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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가족 동의만으로 정신병원 입원시키나”

해외 정신질환전문가들 “환자 동의없는 전기충격요법은 국제법 위반”

“부모나 친인척만의 동의로 환자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한국의 실태에 놀랐다.”

미국 정신과 전문의 ‘다니엘 피셔’(Daniel B. Fisher) 박사가 국내 정신과 병동을 둘러보고 내뱉은 탄식이다. 미 ‘정신건강 대통령 위원회’(PNFC) 위원을 역임하고 ‘국립정신장애인재활센터’(NEC) 대표를 맡고있는 피셔 박사는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7일 오후 국회에서 ‘인권위 설립 제5주년’과 ‘세계인권선언 제58주년’을 맞아 우리 사회의 대표적 인권 취약분야인 ‘정신 장애인’들의 인권 현실을 국제적 기준에서 되돌아보는 ‘정신장애인 인권보호를 위한 국제세미나’를 개최했다. 인권위는 이번 세미나를 위해 피셔 박사를 비롯 미 워싱턴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국제정신장애인 인권연대’(MDRI) 대표 클라랜스 썬드람(Clarence J. Sundram) 변호사와 죠프 허긴스(Geoff Huggins) 스코틀랜드 정신보건국장 등 국제적인 정신 질환 전문가들을 초청했다.

다니엘 피셔 박사. ⓒ김동현 기자


“환자 동의없는 전기충격요법 사용은 국제법 위반”

이들은 세미나에 앞서 이 날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한국의 정신 장애인 인권 보호 실태와 관련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지난 4~5일 성안드레아병원, 용인병원 등 국내 정신병원 시설을 직접 둘러본 피셔 박사 일행은, 국내 일선 정신병동에서 사용되는 전기충격요법에 대해 “본인 동의없는 전기충격요법 사용은 자제돼야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썬드람 대표는 “정신병동에서 무조건 정신충격요법(전기충격 등)을 사용하는 것 같던데 환자 본인의 동의없는 그같은 정신충격요법 사용은 명백히 국제법에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썬드람 대표가 지적한 ‘전기충격요법’이란 정신질환 환자에게 적용되는 치료 방법의 일종이다. 국내 일선 종합병원 관계자는 “전기충격요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정신질환의 주된 이유 중의 하나가 환자의 체내에서 발생하는 ‘전해질 장애’로 보기 때문에 전기충격요법을 통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썬드람 대표의 지적처럼 국내 정신병원들은 이같은 전기충격요법을 사용함에 있어 사전에 충분히 환자에게 이를 설명하지 않고, 심지어 환자 동의 없이도 치료를 강행한다는 데 있다. 썬드람 대표는 “전기충격요법은 말 그대로 전기를 사람 몸에 적용시키는 것이기에 사전에 마취제나 근육이완제를 투여해 환자가 받을 충격을 최소화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절차없이 그냥 시술하게 되면 환자의 뼈가 골절되거나, 온몸이 갑자기 수축돼 여러가지 큰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며 “이는 명백히 인권침해 요소”라고 경고했다.

피셔 박사 역시 “미국에서도 정신과 전문의의 50% 가량은 전기충격요법 시행에 반대하고 있는 형편”이라며 “정신충격 요법은 환자에게 영구적 기억 상실 장애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가족과 친인척 동의하에 시술한다고 해도 가족들도 사전에 그 절차나 내용을 제대로 통보받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여전히 전기충격요법이 특정한 절차없이 시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권위관계자는 “한국에서는 전기충격요법 시행 시 환자 동의 절차를 받도록 돼 있긴 하지만 법으로 이를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않다”고 밝혔다.

국내 굴지의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이 날 본지와 통화에서 “우리 병원의 경우, 국내 최대 병원 중의 하나지만 솔직히 말해 정신 병동에서 이같은 전기충격요법을 사용하면서 환자의 동의나 절차 같은 것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마취제나 근육이완제 같은 것은 사전에 쓰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대개 전기충격요법을 수술장에서 시술한다”며 “이는 의사들 역시 전기충격요법의 위험성을 알고 응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국내 굴지병원들도 이런데 다른 군소 정신과 병원은 더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인권위 초청으로 국내를 방문한 해외 전문가들은 이 날 오후 국회 세미나에 참석, 우리나라의 정신질환 환자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인권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현 기자


“가족 동의만으로 입원시키는 사실에 놀라워”

한편 이들 인사들은 우리나라 정신 병원의 입원 절차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냈다.

썬드람 대표는 “다른 여타 국가들(동유럽, 남미)처럼 수용 규모에 비해 환자수도 상당히 많았다”며 “약물치료 외에 정기적으로 제공되는 치료요법도 거의 없는 실정이었다. 환자들이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하고 무료하게 방치 돼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오히려 환자가 정신병원 입원 후 사회에서 수행해왔던 기능을 상실해감음 물론 사회에서 더 괴리돼 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환자의 자발적인 의사로 입원한 경우보다 가족이나 친지 등 외부에서 강제로 입원시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피셔 박사는 “보호자나 부모 등의 동의만으로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사례는 미국의 경우 3~40년 전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라며 “아무리 타인과 본인을 해칠정도의 정신 질환의 경우를 앓고있는 환자라도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본인을 대리한 변호사 등을 통해 입원에 있어서 엄격한 법 절차를 따른다”고 밝혔다.

퇴원에 있어서도 선진국들은 철저히 환자 본인의 상태와 의사를 존중한다고 이들 전문가들은 밝혔다.

죠프 허긴스 스코틀랜드 정신보건국장은 “환자의 정신병원 입ㆍ퇴원은 준사법기관이라 할 수 있는 ‘정신보건 심판위원회’에서 결정하는데 이 위원회는 3백명 정도의 인력이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위원회를 통해 연간 3천건 정도의 심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심리에는 환자, 변호사, 의료팀, 보호자나 가족 등 모든 관계자가 참여한다”고 말했다.

그는 스코틀랜드 정부가 이같은 심판위원회에 쏟아붓는 한 해 예산만 1백80억원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정신 질환 환자들의 인권과 권리를 위해 그만큼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된다는 이야기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환자 본인의 동의도 없이 가족 동의만으로 손쉽게 정신 병원에 수용되는 것이 관례다. 동시에 퇴원조차 환자의 상태나 의지에 따라서 하기보다는 의사나 가족 의 의견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인권위 관계자는 “스코틀랜드의 ‘정신보건 심판위원회’처럼 국내에도 ‘정신보건 심판위원회’가 전국 16개 광역 시도에 존재하긴 하나, 해당 위원회가 1년에 퇴원하는 승인률은 고작 2.2%(2002년 기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정신 병원이나 수용시설이 밀집돼 있는 부산, 경남의 경우 1년에 1만명 이상의 환자들이 위원회 조사관으로부터 심판을 받게되는데, 조사관이 해당 환자를 많게는 한 달 1천명이상 면담하기 때문에 대개 서류위주의 형식적 심사로 전락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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