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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하는 MB에게 박수소리 없는 까닭은"

[전문] 이준구 교수, 'MB노믹스 5년' 신랄한 생체해부

청와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지금보다 국격이 높은 때는 일찍이 우리 역사에서 없었다"고 주장해 논란을 빚은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21일자 라디오 연설이 톱으로 실려있다. 여기에는 "국가브랜드 가치 상승, 코리아 디스카운트에서 코리아 프리미엄으로..."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퇴임을 한달여 앞둔 이 대통령의 자화자찬인 셈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과연 이같은 자찬에 동의할까.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 지지율이 20%대 중반에 머무는 데에서도 읽을 수 있듯, 국민 네명 가운데 세명은 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22일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747공약’에 발목이 잡혀 보낸 5년>이란 장문의 글을 올렸다. 2백자 원고지로 110쪽 분량이 넘는 장문의 글이다. 경제에 국한해 진단한 'MB 5년 성적표'인 셈이다.

<’747공약’ - 잘못 끼워진 첫 단추>, <시장기능의 후퇴와 관리경제체제의 등장>, <실패로 끝난 감세정책>, <4대강사업 - 이명박 정부 최대의 실정>, <글로벌 금융위기를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주장의 허구성>이라는 중간제목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이 교수는 MB 5년의 경제실정에 대해 거침없이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댔다.

이 교수가 도달한 결론인즉 "최근의 대통령 선거 중 사상 최대의 지지율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였지만, 퇴임하는 자리에서의 박수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며 "그렇다 해도 최소한 경제의 측면에서만은 성공한 정부라는 평가를 받고 싶어 하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다. 정부의 홍보 자료를 보면 그와 같은 욕심이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의 평가는 이명박 정부가 경제의 측면에서 볼 때도 결코 성공한 정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 보면 이명박 정부의 실패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설픈 신자유주의의 비전으로 경제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까 말이다"라며 "한 가지 다행한 일이 있다면, 이명박 정부의 실패한 실험 덕분에 우리를 괴롭히던 신자유주의의 망령을 털어버리기가 한결 쉬워졌다는 점"이라며 MB정권의 유일한 역사적 존재가치를 '반면교사'의 교훈을 준 데에서 찾았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747공약’에 발목이 잡혀 보낸 5년

1. 머리말

5년 전의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는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공약으로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지금 관점에서 보면 참여정부 5년 동안의 연평균 경제성장률 4.3%라는 숫자가 그리 심하게 나쁜 성과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지난 몇 십 년간 7∼8%대의 높은 성장률에 익숙해 온 우리 국민으로서는 그 정도의 성장률로 성이 찰 수 없었고, 따라서 참여정부는 ‘실패한 정부’라는 낙인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런 분위기에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경제를 되살리겠노라는 장담은 사람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고 말았다.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공약은 기업의 최고경영자로서 오랜 기간에 걸친 경제실무 경험을 갖춘 이명박 후보 자신의 개인적 배경과 맞물려 더욱 큰 신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런 사람이야말로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경제를 기적처럼 회생시킬 능력을 갖춘 적임자가 아닌가? ‘경제대통령’으로서 이명박 후보의 자질에 어느 누구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상식적인 것이 분명한 ‘747공약’마저도 사람들은 별 의심 없이 제법 현실성 있는 공약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명박 후보 측은 실현가능하다고 생각해 그것을 핵심공약으로 내걸었을 텐데,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구체적인 정책 프로그램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을지가 의문으로 떠오른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선을 보인 정책들의 면모를 보면 그 속내를 대충 파악할 수 있는데,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과 감세정책을 기초로 하고 여기에 고환율정책과 저금리정책을 결합시킴으로써 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1) 여기에다 대형 토목사업을 통한 부양효과까지 가세하면 성장률을 몇 % 포인트 정도 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낙관했던 것 같다.

이명박 정부의 5년을 되돌아보면 경제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 채 임기를 마쳤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비록 글로벌 금융위기나 유로존 재정위기 같은 불리한 여건이 있었다고 하나, 평균 3%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경제성장률을 훌륭한 성과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의 체질을 강화시키기 위해 혹은 복지 프로그램을 확충시키기 위해 성장률을 어느 정도 희생하는 전략을 쓴 것도 아니다. 오직 성장률을 극대화하려는 목표 하나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의 성과를 거둔 데 지나지 않는 것임에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최소한 경제의 측면에서만은 자신이 성공한 정부라고 주장한다. 그 주장의 유일한 근거는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상대적으로 더 잘 극복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 나라들의 경제성장률이 0% 수준에서 맴돌고 있을 때 우리 경제는 2010년 6.3%나 되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으니 그 정도면 선방을 한 셈이 아니냐는 것이 그와 같은 자화자찬의 근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경제들에 비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한층 더 성공적으로 헤쳐 왔는지의 여부는 좀 더 엄밀한 검증을 요하는 사안이다. 만약 비교의 대상이 적절하지 않았다면 비교하는 일 그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

전반적으로 보아 이명박 정부의 점수가 그리 높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떤 측면에서는 잘한 일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의 제목이 시사하고 있듯, 여기서는 주로 잘못한 점에 대해 관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잘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름대로의 근거를 밝혀 설명해 주리라고 믿는다. 또한 이 글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구체적이며 총체적인 평가가 될 수 없다는 점도 미리 밝혀두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같은 평가를 위해서는 많은 양의 자료 수집과 이에 대한 꼼꼼한 분석작업이 뒤따라야 할 텐데, 이와 같은 작업은 뒤의 과제로 남겨 놓으려고 한다. 이 글에서는 경제정책의 큰 골격이란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가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2. ’747공약’ - 잘못 끼워진 첫 단추

