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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불임금 달랬다고 때려 죽이다니..."

<현장> 강릉 체불노동자 사망에 노동계 분노 확산

체불임금 해결을 요구하다 시공업체 현장소장의 폭행으로 끝내 사망한 건설일용노동자 고 이철복씨 사건을 계기로 불법 다단계 하도급의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해 온 건설노동계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건설현장의 고질적인 임금체불이 불러온 안타까운 죽음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난 3월 21일. 이씨는 당일 동료 5명과 함께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시공업체의 강릉시 포남동 헬리오스텔 공사 현장을 찾아갔다. 이미 여러 차례 체불임금 지급 약속을 깬 사측이 탐탁치 못해 확답을 받으러 간 자리였다.

건설현장의 고질적 관행으로 불리우는 유보임금, 이른바 ‘쓰메끼리’ 관행으로 이씨가 받지 못한 임금은 4백50만원, 지난 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총 4개월치였다.

그러나 현장소장 김모씨는 체불임금 해결을 요구하는 이씨를 향해 철제의자와 옷걸이를 휘두르며 폭력을 가했다. 이씨는 어깨와 옆구리를 심하게 다쳐 결국 24일 춘천 한림성심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갈비뼈 골절로 인한 하동맥 파열이 사인이었다.

지난 3월 24일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다 현장소장에게 폭행당해 사망한 고 이철복씨.ⓒ전국건설노조

고질적인 건설현장의 임금체불이 불러온 안타깝고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그러나 이씨가 사망한 뒤 일주일이 지나도록 사태 해결은 더디다.

지난 해 11월부터 현재까지 공사가 진행 중인 헬리오스텔 건설현장에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건설노동자는 40명에 이르고 체불임금은 1억7천만원에 달한다. 전국건설노조는 지난 3월 9일 원청업체인 대해개발, 시공사인 드림종합건설, 하청업체인 양지건설과 20일까지 체불임금 전액을 일시불 지급키로 하는 노사협약을 체결했지만 사측은 또 다시 이를 25일로 미뤘다.

고인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무시당하고 폭력 당하는 것이 문제”

건설노조에 따르면 당시 이씨는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못한 것도 없이 현장에서 하대받고 무시당하고 폭력을 당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사측에 강하게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씨가 사망한 뒤 하루가 지난 25일에도 사측은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노동부와 경찰당국도 현장소장을 구속하고 임금체불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지만 여전히 사측은 고인이 안치된 한림성심병원에 잠깐 모습을 드러냈을 뿐 체불임금 지급을 미루고 있다.

4개월여의 임금체불에 동료마저 사망하자 현장노동자는 생업을 뒤로 한 채 강릉지청 앞에서 노숙농성에 돌입했다.ⓒ전국건설노조

이처럼 이미 업계의 고질적인 관행이 된 상습 임금체불에 동료 노동자가 사망하자 민주노총, 건설노조 등이 강하게 반발하며 강력투쟁에 나섰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기계지부 조합원들은 생업을 뒤로 한 채 지난 27일부터 서울지방노동청 강릉지청 앞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5일째 촛불집회와 밤샘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유족들도 고인의 죽음을 부른 건설현장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근절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장례를 미룬 채 병원을 지키고 있다.

권혁병 건설노조 강원건설기계지부 지부장은 1일 본지와 통화에서 “고인이 사망한 지 7일이 지났지만 노동부와 사측이 이번 사태에 대해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아 장례일정조차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며 “더 이상은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이 죽어나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엔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한다”고 말했다. 권 지부장은 또 “전국 건설현장의 체불건수만 7백80건에 이르지만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재발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게 건설노동자다. 그나마 비가 오면 쉬고 고용보장도 없는 직종이다. 건설노동자만 죽어나가라는 건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민주노총과 건설노조도 이날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건은 건설현장의 중층적 하도급 구조에서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관리감독을 방기한 노동부의 직무유기가 빚어낸 사건”이라며 “정부가 건설노동자 임금체불 문제에 대한 근본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과 건설노조는 2일 노동자 폭행 사망 사태에 대한 근본 해결책 마련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강릉시청 앞에서 갖는다.ⓒ전국건설노조

민주노총 “친기업적인 현행법 개정만이 악순환 근절”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06년에만 전체 노동자의 임금체불액은 1조2백97억원에 달했고 건설산업은 종사자 대비 체불임금 발생에서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임금체불의 75%가 다단계 하도급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건설노조가 파악한 조합원 대비 체불 임금 현황에 따르면 2007년 1월부터 2008년 3월 현재까지 전국에서 총 1백98건 1천4백87명의 노동자가 36억여원의 임금을 체불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현행 건설산업기준법에는 하도급업체가 임금지급을 미이행했을 경우 처벌조항이 부재할뿐 아니라 민간발주업체에 대한 정부의 관리 감독권조차 명시되어 있지 않다.

민주노총은 “고 이철복 건설노동자 폭력사망사건은 발주자가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수급인도 발주자와 사실상 동일 사업주이기 때문에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처벌조항이 없다는 점을 악용한 사례”라고 지적하며 △임금체불 건설사업주 처벌 강화 △발주처 임금 지급능력 확인 제도 도입 △근로감독관 집무규정 개정 등 제도적인 개선을 촉구했다.

한편 민주노총과 건설노조는 고 이철복씨에 대한 조속한 사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2일 오후 2시 강릉시청 앞에서 1천여명의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항의집회를 연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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