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찬 “98년 상고이유서에 ‘위증교사’ 적시”
<인터뷰> "2002년 <이명박 리포트> 존재 안해" 주장도
김유찬 씨가 지난 98년 4월 이명박 의원 항소심 이후 대법원에 낸 ‘상고이유서’에서 이미 이 전 시장측의 ‘위증 교사’ 혐의를 적시했다고 주장했다.
“98년 대법원 상고이유서에 이 전 시장의 ‘위증 교사’ 적시”
김 씨는 25일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 건물 내 마련된 자신의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98년 6월 3일, 저는 정말 진정성을 갖고 이 전 시장에 사과를 하러 간 것이지만 결국 제3자 화법을 통한 살해위협을 받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더라도 이 사람과는 결코 화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98년 4월에 2심이 끝난 뒤 대법원 상고가 있었다. 이 전 시장에 받은 6월 3일의 그 모독을 참지 못해 결국 모든 것을 밝혀야 되겠다는 심정으로 상고이유서를 쓰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법원 상고이유서에서 그 같은 내용의 위증 교사 부분을 적시해 제출했다”며 “2심까지 내가 증언한 것이 모두 이 전 시장측의 교사에 따른 허위 증언이라는 내용이 상고서의 주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 후보검증위원회에도 그 때(98년 6월)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 위증 교사가 골자인 상고이유서를 제출한 적이 있음을 보고했다”며 “이는 이 전 시장의 위증 교사 혐의를 입증하는 명확한 증거물”이라고 주장했다.
“주성영 검사에게는 진실 밝혀. 법정진술에서 검찰 진술 번복 '위증'"
그는 ‘위증 교사’의 또 다른 증거물로 96년 10월 6일 귀국해 검찰에서 작성한 진술서를 들기도 했다. 그는 “주성영 당시 수사검사(현 한나라당 의원)에게 상대적으로 담담하게 진실을 진술했다”며 “그래서 주 검사께서도 ‘수사가 비교적 잘 됐다’고 (최근에) 표현했는데 그게 맞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저는 당시 주 검사께서 주무검사였기에 제가 상당히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줬다”며 “검찰도 저의 수사태도에 대단히 만족했고 참고인 조사를 통해 내 진술이 실체적 진실에 접근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제가 검찰 진술을 법정에서 전면 뒤집는다”며 “96년 10월 6일 캐나다에서 극비 귀국했고 나흘 뒤인 10월 10일 검찰로부터 기소 당했다. 그리고 첫 공판(96년 11월 28일)이 열리기 까지 한 달이라는 공백기간이 생긴다. 그 한 달 기간동안 집요하게 권 국장과 주 부장과 접선하면서 위증 교사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마련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듬해 7월, 1심 검찰로부터 징역 1년6월을 구형 받은 것도 초기 진술과는 달리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검찰 역시 내가 수사검사에게 당시 조사를 받을 때 진술했던 내용과는 달리 법정에서 이를 번복하고 부인하니까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징역 1년 6개월 정도를 1심에서 구형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자술서 전면 부정, 검찰 수사 전면 부정, 이종찬 부총재와의 3억원 거래설 인정 등 그 부분에 대한 진술 번복 책임을 물어 기소 검사가 (형량을) 걸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2년 <이명박 리포트>는 존재하지도,출판하려고 시도한 적도 없다”
한편 김 씨는 이 전 시장측이 입수했다는 <2002년도판 이명박 리포트>의 내용에 대해 상당부분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책이라고 하는 것은 저자가 완전히 교정과 탈고를 다 해서 이른바 출판물의 형태로 내 나가는 것이 저자의 마지막 입장인 것”이라며 “2002년 판은 제가 만든 초판이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2002년 버전이라는 것은 제 자신이 전혀 만들지도 않았고 실체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 시장쪽이 어떤 경로를 통해 그런 것을 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쪽에서 말하는 2002년 버전이라는 것은 제 자신이 절대 만들지도, 만드려고 시도하지도 않았다. 2002년 리포트라는 전혀 있지도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오히려 “초고는 아마도 누군가에 의해 가필되는 과정을 겪고, 마치 부동산에도 브로커가 있듯이 정치판에도 브로커가 있어서 아주 유력한 정보는 상품으로 가치가 있기에 유출본을 가지고 이 사람들이 이 전 시장쪽과 딜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권영옥 씨가 자신으로부터 입수해 언론에 공개한 ‘이명박 리포트’ 초고 또한 “완전한 진본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김유찬 씨와의 인터뷰 전문
"권용옥 씨에게 준 초고는 진본 아닌 상당 부분 내용 누락된 것"
뷰스앤뉴스(이하 뷰스) 권영옥 씨가 언론에 공개한 초안을 보면 일부분이 비어있는 상태던데 아직 내용을 다 못채웠나?
김유찬 전 비서(이하 김유찬) 제가 일부러 비워뒀다. 권 씨를 못 믿는 부분도 있고 원고가 시중에 많이 유출 돼 있기에, 또 거기에 많이 가필이 되어 있는 상태다. 그래서 제가 임의로 A, B, C 타입으로 나눠났다. 그 분들이 이를 접했을 때 대략 어떤 반응을 보이실 지 다 알기 때문에라도 그런 조처를 취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법적 위증 부분을 적시하면 그 분이 꺼려할지도 모를까 해서 그 부분을 삭제해서 던져보니 아니나 다를까 덥썩...
권영옥 씨에게 던진 것은 B타입 정도된다. 진본은 C타입이다. 국민들과 독자들이 알고자 하는 것은 이 전 시장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와 정확성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자는 차원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
뷰스 1년동안 이명박을 모셨는데 그 기간이 짧기에 이 전 시장의 리포트를 쓸 만큼 많은 정보를 가질 수 있었을까?