저조한 경제성장률이 참여정부 최대의 실정으로 부각된 상황에서 경제를 다시 살려 놓겠다는 공약이 정권 교체의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는 단지 경제를 되살린다는 추상적인 구호를 부르짖는 데 그치지 않고 ‘747공약’이란 야심만만한 청사진을 자신 있게 내놓았다. 우리 경제의 성장률을 7%대로 올려놓겠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는 이 공약은 이명박 후보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이 국민의 뇌리에 강력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이 장밋빛 약속에 가슴이 부푼 국민은 그에게 압도적인 표를 몰아줌으로써 무조건적인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잠재성장률이 4%에서 5% 정도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경제를 단숨에 7%의 성장이 가능한 경제로 탈바꿈시킨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온갖 인위적 부양책을 총동원해서 한, 두 해 성장률을 7%대로 높일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무리한 인위적 부양에 따르는 부작용을 생각해 보면 아예 경제를 그대로 놓아두어 순리대로 성장하게 만드는 것이 훨씬 더 낫기 때문이다. 747공약의 원래 취지는 지속적으로 7%의 성장이 가능한 경제를 만들겠다는 약속일진데, 그렇다면 그것은 애당초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는 약속이었다.

바로 이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는 공약으로부터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출발하고 있었기 때문에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셈이 되어 버렸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747공약이 사실은 구체적인 목표가 아니라 하나의 비전이라는 식으로 뒷걸음을 쳤지만 경제성장률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는 호언장담은 두고두고 이명박 정부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작용하게 되었다.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갖가지 무리수를 동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공약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입장을 확보했더라면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지 않았나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747공약이 제시되었을 때 대중들은 열광했을지 몰라도 경제전문가들은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여간한 무리수를 두지 않고서는 그와 같은 목표의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경제학의 기본 상식 정도 있는 사람이라면 그와 같은 목표가 달성 불가능한 것임을 모를 리 없었다. 그렇다면 이명박 후보 측에서는 과연 어떤 정책을 통해 그처럼 무모하게 설정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이 의문에 대해 그들 자신이 명확하게 대답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집권 후 실천에 옮긴 정책들을 살펴봄으로써 그 윤곽을 짐작해볼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7%의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다고 본 수단은 다음과 같았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우선 성장률이 높아지려면 투자가 급격하게 증가해야 하는데, 투자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재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한편 법인세율을 낮춰 주고 저금리기조를 유지함으로써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그러나 모두가 잘 알고 있듯, 그 동안 우리 경제의 투자는 그들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서 허덕여 왔다. 기업의 투자가 무엇에 의해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그렇기 때문에 투자를 획기적으로 증대시킨다는 계획은 첫 단계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의 투자는 기업가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케인즈의 말이 시사하듯, 기업은 투자를 통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느낌이 올 때에 한해 투자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요즈음처럼 투자가 거의 포화상태에 이른 데다가 앞으로의 전망이 불투명한 경우에는 이 말이 더욱 잘 맞아떨어질 수밖에 없다. 즉 교과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기업이 법인세율이나 이자율의 동향만 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사례는 지극히 드물다는 말이다. 주요 선진국들이 실질이자율을 거의 0% 수준으로 떨어뜨려 놓고 투자를 애타게 기다려도 투자가 증가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가 성장률을 높이는 데 그 다음으로 효과 있는 정책으로 본 것은 고환율을 통한 수출 촉진이었던 것 같다. 임금이 아무리 올라도, 원자재 값이 아무리 올라도 환율만 높은 수준에 유지된다면 우리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다. 이렇게 쉬운 방법으로 수출을 증대시킬 수 있다면 두 번 다시 생각할 필요 없이 환율을 그 방향으로 끌고 가면 된다. 더군다나 이명박 정부의 핵심 관료들 중에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외환시장에 실제로 개입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그와 같은 개입에 찬동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포진해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부터 노골적으로 고환율정책을 유지해 왔고, 이를 통해 쏠쏠한 재미를 보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수출이 별로 흔들리지 않고 순조로운 증가세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이 고환율정책의 덕이 어느 정도 있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조금 뒤에 논의하겠지만, 문제는 외환시장에 대한 인위적 개입이 심각한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747공약 달성을 위한 마지막 카드는 정부지출의 급격한 증대였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전반기에 기록한 경제성장률 속에는 정부지출 증가가 기여한 것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만 없었어도 7% 경제성장률의 목표를 달성할 뻔 했다고 억울해 할지 모른다. 그러나 정부지출을 늘려 경제성장률을 억지로 높인다는 것은 그들이 내건 7%의 경제성장률 공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747공약에서의 7%라는 경제성장률은 자신의 임기 동안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잠재)성장률을 그 수준으로 올려놓겠다는 뜻이지, 정부지출을 통한 부양효과로 반짝 상승을 이루도록 하겠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방법으로 경제성장률 높이는 것은 누구인들 못하겠는가?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자면, 747공약의 배경에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경제성장률을 일시적으로나마 그 수준으로 올려놓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행운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때마침 불어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의 폭풍 때문에 과연 7%의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는지의 여부를 검증할 기회가 없어져 버렸다. 그러나 나는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하더라도 일시적이나마 그 목표를 달성하는 일조차 불가능했으리라고 믿는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아직 본격화되기 전인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의 성과가 그리 눈부시지도 않았던 것을 보면 그렇게 평가해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3. 시장기능의 후퇴와 관리경제체제의 등장

신자유주의를 표방하고 들어섰지만, 실제로 경제를 운영해온 방식에 비추어 판단을 해보면 이명박 정부는 결코 신자유주의적 이념에 투철한 정부가 아니었다. 시장의 자율에 맡겨 두기는커녕 정부가 모든 일에 시시콜콜 간섭해 자신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정권 초기부터 시장 상황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밀어붙인 고환율정책과 저금리정책이 그와 같은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친재벌적 태도를 취하다가 국민의 여론이 나빠지자 갑자기 ‘상생’을 내걸고 이들을 압박하는 태도로 반전한 것도 신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먼 태도였다.

