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막장'으로 내몰리는 택시노동자
[폭발직전의 대한민국] <4> 저임금, 장시간 노동...빈차 행렬만 늘어
2004년 5월 7일, 서울 정오교통 택시노동자 조경식씨(당시 44세)가 자신의 몸에 신나를 끼얹고 불을 붙였다. 그가 분신 직전 외친 두 마디는 ‘노동탄압 중단하라’와 ‘부가세를 지급하라’였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6년, 택시노동자들은 여전히 지입제.도급제.1인1차제.사납금 제도를 악용하는 사용자, 이를 방치하는 지자체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 1980년대 시작된 사납금 투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택시노동자들에게 불완전하게나마 일정 급여를 보장해줬던 전액관리제는 사용자의 도입 거부로 사문화될 위기에 놓여있다.
택시만 몰아도 집 한 칸 장만과 자식들 교육이 수월하게 이뤄졌던 90년대 초반의 호황은 이제 ‘도시가 성장 할수록 택시노동자 직군의 장벽은 턱없이 낮아진다’는 세간의 평가를 감내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연 3천7백 시간의 살인적인 노동량, 월 1백만원의 박봉, 연 이직률 50%. 2006년 현재 택시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보여주는 수치들이다.
택시노동자들 “택시노동자 착취구조, 서울시 방임과 사용자 횡포로 심화”
한국자활기관후견기관협회가 자활사업 10주년을 맞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일하는 우리가 희망입니다’라는 행사 준비에 한창이던 24일 오전 10시 일군의 택시노동자들이 준비해 온 책상과 의자, 스피커를 꺼내놓고 분주히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민주택시노조) 소속 지도부 10여명은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의 서울시 국정감사 일정에 맞춰 이날 서울시 소재 택시회사들의 사납금 인상과 도급제 및 1인1차제, 부가가치세 경감세액 부당 사용 등 불법경영실태와 택시노동자들의 참혹한 실태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오후 4시에는 서울시의회 앞에서 1백여명의 서울지역본부 택시노동자들이 모여 서울시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택시회사들의 1만여대 도급택시 운영, 사납금 인상, 부가세 경감분 착복행위가 여전하다”며 “택시노동자에 대한 회사의 착취구조가 단속기관인 서울시의 방임과 사용자 위주의 택시정책으로 인해 심화되고 있다”고 서울시를 맹성토했다.
특히 “최근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택시정책이 그동안 택시노동자들이 촉구했던 요구안과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며 “서울시의 정책은 여타 지방자치단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서울시의 일반택시 종사자와 택시운전자격 취득자는 6대도시를 모두 합한 수와 맞먹고 택시노동자들의 처우개선 투쟁 또한 서울시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택시기사들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폭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개인택시를 제외한 법인택시 노동자들은 2백56개의 택시법인이 성업 중인 서울시의 경우, 전택노련 소속 20여개의 회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액사납금제를 채택하고 있다.
노동시간을 늘려도 월급은 제자리, 사납금 제도
사납금의 사전적 의미는 ‘회사에 바치는 돈’이다. 말 그대로 사납금 제도는 1일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회사에 납부해야 할 최소한의 그날 영업수익이다.
가령, 택시기사 김씨가 하루 영업이익으로 회사가 정해진 사납금액(평균 9만원)을 한달간 채우지 못하면 김씨는 그달 월급으로 50만원 내외에서 형성된 기본급여 외에는 가져가지 못한다. 그나마 부족한 사납금액을 자비로 채우고 나면 김씨의 급여는 그만큼 더 줄어든다.
철저히 영업 이익에 따른 인센티브제가 도입되는 셈이다. 이처럼 일일 입금액이 고정되어 있는 급여제도는 택시 노동자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수입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택시노동자들은 정해진 금액을 채워야하고 무리해서라도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납금제도를 운영하는 택시회사에서 일하는 한 택시노동자는 “요즘 ‘당신들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사납금을 맞추는지 신기하다’는 개인택시 기자들의 말을 자주 듣는다”며 “단 하루만 만근을 채우지 못해도 어마어마한 금액이 삭감되고 명절에 차례마저 지낼 수 없는 비인권적인 근로환경”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택시노동자는 “택시 운전대를 잡고 회사를 나서는 순간부터 오늘 벌어야 할 사납금을 걱정한다”며 “법정 근로 시간내에 9만원이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리한 운행, 연장근로까지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전형적인 사용자와 노동자의 착취 구조를 깨기 위해 택시 노동자들은 수년간 정부와 회사를 상대로 싸웠고 1994년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운수사업법) 개정, 1997년 전액관리제 전면 시행, 2000년 전액관리제 처벌 기준 강화 입법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 법안에 따라 수십년간 택시노동자를 옥죄던 사납금 제도 시행은 불법이 됐다. 전액관리제는 사용자가 정한 최소한의 입금이 아닌 전액을 납부하고 전체 수입에서 일정 월급을 가져오는 제도. 일정한 급여를 지급받는 월급제 임금체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액관리제를 도입한 회사는 10% 안팎에 그치고 있다.
