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모든 거품은 반드시 터진다"
<인터뷰> "과거회귀형 실물경험보다 미래지향적 지식 더 중요"
범여권으로부터 연일 러브콜을 받고 있는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60)이 창간 1주년을 맞은 본지와의 특별 인터뷰에서 양극화 심화, 부동산거품 파열 위기, '제2차 기업구조정' 위기 등으로 한국 경제가 심각한 총체적 위기국면에 직면했음을 경고했다. 이 과정에 정 전총장은 "지금은 과거지향적 실물경험보다 미래지향적 지식-경륜이 중요한 시기"라며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공격에 대한 반격을 가하기도 했다.
정운찬 "한국사회 총체적 위기 직면"
정 전총장은 우선 한국 사회의 현주소와 관련, "현재 우리 사회는 ‘경제하려는 의지'마저 상실한 무기력한 사회가 되었고 우리 경제의 활력 상실은 소득증가 부진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소득증가의 부진은 가계 빚의 증가를 불러 왔고, 가계 빚은 이미 더 이상 증가하기 어려운 한계상황에 도달한 지 오래여서 소득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면 소비 증가와 내수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뿐만 아니라 소득 및 재산의 양극화, 부동산 버블, 고용 및 노후불안, 기업의 투자의욕 부진 등 부정적인 현상들이 한층 악화되었고 사회적으로도 자살과 이혼이 급증하는 등 불과 몇 년 사이에 우리 경제와 사회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렸다"고 양극화의 심각성을 지적한 뒤,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출산율 저하도 양극화에서 기인한 불확실한 미래, 특히 젊은이들의 불안정한 경제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노무현 정권의 대표적 실정인 부동산값 폭등과 관련, "부동산 가격 폭등과 양극화는 서로가 서로를 부추기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우회적으로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꼬집었다. 그는 결론적으로 "양극화는 경제문제 중 개별사안이 아닌, 총체적 사안"이라며 "이를 경제문제 중의 하나로 보는 시각은 문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든 거품은 반드시 터진다"
정 전총장은 한국경제의 최대 뇌관으로 일컬어지는 '아파트 거품'과 관련, "자산가격이 그 자산의 근본적인 내재가치를 초과하는 수준에서 결정될 때 생기는 거품은 자본주의경제가 시작된 이래 언제나 틈만 나면 발생했다가 사라지기를 거듭했다"며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열풍에서 시작해 18세기 프랑스의 미시시피버블, 영국의 남해버블, 1920년대 플로리다 토지붐, 대공황 직전의 주식 붐, 80년대 후반의 일본의 거품경제, 94년 멕시코의 거품경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거품들이 놀랄 만큼 비슷한 모습으로 자본주의의 역사를 장식해왔다"고 아파트거품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는 이어 "거품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위대한 물리학자 뉴튼이 남해버블 사건에서 큰 손해를 보았고, 저명한 경제학자 피셔도 대공황 직전의 주식 붐에 잘못 편승하여 3백만 달러의 손해를 보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현명한 사람도 거품 속에서는 여지없이 광기에 휩쓸리고 만다는 사실"이라며 "거품 속에 있던 사람들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이 거품이라는 사실을 붕괴가 시작되고 나서야 비로소 인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아파트거품의 존재를 부인하는 이들을 꼬집기도 했다. 그는 "거품은 언젠가는 터진다"고 단언했다.
그는 미국발 부동산거품 파열, 앤케리, 차이나쇼크 등 최근 국제경제계를 공포에 떨게 하는, 과잉유동성이 초래한 자산거품에 대해서도 "자본주의 역사는 메이니아(광기)-패닉(공포)-크래쉬(붕괴)의 역사였다. 과잉 유동성과 그에 따른 부동산-주식 투자가 거품과 파열을 가져올 것이란 우려를 안 할 수는 없다"고 우려감을 표명하면서도 "그러나 경제지식의 축적과 국제기구의 협조로 파국으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2차 기업구조조정 위기, 우려해야"
정 전총장은 최근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의 발언으로 화두가 된 '제2차 기업구조조정 위기'에 공감을 표시하며 경제주체들의 심각한 각성을 촉구했다.
정 전총장은 "지금 우리경제는 자신이 갖고 있는 생산능력을 충분하게 발휘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미래를 위한 생산능력도 배양하지 못하고 있다"며 '3년 후 이익을 낼 사업 분야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기업이 53.5%, '10년 후까지 준비돼 있다'는 기업은 1%에 지나지 않는다는 최근 상공회의소 조사결과를 인용하며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는 "투자 수익률을 결정하는 자본의 한계생산성도 최근에는 1970년대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수준까지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기술수준도 과거에 비해 많이 향상되기는 했지만 아직 선진국에 비해서는 크게 낮은 실정이고, 인적자본이나 지적자본에 대한 투자 대부분이 당장에 효과를 내는 것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여러 불확실성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이 정부정책의 불확실성"이라며 "정부는 대기업 규제의 목표와 그 우선순위를 분명히 정하고, 이를 시장에게 일관되게 제시하고 집행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인적자원은 우리가 개발해야"
정 전총장은 이같은 총체적 위기의 타개책으로 '교육개혁'의 시급성을 지적했다.