심지어는 물가마저도 ‘이명박 물가지수’라는 말이 시사하는 것처럼, 1960년대식의 관리경제정책 체제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고환율정책과 저금리정책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물가상승의 압력을 이명박 정부는 인위적인 관리를 통해 해소하려 했다. 공정거래 질서의 확립이 유일무이한 목표가 되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가 물가안정의 기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 그 좋은 예다. 수요를 적절하게 관리해 물가상승 요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순리를 버리고 공정거래위원회의 강제력을 동원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태도가 신자유주의와 부합될 리 만무한 일이다.

불필요한 개입의 또 다른 좋은 예는 경기활성화를 위한 정부지출의 급격한 증대에서 찾을 수 있다.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부지출의 급격한 증대가 2008년에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대응으로서 불가피한 조처였다고 오해하기 쉽다. 또한 이명박 정부 자신이 그런 방식으로 선전해 왔다. 그런 방식으로 선제적 대응을 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리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거듭 말해온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 보면 정부지출의 급격한 증대는 정권 출범 초부터 기본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던 핵심정책이다.

진정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했다면 감세정책과 더불어 정부지출을 급격하게 줄이는 정책을 채택했어야 한다. 작은 정부는 신자유주의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한편으로 세금을 깎아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지출을 대폭 늘리는 정책을 추구했다. 감세정책을 통해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듯 하면서 정부지출을 대폭 늘려 큰 정부를 추구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이명박 정부가 표방했던 신자유주의가 실제로는 구호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이곳저곳에서 시도한 불필요한 개입은 우리 경제에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가지 부작용을 만들어 냈다. 불필요한 개입이 경제구조를 왜곡하고 체질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정권 출범 초 무리하게 밀어붙인 고환율정책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처지에 있던 중소기업들에게 치명적 손실을 가져다준 KIKO 사태를 일으킨 원인이 되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경제주체들은 환율이 더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KIKO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시장의 펀더멘탈을 무시하고 고환율정책을 추구했고, 그 결과 중소기업의 줄도산 사태를 야기했던 것이다.

또한 2008년 여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하면서 한때 환율이 위험수준까지 뛰어오른 적이 있었다. 다행히 위기를 맞지는 않았지만, 바로 몇 달 뒤에 환율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를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환율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정책을 쓴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이 사례를 보면 시카고학파가 왜 과도한 정부 개입이 경제를 더욱 불안정한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음을 경고했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수출을 늘리려는 욕심에서 외환시장에 부질없는 개입을 일삼다가 뜻밖의 위기를 맞을 뻔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환율을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는 정책은 우리 기업의 체질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근 환율이 1,100원대 이하로 떨어지자 우리 기업들의 수출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난리법석이 일어났다. 과거에는 900원대의 환율에서도 끄떡없이 수출하던 우리 기업이 왜 1,100원선이 무너지면 수출을 못하겠다고 아우성을 치게 되었는가? 높은 환율이 우리 기업들에게 보호효과를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같은 보호에 안주하는 타성을 길러주게 된 것도 사실이다. 기업이 때로는 시장의 호된 채찍을 맞아 보아야 매를 견디는 강한 체질을 키울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고환율정책은 우리 기업들이 스스로 체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 버린 결과를 빚었다.

고환율정책과 더불어 이명박 정부 핵심 경제정책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저금리정책도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는 데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가계부채 문제의 심화를 부추기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당시에도 이미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은 널리 알려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저금리정책을 계속 고수하는 한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도 상식에 속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저금리정책의 장점과 단점을 엄밀하게 저울질할 수 있는 사고의 탄력성을 결여하고 있었다. 나타나지도 않는 투자촉진 효과를 애타게 기다리며 저금리정책을 밀어붙인 결과 가계부채 문제는 한층 더 심각한 차원으로 치닫게 되었다.

정부가 인위적 관리를 통해 물가를 통제하려 할 때 갖가지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가 불안이 눈앞에 닥쳐 있는데도 정부는 물가 불안을 더욱 부추길 고환율정책과 저금리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인위적 관리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다행히 세계 경제가 극도의 침체상태에 빠져 있는 덕분으로 인플레이션을 경험하진 않았지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는 위험한 줄타기를 한 셈이다. 지금도 잘 살펴보면 시장 이곳저곳에 그와 같은 인위적 개입을 통한 물가 관리의 후유증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4. 실패로 끝난 감세정책

감세정책은 이명박 정부가 표방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의 핵심적 요소 중 하나였다. 신자유주의적 성격의 감세정책이 대부분 그렇듯,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도 부유층에 감세의 혜택이 집중적으로 돌아가게 만든 구조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감세정책은 그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부자감세’라는 비아냥거림에 직면하게 되었다. 정부는 부유층에 돌아간 감세혜택이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이에 따라 중하위 소득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논리로 국민을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부유층에게 감세혜택이 집중적으로 돌아가는 감세정책에 대한 서민의 반감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만약 감세정책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면 부유층에 혜택이 집중적으로 돌아가는 데 대한 서민의 불만이 있더라도 좀 더 오랜 기간 동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명박 정부 임기 중반에 슬그머니 이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해 서민의 불만을 잠재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감세정책이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을 입증해 주는 사례 그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이를 추진했다는 데 있다. 이명박 정부는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와 영국의 새처리즘(Thatcherism)을 머릿속에 그리고 감세정책을 추진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두 사례 모두 감세정책이 어떤 획기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 결론을 내기에는 성과가 아주 미미했던 경우다.

미국의 감세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연구가 행해진 바 있어 이제는 거의 결론이 나 있는 상태다. 그 동안 이루어진 연구 결과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감세정책이 경제 활성화에 이렇다 할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어느 일에서나 그렇듯 일부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압도적 다수의 연구 결과는 감세정책으로 인해 경제가 더큰 활력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입증해줄 근거를 찾기 힘들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고 있다.

감세정책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노동공급, 저축, 투자에 어떤 변화가 오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해 보아야 한다. 만약 실증분석의 결과 감세정책으로 인해 노동공급, 저축, 투자가 현저하게 증가되었음이 드러난다면 감세론자들의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감세정책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감세론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 감세정책이 사람들의 경제행위에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데 경제가 활성화되는 결과가 나타날 리 없기 때문이다.