김유찬 선거 한 복판에서 선거 기획을 할 정도로 압축된 경험을 했다. 통상적으로 일반인들이 제 3자가 보는 시각보다 깊숙이 드러다 보았고 선거 전 과정에 핵심을 맡았기에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제가 아는 것 보다 10년 넘게 이 전 시장을 모신 권영옥 국장은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권 국장은 이 전 시장이 현대 재직 당시부터 인연을 맺은 분이다. 아시다시피 이 전 시장의 처남이자 자금관리를 모두 맡고 있는 김재정 씨의 부인이 권 국장의 여동생이다. 그러기에 누구보다도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이명박 리포트를 저술하면서 그 책이 어제 오늘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96년 당시 정가를 뒤흔든 사건이고 또 유력 대선주자에 관한 것이라 사초를 기록하는 사관의 입장에서 신중을 기하고 있다. 저 자신도 당시 양심선언 후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 해 굉장한 오해를 받고 실체적 진실을 왜곡하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앞장섰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진실을 이번에는 반드시 밝히자는 차원에서 아주 상세하게 기록했다.
뷰스 ‘이명박 리포트’는 언제부터 기록하기 시작했나?
김유찬 이명박 리포트는 96년 말 법정에서 진술 할 당시부터 기록하기 시작했다. 당시 법정에서 이 전 시장이 어떻게 자기를 변호하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 비서관을 접촉하는 과정 등 따옴표를 할 정도로 상세하게 기록했다. 그 때 상당한 골간이 만들어진 후에 가필을 하거나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 모집하는 작업을 했다. 저는 10년 이라는 세월을 침묵했고 책자 정도로만 답을 할 생각이었다.
10년 정도 지난 다음에서야 기록하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어떤 사건이든 10년 정도 지나고 나면 진실이 비록 뒤늦게 밝혀져도 큰 충격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시점을 10년 후 쯤으로 잡았던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10년이 지난 현 시점에 대선국면과 맞물리면서 더 큰 폭발력을 얻게 된 것이다.
다만 제 자신이 생각할 때 하도 노무현 정권이 실정을 하니까 그에 따른 반사이익을 이 분(이 전 시장)이 묻지마 식의 지지를 받게 되고 이런 상황이 대단히 위험하다. 또 다른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 시기적으로는 오히려 대단히 적절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2002년 이명박 리포트'는 존재하지 않아, 출판 시도 한 적 없어"
뷰스 그런데 본인은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2002년에 한번 책 얘기가 나왔고 이번에도 책 얘기가 나오면서 일부에서는 자신의 입장이 바뀐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
김유찬 책이라고 하는 것은 저자가 완전히 교정과 탈고를 다 해서 이른바 출판물의 형태로 내 나가는 것이 저자의 마지막 입장인 것이다. 2002년 판은 제가 만든 초반이 절대 아니다. 중요한 것은 2002년 버전이라는 것은 제 자신이 전혀 만들지도 않았고 실체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 시장쪽이 어떤 경로를 통해 그런 것을 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쪽에서 말하는 2002년 버전이라는 것은 제 자신이 절대 만들지도, 만드려고 시도하지도 않았다. 2002년 리포트라는 것은 전혀 있지도 않은 것이다.
뷰스 그렇다면 ‘2002년 버전’이라는 것이 어떻게 나왔을까? 처음으로 초본을 남에게 보여준 적이 있나?
김유찬 저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기에 사업이라는 것이 항상 안정적인 것이 아니잖는가? 그 이후 사무실도 이 곳 저 곳 옮겨다니고 했다. 그 과정에서 디스켓 형태로 부분부분 남겨 놓은 것을 누군가가 입수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 제가 기록하며 정리는 했으나 그를 일일이 직접 타이핑 하지는 않았다. 중간 중간 내용 가필을 (부하 직원에게) 지시하기도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초고는 아마도 누군가에 의해 가필되는 과정을 겪고, 마치 부동산에도 브로커가 있듯이 정치판에도 브로커가 있어서 아주 유력한 정보는 상품으로 가치가 있기에 유출본을 가지고 이 사람들이 이 전 시장쪽과 딜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뷰스 최근에 그런 작업이 진행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김유찬 그럴 수도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저야 말로 소이부답이다.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은 책이라는 것은 원 저자의 최종 의지를 담아서 그것이 출판물의 형태를 담아 나가는 것만이 최종 진본이다. 버전 이야기는 더 할 필요도 없다.
뷰스 ‘2002년 리포트’는 그 때도 출판을 타진한 적도 없다는 말인가?
김유찬 전혀 아니다. 출판사에 들고 가서 원고를 맡긴 적도 없다. 그것은 저쪽에서 조작한 것이다.
뷰스 이 전 시장의 자질 문제를 거론한다면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는 왜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나?
김유찬 서울시장 이라는 자리는 저도 구청장에 출마했지만 대개 지자체단체장은 행정기능이 강하다. 어떤 정책의 입안보다 집행기관의 성격이 강하기에 이 전 시장 같이 추진력이 강한 분들이 적임일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단순 추진력 가지고만 되는 자리가 아니다. 그래서 그 비중에 있어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철저히 검증돼야 하고 그 과정에 제가 인연이 되어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하고, 국민들의 판단의 준거 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뷰스 그러나 지금 여론조사만 놓고 볼 때 국민 절반 가량은 김유찬 씨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고 나오고 있는데.
