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급락해야 소비가 살아난다"
[기고] 유주택자 소비 찔끔 줄겠으나 무주택자는 급증
귀를 쫑긋 세운 건 아니지만, 그들의 관심과 걱정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다. 30분여 그들의 대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은행에서도 대출규제가 언제 또 바뀔지 자기들도 알 수 없다고 하더라”는 말이었다. 은행대출만 확실하다면 바로 달려가서 매수계약을 체결할 것 같은 뉘앙스였다.
점심 약속에 가기 위해 카페를 나오면서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갔다. 가정주부들이 주택투자를 시장에서 장보기 하듯 쉽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생각부터, 폭등한 가격에 매입하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걱정은 들리지 않아서 의아하기도 했다.
여러 생각이 오가는 중에도 두 생각이 가장 강하게 남았다. 집값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대출이라는 것과 지금처럼 금리가 워낙 낮은 상황에서는 집값 급락을 기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었다.
금융시장에서 ‘시장원리’가 붕괴되었다
금리란 금융시장에서의 가격이다. 여느 상품과 마찬가지로 금융의 수요가 증가하면 그 가격인 금리는 오르는 것이 시장원리다.
지난 4년여 대출수요가 급증했고 그 급증한 대출에 힘입어 집값이 폭등했다. 그런데 금융의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했는데도 금리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 금융시장에서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시장원리를 붕괴시킨 주범이 누군지는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누누이 말했듯이 “빚내서 집사라” 정책에 부응하여 기준금리를 신속하게 인하한 금통위원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서 금리인상을 반대했다. 또 신문과 방송을 장악한 주류경제학자들이 그들에게 명분을 제공한 것도 중요한 이유다.
금통위원과 주류경제학자들이 금리인상에 반대하면서 내놓는 논리는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금리를 인상하면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금리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를 세 가지로 이야기한다. 금리인하는 가계소비와 기업투자의 증가 그리고 소위 ‘자산효과(Wealth Effect)’를 통해서 경기부양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세 편의 글을 통해서 위 세 가지 경로 중 앞의 두 가지 경로가 한국경제의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음을 밝혔다. 이 글에서는 나머지 하나인 ‘자산효과’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한국은행 사이트를 방문해서 ‘통화정책 효과의 파급’이라는 메뉴를 클릭하면 ‘자산효과’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나온다.
“기준금리 변경은 주식, 채권, 부동산 등 자산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금리가 상승할 경우 자산가격이 하락하게 된다. 이는 가계의 자산, 즉 부(wealth)의 감소로 이어져 가계소비 감소 요인이 된다.”
물론 금리인하는 자산가격 상승을 통해 가계소비 증가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언뜻 듣기에는 맞는 말처럼 들린다. 사람들은 이유가 무엇이든 재산이 증가하면 소비를 늘리는 경향이 있으니까.
집값이 폭등했는데 가계소비는 증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집값이 지난 4년여 폭등했다. 만약 ‘자산효과’가 작동했다면 가계소비는 급증하고, 이에 힘입어 경제도 힘차게 살아났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서 2010년 이후 가계소비지출 통계를 다운받아 그래프로 전환하면, 지난 4년간의 증가율이 그 이전과 별로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자산효과’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왜 언뜻 보기에 그럴 듯한 이론이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았을까? 그 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서울에서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이 약 절반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많든 적든 소비를 늘렸을 것이다. 문제는 나머지 절반의 집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당장 전세나 월세가 오르므로 주거비용이 증가한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에 내집을 마련하기 위해 어려운 살림에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는 점이다.
그뿐 아니다. 집값급등이 몇 년이나 지속되었으므로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지 않으면 평생 무주택자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심리가 무주택자들에게 확산되었다. 대출을 받아서 주택을 구입한 사람이 늘었고, 그들은 대출을 갚기 위해 소비를 크게 줄여야 했다.
이처럼 집없는 서민들은 물론 무리하게 주택을 구입한 주택소유자들까지 소비를 줄여야 했으니 가계소비가 증가할 턱이 없다.
집값 상승은 무주택자의 부를 다주택자에게 이전한다
집값 상승은 제로섬 게임이다. 앞으로 집을 사야 할 무주택자의 부가 집을 여러 채 소유한 다주택자에게 이전되는 것이 집값 상승의 경제효과다.