내가 최근에 쓴 서베이 논문에서 밝힌 바 있지만, 압도적 다수의 실증연구 결과는 감세정책이 노동공급, 저축, 투자에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2) 감세정책이 노동공급과 저축을 큰 폭으로 늘어나게 만들려면 이와 같은 행위가 가격, 즉 임금률과 이자율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다시 말해 노동공급과 저축의 가격탄력성이 커야 한다는 것인데, 많은 실증연구들이 이들의 가격탄력성은 아주 작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투자의 경우에도 조세제도상의 투자유인이 기업들의 투자 행위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실증분석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자 감세론자들은 과세대상소득의 한계세율탄력성(elasticity of taxable income with respect to marginal tax rates)이라는 개념으로 감세정책의 효과를 입증하려 했다.3) 과세대상소득의 한계세율탄력성이 높은 값을 갖는다는 것은 세율의 인하에 따라 조세수입이 큰 폭으로 늘어나는 결과가 나온다는 뜻이다. 경제가 활성화됨에 따라 사람들의 소득이 크게 늘어나고 그 결과 조세수입도 함께 늘어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감세정책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실증연구들은 실제의 과세대상소득 한계세율탄력성 값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설사 과세대상소득의 한계세율탄력성이 비교적 큰 값을 갖는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감세론자의 주장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율 인하가 과세대상소득의 증가를 가져오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실증분석 결과를 보면 과세대상소득 증가의 대부분이 소득창출(income creation)의 결과가 아닌 소득전환(income shifting)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4) 소득전환으로 인한 과세대상소득의 증가가 경제의 활성화와 별 관련이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최근 발표된 미국 의회조사국(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의 보고서에 따르면, 부시(G. W. Bush) 행정부의 감세정책이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 바가 거의 없다고 한다.5) 감세정책이 저축, 투자, 생산성 증가와 별 관련을 갖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을 촉진시키는 데는 별 효과를 내지도 못하면서 빈부격차만 확대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다는 것이 그 보고서의 결론이다. 또한 지난 65년 동안 세율과 경제성장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부유층에 적용되는 세율이 높았던 때의 경제성장률이 더 큰 경향을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단지 상관관계를 말하고 있는 데 불과한 것은 사실이지만, 부유층에 적용되는 세율을 깎아주면 성장이 촉진된다는 맹목적 믿음에 별 근거가 없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미국에서 이미 실패로 판명된 감세정책의 실험이 2008년에 새삼스럽게 우리나라에서 재연된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감세정책의 신화는 2000년대 초반에 이미 깨져 버렸는데,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점에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아마도 철저한 사례 분석 없이 경제살리기에는 감세정책이 최고라는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된 나머지 채택한 정책이 아니었던가라는 짐작이 간다. 만약 미국의 감세정책에 대한 철저한 사례분석을 했더라면 그런 쓸모없는 모험을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레이건 행정부는 두 차례에 걸친 세제개혁을 통해 70% 수준이던 소득세 최고세율을 28%로 대폭 낮췄다. 이런 극적인 변화를 통해서도 경제에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반면에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은 세율을 고작 2, 3% 포인트 정도 내리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 정도의 작은 세율 인하가 이루어졌다 해서 사람들의 행태가 갑자기 변화할 리 없다.

세율이 인하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도 힘들뿐더러 설사 제대로 인식한다 해도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선택행위를 선뜻 변화시키려 들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은 홍보효과 이외의 그 어떤 실질적 효과도 기대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는지 모른다. ‘부자감세’의 성격을 갖는 이 감세정책이 빈부격차를 한층 더 확대시키는 부작용을 가져왔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아직은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좀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려 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정부는 감세정책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한 번도 공개적으로 인정한 바 없다. 그러나 임기 중반에 이를 슬그머니 퇴장시켰다는 것은 그 성과가 기대 이하였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5. 4대강사업 - 이명박 정부 최대의 실정

5년 전의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한반도대운하’라는 기상천외한 토목공사를 핵심 공약으로 들고 나온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정말로 우리나라의 현행 물류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운하라도 건설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심각한 동맥경화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있어 그 사업을 구상했을까? 아니면 남북을 잇는 운하가 우리나라의 화려한 미래를 여는 열쇠라고 보았기 때문에 그 사업을 열정적으로 추진했을까? 나는 이 둘 중 어느 것도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내가 보기에 이명박 후보에게 가장 매력적이었던 점은 22조원의 지출이 가져올 직접적 경기부양 효과와 소위 친수공간 개발에 따른 추가적 부양효과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와 같은 경기부양 효과는 그가 내건 747공약의 실천에 큰 몫을 한다고 보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촛불시위를 계기로 한반도대운하 사업을 포기한 직후 다시 이름만 ‘4대강사업’으로 바꿔 본질적으로 똑같은 성격의 사업을 밀어붙인 것을 보면, 문제의 핵심이 바로 그 사업이 가져다줄 부양효과였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단기적 관점에서 보면, 숱한 논란을 잠재우고 4대강사업을 자신의 임기 안에 끝낸 이명박 정부는 성공을 거둔 셈이다. 22조원의 부양효과를 재임 기간 동안 완벽하게 누렸을 뿐 아니라, 4대강에 걸친 16개의 댐들은 이미 기정사실이 되어 어찌 해볼 도리가 없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지식인들과 4대 종단이 강력하게 반대했을 뿐 아니라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반대 여론이 높았다는 사실은 이제 완전히 과거의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바로 전 대통령선거에서 재자연화의 논의가 잠시 제기되기도 했지만, 엄청난 돈을 투입해 만든 댐들을 철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앞으로 긴 시간이 흘러 이명박 정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해지는 시점에 이르면, 4대강사업이 그 정부의 최대 실정으로 자리매김될 것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무엇보다 우선 지적되어야 할 심각한 문제점은, 그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절차상의 정의가 무시되었다는 사실이다. 4대강사업을 추진하는 시점에 때 맞춰 국가재정법을 고치고 그 사업의 본질을 재해예방사업으로 둔갑시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 받게 만든 것은 무슨 말로 변명하더라도 절차상의 정의를 무시한 행위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4대강사업은 집권자가 마음만 먹으면 절차상의 정의를 무시하고 초대형 국책사업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불행한 선례를 남겼다. 집권자가 자기 입맛대로 법률을 뜯어고칠 수 있다면 법질서의 확립이라는 것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국책사업의 성격을 자기 마음대로 규정할 수 있다면 국가재정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낭비를 막는다는 게 무슨 효과를 가질 수 있을까? 편법에 의해 4대강사업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전략을 쓴 결과 대형 국책사업에 예비타당성 조사 의무를 지움으로써 무분별한 사업의 남발을 막자는 국가재정법의 존재의의가 완전히 상실되어 버리고 말았다.