그는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생산능력 배양은 내실 있는 교육에 달려있다"며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자원은 우리가 개발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초등교육, 중등교육 등 공교육의 내실을 기하는 동시에 대학의 수월성이 절실하다. 정부는 대학에 지원은 하되 규율은 대폭 완화하여 창조적 경쟁력을 갖춘 다양한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30~40년간 대학들은 선진과학과 기술을 전수하고 확산하는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였다. 대학의 지식과 기술을 사회 전 분야에 확산시킴으로서 자원과 자본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연 평균 8%의 고도성장을 지속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우리와 선진국가들의 기술격차가 급격히 줄어든 상황에서 대학은 이제 지식전수기관을 넘어 지식창출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식창출은 창의성을 필요로 하고 창의성은 다양성에서 나온다"며 "대학의 구성원, 즉 교수 학생 및 직원의 다양성, 그들의 활동의 장의 다양성 등은 그들을 종전과는 다른 생각, 새로운 생각, 창조적 생각으로 유도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비빔밥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조적 역량이 나올 것이란 말이다"라며 예의 '비빔반 인재 육성론'을 폈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총장 재임시절 지역균형선발제를 도입한 것도 다양성을 꾀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계층균형선발제도를 고려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며 서민계층 자녀에게도 일정비율 입학을 배정하는 '계층균형선발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과거회귀형 실물경험보다 미래지향적 지식-경륜이 더 중요"
정 전총장은 정치에 대한 언급을 일체 하지 않았으나, 이명박 전서울시장이 자신을 겨냥해 '실물경제 전문가 우위론'을 편 데 대해선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정 전총장은 "단기적으로 보면 실물 경험이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이론과 원칙이 더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우리 경제는 과거의 운행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단계로 도약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과거의 운용방식이 무조건 투입량을 확대하여 양적 성장을 추구하는 물량적 성장을 추구하였다면 이제는 기술집약형의 생산성을 중시하는, 보다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 시대인 것"이라고 이 전시장 주장을 비판했다.
그는 "이런 시대정신과 경제 발전단계에 비추어 과거회귀형의 실물경험보다는 미래지향적인 이론과 원칙에 대한 지식과 경륜이 더욱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이 전시장 주장을 일축했다.
“경제 모르고 정치 논할 수 없고, 정치 모르고 경제 논할 수 없다”
정 전총장은 '경제는 차기대선 화두가 못된다. 차기대선주자는 정치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 노무현 대통령 주장에 대해서도 우회적 비판을 가했다.
정 전총장은 "'경제(經濟)’란 말은 장자(莊子)의<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이란 문구를 줄인 말"이라며 "경세제민이란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인데 이것이 곧 정치의 본령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정치나 경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며 "경제를 모르고 정치를 논할 수도 없고, 정치를 모르고 경제를 논할 수도 없다. 경제와 정치는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정 전총장은 또 그동안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많이 발표해온 것과 관련, "상아탑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으나, 제5공화국이란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경제학도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곧 부정한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래서 1986년 4월 개헌을 요구하는 서울대 교수 시국선언문 발표에 앞장서기도 했고, 또 1987년부터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우리나라 은행의 부실채권에 대한 경고도 서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한국경제의 과잉팽창과 재벌정책은 과감히 비판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다보니 조금씩 현실 문제에 발을 담근 셈이 되었는데 지식인으로서 해야 할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라며 "나는 지금까지 정치적 자리나 관직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며 그동안 자신의 삶을 정치적 행보로 해석하는 일각의 해석에 쐐기를 박았다.
정 전 총장의 인터뷰는 개별 언론사와의 정식 인터뷰를 피하고 있는 사정을 고려해 12일 서면인터뷰 방식으로 행해졌다. 다음은 서면 인터뷰 전문.
"부동산가격 폭등과 양극화, 악순환 고리 형성"
뷰스앤뉴스(이하 뷰스) 한국경제가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고 했는데 그 근거는? 노무현 대통령은 양극화 빼고는 문제될 게 없다고 상반된 진단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인식 차의 근거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이하 정운찬) 한국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우리에게 맞는 ‘새로운 조정(coordination)’메커니즘을 정착시키지 못하고 있다. ‘한국주식회사(Korea Inc.)'라고까지 불렸던 정부-대기업-금융의 삼각 조정 메커니즘은 경제가 비교적 단순하던 과거 시절 얘기이다. 지금 같은 글로벌시대에서는 이러한 메커니즘은 제대로 기능을 할 수도 없고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다.
삼각조정 메커니즘의 빈자리를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새로운 조정 메커니즘이 메웠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다보니 여러 가지 문제와 갈등 요소들이 원만히 해결되지 못하여 우리 경제의 정체요인으로 남게 되었고, 그 결과 우리 사회는 ‘경제하려는 의지(the will to economize)'마저 상실한 무기력한 사회가 되었다.
우리 경제의 활력 상실은 소득증가 부진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득증가의 부진은 가계 빚의 증가를 불러 왔고, 가계 빚은 이미 더 이상 증가하기 어려운 한계상황에 도달한 지 오래여서 소득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면 소비 증가와 내수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소득 및 재산의 양극화, 부동산 버블, 고용 및 노후불안, 기업의 투자의욕 부진 등 부정적인 현상들이 한층 악화되었고 사회적으로도 자살과 이혼이 급증하는 등 불과 몇 년 사이에 우리 경제와 사회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양극화는 다윈 식의 투쟁(Darwinian stuggle)을 초래하기 마련이며, 사회통합을 저해한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출산율 저하도 양극화에서 기인한 불확실한 미래, 특히 젊은이들의 불안정한 경제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한 부동산 가격 폭등과 양극화는 서로가 서로를 부추기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패자에게 재기할 기회를 주고, 누구나 지식, 정보, 자금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아울러 지나친 양극화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공정거래의 보장,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분단현상 해소, 사회적 이동성의 제고 등도 추진해야 한다.
이와 같이 양극화는 경제문제 중 개별사안이 아닌, 총체적 사안이다. 이를 경제문제 중의 하나로 보는 시각은 문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한 것이다.
뷰스 정 전총장은 IMF직후 “한국경제 죽어야 산다”고 했는데 그렇게 됐다고 보나. 서민들은 IMF사태 때보다 더 살기 힘들어졌다고 말하는데.
정운찬 ‘죽어야 산다’는 뜻은 죽을 각오로 원칙을 지키라고 한 말이다. IMF구제금융 이후 완전하지는 않지만 경제활동의 투명성이 높아졌고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인 적자생존의 원칙도 어느 정도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중산층이 아래로 무너져 고통을 겪게 되었다.
“모든 거품은 언젠가 터진다”
뷰스 지난 수년간 가장 큰 경제문제 중 하나로 아파트거품을 뽑는다. 아파트거품 파열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아파트거품이 터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지. 거품이 터진다면 과연 일본의 전철을 밟은 것인지.