김유찬 그 점에 관해 할 말이 많다. 96년 양심선언은 굉장히 순수했다. 96년 당시 이 전 의원의 대응하는 행태를 보면 처음에는 전면 부인한다. 지금과 똑같다. 그리고 나서 시간이 지나고 나 사실로 확인되고 결국 비운의 의원 자격이 박탈된다. 사실 일개 국회의원 차원이 아니라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을 상대로 승산없는 싸움을 할 수는 없다.
다만 시점이 대단히 예민한 시기라서 저도 신중하고 있다. 정인봉 변호사 문제는 내 양심고백의 도화선에 불을 지핀 것이나 마찬가지다. 저와 같이 조직도 없고 아무런 무장이 되지 않은 사람이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진실이라는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 시장이 아마 섣부른 대응을 못할 수밖에 없는 것은 96년에 이미 학습이 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 돈 몇만원도 이명박 허락 없이는 못 나가... 권영옥 씨가 어떻게 내 생활비 줄 수 있나?"
뷰스 당시 권영옥 국장은 김유찬 씨가 요구해 매달 생활비 조로 수십 만원씩 줬다고 반박하는데.
김유찬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다. 당시 종로지구당 운영 행태를 보면 단 돈 몇 만원이라도 이 전 시장의 승인없이는 나갈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에게 생활비 조로 자금을 권 국장이 임의대로 지불 할 수 있었겠나?
뷰스 일각에서는 이 전 시장이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높기에 김유찬 씨가 향후 후한이 두려워서라도 세상 속에 먼저 자신을 노출시킨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유찬 부인하지 않는다. 이 전 시장의 인성을 제가 안다. 덕이 있는 분이 아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잔인할 정도로 자기의 정적, 반대자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보복을 하는 분이다. 실제로 10년간의 행태를 보면, 특히 제가 사업을 하다보면서 그 분의 품성을 더 잘 알수 있었다. DMC 사업도 그렇고 이 전 시장을 만나 본 분들이 저에 관한 얘기가 나왔을 때 아주 살벌한 코멘트가 나왔다고 한다. 제가 이 사업을 하는 것을 듣고 옆에 있는 종이조각을 구깃구깃 찢어며 적대감을 표출했다더라.
"98년 대법 상고이유서에 '위증 교사' 혐의 적시해"
뷰스 이 전 시장이 위증 교사를 했다는 것에 대해 명백한 물증이 있나?
김유찬 자꾸 정황만 대고 물증은 없다고들 하는데 나는 캐나다에서 귀국한 날(96년 10월 6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위증 교사 부분을 진술한 바 있다. 그리고 98년 대법원 상고이유서에서도 이 전 시장측의 위증교사 혐의를 주장한 바 있다.
왜 내가 뒤늦게 상고이유서에서 위증교사 이유를 적시했냐면 그건 98년 6월 3일의 일 때문이다. 이미 밝힌바대로 98년 6월 3일, 저는 정말 진정성을 갖고 이 전 시장에 사과를 하러 간 것이지만 결국 제3자 화법을 통한 살해위협을 받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더라도 이 사람과는 결코 화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98년 4월에 2심이 끝난 뒤 대법원 상고가 있었다. 이 전 시장에 받은 6월 3일의 그 모독을 참지 못해 결국 모든 것을 밝혀야 되겠다는 심정으로 상고이유서를 쓰게 됐다. 대법원 상고이유서에서 그같은 내용의 위증 교사 부분을 적시해 제출했다. 2심까지 내가 증언한 것이 모두 이 전 시장측의 교사에 따른 허위 증언이라는 내용이 상고서의 주 내용이었다.
한나라당 후보검증위원회에도 그 때(98년 6월)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 위증 교사가 골자인 상고이유서를 제출한 적이 있음을 보고했다. 이는 이 전 시장의 위증 교사 혐의를 입증하는 명확한 증거물인 셈이다.
뷰스 그렇다면 대법원 결정에는 왜 그 상고이유서가 영향을 안 미쳤을까?
김유찬 워낙 이 전 시장의 범죄 혐의의 죄질이 나빴기에 법원에서는 이미 이 전 시장이 선거법 위반하고 도피혐의가 명백하니 아무리 김유찬 측이 유리한 진술을 해도 유.무죄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판단했을거라 본다.
"주성영 수사검사에게는 진실 밝혀... 검찰 진술서와 달리 법정에서 위증"
뷰스 그 당시 관계됐던 사람들을 보면 강삼재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 이종찬 국민회의 부총재, 이용훈 대법원장, 양인석 변호사 등이 있는데 이들의 향후 증언에 따라 진실이 가려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김유찬 당시에 실체적 진실을 아는 사람은 이 전 시장과 나 밖에 없다. 지금 언급한 사람들은 모두 ‘국외자’ 분들이다. 대법원 주심이었던 이용훈 대법원장 경우 이렇게 이 전 시장이 조직적으로 법정 위증교사한 부분들을 전혀 알 지 못했을 것이다. 나머지 관계자들 또한 실체적 진실을 알기 힘들었을 것이다. 형량을 낮추기 위해 사건의 공범들이 짜고 위증을 하자는 것은 일반적으로 잡범들이나 하는 것이지 이렇게 국회의원까지 지낸 사람과 그 관계자들이 그럴 수 있었겠나 하고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다만 주성영 당시 수사검사에게는 상대적으로 담담하게 진실을 진술했다. 그래서 주 검사께서도 ‘수사가 비교적 잘 됐다’고 (최근에) 표현했는데 그게 맞는 이야기다. 저는 당시 주 검사께서 주무검사였기에 제가 상당히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줬다. 검찰도 저의 수사태도에 대단히 만족했고 참고인 조사를 통해 내 진술이 실체적 진실에 접근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 때 저도 부인한 적 없다. 캐나다에 들어올 때도 진실을 밝히겠다고 들어온 것인데 부인할 일이 뭐가 있겠나?