4대강 연변에 거의 지각변동에 해당하는 대규모 환경변화를 가져올 초대형 국책사업을 불과 몇 달간의 준비만으로 시작한 것도 절차상의 정의를 심각하게 위배한 행위였다. 토목공사의 규모상 주변 생태계에 미칠 영향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전대미문의 엄청난 것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우리의 국토가 이렇게 단기간에 이렇게 대규모로 파헤쳐진 적이 없었다. 상식적으로 보아 그 정도의 토목공사라면 몇 년의 준비기간으로도 충분히 대비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자신의 임기 중에 끝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그렇게 서둘렀던 것이 분명한데, 불충분한 준비만으로 시작한 공사인 탓에 앞으로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줄지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속속 드러나고 있는 시공업체들 사이의 담합 사건들도 무리한 사업 추진이 빚은 부작용이었다. 시공업체들 사이의 담합은 공사비를 부풀려 아까운 혈세가 낭비되는 결과를 빚었을 뿐 아니라, 공사 그 자체를 부실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엄청난 돈이 투입되는 토목공사이기 때문에 담합이 이루어지기 십상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을 텐데, 정부는 담합 예방에 이렇다 할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담합 사례가 적발되더라도 오히려 적당히 덮어두려 했던 흔적마저 보인다. 앞으로 더 많은 담합 사례들이 적발될 것으로 예상되는 바, 알고 보니 4대강사업이 비리의 온상이었다는 말까지 나올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환경정책의 측면에서 4대강사업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혔다. 환경 보호의 파수꾼이 되어야 할 환경부가 대규모의 환경 파괴와 생태계 교란을 가져올 토목사업에 대해 뒷짐을 지고 바라보아야 하는 위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개발논리에 치우친 국토해양부의 독주를 견제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것으로 드러난 환경부가 환경보호를 위해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부터 줄기차게 녹색성장을 부르짖어 왔지만, 4대강사업은 그것이 위선에 지나지 않았음을 만천하에 알려주는 조명탄 역할을 했다. 4대강사업을 통해 강 연변에 수많은 ‘생태공원’이라는 것을 조성했지만, 그것들은 모두 참다운 생태와는 거리가 먼 인공 구조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말하는 녹색성장이 실제로는 ‘회색성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4대강사업을 통해 적나라하게 밝혀졌다.

자신의 임기 중에 끝내려는 욕심에서 여론의 수렴도 없이 정당한 절차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밀어붙인 4대강사업은 우리 경제, 사회에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겼다. 집권자가 원하기만 한다면 아무런 검증절차도 거치지 않고 22조원이나 드는 거대 토목사업이 하루아침에 시작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은 효율적이며 공정한 정부를 만들려는 우리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 되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4대강사업을 자신의 주요한 치적으로 홍보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지금은 4대강사업의 진실이 대부분 감추어져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 둘씩 줄지어 밝혀질 것이 뻔하다. 그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4대강사업은 이명박 정부 최대의 치적이 아니라 최대의 실정으로 심판 받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6. 글로벌 금융위기를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주장의 허구성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잘했다”는 평가보다 “잘못했다”는 평가가 압도적으로 더 많은 것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심지어 지난 대통령 선거과정에서는 이 정부와 파트너가 되어 함께 국정을 운영해왔고 따라서 함께 심판을 받아야 할 박근혜 후보마저 이 정부와 선을 그으려 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자신의 업적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대해 전혀 승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최소한 경제만은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다는 것이 그들의 지론이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가 최소한 경제만은 잘 이끌어 왔다고 자부하는 근거는 우리나라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가장 성공적으로 넘긴 나라라는 데 있다. 미국과 유로존이 모두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나마 빨리 위기에서 빠져나온 셈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는 당연히 정부가 개발한 것일 텐데, 보수언론이 이를 앵무새처럼 따라 옮기는 바람에 이젠 거의 공론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논리에 치명적 결함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정부의 논리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과 미국이나 유로존의 경제성장률을 단순비교해 보면 우리가 상대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견뎌낸 셈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로서 직격탄을 맞은 나라이며, 유로존도 미국과의 밀접한 경제관계 때문에 미국 못지않은 타격을 받았다. 더군다나 뒤 이어 터져 나온 유로존의 재정위기는 이 나라들을 정신조차 차리기 힘든 상황으로 몰아 나갔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이 두 개의 위기에 대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관망할 수 있는 입장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정부는 그렇게 된 것이 바로 자신의 공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지난 1997년 말 동아시아 지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큰 타격을 받았던 나라들은 바로 그 위기의 당사국들이었다. 그 당시 미국이나 유로존 국가들이 받은 타격은 별로 크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위기의 진원지에 있는 나라들이 주로 큰 타격을 받는 한편, 진원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들은 별 타격을 받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의 진원지에 있는 나라들에 비해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해서 그것을 우리 정부의 공으로 돌릴 수 있을까?