정운찬 자산가격이 그 자산의 근본적인 내재가치를 초과하는 수준에서 결정될 때 생기는 거품은 자본주의경제가 시작된 이래 언제나 틈만 나면 발생했다가 사라지기를 거듭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열풍에서 시작해 18세기 프랑스의 미시시피버블, 영국의 남해버블, 1920년대 플로리다 토지붐, 대공황 직전의 주식 붐, 80년대 후반의 일본의 거품경제, 94년 멕시코의 거품경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거품들이 놀랄 만큼 비슷한 모습으로 자본주의의 역사를 장식해왔다.
거품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그것이 엄청난 후유증을 남긴다는 점 외에도) 위대한 물리학자 뉴튼이 남해버블 사건에서 큰 손해를 보았고, 저명한 경제학자 피셔도 대공황 직전의 주식 붐에 잘못 편승하여 3백만 달러의 손해를 보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현명한 사람도 거품 속에서는 여지없이 광기에 휩쓸리고 만다는 사실이다.
거품 속에 있던 사람들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이 거품이라는 사실을 붕괴가 시작되고 나서야 비로소 인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거품은 언젠가는 터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는 모른다. 터진 다음에나 알 수 있다. 일본의 전철을 밟을지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뷰스 차이나쇼크, 엔캐리 청산 등으로 국제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국제적 과잉유동성에 따른 국제적 규모의 부동산-주식 거품 파열 우려도 커지고 있는데, 뉴케인즈언인 공황전문가로서 어떻게 판단하는지.
정운찬 나는 공황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나 킨들버거 교수와 갈브레이드 교수가 누누이 말했듯이 자본주의 역사는 메이니아(광기)-패닉(공포)-크래쉬(붕괴)의 역사였다. 과잉 유동성과 그에 따른 부동산-주식 투자가 거품과 파열을 가져올 것이란 우려를 안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제지식의 축적과 국제기구의 협조로 파국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정책, 원리원칙에 따라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영해야”
뷰스 역대 정권은 집권 후 경기가 나빠지면 흔히 토목-건설 등 부동산경기부양책을 펴왔다. 그 결과 한국경제는 국내총생산(GDP)에서 건설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17%에 달하는 등 건설업 의존도가 기형적으로 큰데, 향후 정권은 집권 후 어떤 정책을 펴야 한다고 보나.
정운찬 정책은 가장 시급한 사안을 해결하는 수단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는 비 올 때는 우산을 써야 하고 빛이 나면 양산을 써야 한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원리원칙에 입각한 경제정책이 필요하다.
우리 경제의 발전 단계 및 국제적 경쟁 환경의 추이에 비추어 이제는 IT, S/W, 인적 자본 중심의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경제 운영이 필요하다.
“IMF 10년차 '대기업 2차 구조조정 위기', 우려할만하다”
뷰스 그동안 낮은 환율에 힘입어 약진하던 한국자동차들이 위기를 맞고 LCD 등 일부 대기업에 대해서도 위기론이 제기되는 등, 적잖은 한국대기업들이 IMF 10년차를 맞아 '2차 구조조정 위기'를 맞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데 동의하는지.
정운찬 우려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경제는 자신이 갖고 있는 생산능력을 충분하게 발휘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미래를 위한 생산능력도 배양하지 못하고 있다. 투자수익률 저하와 왜곡된 투자구조, 이윤 기회에 대한 불확실성, 금융 위험 기피 등의 이유 때문이다.
지난 2월 24일 대한 상공회의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3년 후 이익을 낼 사업 분야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기업이 전체의 53.5%나 됐으며 “10년 후까지 준비돼 있다”는 기업은 1%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투자 수익률을 결정하는 자본의 한계생산성도 최근에는 1970년대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수준까지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자본의 한계생산성이 하락한 것은 인적자본과 기술수준의 문제에 기인한다. 일자리를 못 구할 정도로 남아도는 인력은 많지만 새로운 투자아이템을 고안해 내는 인적 자본과 기업들이 원하는 수준의 자질을 갖추고 있으며 충분한 임금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고급인력은 별로 많지 않다.
기술수준도 과거에 비해 많이 향상되기는 했지만 아직 선진국에 비해서는 크게 낮은 실정이다. 우리나라 전(全)산업 기술 수준은 미국의 절반 또는 그 이하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인적자본이나 지적자본에 대한 투자가 과거보다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당장에 효과를 내는 것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R&D(기술개발)투자도 기틀을 다지기보다는 당장 쉽게 돈이 되는 곳에 지출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실물자본에 비해 인적․ 지적 자본이 부족하게 되었고 그것은 다시 장기적 투자 기회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투자란 한번 하면 돌이키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은 상당한 확신이 들어야 비로소 투자결정을 한다. 그러므로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투자를 하는 것보다 투자를 지연시키는 것이 기업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일 경우가 많다.
불확실성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이 정부정책의 불확실성이다. 정부는 대기업 규제의 목표와 그 우선순위를 분명히 정하고, 이를 시장에게 일관되게 제시하고 집행해야 한다.
다른 각종 규제도 일관성 있게 정비하여 현금을 보유하고도 설비투자를 미루는 위험기피적 선택보다는 활발한 투자의욕을 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서민생활 지원 위한 부가가치세 등 특정 분야 세율 조정 필요"
뷰스 고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은 프랑스 경제 위기 때 집권한 후 우파들의 법인세 인하 요구를 일축하고, 대신 서민들이 사용하는 생활필수품의 부가가치세를 한시적으로 낮춰 서민경제와 내수중소기업을 부양한 정책을 편 바 있는데 이에 대한 평가는.
정운찬 우리나라의 법인세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여 이미 낮은 수준이다. 부가세는 세수 비중이 커서 전반적으로 세율을 조정하기는 쉽지 않으나 서민생활의 지원 측면에서 특정 분야의 세율 조정은 필요하다고 본다.
중장기적으로 세제개혁은 형평성과 효율성의 조화, 그리고 안정적 재정 운용이라는 견지에서 종합적 검토가 필요하고 마스터플랜을 세워 꾸준하게 추진하는 정치적 리더십이 꼭 필요한 분야이다.