그러나 제가 검찰 진술을 법정에서 전면 뒤집는다. 제가 96년 10월 6일 캐나다에서 극비 귀국했고 나흘뒤인 10월 10일 검찰로부터 기소당했다. 그리고 첫 공판이 열리기 까지 한달이라는 공백기간이 생긴다. 그 한 달 기간동안 집요하게 권 국장과 주 부장과 접선하면서 위증 교사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마련된다. 그 이후 이광철 전 비서관 출소이후 아주 노골적인 위증 교사가 진행된다.
그래서 당시 주 검사 입장에서는 비교적 수사가 잘 된 사안이기는 하지만 수사검사와 기소검사는 다르다. 그래서 주 검사가 그 이후 진행된 정황은 잘 모를 수 있다. 그래서 국외자들은 이 전 시장과 저 간에 진행된 은밀한 과정들은 전혀 모를 것이라고 본다.
뷰스 당시 판결문을 살펴보면 본인이 어떤 내용을 위증을 했다는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없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위증교사를 받았다는 것인지?
김유찬 앞서 말한대로 검찰에서는, 적어도 기소직전 수사검사에 진술한 부분에 있어서는 상당부분 진실을 말했다. 그러나 그것을 법정에서 다 뒤집었다는 것이다.
첫째, 그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는 일단 검찰에서 수사검사(주성영 의원)에게 진술했던 자술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이같은 진술서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두 번째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돈을 쓴 것이 상당 부분 법정 지출 비용을 상회했으나 ‘제가 다 이 전 시장을 존경해서 내 돈으로 썼다’고 법정에서 위증했다.
세 번째는 이종찬 국민회의 부총재와 3억원 거래설을 ‘있었던 것으로 진술하라’고 이 전 시장측으로부터 교사를 받았기에 그렇게 법정에서 진술했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이 문제가 불거졌는데 제가 58시간 동안 검찰의 철야 조사를 받으며 검찰이 원하는대로 그렇게 3억원 거래설 진술로 답해 준 것이다.
검찰 역시 내가 수사검사에게 당시 조사를 받을 때 했던 내용과는 달리 법정에서 기소검사 앞에서 이를 번복하고 부인하니까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징역 1년 6개월 정도를 1심에서 구형한 것으로 기억한다. 결론적으로 자술서 전면 부정, 검찰 수사 전면 부정, 이종찬 부총재와의 3억원 거래설 인정 등 그 부분에 대한 진술 번복 책임을 물어 기소 검사가 (형량을) 걸었을 것이다.
"진실 게임 진위 따지기 위해 결국 이명박을 대중앞으로 끌어 낼 것"
뷰스 96년 당시와 10년이 흐른 지금의 상황을 비교한다면?
김유찬 이 전 시장이 진실게임에 대해 입을 못여는 것은 96년도에 잘 못 입을 열었다가 대국민사기극으로 판명났다. 그게 이 전 시장이 입을 못 여는 이유다. 김유찬 스타일로 봤을 때 굉장히 논리적이고 치밀하기 때문에 이 전 시장이 봤을때는 그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거짓말을 다 동원해야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이 전 시장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정두언 의원이나 박형준 의원, 권 국장이나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조각조각들을 퍼즐로 맞춰보면 종국에는 완전히 짜맞춰지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상당부분 재조명 될 것이다. 그 첫발이 바로 정두언, 박형준, 권영옥 이 세 사람의 나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소송이다. 이 전 시장이 직접 얘기하지 않기 때문에 또 얘기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진실게임에서 이 전 시장은 질 것이다. 일단 이 전 시장을 대중 앞으로 끌어 낼 생각이다. 저간의 사정을 모르시는 두 분과 또 다른 당사자는 직접 저에게 돈까지 건네가며 위증교사에 깊숙이 가능한 분이 말들을 자꾸 바꾼다.
저는 이 전 시장의 강점과 약점을 다 봤다. 강한 추진력과 조작되긴 했지만 국민적 지지 다 강점이다. 그러나 치명적으로 물론 대통령이 성인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나 이 전 시장의 과거 행적은 대통령으로서는 해서는 안되는 행적이다. 주변 참모 인사 스타일이라든지 본인의 과오를 덮기 위한 용렬한 행태들, 대통령 후보로서는 정말 해서는 안되는 행태다. 하늘 높은 국민적 인기는 이 전 시장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전 시장의 내면을 본다면 그렇게 묻지마 지지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 시장이 지지받아 대통령 당선된다면 그것은 그 분의 복이고 국민들은 그것이 운명이다.
굉장히 사실은 위험한 도박이다. 자칫 잘못하면 옛날 같으면 목숨을 건 도박일 수 잇다. 그러나 지금 저는 굉장히 마음이 편하다. 96년 기자회견보다 너무너무 편하다. 그 때는 무언가 불안하고 정말 쫓기는 같았다. 그러나 지금 10년이 지난 후 성숙했고 세상이라는 것이 한평생 가는 건데 진실의 편에 섰을 땐 불안함이 없어지는 거다.
뷰스 향후 이 전 시장에 대해 허위로 드러 날 건 들이 많을 것이라 보나?
김유찬 제가 알고있는 지식으로는 국정원이나 경찰 권력기관이 갖고있는 엑스파일이 있을 것이다. 특히 정보를 독점하는 여당에서는 실질적으로 이 전 시장이 대권후보가 확정됐을 때는 더 위험하다. 한나라당이 무방비 상태에서 정권교체를 못할 것이다. 아주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다.
