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임권택 "이러면 부산영화제 망한다", 서병수 질타
"소재에 제약 두고 간섭하면 누가 영화제 오겠나"
한국 영화계 거장 임권택(79) 감독이 10일 최근 부산시의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BIFF) 집행위원장 사퇴 종용 논란 등 일련의 사태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주최로 열린 부산영화제 미래비전·쇄신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다.
패널로 참석한 임 감독은 "부산영화제가 처음 생길 무렵 이 영화제가 몇 년이나 가다 생명을 마칠까 생각한 적이 있다"고 입을 열었다.
"당시에는 한국 영화를 보고자 하는 사람도, 보여주고자 열심히 따라다니는 인적 자원도 없었죠. 영화제 안에 몸은 있으면서도 구석진 자리에서 숨도 못 쉬고 영화제에 참가했었습니다."
임 감독은 "다른 영화제와 연계가 돼 우리 영화를 소개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할 텐데 그건 언제일까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당시 부산은 제2의 도시였지만 출판물이 팔리지 않는 문화적 빈곤 도시라고 개탄했었다"며 "부산영화제가 예상 밖의 빠른 속도로 커왔다"고 말했다.
"그 무렵 사회주의 국가 사람들은 부산영화제를 부러워했습니다. 자기네는 외부와 접촉하려고 해도 영어를 하는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어서 그 사람이 화장실에 가고 나면 영화제 자체가 소통이 안 될 만큼 불편하다고요. 그러면서 부산은 언제나 소통이 가능한 영화제고 엄청나게 좋은 양질의 인력이 영화제를 잘 끌어간다고 그랬습니다."
임 감독은 당시를 소개하며 "영화제에 출품하는 사람 입장에서 소재에 제약을 두고 주최 측이 간섭하려고 하는 영화제에 누가 오느냐"며 "이런 사태로 개운치 않은 결과를 내면 부산영화제는 망한다"고 우려했다.
임 감독은 이어 "이념의 문제라고 할 수도 없고 그동안 잘 커온 영화제가 (이번 사태로 인해) 구정물을 뒤집어쓰는 영화제로 전락하는 일이 생긴다면 나라의 수치고 부산의 수치고 우리 영화인의 수치고 모두의 수치"라며 "이런 사태까지 일이 밀려온 것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2시간 동안 이어진 공청회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후배 영화인들의 의견을 청취한 임 감독은 공청회가 끝날 무렵 다시 말문을 열고 1980년대 당시 일화를 소개했다.
"1984년인지 베를린영화제에서 '길소뜸' 기자회견이 열렸는데 거기 온 기자들이 모두 영화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검열은 어떻게 하고 시나리오는 어떤 과정으로 쓰느냐는 질문을 했어요. 모든 질문이 그런 쪽으로 모아졌죠. 그때는 중앙정보부 직원도 따라와 있던 시대니까 그 사람들 무서워서도 실정을 그대로 얘기할 수 없었고, 그 사람들이 없다고 해도 하늘에 대고 침 뱉는 대답을 내가 할 수 있겠느냐는 자존심의 상황도 있었습니다."
임 감독은 "평지풍파는 한번 지나간 일로 하고, 부산시도 잘 가던 영화제를 망쳐놓은 시로 알려지는 것은 그만둬야 하고 영화인도 거기에 밀려 자존심 상하는 일을 안 당하게끔 서로 노력하고 잘 타협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함께 패널로 참석한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2시간 동안 노구를 이끌고 임 감독님이 공청회에 앉아 있는 것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풍경"이라며 "그런 상황을 만든 데 대해 후배 영화인으로서 송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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