뷰스 국회가 40%를 상한으로 하는 이자제한법을 통과시켰는데 여기서 대부업체들(연 66% 보장)은 제외돼 '무늬만 이자제한법'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정운찬 가격상한제나 가격하한제는 실효를 거두기 힘들다. 그러나 연 66% 이자율은 아무래도 사회에 불확실성이 많다 해도 너무 높다.
뷰스 최근 재경부차관과 산자부차관 등이 하나금융지주, 하이닉스 등의 수장으로 가는 등 낙하산 인사가 만연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특히 노무현 정권 들어 IMF 때 크게 움츠러들었던 관료들의 발언권이 거세지고 있다는 평가가 있는데.
정운찬 능력만 있다면 과거 자리가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른바 코드나 이런저런 인연관계로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인적자원은 우리가 개발해야 한다"
뷰스 교육에 대한 국민 불만이 폭발직전이다. 평균화정책에도 불구하고 사교육비가 급증하고 가진층에서는 해외유학이 일반화하고 있는데, 교육개혁의 큰 방향은 어느 쪽으로 가야 한다고 보나. 정 전 총장은 특히 교육문제를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대책과 연관해 보고, 그 속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정운찬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생산능력 배양은 내실 있는 교육에 달려있다. 투자부진은 단기적으로는 정부정책의 일관성 부족 등 불확실성 때문이지만 중장기적으로 보자면 투자대상 부족과 낮은 투자효율에 그 원인이 있다.
이는 넓은 의미의 인적자원 부족에 기인하는 것이다. 전 세계 시장이 개방된 세계화 시대에 자본부족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자본이 모자란다면 외국자본을 유치할 환경을 조성하면 된다. 하지만 사람의 이동은 자유롭지 않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자원은 우리가 개발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초등교육, 중등교육 등 공교육의 내실을 기하는 동시에 대학의 수월성이 절실하다. 정부는 대학에 지원은 하되 규율은 대폭 완화하여 창조적 경쟁력을 갖춘 다양한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뷰스 통합논술 도입 후 논술과외 등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본래 도입취지와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는데, 이런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선 어떤 측면이 보완돼야 한다고 보나.
정운찬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고 진정한 선진사회로 진입하려면 사회 전반의 인문학적 소양과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이런 면에서 대학 입시에서 독서와 사색, 종합적 사고능력과 이의 표현능력을 요구하는 평가시스템을 갖는 것이 필요하고 바람직하다.
뷰스 교육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학벌 중심, 간판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일각에서는 '서울대 해체론'까지나오는데...학벌 중심, 간판 중심의 사회 구조를 깨기 위한 방안을 꼽는다면.
정운찬 교육은 잠재능력의 계발과 함께 사회계층이동을 위해 중요하다. 물론 학벌중시, 간판중시 등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서울대 폐지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 대신 서울대와 비슷한 수준의 대학을 여럿 만들었으면 좋겠다. 더 많은 교육투자와 포괄적 자율화는 필수조건이다.
"비빔밥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조적 역량이 나올 것"
뷰스 총장 재직 시절, 교육개혁을 추진하면서 '비빔밥 인간'을 만들고 싶다고 주장해왔는데. '비빔밥 인간'이란 어떤 인간을 가리키는가. 총장 재직 때 대학생들에게 '비판적 지성'이 되라고 강조해왔는데
정운찬 과거 30~40년간 대학들은 선진과학과 기술을 전수하고 확산하는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였다. 대학의 지식과 기술을 사회 전 분야에 확산시킴으로서 자원과 자본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연 평균 8%의 고도성장을 지속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우리와 선진국가들의 기술격차가 급격히 줄어든 상황에서 대학은 이제 지식전수기관을 넘어 지식창출기관이 되어야 한다.
지식창출은 창의성을 필요로 한다. 또한 창의성은 다양성에서 나온다. 대학의 구성원, 즉 교수 학생 및 직원의 다양성, 그들의 활동의 장의 다양성 등은 그들을 종전과는 다른 생각, 새로운 생각, 창조적 생각으로 유도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비빔밥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조적 역량이 나올 것이란 말이다.
총장 재임시절 지역균형선발제를 도입한 것도 다양성을 꾀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계층균형선발제도를 고려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비빔밥 인간’의 새로운 생각은 현재의 것을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창조적 지성, 즉 비판적 지성을 키워줄 것이다.
"지금은 과거지향적 실물경험보다 미래지향적 지식-경륜이 중요한 시기"
뷰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경제교수들을 '이론가', 자신은 '실물경제전문가'라고 비교하며 '실물 경제전문가 우위론'을 폈는데 동의하나.
정운찬 단기적으로 보면 실물 경험이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이론과 원칙이 더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 경제는 과거의 운행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단계로 도약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과거의 운용방식이 무조건 투입량을 확대하여 양적 성장을 추구하는 물량적 성장을 추구하였다면 이제는 기술집약형의 생산성을 중시하는, 보다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이런 시대정신과 경제 발전단계에 비추어 과거회귀형의 실물경험보다는 미래지향적인 이론과 원칙에 대한 지식과 경륜이 더욱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경제 모르고 정치 논할 수 없고, 정치 모르고 경제 논할 수 없다”
뷰스 지금껏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를 두고 '정치에 관심이 많은 학자'란 지적 또한 있어 왔다. 경제를 말하며 정치를 간과하지 않은 이유는 경제와 정치의 함수관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
정운찬 '경제(經濟)’란 말은 장자(莊子)의<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이란 문구를 줄인 말이다. 경세제민이란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인데 이것이 곧 정치의 본령이 아닌가.
정치나 경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경제를 모르고 정치를 논할 수도 없고, 정치를 모르고 경제를 논할 수도 없다. 경제와 정치는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와 관련한 나의 발언을 언론들이 다른 의도로 해석하는데 나는 그동안 경제학자로서 건설적인 비판을 꾸준히 해왔을 뿐이다.
상아탑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으나, 제5공화국이란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경제학도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곧 부정한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986년 4월 개헌을 요구하는 서울대 교수 시국선언문 발표에 앞장서기도 했고, 또 1987년부터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우리나라 은행의 부실채권에 대한 경고도 서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한국경제의 과잉팽창과 재벌정책은 과감히 비판했다.