홍준표 의원이 지혜로운 말을 오히려 한 것이다. 저 자신도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제가 한나라당에 적대적인 감정을 갖고있다면 아마 한나라당 후보가 확정된 후 이 일을 터뜨렸을 것이다. 오히려 후보경선 확정 전에. 저도 시기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
“98년 대법원 상고이유서에 이 전 시장의 ‘위증 교사’ 적시”
김 씨는 25일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 건물 내 마련된 자신의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98년 6월 3일, 저는 정말 진정성을 갖고 이 전 시장에 사과를 하러 간 것이지만 결국 제3자 화법을 통한 살해위협을 받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더라도 이 사람과는 결코 화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98년 4월에 2심이 끝난 뒤 대법원 상고가 있었다. 이 전 시장에 받은 6월 3일의 그 모독을 참지 못해 결국 모든 것을 밝혀야 되겠다는 심정으로 상고이유서를 쓰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법원 상고이유서에서 그 같은 내용의 위증 교사 부분을 적시해 제출했다”며 “2심까지 내가 증언한 것이 모두 이 전 시장측의 교사에 따른 허위 증언이라는 내용이 상고서의 주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 후보검증위원회에도 그 때(98년 6월)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 위증 교사가 골자인 상고이유서를 제출한 적이 있음을 보고했다”며 “이는 이 전 시장의 위증 교사 혐의를 입증하는 명확한 증거물”이라고 주장했다.
“주성영 검사에게는 진실 밝혀. 법정진술에서 검찰 진술 번복 '위증'"
그는 ‘위증 교사’의 또 다른 증거물로 96년 10월 6일 귀국해 검찰에서 작성한 진술서를 들기도 했다. 그는 “주성영 당시 수사검사(현 한나라당 의원)에게 상대적으로 담담하게 진실을 진술했다”며 “그래서 주 검사께서도 ‘수사가 비교적 잘 됐다’고 (최근에) 표현했는데 그게 맞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저는 당시 주 검사께서 주무검사였기에 제가 상당히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줬다”며 “검찰도 저의 수사태도에 대단히 만족했고 참고인 조사를 통해 내 진술이 실체적 진실에 접근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제가 검찰 진술을 법정에서 전면 뒤집는다”며 “96년 10월 6일 캐나다에서 극비 귀국했고 나흘 뒤인 10월 10일 검찰로부터 기소 당했다. 그리고 첫 공판(96년 11월 28일)이 열리기 까지 한 달이라는 공백기간이 생긴다. 그 한 달 기간동안 집요하게 권 국장과 주 부장과 접선하면서 위증 교사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마련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듬해 7월, 1심 검찰로부터 징역 1년6월을 구형 받은 것도 초기 진술과는 달리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검찰 역시 내가 수사검사에게 당시 조사를 받을 때 진술했던 내용과는 달리 법정에서 이를 번복하고 부인하니까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징역 1년 6개월 정도를 1심에서 구형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자술서 전면 부정, 검찰 수사 전면 부정, 이종찬 부총재와의 3억원 거래설 인정 등 그 부분에 대한 진술 번복 책임을 물어 기소 검사가 (형량을) 걸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2년 <이명박 리포트>는 존재하지도,출판하려고 시도한 적도 없다”
한편 김 씨는 이 전 시장측이 입수했다는 <2002년도판 이명박 리포트>의 내용에 대해 상당부분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책이라고 하는 것은 저자가 완전히 교정과 탈고를 다 해서 이른바 출판물의 형태로 내 나가는 것이 저자의 마지막 입장인 것”이라며 “2002년 판은 제가 만든 초판이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2002년 버전이라는 것은 제 자신이 전혀 만들지도 않았고 실체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 시장쪽이 어떤 경로를 통해 그런 것을 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쪽에서 말하는 2002년 버전이라는 것은 제 자신이 절대 만들지도, 만드려고 시도하지도 않았다. 2002년 리포트라는 전혀 있지도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오히려 “초고는 아마도 누군가에 의해 가필되는 과정을 겪고, 마치 부동산에도 브로커가 있듯이 정치판에도 브로커가 있어서 아주 유력한 정보는 상품으로 가치가 있기에 유출본을 가지고 이 사람들이 이 전 시장쪽과 딜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권영옥 씨가 자신으로부터 입수해 언론에 공개한 ‘이명박 리포트’ 초고 또한 “완전한 진본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김유찬 씨와의 인터뷰 전문
"권용옥 씨에게 준 초고는 진본 아닌 상당 부분 내용 누락된 것"
뷰스앤뉴스(이하 뷰스) 권영옥 씨가 언론에 공개한 초안을 보면 일부분이 비어있는 상태던데 아직 내용을 다 못채웠나?
김유찬 전 비서(이하 김유찬) 제가 일부러 비워뒀다. 권 씨를 못 믿는 부분도 있고 원고가 시중에 많이 유출 돼 있기에, 또 거기에 많이 가필이 되어 있는 상태다. 그래서 제가 임의로 A, B, C 타입으로 나눠났다. 그 분들이 이를 접했을 때 대략 어떤 반응을 보이실 지 다 알기 때문에라도 그런 조처를 취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법적 위증 부분을 적시하면 그 분이 꺼려할지도 모를까 해서 그 부분을 삭제해서 던져보니 아니나 다를까 덥썩...
권영옥 씨에게 던진 것은 B타입 정도된다. 진본은 C타입이다. 국민들과 독자들이 알고자 하는 것은 이 전 시장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와 정확성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자는 차원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
뷰스 1년동안 이명박을 모셨는데 그 기간이 짧기에 이 전 시장의 리포트를 쓸 만큼 많은 정보를 가질 수 있었을까?