사업주들이 급여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고정적인 전액관리제보다 수입을 가감하는 방식으로 노동자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사납금제도를 불법적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90%에 달하는 택시사업주들이 위법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두 급여 체계의 차이는 임금구조의 양극화를 통해 극명하게 대비된다. 대부분 전액관리제를 도입하고 있는 민주택시 서울본부는 사납금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전택노련)보다 50여만원(운송수입금 2백60만원 기준)이 많다. 그나마 이들의 평균 임금은 1백만원 안팎에서 결정된다.
기우석 민주택시노조 정책기획국장은 “택시노동자들은 대부분 장기노동자가 없어 1년 미만 노동자가 40%에 달한다”며 “열악한 노동환경과 개선되지 않는 불법적인 임금체계로 유독 노동자의 이직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97년 전액관리제 전면 시행, 2006년 현재 서울시 10% 그쳐
그러나 건교부와 서울시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사업주들에 대한 실태 파악에서조차 혼선을 빚고 있다.
최근 서울시가 건설교통부에 보고한 ‘택시운영실태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6월 30일 기준으로 전액관리제를 시행하는 업체는 2백50개 사업장에 달하고 미시행 업체는 6개 업체에 불과했다.
그러나 민주택시노조와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시의 2백56개 사업장 중 전액관리제를 시행하는 업체는 20여개에 머물고, 2백30여개 업체는 여전히 사납금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시 교통국 운수물류과 택시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전택노련 소속 20여개사를 제외하고 2백30여개의 사업장에서 사납금제도가 유지되고 있다”고 확인해 줬다. 서울시의 중앙정부 보고자료와 실무 관계자의 증언이 정반대로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운송사업자 명의의 회사차량을 운행하되 사납금을 제외하고 일정한 고정급 없이 초과 이익 전액을 운전자 개인수입’으로 하는 도급제, ‘자신의 차를 제공하는 대신 사업면허를 제공받아 일정 수입을 회사에 납부하는’ 지입제, ‘24시간 동안 정해진 사납금을 채워야하는’ 1인1차제 등 현행법으로 금지되어있는 불법 영업 형태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민주택시노조는 서울시 법인택시 2만3천여대 중 1만여대가 도급제를 비롯한 불법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 도급택시는 대부분 소득으로 집계되지 않아 사용자에게 차량 1대당 2백만원의 막대한 부당이익을 안겨주고 있다.
건교부.서울시 단속책임 서로 회피 급급
현재 도급제는 건설교통부의 훈령과 시행령으로, 사납금 제도와 지입제, 1인1차제는 운수사업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되어있지만 건설교통부와 서울시 등 지방정부의 단속은 미흡하다 못해 흉내만 내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소속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이 건설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도급제 및 전액관리제 적발 및 행정처분 현황’에 따르면 서울시가 올해 6월까지 도급제 위반에 대해 단속한 건수는 34건, 행정처분 건수는 33건에 그쳤다. 전국을 통틀어도 단속 52건, 처분 39건이었다.
전액관리제 적발 및 행정처분 현황은 올해 6월 기준으로 단속 19건(전국 55건), 처분 23건(서울 1백20건)이었다.
전체 법인택시의 90%가 전액관리제를 시행하지 않고 도급 및 불법영업 택시가 1만대에 달한다는 노동계의 주장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조치다. 그나마 건설교통부의 훈령에는 지휘감독을 강화하도록 되어있지만 처벌규정이 따로 마련되어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건교부와 서울시는 도급택시에 대한 통계에 대해 “정확한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며 정확한 실태조사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행법상 도급제는 명확한 법적금지 사항이 아니고 시도 사업개선명령를 할 수 있을 뿐”이라며 “건교부의 처벌 기준을 강화하지 않는 한 도급택시 단속에는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다.
결국 해결방안은 건교부의 법제도 개선과 지방정부 단속 강화
결국 해결방안은 이번 국감에서 이낙연 의원과 이영순 의원이 입을 모아 강조했던 건교부의 위반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제도적 개선과 이를 통한 서울시의 실질적인 단속 강화에 있다.