그러다보니 조금씩 현실 문제에 발을 담근 셈이 되었는데 지식인으로서 해야 할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다. 나는 지금까지 정치적 자리나 관직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정운찬 "한국사회 총체적 위기 직면"
정 전총장은 우선 한국 사회의 현주소와 관련, "현재 우리 사회는 ‘경제하려는 의지'마저 상실한 무기력한 사회가 되었고 우리 경제의 활력 상실은 소득증가 부진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소득증가의 부진은 가계 빚의 증가를 불러 왔고, 가계 빚은 이미 더 이상 증가하기 어려운 한계상황에 도달한 지 오래여서 소득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면 소비 증가와 내수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뿐만 아니라 소득 및 재산의 양극화, 부동산 버블, 고용 및 노후불안, 기업의 투자의욕 부진 등 부정적인 현상들이 한층 악화되었고 사회적으로도 자살과 이혼이 급증하는 등 불과 몇 년 사이에 우리 경제와 사회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렸다"고 양극화의 심각성을 지적한 뒤,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출산율 저하도 양극화에서 기인한 불확실한 미래, 특히 젊은이들의 불안정한 경제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노무현 정권의 대표적 실정인 부동산값 폭등과 관련, "부동산 가격 폭등과 양극화는 서로가 서로를 부추기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우회적으로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꼬집었다. 그는 결론적으로 "양극화는 경제문제 중 개별사안이 아닌, 총체적 사안"이라며 "이를 경제문제 중의 하나로 보는 시각은 문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든 거품은 반드시 터진다"
정 전총장은 한국경제의 최대 뇌관으로 일컬어지는 '아파트 거품'과 관련, "자산가격이 그 자산의 근본적인 내재가치를 초과하는 수준에서 결정될 때 생기는 거품은 자본주의경제가 시작된 이래 언제나 틈만 나면 발생했다가 사라지기를 거듭했다"며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열풍에서 시작해 18세기 프랑스의 미시시피버블, 영국의 남해버블, 1920년대 플로리다 토지붐, 대공황 직전의 주식 붐, 80년대 후반의 일본의 거품경제, 94년 멕시코의 거품경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거품들이 놀랄 만큼 비슷한 모습으로 자본주의의 역사를 장식해왔다"고 아파트거품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는 이어 "거품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위대한 물리학자 뉴튼이 남해버블 사건에서 큰 손해를 보았고, 저명한 경제학자 피셔도 대공황 직전의 주식 붐에 잘못 편승하여 3백만 달러의 손해를 보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현명한 사람도 거품 속에서는 여지없이 광기에 휩쓸리고 만다는 사실"이라며 "거품 속에 있던 사람들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이 거품이라는 사실을 붕괴가 시작되고 나서야 비로소 인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아파트거품의 존재를 부인하는 이들을 꼬집기도 했다. 그는 "거품은 언젠가는 터진다"고 단언했다.
그는 미국발 부동산거품 파열, 앤케리, 차이나쇼크 등 최근 국제경제계를 공포에 떨게 하는, 과잉유동성이 초래한 자산거품에 대해서도 "자본주의 역사는 메이니아(광기)-패닉(공포)-크래쉬(붕괴)의 역사였다. 과잉 유동성과 그에 따른 부동산-주식 투자가 거품과 파열을 가져올 것이란 우려를 안 할 수는 없다"고 우려감을 표명하면서도 "그러나 경제지식의 축적과 국제기구의 협조로 파국으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2차 기업구조조정 위기, 우려해야"
정 전총장은 최근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의 발언으로 화두가 된 '제2차 기업구조조정 위기'에 공감을 표시하며 경제주체들의 심각한 각성을 촉구했다.
정 전총장은 "지금 우리경제는 자신이 갖고 있는 생산능력을 충분하게 발휘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미래를 위한 생산능력도 배양하지 못하고 있다"며 '3년 후 이익을 낼 사업 분야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기업이 53.5%, '10년 후까지 준비돼 있다'는 기업은 1%에 지나지 않는다는 최근 상공회의소 조사결과를 인용하며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는 "투자 수익률을 결정하는 자본의 한계생산성도 최근에는 1970년대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수준까지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기술수준도 과거에 비해 많이 향상되기는 했지만 아직 선진국에 비해서는 크게 낮은 실정이고, 인적자본이나 지적자본에 대한 투자 대부분이 당장에 효과를 내는 것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여러 불확실성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이 정부정책의 불확실성"이라며 "정부는 대기업 규제의 목표와 그 우선순위를 분명히 정하고, 이를 시장에게 일관되게 제시하고 집행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인적자원은 우리가 개발해야"
정 전총장은 이같은 총체적 위기의 타개책으로 '교육개혁'의 시급성을 지적했다.
그는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생산능력 배양은 내실 있는 교육에 달려있다"며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자원은 우리가 개발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초등교육, 중등교육 등 공교육의 내실을 기하는 동시에 대학의 수월성이 절실하다. 정부는 대학에 지원은 하되 규율은 대폭 완화하여 창조적 경쟁력을 갖춘 다양한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30~40년간 대학들은 선진과학과 기술을 전수하고 확산하는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였다. 대학의 지식과 기술을 사회 전 분야에 확산시킴으로서 자원과 자본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연 평균 8%의 고도성장을 지속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우리와 선진국가들의 기술격차가 급격히 줄어든 상황에서 대학은 이제 지식전수기관을 넘어 지식창출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식창출은 창의성을 필요로 하고 창의성은 다양성에서 나온다"며 "대학의 구성원, 즉 교수 학생 및 직원의 다양성, 그들의 활동의 장의 다양성 등은 그들을 종전과는 다른 생각, 새로운 생각, 창조적 생각으로 유도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비빔밥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조적 역량이 나올 것이란 말이다"라며 예의 '비빔반 인재 육성론'을 폈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총장 재임시절 지역균형선발제를 도입한 것도 다양성을 꾀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계층균형선발제도를 고려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며 서민계층 자녀에게도 일정비율 입학을 배정하는 '계층균형선발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과거회귀형 실물경험보다 미래지향적 지식-경륜이 더 중요"
정 전총장은 정치에 대한 언급을 일체 하지 않았으나, 이명박 전서울시장이 자신을 겨냥해 '실물경제 전문가 우위론'을 편 데 대해선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정 전총장은 "단기적으로 보면 실물 경험이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이론과 원칙이 더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우리 경제는 과거의 운행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단계로 도약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과거의 운용방식이 무조건 투입량을 확대하여 양적 성장을 추구하는 물량적 성장을 추구하였다면 이제는 기술집약형의 생산성을 중시하는, 보다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 시대인 것"이라고 이 전시장 주장을 비판했다.
