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2007년 겨냥해 극비리에 연청 재건
[이연홍의 정치보기] <4> 2007 대선의 결정적 변수 'DJ'
비밀리에 연청 재건 나선 DJ, 2007년을 겨냥한다
2007년 대선의 결정적 변수가 있다. 바로 DJ다. 그가 누구를 미느냐가 승패를 가를 수 있다. 호남 표 때문이다. 그 결속력 말이다. 그것은 노무현 승리의 원천이었다. 그 나침반은 DJ다. 그래서 결정적 변수인 거다. 춘추전국시대에 그만한 몰표가 없다.
호남은 고건을 1등으로 만들기도 했다. 대안부재 상황이니 가능했다. 호남의 대안으로 정동영은 부족하다는 게 그쪽 민심이다. 열린우리당 때문이다. 하지만 호남은 고건을 불안케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DJ가 다른 누군가를 민다면 돌아설 것이기 때문이다. 고건도 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문제는 DJ가 고건을 밀 거냐다. 내가 아는 DJ는 ‘아니다’다. 밀어야 할 이유가 없다. 밀어서 얻는 이익도 없다. 손해 안보는 정도다. 그렇다면 승부를 걸기엔 부족하다. DJ가 아는 고건은 충직한 관료다. 부릴 사람이지 밀 사람은 아니다.
물론 밀어줄 가능성을 완전 배제 하진 않겠다. 고건이 압도적 우세를 보인다면 말이다. 야당 후보를 압도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면 DJ도 안 밀어줄 수 없다. 현실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 내가 볼 땐 없다. 박근혜 이명박이 다 나와도 말이다. 고건 자신의 경쟁력 때문이다. 링에 올라오면 다를 거다.
그렇다면 DJ는 무엇을 생각할까. 최근 중요한 움직임이 있었다. 바로 연청의 재건운동이다. 새시대 새정치 연합 청년회다. DJ의 대표적 전위 조직이다. 지난달에 소리 소문 없이 재건 대회가 열렸다. 전북에서다.
연청은 80년 5월에 만들어졌다. DJ의 장남 김홍일이 만들었다. 당시는 민주연합 청년동지회로 불렸다. 97년 대선 땐 사조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당 조직에 편입됐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당과는 별개다.
2002년 대선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노무현 후보 탄생의 1등 공신이다. 광주 경선 역전 드라마가 그들의 작품이다. 노무현이 이인제를 눌렀다. 연청 개입 논란이 있었다. 물론 연청은 부인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다 알았다.
바로 그 연청이 재건되고 있다. 현 회장은 민주당 윤철상 의원이다. DJ수행비서 출신이다. 김홍일과도 각별하다. DJ를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연청을 재건하고 있는 것이다. DJ의 지시였다고 한다.
이유는 하나다. 2007년 대선 때문이다.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거다.
아마도 DJ는 두 가지 상황을 보고 있을 것이다. 한 가닥은 여권 내부다. 여러 가지로 어렵다. 10%대 지지 후보도 없다. 정동영만 들락거린다. 그러나 그것으론 어림없다. 그렇다고 나아질 기미도 없다. 지방선거 뒤면 그나마도 어려울 지 모른다. 결국 정계개편을 해야 할 거다. 외부 수혈이 필요하다. 목표는 고건일 수밖에 없다.
고건도 결국은 들어올 거다. 자기 당을 만든다 해도 말이다. 열린우리당과 합당 가능성이 많다. 그렇지 않고는 대선에 뛰어들기 어렵다. 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설사 그가 민주당을 선택해도 마찬가지다. 상황은 합당 쪽으로 기울 거다.
결국 범여권 후보 경선이 벌어진다. 그때까지 고건은 1등을 할 수도 있다. 세상은 그가 후보가 될 거라 볼거다. 마치 5년 전의 이인제처럼 말이다. DJ는 그때를 보는 거 같다.
만약 고건이 압도적이라면 그를 밀 거다. 야당을 누를수 있을 만큼 말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뒤집으려 할 거다. 5년 전처럼 말이다. 1등을 이기는 새로운 1등 후보를 만드는 거다. 5년전의 노무현 같은 후보 말이다. 그 기세로 대선까지 가게 하려고 하는 거다.
연청은 그래서 필요한 거다. 5년 전의 상황을 재현하려는 것이다. 여권핵심부도 따라오지 않을 수 없을 게다. 표의 원천이 호남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DJ가 숨겨둔 후보는 누굴가. 몇몇 사람 예측은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선 무의미하다. 누구든 가능하다. 고건을 누른 후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선도 먹을 가능성이 있다. 노무현 처럼 말이다. DJ가 생각하는 하나의 상황이다.
DJ는 그쪽만 보지 않는다. 야당 쪽도 볼 것이다. 한나라당 말이다. 저쪽이 현실이라면 이쪽은 이상이다. 그래서 꿈일 수 있다. 때문에 버리진 않는다. 가능성만 남겨둔 채 말이다.
최근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DJ가 대구를 갔다. 영남대학을 방문했다. 중요한 행보였다. 영남대학은 박정희 대통령이 건립했다. 영남학원 정관엔 “박정희 선생의 창학 정신에 입각해 교육 한다”는 구절도 있다. 몸도 불편한 DJ가 거기까지 갔다. 명예 박사학위를 받고 연설도 했다.
연설문에 없는 얘기를 했다. 학생들을 향해 물었다. 자기가 여기 왜 왔겠느냐고 말이다. 동서화해를 위해서라고 자답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높은 평가도 했다. DJ는 재임 시절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약속했다. 역사와의 화해를 내세웠다. 그뿐만이 아니다. 당시 '영남후보론'을 상기해보자. 호남이 미는 영남후보론 말이다. 노무현 탄생의 이론적 근거였다. 그러나 실은 박근혜가 먼저였다. 본인이 단호해서 물거품이 됐지만 말이다.
DJ가 이루려는 꿈이 있다. 남북정상회담으로 노벨 평화상을 탄 그다. 남북의 화해를 이룩했다. 그렇다면 다음 목표는 동-서간 화해다. 영-호남의 화해다. 아직 누구도 못했다. 그걸 하고 싶은 거다. 진정한 평화의 상징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상대를 오래전부터 박근혜로 삼아왔음직하다. 역사와의 화해도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이 뒷받침 안됐다.
아직도 DJ는 그걸 버리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꿈 이란 얘기다. 물론 가능성도 많지 않다.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우선 박근혜가 야당 후보여야 한다. 제3의 후보가 없어야 한다. 동시에 여당 후보를 압도해야 한다. 여당 지지도는 지금보다 더 떨어져야 할 게다. 사실상 완벽해야 한다. 그러니 가능성이 적은 거다.
그래서 제스쳐 수준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 그저 동서화합을 위해 노력한 정도로 말이다.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는 살아 움직인다. 박근혜의 노력 여하도 남겨둬야 한다. 그러니 단정하긴 이르다.
어찌됐든 DJ는 움직이려 할 게다. 표시 안 나게 말이다. 그럼에도 드러날 거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럴 거다. 건강이 유지되는 한 할 거다. 그의 주변을 통해 나타나게 되어있다. 그것을 간과해선 2007년을 예측 할 수 없다. DJ는 아직도 존재하는 현실정치의 가장 강력한 주체 중 하나다. 그것이 2007년 감상법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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