물론 우리나라처럼 수출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위기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만 미국, 유로존과 긴밀한 교역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하고 있는 대만, 홍콩, 싱가포르 같은 나라들도 우리 못지않게 긴밀한 교역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금융위기나 유로존 재정위기가 국내 경기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우리뿐 아니라 이 나라들도 비슷한 정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나라들이야 말로 위기상황에서 우리 경제가 얼마나 선방했는지를 평가하는 좋은 비교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좋은 성과를 올렸는지는 미국, 유로존 국가들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나라들과 비교해 결론을 내렸어야 마땅한 일이었다.

‘동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four tigers of Asia)라고 불리는 나라들, 즉 우리나라, 대만, 홍콩, 싱가포르는 모두 수출주도형 경제발전 전략을 통해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비슷한 발전수준에 있기 때문에 서로 비교대상이 되기에 좋은 여건을 갖고 있다. 만약 다른 세 나라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만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면 우리 경제가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판정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된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자신의 공을 정당하게 인정받고 싶으면 바로 이 사실만 입증하면 된다.

<그림 1>이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듯, 1980년에서 2011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이 네나라들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고도성장의 길을 걸어 왔다.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8년과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9년을 전후해 모든 나라들의 경제성장률이 급전직하로 추락한 것을 비롯해 대부분의 기간 동안 비슷한 패턴으로 오르내린 것을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2008년 이후에도 이와 같은 패턴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2008년에서 2011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이 네 나라의 경제성장률을 비교했을 때 우리 경제가 특히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명박 정부는 그 전 두 해 동안 2.3%와 0.3% 수준에 머물고 있던 경제성장률이 2010년 6.3%로 급상승한 것을 들어 우리 경제가 발군의 성과를 올린 양 선전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6.3%라는 성장률은 네 나라 중 꼴찌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표 1>에서 볼 수 있듯, 그 해 싱가포르의 경제성장률은 14.8%로서 우리의 두 배가 훨씬 넘는 수준이다. 대만 역시 우리보다 크게 더 높은 10% 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상대적으로 저조한 홍콩이 기록한 경제성장률조차 우리보다는 더 높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입버릇처럼 “어려운 상황이다”고 호들갑을 떨어서 그렇지, 뒤돌아보면 수출주도형 경제의 입장에서 볼 때 2010년은 근래 보기 드문 반짝 황금기였다. 싱가포르와 대만의 경우 1990년 이래 경제성장률이 2010년만큼 높았던 때는 한 해도 없었다. 이에 비해 우리 경제가 2010년에 달성한 경제성장률은 1990년대의 평균적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10년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되는 상황이었고 아직 유로존의 재정위기가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된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저효과(base effect)까지 더해져 네 나라 모두 높은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정부만 특별히 잘해서 그런 결과를 얻었다고 말할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연간 경제성장률이 이 네 나라 중 꼴찌라는 우리 경제의 위치는 2010년에 이어 2011년에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011년에는 다른 나라들도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그래도 모두가 우리나라의 3.6%보다는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명박 정부 재임 기간인 2008년에서 2011년 사이의 평균 경제성장률을 보면, 싱가포르가 4.9%로 제일 높고, 그 뒤를 3.3%의 대만, 3.1%의 우리나라, 그리고 2.9%의 홍콩이 잇고 있다. 이 그룹에서 선두를 차지하기는커녕 0.2% 포인트 차이로 간신히 꼴찌의 수모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어떤 통계자로를 갖고도 이명박 정부하에서의 우리 경제가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없다. 아주 후하게 점수를 준다 해도 평균점 이상의 점수를 주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양극화의 심화를 무릅쓰고 성장에만 올인한 결과로 얻은 것이 바로 그런 기록 아니던가? 뿐만 아니라 앞에서 지적했듯 온갖 무리수를 두어가며 경기를 부양해 얻은 성과가 아니던가? 아무리 국제적인 여건이 나빴다 하더라도 3.1%의 평균 경제성장률을 갖고 훌륭한 성과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자화자찬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겉으로 나타난 통계수치로만 보면, 위기상황에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좋은 성과를 보인 것은 이명박 정부가 아니라 국민의 정부 시절이다. <그림 1>을 보면 국민의 정부 시절인 1998년에서 2002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1999년, 2001년, 그리고 2002년에는 발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외환위기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극복한 셈인데, 그 기간에 비한다면 2008년에서 2011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우리 경제가 보인 성과는 상대적으로 초라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의 정부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은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인위적인 부양을 통해 경제성장률을 억지로 끌어올린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짝퉁 벤처사업에까지도 돈을 뿌리고, 길거리에서 신용카드를 모집하게 만들고, 부동산 투기억제 장치를 모두 풀어버리는 등의 무리수가 횡행한 시절이었다. 이처럼 무모한 인위적 부양은 우리 경제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참여정부 시절의 성과가 비교적 좋지 않은 것은 이 무리한 인위적 부양의 후유증에도 상당 부분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이에 비해 참여정부는 인위적 부양을 비교적 삼갔고, 그 결과 형편없는 성적을 낸 정부라는 평가를 감수해야만 했다.

전임 정부가 남긴 유산이라는 측면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참여정부보다 훨씬 더 운이 좋았다. 참여정부는 국민의 정부가 남긴 인위적 부양의 뒤치다꺼리에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후임자에게는 비교적 견실한 경제 기조라는 유산을 남겨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경제의 경우에는 일정 기간 동안 경제성장률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으면 여건이 좋아질 때 훨씬 더 큰 폭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역량이 축적되는 법이다. 그렇다면 참여정부 시절의 저성장 기조는 그 뒤를 이은 이명박 정부에게는 하나의 호재일 수 있었다. 이런 좋은 여건에서 출발한 이명박 정부가 고작 3.1%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면 결코 훌륭한 성과라고 말할 수 없다.