김유찬 선거 한 복판에서 선거 기획을 할 정도로 압축된 경험을 했다. 통상적으로 일반인들이 제 3자가 보는 시각보다 깊숙이 드러다 보았고 선거 전 과정에 핵심을 맡았기에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제가 아는 것 보다 10년 넘게 이 전 시장을 모신 권영옥 국장은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권 국장은 이 전 시장이 현대 재직 당시부터 인연을 맺은 분이다. 아시다시피 이 전 시장의 처남이자 자금관리를 모두 맡고 있는 김재정 씨의 부인이 권 국장의 여동생이다. 그러기에 누구보다도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이명박 리포트를 저술하면서 그 책이 어제 오늘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96년 당시 정가를 뒤흔든 사건이고 또 유력 대선주자에 관한 것이라 사초를 기록하는 사관의 입장에서 신중을 기하고 있다. 저 자신도 당시 양심선언 후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 해 굉장한 오해를 받고 실체적 진실을 왜곡하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앞장섰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진실을 이번에는 반드시 밝히자는 차원에서 아주 상세하게 기록했다.
뷰스 ‘이명박 리포트’는 언제부터 기록하기 시작했나?
김유찬 이명박 리포트는 96년 말 법정에서 진술 할 당시부터 기록하기 시작했다. 당시 법정에서 이 전 시장이 어떻게 자기를 변호하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 비서관을 접촉하는 과정 등 따옴표를 할 정도로 상세하게 기록했다. 그 때 상당한 골간이 만들어진 후에 가필을 하거나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 모집하는 작업을 했다. 저는 10년 이라는 세월을 침묵했고 책자 정도로만 답을 할 생각이었다.
10년 정도 지난 다음에서야 기록하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어떤 사건이든 10년 정도 지나고 나면 진실이 비록 뒤늦게 밝혀져도 큰 충격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시점을 10년 후 쯤으로 잡았던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10년이 지난 현 시점에 대선국면과 맞물리면서 더 큰 폭발력을 얻게 된 것이다.
다만 제 자신이 생각할 때 하도 노무현 정권이 실정을 하니까 그에 따른 반사이익을 이 분(이 전 시장)이 묻지마 식의 지지를 받게 되고 이런 상황이 대단히 위험하다. 또 다른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 시기적으로는 오히려 대단히 적절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2002년 이명박 리포트'는 존재하지 않아, 출판 시도 한 적 없어"
뷰스 그런데 본인은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2002년에 한번 책 얘기가 나왔고 이번에도 책 얘기가 나오면서 일부에서는 자신의 입장이 바뀐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
김유찬 책이라고 하는 것은 저자가 완전히 교정과 탈고를 다 해서 이른바 출판물의 형태로 내 나가는 것이 저자의 마지막 입장인 것이다. 2002년 판은 제가 만든 초반이 절대 아니다. 중요한 것은 2002년 버전이라는 것은 제 자신이 전혀 만들지도 않았고 실체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 시장쪽이 어떤 경로를 통해 그런 것을 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쪽에서 말하는 2002년 버전이라는 것은 제 자신이 절대 만들지도, 만드려고 시도하지도 않았다. 2002년 리포트라는 것은 전혀 있지도 않은 것이다.
뷰스 그렇다면 ‘2002년 버전’이라는 것이 어떻게 나왔을까? 처음으로 초본을 남에게 보여준 적이 있나?
김유찬 저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기에 사업이라는 것이 항상 안정적인 것이 아니잖는가? 그 이후 사무실도 이 곳 저 곳 옮겨다니고 했다. 그 과정에서 디스켓 형태로 부분부분 남겨 놓은 것을 누군가가 입수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 제가 기록하며 정리는 했으나 그를 일일이 직접 타이핑 하지는 않았다. 중간 중간 내용 가필을 (부하 직원에게) 지시하기도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초고는 아마도 누군가에 의해 가필되는 과정을 겪고, 마치 부동산에도 브로커가 있듯이 정치판에도 브로커가 있어서 아주 유력한 정보는 상품으로 가치가 있기에 유출본을 가지고 이 사람들이 이 전 시장쪽과 딜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뷰스 최근에 그런 작업이 진행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김유찬 그럴 수도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저야 말로 소이부답이다.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은 책이라는 것은 원 저자의 최종 의지를 담아서 그것이 출판물의 형태를 담아 나가는 것만이 최종 진본이다. 버전 이야기는 더 할 필요도 없다.
뷰스 ‘2002년 리포트’는 그 때도 출판을 타진한 적도 없다는 말인가?
김유찬 전혀 아니다. 출판사에 들고 가서 원고를 맡긴 적도 없다. 그것은 저쪽에서 조작한 것이다.
뷰스 이 전 시장의 자질 문제를 거론한다면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는 왜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나?
김유찬 서울시장 이라는 자리는 저도 구청장에 출마했지만 대개 지자체단체장은 행정기능이 강하다. 어떤 정책의 입안보다 집행기관의 성격이 강하기에 이 전 시장 같이 추진력이 강한 분들이 적임일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단순 추진력 가지고만 되는 자리가 아니다. 그래서 그 비중에 있어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철저히 검증돼야 하고 그 과정에 제가 인연이 되어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하고, 국민들의 판단의 준거 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뷰스 그러나 지금 여론조사만 놓고 볼 때 국민 절반 가량은 김유찬 씨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고 나오고 있는데.
김유찬 그 점에 관해 할 말이 많다. 96년 양심선언은 굉장히 순수했다. 96년 당시 이 전 의원의 대응하는 행태를 보면 처음에는 전면 부인한다. 지금과 똑같다. 그리고 나서 시간이 지나고 나 사실로 확인되고 결국 비운의 의원 자격이 박탈된다. 사실 일개 국회의원 차원이 아니라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을 상대로 승산없는 싸움을 할 수는 없다.