그는 "이런 시대정신과 경제 발전단계에 비추어 과거회귀형의 실물경험보다는 미래지향적인 이론과 원칙에 대한 지식과 경륜이 더욱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이 전시장 주장을 일축했다.
“경제 모르고 정치 논할 수 없고, 정치 모르고 경제 논할 수 없다”
정 전총장은 '경제는 차기대선 화두가 못된다. 차기대선주자는 정치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 노무현 대통령 주장에 대해서도 우회적 비판을 가했다.
정 전총장은 "'경제(經濟)’란 말은 장자(莊子)의<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이란 문구를 줄인 말"이라며 "경세제민이란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인데 이것이 곧 정치의 본령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정치나 경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며 "경제를 모르고 정치를 논할 수도 없고, 정치를 모르고 경제를 논할 수도 없다. 경제와 정치는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정 전총장은 또 그동안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많이 발표해온 것과 관련, "상아탑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으나, 제5공화국이란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경제학도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곧 부정한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래서 1986년 4월 개헌을 요구하는 서울대 교수 시국선언문 발표에 앞장서기도 했고, 또 1987년부터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우리나라 은행의 부실채권에 대한 경고도 서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한국경제의 과잉팽창과 재벌정책은 과감히 비판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다보니 조금씩 현실 문제에 발을 담근 셈이 되었는데 지식인으로서 해야 할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라며 "나는 지금까지 정치적 자리나 관직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며 그동안 자신의 삶을 정치적 행보로 해석하는 일각의 해석에 쐐기를 박았다.
정 전 총장의 인터뷰는 개별 언론사와의 정식 인터뷰를 피하고 있는 사정을 고려해 12일 서면인터뷰 방식으로 행해졌다. 다음은 서면 인터뷰 전문.
"부동산가격 폭등과 양극화, 악순환 고리 형성"
뷰스앤뉴스(이하 뷰스) 한국경제가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고 했는데 그 근거는? 노무현 대통령은 양극화 빼고는 문제될 게 없다고 상반된 진단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인식 차의 근거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이하 정운찬) 한국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우리에게 맞는 ‘새로운 조정(coordination)’메커니즘을 정착시키지 못하고 있다. ‘한국주식회사(Korea Inc.)'라고까지 불렸던 정부-대기업-금융의 삼각 조정 메커니즘은 경제가 비교적 단순하던 과거 시절 얘기이다. 지금 같은 글로벌시대에서는 이러한 메커니즘은 제대로 기능을 할 수도 없고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다.
삼각조정 메커니즘의 빈자리를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새로운 조정 메커니즘이 메웠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다보니 여러 가지 문제와 갈등 요소들이 원만히 해결되지 못하여 우리 경제의 정체요인으로 남게 되었고, 그 결과 우리 사회는 ‘경제하려는 의지(the will to economize)'마저 상실한 무기력한 사회가 되었다.
우리 경제의 활력 상실은 소득증가 부진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득증가의 부진은 가계 빚의 증가를 불러 왔고, 가계 빚은 이미 더 이상 증가하기 어려운 한계상황에 도달한 지 오래여서 소득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면 소비 증가와 내수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소득 및 재산의 양극화, 부동산 버블, 고용 및 노후불안, 기업의 투자의욕 부진 등 부정적인 현상들이 한층 악화되었고 사회적으로도 자살과 이혼이 급증하는 등 불과 몇 년 사이에 우리 경제와 사회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양극화는 다윈 식의 투쟁(Darwinian stuggle)을 초래하기 마련이며, 사회통합을 저해한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출산율 저하도 양극화에서 기인한 불확실한 미래, 특히 젊은이들의 불안정한 경제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한 부동산 가격 폭등과 양극화는 서로가 서로를 부추기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패자에게 재기할 기회를 주고, 누구나 지식, 정보, 자금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아울러 지나친 양극화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공정거래의 보장,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분단현상 해소, 사회적 이동성의 제고 등도 추진해야 한다.
이와 같이 양극화는 경제문제 중 개별사안이 아닌, 총체적 사안이다. 이를 경제문제 중의 하나로 보는 시각은 문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한 것이다.
뷰스 정 전총장은 IMF직후 “한국경제 죽어야 산다”고 했는데 그렇게 됐다고 보나. 서민들은 IMF사태 때보다 더 살기 힘들어졌다고 말하는데.
정운찬 ‘죽어야 산다’는 뜻은 죽을 각오로 원칙을 지키라고 한 말이다. IMF구제금융 이후 완전하지는 않지만 경제활동의 투명성이 높아졌고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인 적자생존의 원칙도 어느 정도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중산층이 아래로 무너져 고통을 겪게 되었다.
“모든 거품은 언젠가 터진다”
뷰스 지난 수년간 가장 큰 경제문제 중 하나로 아파트거품을 뽑는다. 아파트거품 파열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아파트거품이 터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지. 거품이 터진다면 과연 일본의 전철을 밟은 것인지.
정운찬 자산가격이 그 자산의 근본적인 내재가치를 초과하는 수준에서 결정될 때 생기는 거품은 자본주의경제가 시작된 이래 언제나 틈만 나면 발생했다가 사라지기를 거듭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열풍에서 시작해 18세기 프랑스의 미시시피버블, 영국의 남해버블, 1920년대 플로리다 토지붐, 대공황 직전의 주식 붐, 80년대 후반의 일본의 거품경제, 94년 멕시코의 거품경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거품들이 놀랄 만큼 비슷한 모습으로 자본주의의 역사를 장식해왔다.
