체들, 공권력을 무력화하려는 민노총 조직원들, 공기업 민영화를 막으려는 노조원들, 기타 사회 불만 세력이 주류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사설은 "정부가 법질서를 회복하겠다고 강경하게 나선 것은 이런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며 "이런 판국에 열리는 종교계 시국 집회는 불법 시위에 힘을 보태주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사제단을 비난했다. 사설은 "서울시청 앞 광장은 경찰이 불법집회를 원천 봉쇄하고 있는 곳이다. 여기서 시위대와 유사한 주장을 하면서 종교 집회를 여는 것이 문제"라며 서울광장 방어막이 뚫린 데 대한 초조감을 드러낸 뒤, "시위대의 집결 장소를 제공하고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결국 반정부 투쟁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지 않겠는가"라고 비난했다.
사설은 "현 정부가 독재 정권인가, 지금이 국민의 기본권이 유린되는 비상사태인가"라고 반문하며 "성직자들이 보다 신중하게 판단하고 행동할 것을 기대한다"는 질타로 글을 끝맺었다.
군대를 동원해 발포를 해서라도 촛불집회를 해체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온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더 펄쩍 뛰고 나섰다. 그는 1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띄운 '아니고 말고 식 폭로-정의구현사제단'이란 글을 통해 "오늘 서울시청광장에서 집회를 가진 자칭 정의구현사제단은 1987년 대통령 선거 개표결과가 컴퓨터로 조작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그해 있었던 김현희에 의한 대한항공 폭파사건도 조작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한 전력이 있다"며 "이 두 의혹 제기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는데도 사제단이 사과했다는 소식은 접하지 못했다. 아니고 말고 식 폭로로 실추된 대한민국 국가기관의 명예는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라며 원색적으로 사제단을 비난했다.
<중앙일보>와 조씨의 반발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제단 쇼크'가 보수진영에 얼마나 큰 충격을 가했는가를 보여주는 방증으로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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