다만 시점이 대단히 예민한 시기라서 저도 신중하고 있다. 정인봉 변호사 문제는 내 양심고백의 도화선에 불을 지핀 것이나 마찬가지다. 저와 같이 조직도 없고 아무런 무장이 되지 않은 사람이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진실이라는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 시장이 아마 섣부른 대응을 못할 수밖에 없는 것은 96년에 이미 학습이 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 돈 몇만원도 이명박 허락 없이는 못 나가... 권영옥 씨가 어떻게 내 생활비 줄 수 있나?"
뷰스 당시 권영옥 국장은 김유찬 씨가 요구해 매달 생활비 조로 수십 만원씩 줬다고 반박하는데.
김유찬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다. 당시 종로지구당 운영 행태를 보면 단 돈 몇 만원이라도 이 전 시장의 승인없이는 나갈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에게 생활비 조로 자금을 권 국장이 임의대로 지불 할 수 있었겠나?
뷰스 일각에서는 이 전 시장이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높기에 김유찬 씨가 향후 후한이 두려워서라도 세상 속에 먼저 자신을 노출시킨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유찬 부인하지 않는다. 이 전 시장의 인성을 제가 안다. 덕이 있는 분이 아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잔인할 정도로 자기의 정적, 반대자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보복을 하는 분이다. 실제로 10년간의 행태를 보면, 특히 제가 사업을 하다보면서 그 분의 품성을 더 잘 알수 있었다. DMC 사업도 그렇고 이 전 시장을 만나 본 분들이 저에 관한 얘기가 나왔을 때 아주 살벌한 코멘트가 나왔다고 한다. 제가 이 사업을 하는 것을 듣고 옆에 있는 종이조각을 구깃구깃 찢어며 적대감을 표출했다더라.
"98년 대법 상고이유서에 '위증 교사' 혐의 적시해"
뷰스 이 전 시장이 위증 교사를 했다는 것에 대해 명백한 물증이 있나?
김유찬 자꾸 정황만 대고 물증은 없다고들 하는데 나는 캐나다에서 귀국한 날(96년 10월 6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위증 교사 부분을 진술한 바 있다. 그리고 98년 대법원 상고이유서에서도 이 전 시장측의 위증교사 혐의를 주장한 바 있다.
왜 내가 뒤늦게 상고이유서에서 위증교사 이유를 적시했냐면 그건 98년 6월 3일의 일 때문이다. 이미 밝힌바대로 98년 6월 3일, 저는 정말 진정성을 갖고 이 전 시장에 사과를 하러 간 것이지만 결국 제3자 화법을 통한 살해위협을 받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더라도 이 사람과는 결코 화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98년 4월에 2심이 끝난 뒤 대법원 상고가 있었다. 이 전 시장에 받은 6월 3일의 그 모독을 참지 못해 결국 모든 것을 밝혀야 되겠다는 심정으로 상고이유서를 쓰게 됐다. 대법원 상고이유서에서 그같은 내용의 위증 교사 부분을 적시해 제출했다. 2심까지 내가 증언한 것이 모두 이 전 시장측의 교사에 따른 허위 증언이라는 내용이 상고서의 주 내용이었다.
한나라당 후보검증위원회에도 그 때(98년 6월)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 위증 교사가 골자인 상고이유서를 제출한 적이 있음을 보고했다. 이는 이 전 시장의 위증 교사 혐의를 입증하는 명확한 증거물인 셈이다.
뷰스 그렇다면 대법원 결정에는 왜 그 상고이유서가 영향을 안 미쳤을까?
김유찬 워낙 이 전 시장의 범죄 혐의의 죄질이 나빴기에 법원에서는 이미 이 전 시장이 선거법 위반하고 도피혐의가 명백하니 아무리 김유찬 측이 유리한 진술을 해도 유.무죄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판단했을거라 본다.
"주성영 수사검사에게는 진실 밝혀... 검찰 진술서와 달리 법정에서 위증"
뷰스 그 당시 관계됐던 사람들을 보면 강삼재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 이종찬 국민회의 부총재, 이용훈 대법원장, 양인석 변호사 등이 있는데 이들의 향후 증언에 따라 진실이 가려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김유찬 당시에 실체적 진실을 아는 사람은 이 전 시장과 나 밖에 없다. 지금 언급한 사람들은 모두 ‘국외자’ 분들이다. 대법원 주심이었던 이용훈 대법원장 경우 이렇게 이 전 시장이 조직적으로 법정 위증교사한 부분들을 전혀 알 지 못했을 것이다. 나머지 관계자들 또한 실체적 진실을 알기 힘들었을 것이다. 형량을 낮추기 위해 사건의 공범들이 짜고 위증을 하자는 것은 일반적으로 잡범들이나 하는 것이지 이렇게 국회의원까지 지낸 사람과 그 관계자들이 그럴 수 있었겠나 하고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다만 주성영 당시 수사검사에게는 상대적으로 담담하게 진실을 진술했다. 그래서 주 검사께서도 ‘수사가 비교적 잘 됐다’고 (최근에) 표현했는데 그게 맞는 이야기다. 저는 당시 주 검사께서 주무검사였기에 제가 상당히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줬다. 검찰도 저의 수사태도에 대단히 만족했고 참고인 조사를 통해 내 진술이 실체적 진실에 접근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 때 저도 부인한 적 없다. 캐나다에 들어올 때도 진실을 밝히겠다고 들어온 것인데 부인할 일이 뭐가 있겠나?