7. 맺음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경제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퇴장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도 클 수밖에 없다. 때마침 불어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라는 폭풍의 영향을 감안해 줄 필요는 있지만, 어떤 잣대로 평가한다 하더라도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높은 점수를 받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참여정부가 끝난 5년 전과 비교해 볼 때, 지금 이 시점에서의 우리 경제가 상대적으로 더 나은 상황에 있다고 볼 만한 근거를 찾기 힘들다.

약속한 7%대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실패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선거 때는 표를 얻기 위해 과장된 약속을 하는 경우가 많고, 747공약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오히려 그렇게 실현이 어려운 공약은 일찌감치 국민의 양해를 구해 포기했더라면 더 좋았을지 모른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그 공약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 무리수를 남발했다는 데 있다. 그 결과 시장기능이 후퇴하고 1960년대식의 관리경제체제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시장의 활력을 북돋움으로써 경제의 체질 그 자체를 강하게 만드는 것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5년 동안 우리 경제가 이런 방향으로 줄기차게 달려 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그 반대방향으로의 역주행이 일어났을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이런 역주행의 결과 우리 경제의 체질은 5년 전에 비해 더 약해진 상태가 되었다. 시장기능이 더욱 활성화되기는커녕 정부의 시시콜콜한 개입 때문에 더욱 제한되는 결과가 빚어졌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성장이 최고의 복지다’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결과적으로는 성장이라는 토끼마저도 놓쳤지만, 성장률을 높이는 데만 전력을 기울인 결과 경제 곳곳에 심각한 불균형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수출산업과 내수산업 사이의 불균형은 예전보다 한층 더 심화되었으며, 재벌그룹에 의한 경제력 집중 역시 사상 최고의 수준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와 같은 불균형의 심화를 ‘상생’이란 막연한 구호로 대처하려는 안이한 태도로 일관했다는 사실이다. 근본적 해결책 없이 상생만 부르짖는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한데도 말이다.

불균형의 심화는 부자감세와 맞물려 빈부격차를 훨씬 더 큰 폭으로 벌리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자리를 잡아가던 양극화의 문제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한층 더 심각한 차원으로 치달았을 것이라고 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양극화 문제의 해소라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아젠다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 주어야 서민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는 신념의 소유자들이 양극화 문제의 해소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리 없는 일이다. 만약 앞으로의 연구를 통해 이명박 정부하에서 양극화가 한층 더 심화되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면, 이 정부의 실정 리스트에 또하나의 중요한 항목이 추가되는 셈이 된다.서민의 삶이란 측면에서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나아진 것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세정책으로 경제가 활성화되면 서민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정부의 홍보와 달리, 서민이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혜택은 그 어느 것도 실현된 바 없었다. 뿐만 아니라 서민의 목을 옥죄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나 가계부채 문제는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입만 열면 ‘일자리 창출’을 부르짖었지만 실제로 늘어난 일자리는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수출 대기업이 사상 최대의 이윤을 기록해 보너스 잔치를 벌인다 해도 그것은 남의 이야기에 불과할 따름이다.

최근의 대통령 선거 중 사상 최대의 지지율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였지만, 퇴임하는 자리에서의 박수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최소한 경제의 측면에서만은 성공한 정부라는 평가를 받고 싶어 하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다. 정부의 홍보 자료를 보면 그와 같은 욕심이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의 평가는 이명박 정부가 경제의 측면에서 볼 때도 결코 성공한 정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돌아보면 이명박 정부의 5년은 747공약에 발이 묶여 다른 데는 신경을 써볼 여유조차 없이 보낸 세월이었다. 시장기능의 후퇴와 불균형의 심화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양극화의 문제에는 손을 써볼 엄두도차 내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이명박 정부의 실패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설픈 신자유주의의 비전으로 경제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한 가지 다행한 일이 있다면, 이명박 정부의 실패한 실험 덕분에 우리를 괴롭히던 신자유주의의 망령을 털어버리기가 한결 쉬워졌다는 점이다. 바로 전 대통령 선거에서 어느 누구도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은 것은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1) 겉으로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 내용은 ‘재벌 프렌들리’를 의미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에 쓴 정책 중 재벌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성격의 정책이 많은 것에 비추어 보면 일리가 있는 지적일 수 있다.

2) 이준구, “미국의 감세정책 실험 – 과연 경제 살리기에 성공했는가?” 『경제논집』, 제51권 2호, 2012.

3) 과세대상소득의 한계세율탄력성이란 개념이 처음 선을 보인 것은 L. Lindsey(1987)의 논문에서다.

4) J. Slemrod(2001)는 조세에 대한 민간부문의 반응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범주로 나눠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실질대체반응(real substitution response)으로, 조세 부과의 결과 노동공급 혹은 저축과 관련한 결정을 바꾸는 것이 그 좋은 예다. 다른 하나는 회피반응(avoidance response)으로,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거래의 시점을 변화시킨다거나 소득의 형태를 다른 것으로 바꾸는 일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실질대체반응의 결과로 생긴 것이 소득창출, 그리고 회비반응의 결과로 일어난 것은 소득전환이라고 부른다.

5) 경향신문, 2012년 12월 16일자.
엄수아 기자

댓글이 25 개 있습니다.

  • 2 0
    딸랑이

    미국에딸랑거리다가 5년다 보냈지

  • 7 0
    포청천

    우리나라는 포청천 없나?
    중국의 포청청이면
    개작두 몇번 쓰였을텐데?
    .
    이명박을 대선 후보로 선택한
    한나라당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들?
    .
    대선 직전에
    bbk 터졌지?
    .
    그 때 벌써
    사깃군인걸 알았지
    광운대에서 자기가 설립해서
    벌써 이익을 냈다고?
    .
    그래놓고도
    않했다고?
    .
    김경준이만 억울하게 감옥갔지?
    이번 특사에 김경준이는
    꼭 사면해야?

  • 10 0
    BBK

    형님 먼저 아우먼저 우선형님이 먼저 드가셔서 감방 청소하세요

  • 6 0
    국민

    품격은 국가와민족의
    자주 독립 측면에서 봐야 되는게야!
    과연 향상 됬을까?
    국민이 알고 있다!