거품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그것이 엄청난 후유증을 남긴다는 점 외에도) 위대한 물리학자 뉴튼이 남해버블 사건에서 큰 손해를 보았고, 저명한 경제학자 피셔도 대공황 직전의 주식 붐에 잘못 편승하여 3백만 달러의 손해를 보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현명한 사람도 거품 속에서는 여지없이 광기에 휩쓸리고 만다는 사실이다.
거품 속에 있던 사람들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이 거품이라는 사실을 붕괴가 시작되고 나서야 비로소 인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거품은 언젠가는 터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는 모른다. 터진 다음에나 알 수 있다. 일본의 전철을 밟을지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뷰스 차이나쇼크, 엔캐리 청산 등으로 국제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국제적 과잉유동성에 따른 국제적 규모의 부동산-주식 거품 파열 우려도 커지고 있는데, 뉴케인즈언인 공황전문가로서 어떻게 판단하는지.
정운찬 나는 공황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나 킨들버거 교수와 갈브레이드 교수가 누누이 말했듯이 자본주의 역사는 메이니아(광기)-패닉(공포)-크래쉬(붕괴)의 역사였다. 과잉 유동성과 그에 따른 부동산-주식 투자가 거품과 파열을 가져올 것이란 우려를 안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제지식의 축적과 국제기구의 협조로 파국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정책, 원리원칙에 따라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영해야”
뷰스 역대 정권은 집권 후 경기가 나빠지면 흔히 토목-건설 등 부동산경기부양책을 펴왔다. 그 결과 한국경제는 국내총생산(GDP)에서 건설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17%에 달하는 등 건설업 의존도가 기형적으로 큰데, 향후 정권은 집권 후 어떤 정책을 펴야 한다고 보나.
정운찬 정책은 가장 시급한 사안을 해결하는 수단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는 비 올 때는 우산을 써야 하고 빛이 나면 양산을 써야 한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원리원칙에 입각한 경제정책이 필요하다.
우리 경제의 발전 단계 및 국제적 경쟁 환경의 추이에 비추어 이제는 IT, S/W, 인적 자본 중심의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경제 운영이 필요하다.
“IMF 10년차 '대기업 2차 구조조정 위기', 우려할만하다”
뷰스 그동안 낮은 환율에 힘입어 약진하던 한국자동차들이 위기를 맞고 LCD 등 일부 대기업에 대해서도 위기론이 제기되는 등, 적잖은 한국대기업들이 IMF 10년차를 맞아 '2차 구조조정 위기'를 맞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데 동의하는지.
정운찬 우려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경제는 자신이 갖고 있는 생산능력을 충분하게 발휘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미래를 위한 생산능력도 배양하지 못하고 있다. 투자수익률 저하와 왜곡된 투자구조, 이윤 기회에 대한 불확실성, 금융 위험 기피 등의 이유 때문이다.
지난 2월 24일 대한 상공회의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3년 후 이익을 낼 사업 분야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기업이 전체의 53.5%나 됐으며 “10년 후까지 준비돼 있다”는 기업은 1%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투자 수익률을 결정하는 자본의 한계생산성도 최근에는 1970년대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수준까지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자본의 한계생산성이 하락한 것은 인적자본과 기술수준의 문제에 기인한다. 일자리를 못 구할 정도로 남아도는 인력은 많지만 새로운 투자아이템을 고안해 내는 인적 자본과 기업들이 원하는 수준의 자질을 갖추고 있으며 충분한 임금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고급인력은 별로 많지 않다.
기술수준도 과거에 비해 많이 향상되기는 했지만 아직 선진국에 비해서는 크게 낮은 실정이다. 우리나라 전(全)산업 기술 수준은 미국의 절반 또는 그 이하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인적자본이나 지적자본에 대한 투자가 과거보다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당장에 효과를 내는 것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R&D(기술개발)투자도 기틀을 다지기보다는 당장 쉽게 돈이 되는 곳에 지출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실물자본에 비해 인적․ 지적 자본이 부족하게 되었고 그것은 다시 장기적 투자 기회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투자란 한번 하면 돌이키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은 상당한 확신이 들어야 비로소 투자결정을 한다. 그러므로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투자를 하는 것보다 투자를 지연시키는 것이 기업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일 경우가 많다.
불확실성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이 정부정책의 불확실성이다. 정부는 대기업 규제의 목표와 그 우선순위를 분명히 정하고, 이를 시장에게 일관되게 제시하고 집행해야 한다.
다른 각종 규제도 일관성 있게 정비하여 현금을 보유하고도 설비투자를 미루는 위험기피적 선택보다는 활발한 투자의욕을 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서민생활 지원 위한 부가가치세 등 특정 분야 세율 조정 필요"
뷰스 고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은 프랑스 경제 위기 때 집권한 후 우파들의 법인세 인하 요구를 일축하고, 대신 서민들이 사용하는 생활필수품의 부가가치세를 한시적으로 낮춰 서민경제와 내수중소기업을 부양한 정책을 편 바 있는데 이에 대한 평가는.
정운찬 우리나라의 법인세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여 이미 낮은 수준이다. 부가세는 세수 비중이 커서 전반적으로 세율을 조정하기는 쉽지 않으나 서민생활의 지원 측면에서 특정 분야의 세율 조정은 필요하다고 본다.
중장기적으로 세제개혁은 형평성과 효율성의 조화, 그리고 안정적 재정 운용이라는 견지에서 종합적 검토가 필요하고 마스터플랜을 세워 꾸준하게 추진하는 정치적 리더십이 꼭 필요한 분야이다.
뷰스 국회가 40%를 상한으로 하는 이자제한법을 통과시켰는데 여기서 대부업체들(연 66% 보장)은 제외돼 '무늬만 이자제한법'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정운찬 가격상한제나 가격하한제는 실효를 거두기 힘들다. 그러나 연 66% 이자율은 아무래도 사회에 불확실성이 많다 해도 너무 높다.