그러므로 집값 상승은 정의롭지 않은 현상이다. 당연히 집값을 인위적으로 상승시키려는 정책을 펴는 정권은 불의한 정권이라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런 도덕적 관점을 배제하더라도 집값 상승이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긍정보다 부정 효과가 더 크다.
다주택자들은 거의 고소득자들이다. 그들은 이미 소비에 충당하고도 남을 정도의 소득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의 부가 몇 억원 더 증가한다고 해서 소비를 크게 늘리지 않는다.
반대로 무주택 서민은 대개 저소득층이다. 그들은 소득의 대부분을 소비한다. 그런데 미래에 내집 마련을 위해 저축해야 하는 금액이 증가하면 그 증가한 저축액만큼 소비가 감소한다.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봐도 집값 상승으로 인한 소득이전 효과가 국민경제의 총가계소비를 감소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식을 연구하거나 실증적으로 분석하여 발표한 보고서가 적지 않다. 그 중에서 가장 최근 데이터를 실증분석하여 그 결과를 발표한 자료가 한국은행 조사통계월보(2018년 11월호)에 실렸다.
‘주택자산 보유의 세대별 격차가 소비에 미치는 영향’이란 제목의 이 자료는 대단히 흥미진진한 연구결과를 담고 있다.
“집값 상승이 가계소비의 감소를 초래했다”
이 연구결과에 의하면 주택가격 상승이 주택보유가구의 소비에 미치는 효과가 불과 0.02%로 나왔다. 연구자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주요 선진국을 대상으로 한 선행연구에서 추정한 계수값의 하한에 가까운 수준이다.” 쉽게 말해 다른 국가들보다 집값상승이 주택소유자의 소비증가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지난 4년여 서울 집값이 50%나 폭등했는데, 그로 인해 주택소유자들의 소비가 겨우 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를 뒤집어보면 더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서울 집값이 4년 전 수준, 즉 50%가 오르기 전의 가격수준으로 하락하더라도 주택소유자의 소비는 1% 감소에 그친다.
무주택자는 집값이 상승하면 소비를 줄일 것이 분명한데, 그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가 사실 더 궁금하다. 위 연구결과는 집값이 1% 오를 때 무주택자의 소비는 무려 0.246%나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결과가 제시하는 수치를 그대로 적용해보면 매우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만약 서울집값이 50% 하락하여 4년 전 수준으로 돌아간다면, 유주택자의 소비는 1% 감소하고, 무주택자의 소비는 12.3%나 증가한다. 그런데 서울의 경우 이 둘의 비중이 거의 같다. 그러므로 주택소유자와 무주택자의 평균소비금액이 같다면 무려 11.3%의 가계소비 증가가 생긴다. 주택소유자의 소득과 소비가 무주택자보다 크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금리인상이 가계소비를 큰 폭으로 증가시킬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금리인상이 가장 효과적인 경기부양책이다
모든 경제학 교과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소위 ‘자산효과’라는 것이 한국의 현실에서는 정반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한국은행 연구결과가 보여준다.
금리인상의 다른 효과는 제쳐두고 자산효과(‘마이너스 자산효과’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하나만 보면, 금리인상은 가계소비를 크게 증가시킨다.
이 연구는 노동연구원의 패널 데이터를 실증분석한 것이므로 거기에 별 오차가 생길 여지가 없다. 다시 말해 이 연구 결과가 보여주는 ‘집값 상승이 소비에 미치는 효과’가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즉시 금리를 큰 폭으로 인상하여 집값 하락을 유도해야 한다. 그러면 가계소비가 크게 증가하고, 기업투자 역시 동반 증가할 것이므로 경기는 즉시 침체의 늪을 벗어날 것이다.
금리인상에 반대하는 금통위원들과 경제학자들에게 부탁한다. 제발 이 보고서를 한번이라도 읽어보시길! 이 보고서에서 연구결과를 뒤집을 정도의 오류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즉시 금리인상을 단행하여 경기를 살려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린다.
<송기균경제연구소 (blog.daum.net/kig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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