  • 7 2
    김영택(金榮澤)

    노통은 지켜드리지 못한게 아직도 천추의 한으로 남는데
    가카는 교도소로 보내고 싶어.....

  • 20 0
    존경

    이렇게 훌융한 글를쓰신 교수님게 찬사와 존경 를 보냅니다.
    교수님 글은 항상 "문재인" 후보를 떠 올리고 ... ... 속상합니다.
    교수 존경합니다.

  • 1 4
    뭬야

    박수를 모욕하지마로....

  • 38 0
    지나가다2

    밑에 글에
    기립박수를 보내며..

  • 52 0
    지나가다

    수감된다면
    박수 쳐드리겠다.

  • 29 1
    쥐섹이라는 못된자

    쥐섹이라는자는 처음부터 쥐섹의 쥐섹에의해 쥐섹을위한 정차를 한자다 이런자 왜 대통령이되서 국민을 힘들게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쥐섹은 대한민국을 떠나 지옥에 가면 많은자들의 우상이 될것이다

  • 38 1
    슬프다

    노무현 대통령과 대조를 이루네 노무현 대통령은 아직도 지켜주지 못한게 가슴아픈데 명바기는
    교도소로 보내고 싶은 심정이야

  • 31 1
    9족을 멸해야

    왜넘압장이 정권..이정권에 가담자는 전원색출해서 씨를
    말려야 나라의 근본이 선다

  • 28 1
    aaa

    이번 정부는 결국엔 신자유주의 이념에 충실히 따른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큰정부를 지향한 것도 아니었고
    걍 명바긔 일가 친척들이 다 해쳐먹기 위한 그들만의 정부였다
    노무현도 말년에 지지율 바닥 쳤음에도 퇴임할땐 환영받았었는데
    이 개자식은 그러한 상황조차 주어지지 않을것 같다 ㅇㅇ

  • 4 0
    ㅇㅇㅇㅇ

    우리 손으로...패죽일려구..살려둔거야..?...........동조한자들.........조또....쩔리냐..?

  • 3 0
    dfgfd

    이넘의나라가 왜 요모양 요꼴로 되였는지..하는지껄이들 보면 썩어빠진 이나라에서 살고싶지 않고 두바이나.호주로 이민가고 싶지만 그래도 네 취향에 맞는 면이 있어서 떠나지않고 있습니다..그 원인은 ==http://www.kk.vxv.kr== 또는 ==http://www.gh.cun.kr== 클릭하면 알것이 옵니다..

  • 57 0
    정말 의아하다.

    국격이 그렇게 높은 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이렇게 국민과 불통한 적이 없는 거겠죠
    그래서 청와대 아부꾼들 아부에 갇혀
    아무것도 못 보시는 것은 아닌 지?
    지금 국민들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
    그런 말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정말 의아하네요

  • 35 9
    정치의 목적은 민생

    명박이도 노무현이랑 똑같이 민생을 외면했다
    그래서 명박정부도 실패한 정부로 규정한다

  • 55 0
    외로운 명박이

    내 살다 살다 입으로 자화자찬 이 토록 심하게 하는 넘은 또 처음본다.
    넘들이 칭찬을 안하니 스스로 칭찬하는 수 밖에 없어 그런거여?
    씨가 말랐냐 칭찬에 목마른데 그렇다고 초딩도 아니고 자기 입으로 너
    무 심한거 아녀, 아는 사람이 매일 지입으로 만나면 자기 칭찬하면 그
    거 처럼 진상도 없는디. 이 불쌍한 놈아.

  • 0 22
    제대로 평가하자

    이준구 교수.
    이 분 처럼 철저하게 작정하고 비판하면 이 교수 평생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1000페이지도 넘게 쓸 수 있지.
    747공약?? 동서고금 선거판에선 부풀린 언어유희가 난무하기 마련이다.
    선거에서 그런 희망도 없다면 그게 사람사는 세상인가...
    DJ, 노무현 대통령 모두 그랬다. 이교수가 진짜 4만달러 간다고 생각했다면 지식인도 아니지.

  • 63 0
    대단한 MB

    누가뭐래도 사기술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대단한 사기꾼여.ㅋㅋㅋㅋㅋㅋㅋㅋㅋ

  • 1 23
    ㄹㅈㅎ

    남쪽정부 대통령 후보였던 먹튀 리정희

  • 2 20
    좌좀깡통

    데모꾼들 의식화시킨 김종태 구출위해 김일성이 특공대 파견까지 생각하고 사형당했을땐
    비통해 한 이유를 이제 알것자?

  • 65 0
    쓰레기지

    그런 먹물들이 하는 이야기고, 서민들은 지 돈 사회에 헌납하다고 생생내고는 지 친척, 친구 이사로 앉혀놓고 세금 안내는 것, 나라 돈 빼다가 땅사서 아들 놈에게 넘겨 세금포탈하려 한 것이 명박이를 인간 이하로 보는 거지, 그런 인간이 국격 어떻고 하는 말을 찌꺼리는 걸 보면서 기가 막히는 거요

  • 18 6
    경제학자후배

    끝나고 나서
    궁시렁거려 봤자
    소용없다.
    열차 떠난 다음에
    손흔들어 봤자
    되돌아 오지 않는다.
    한국 지식인들의 문제는
    사전예측 능력은 없고
    사후약방문만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이다.
    사후약방문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건 지식인이 할일이 아니다.
    죽은넘 부관참시 해봤자
    뭐 나아지는거 있나?
    목숨걸고
    사전에 투쟁하라.
    일이 터지기 전에
    막아라.

  • 93 0
    명박사살

    퇴임 한달앞두고 12개 발전소 민영화했다.. 아주 악날하게 국물한방울까지 모두 빼먹고 도망가는구만,, 그런데 더욱놀라운것은 이런 중차대한 문제에 언론에서 조차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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