뷰스 최근 재경부차관과 산자부차관 등이 하나금융지주, 하이닉스 등의 수장으로 가는 등 낙하산 인사가 만연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특히 노무현 정권 들어 IMF 때 크게 움츠러들었던 관료들의 발언권이 거세지고 있다는 평가가 있는데.
정운찬 능력만 있다면 과거 자리가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른바 코드나 이런저런 인연관계로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인적자원은 우리가 개발해야 한다"
뷰스 교육에 대한 국민 불만이 폭발직전이다. 평균화정책에도 불구하고 사교육비가 급증하고 가진층에서는 해외유학이 일반화하고 있는데, 교육개혁의 큰 방향은 어느 쪽으로 가야 한다고 보나. 정 전 총장은 특히 교육문제를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대책과 연관해 보고, 그 속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정운찬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생산능력 배양은 내실 있는 교육에 달려있다. 투자부진은 단기적으로는 정부정책의 일관성 부족 등 불확실성 때문이지만 중장기적으로 보자면 투자대상 부족과 낮은 투자효율에 그 원인이 있다.
이는 넓은 의미의 인적자원 부족에 기인하는 것이다. 전 세계 시장이 개방된 세계화 시대에 자본부족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자본이 모자란다면 외국자본을 유치할 환경을 조성하면 된다. 하지만 사람의 이동은 자유롭지 않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자원은 우리가 개발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초등교육, 중등교육 등 공교육의 내실을 기하는 동시에 대학의 수월성이 절실하다. 정부는 대학에 지원은 하되 규율은 대폭 완화하여 창조적 경쟁력을 갖춘 다양한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뷰스 통합논술 도입 후 논술과외 등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본래 도입취지와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는데, 이런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선 어떤 측면이 보완돼야 한다고 보나.
정운찬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고 진정한 선진사회로 진입하려면 사회 전반의 인문학적 소양과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이런 면에서 대학 입시에서 독서와 사색, 종합적 사고능력과 이의 표현능력을 요구하는 평가시스템을 갖는 것이 필요하고 바람직하다.
뷰스 교육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학벌 중심, 간판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일각에서는 '서울대 해체론'까지나오는데...학벌 중심, 간판 중심의 사회 구조를 깨기 위한 방안을 꼽는다면.
정운찬 교육은 잠재능력의 계발과 함께 사회계층이동을 위해 중요하다. 물론 학벌중시, 간판중시 등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서울대 폐지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 대신 서울대와 비슷한 수준의 대학을 여럿 만들었으면 좋겠다. 더 많은 교육투자와 포괄적 자율화는 필수조건이다.
"비빔밥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조적 역량이 나올 것"
뷰스 총장 재직 시절, 교육개혁을 추진하면서 '비빔밥 인간'을 만들고 싶다고 주장해왔는데. '비빔밥 인간'이란 어떤 인간을 가리키는가. 총장 재직 때 대학생들에게 '비판적 지성'이 되라고 강조해왔는데
정운찬 과거 30~40년간 대학들은 선진과학과 기술을 전수하고 확산하는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였다. 대학의 지식과 기술을 사회 전 분야에 확산시킴으로서 자원과 자본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연 평균 8%의 고도성장을 지속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우리와 선진국가들의 기술격차가 급격히 줄어든 상황에서 대학은 이제 지식전수기관을 넘어 지식창출기관이 되어야 한다.
지식창출은 창의성을 필요로 한다. 또한 창의성은 다양성에서 나온다. 대학의 구성원, 즉 교수 학생 및 직원의 다양성, 그들의 활동의 장의 다양성 등은 그들을 종전과는 다른 생각, 새로운 생각, 창조적 생각으로 유도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비빔밥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조적 역량이 나올 것이란 말이다.
총장 재임시절 지역균형선발제를 도입한 것도 다양성을 꾀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계층균형선발제도를 고려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비빔밥 인간’의 새로운 생각은 현재의 것을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창조적 지성, 즉 비판적 지성을 키워줄 것이다.
"지금은 과거지향적 실물경험보다 미래지향적 지식-경륜이 중요한 시기"
뷰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경제교수들을 '이론가', 자신은 '실물경제전문가'라고 비교하며 '실물 경제전문가 우위론'을 폈는데 동의하나.
정운찬 단기적으로 보면 실물 경험이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이론과 원칙이 더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 경제는 과거의 운행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단계로 도약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과거의 운용방식이 무조건 투입량을 확대하여 양적 성장을 추구하는 물량적 성장을 추구하였다면 이제는 기술집약형의 생산성을 중시하는, 보다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이런 시대정신과 경제 발전단계에 비추어 과거회귀형의 실물경험보다는 미래지향적인 이론과 원칙에 대한 지식과 경륜이 더욱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경제 모르고 정치 논할 수 없고, 정치 모르고 경제 논할 수 없다”
뷰스 지금껏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를 두고 '정치에 관심이 많은 학자'란 지적 또한 있어 왔다. 경제를 말하며 정치를 간과하지 않은 이유는 경제와 정치의 함수관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
정운찬 '경제(經濟)’란 말은 장자(莊子)의<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이란 문구를 줄인 말이다. 경세제민이란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인데 이것이 곧 정치의 본령이 아닌가.
정치나 경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경제를 모르고 정치를 논할 수도 없고, 정치를 모르고 경제를 논할 수도 없다. 경제와 정치는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와 관련한 나의 발언을 언론들이 다른 의도로 해석하는데 나는 그동안 경제학자로서 건설적인 비판을 꾸준히 해왔을 뿐이다.
상아탑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으나, 제5공화국이란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경제학도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곧 부정한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986년 4월 개헌을 요구하는 서울대 교수 시국선언문 발표에 앞장서기도 했고, 또 1987년부터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우리나라 은행의 부실채권에 대한 경고도 서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한국경제의 과잉팽창과 재벌정책은 과감히 비판했다.
그러다보니 조금씩 현실 문제에 발을 담근 셈이 되었는데 지식인으로서 해야 할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다. 나는 지금까지 정치적 자리나 관직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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