그러나 제가 검찰 진술을 법정에서 전면 뒤집는다. 제가 96년 10월 6일 캐나다에서 극비 귀국했고 나흘뒤인 10월 10일 검찰로부터 기소당했다. 그리고 첫 공판이 열리기 까지 한달이라는 공백기간이 생긴다. 그 한 달 기간동안 집요하게 권 국장과 주 부장과 접선하면서 위증 교사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마련된다. 그 이후 이광철 전 비서관 출소이후 아주 노골적인 위증 교사가 진행된다.
그래서 당시 주 검사 입장에서는 비교적 수사가 잘 된 사안이기는 하지만 수사검사와 기소검사는 다르다. 그래서 주 검사가 그 이후 진행된 정황은 잘 모를 수 있다. 그래서 국외자들은 이 전 시장과 저 간에 진행된 은밀한 과정들은 전혀 모를 것이라고 본다.
뷰스 당시 판결문을 살펴보면 본인이 어떤 내용을 위증을 했다는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없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위증교사를 받았다는 것인지?
김유찬 앞서 말한대로 검찰에서는, 적어도 기소직전 수사검사에 진술한 부분에 있어서는 상당부분 진실을 말했다. 그러나 그것을 법정에서 다 뒤집었다는 것이다.
첫째, 그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는 일단 검찰에서 수사검사(주성영 의원)에게 진술했던 자술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이같은 진술서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두 번째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돈을 쓴 것이 상당 부분 법정 지출 비용을 상회했으나 ‘제가 다 이 전 시장을 존경해서 내 돈으로 썼다’고 법정에서 위증했다.
세 번째는 이종찬 국민회의 부총재와 3억원 거래설을 ‘있었던 것으로 진술하라’고 이 전 시장측으로부터 교사를 받았기에 그렇게 법정에서 진술했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이 문제가 불거졌는데 제가 58시간 동안 검찰의 철야 조사를 받으며 검찰이 원하는대로 그렇게 3억원 거래설 진술로 답해 준 것이다.
검찰 역시 내가 수사검사에게 당시 조사를 받을 때 했던 내용과는 달리 법정에서 기소검사 앞에서 이를 번복하고 부인하니까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징역 1년 6개월 정도를 1심에서 구형한 것으로 기억한다. 결론적으로 자술서 전면 부정, 검찰 수사 전면 부정, 이종찬 부총재와의 3억원 거래설 인정 등 그 부분에 대한 진술 번복 책임을 물어 기소 검사가 (형량을) 걸었을 것이다.
"진실 게임 진위 따지기 위해 결국 이명박을 대중앞으로 끌어 낼 것"
뷰스 96년 당시와 10년이 흐른 지금의 상황을 비교한다면?
김유찬 이 전 시장이 진실게임에 대해 입을 못여는 것은 96년도에 잘 못 입을 열었다가 대국민사기극으로 판명났다. 그게 이 전 시장이 입을 못 여는 이유다. 김유찬 스타일로 봤을 때 굉장히 논리적이고 치밀하기 때문에 이 전 시장이 봤을때는 그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거짓말을 다 동원해야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이 전 시장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정두언 의원이나 박형준 의원, 권 국장이나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조각조각들을 퍼즐로 맞춰보면 종국에는 완전히 짜맞춰지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상당부분 재조명 될 것이다. 그 첫발이 바로 정두언, 박형준, 권영옥 이 세 사람의 나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소송이다. 이 전 시장이 직접 얘기하지 않기 때문에 또 얘기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진실게임에서 이 전 시장은 질 것이다. 일단 이 전 시장을 대중 앞으로 끌어 낼 생각이다. 저간의 사정을 모르시는 두 분과 또 다른 당사자는 직접 저에게 돈까지 건네가며 위증교사에 깊숙이 가능한 분이 말들을 자꾸 바꾼다.
저는 이 전 시장의 강점과 약점을 다 봤다. 강한 추진력과 조작되긴 했지만 국민적 지지 다 강점이다. 그러나 치명적으로 물론 대통령이 성인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나 이 전 시장의 과거 행적은 대통령으로서는 해서는 안되는 행적이다. 주변 참모 인사 스타일이라든지 본인의 과오를 덮기 위한 용렬한 행태들, 대통령 후보로서는 정말 해서는 안되는 행태다. 하늘 높은 국민적 인기는 이 전 시장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전 시장의 내면을 본다면 그렇게 묻지마 지지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 시장이 지지받아 대통령 당선된다면 그것은 그 분의 복이고 국민들은 그것이 운명이다.
굉장히 사실은 위험한 도박이다. 자칫 잘못하면 옛날 같으면 목숨을 건 도박일 수 잇다. 그러나 지금 저는 굉장히 마음이 편하다. 96년 기자회견보다 너무너무 편하다. 그 때는 무언가 불안하고 정말 쫓기는 같았다. 그러나 지금 10년이 지난 후 성숙했고 세상이라는 것이 한평생 가는 건데 진실의 편에 섰을 땐 불안함이 없어지는 거다.
뷰스 향후 이 전 시장에 대해 허위로 드러 날 건 들이 많을 것이라 보나?
김유찬 제가 알고있는 지식으로는 국정원이나 경찰 권력기관이 갖고있는 엑스파일이 있을 것이다. 특히 정보를 독점하는 여당에서는 실질적으로 이 전 시장이 대권후보가 확정됐을 때는 더 위험하다. 한나라당이 무방비 상태에서 정권교체를 못할 것이다. 아주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다.
홍준표 의원이 지혜로운 말을 오히려 한 것이다. 저 자신도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제가 한나라당에 적대적인 감정을 갖고있다면 아마 한나라당 후보가 확정된 후 이 일을 터뜨렸을 것이다. 오히려 후보경선 확정 전에. 저도 시기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