이와 관련 이영순 의원은 13일 건설교통부 국정감사에서 “건교부가 이러한 택시 불법도급운영에 대해 단속과 처벌을 강화해야하지만 현재상황은 오히려 택시업체들의 불법 도급운영을 방치, 확산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낙연 민주당 의원은 23일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중앙정부의 법제도 개선과 별도로 지방정부의 단속 의지가 뒤따라야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서울시는 택시발전 방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또 12월 마무리를 목표로 연구용역을 주고 택시정책시민협의회를 통해 택시정책 개선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노조가 입수한 서울시의 연구용역 보고서는 택시노동자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현행 법률의 수입금전액관리제 폐지와 사납금제 자율화 ▲일당도급제를 리스제로 제도화 하는 조항을 포함시켜 노동자들이 수십년간 요구해왔던 요구안에서 대폭 후퇴했거나 독소적인 조항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택시 “법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정책개선은 실효성 없어”
민주택시노조는 “택시의 수급불균형과 경쟁력 상실, 사납금 부담.도급제.1인1차제 증가가 운전자 과로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미 교통사고율이 50%를 넘어 사회적 흉기로 전락했는데도 서울시는 무책임한 택시행정을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연구용역 보고서는 민관의 다양한 의견을 검토하는 수준”이라고 해명하며 “12월까지 노사, 민간 위원과의 논의를 통해 최종 결정하게 될것:이라고 밝혔다. 또 서울시 관계자는 택시운수업체 경쟁력 제고 방안으로 업무택시, 택시카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우석 정책기획국장은 “법으로 명시된 전액관리제도 조차 지키지 않는 정부.지방자치단체가 새로운 정책을 만든다고 해서 사용자들의 불법영업행위가 그치는 것이 아니다”라며 “선심성 정책보다 법제도 개선을 통해 처벌 기준을 강화해 지자체의 단속을 강제해야한다”고 반박했다.
한편으로는 지방자치단체와 택시회사간의 유착의 고리를 끊어야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9월, 서울시 교통국 6급 공무원이 도급택시 운영 사업주에게 4천여만원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아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서울시의회 앞에서 만난 15년 경력의 택시노동자 서강봉씨(52)는 “우리가 아무리 투쟁을 해도 건교부와 서울시는 철옹성”이라며 “건교부 서기관이 퇴임 후 택시회사의 요직에 앉는 경우도 있고 알게 모르게 업체와 공무원이 유착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택시노동자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민주택시는 11월 총파업과 차량시위 등 전면적인 대정부 투쟁을 경고하고 있다. 구수영 위원장은 “택시노동자가 생존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열악한 처지에 놓여있는데도 사용자들은 불법에 불법을 더해 수천억원의 이득을 가져가고 정부와 서울시는 이를 방치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들의 무능력을 강력한 투쟁을 통해 바로잡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980년대 택시노동자의 투쟁을 시작으로 26년간 20여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사납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부담으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택시노동자들의 삶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다. 2002년 67만원이던 월 평균 임금은 2005년 72만원으로 5만원이 늘었을 뿐이고 사납금 부담은 지난 해보다 두 배가 가중됐다.
누군가는 그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택시노동자들의 핵심 요구안을 담고 있는 운수교통법 개정안(이호웅 전 열린우리당 의원 대표발의)은 2004년 상정된 이후 2년째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우선은 건설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국회의 몫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6년, 택시노동자들은 여전히 지입제.도급제.1인1차제.사납금 제도를 악용하는 사용자, 이를 방치하는 지자체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 1980년대 시작된 사납금 투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택시노동자들에게 불완전하게나마 일정 급여를 보장해줬던 전액관리제는 사용자의 도입 거부로 사문화될 위기에 놓여있다.
택시만 몰아도 집 한 칸 장만과 자식들 교육이 수월하게 이뤄졌던 90년대 초반의 호황은 이제 ‘도시가 성장 할수록 택시노동자 직군의 장벽은 턱없이 낮아진다’는 세간의 평가를 감내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연 3천7백 시간의 살인적인 노동량, 월 1백만원의 박봉, 연 이직률 50%. 2006년 현재 택시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보여주는 수치들이다.
택시노동자들 “택시노동자 착취구조, 서울시 방임과 사용자 횡포로 심화”
한국자활기관후견기관협회가 자활사업 10주년을 맞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일하는 우리가 희망입니다’라는 행사 준비에 한창이던 24일 오전 10시 일군의 택시노동자들이 준비해 온 책상과 의자, 스피커를 꺼내놓고 분주히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민주택시노조) 소속 지도부 10여명은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의 서울시 국정감사 일정에 맞춰 이날 서울시 소재 택시회사들의 사납금 인상과 도급제 및 1인1차제, 부가가치세 경감세액 부당 사용 등 불법경영실태와 택시노동자들의 참혹한 실태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오후 4시에는 서울시의회 앞에서 1백여명의 서울지역본부 택시노동자들이 모여 서울시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택시회사들의 1만여대 도급택시 운영, 사납금 인상, 부가세 경감분 착복행위가 여전하다”며 “택시노동자에 대한 회사의 착취구조가 단속기관인 서울시의 방임과 사용자 위주의 택시정책으로 인해 심화되고 있다”고 서울시를 맹성토했다.
특히 “최근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택시정책이 그동안 택시노동자들이 촉구했던 요구안과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며 “서울시의 정책은 여타 지방자치단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서울시의 일반택시 종사자와 택시운전자격 취득자는 6대도시를 모두 합한 수와 맞먹고 택시노동자들의 처우개선 투쟁 또한 서울시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택시기사들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폭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개인택시를 제외한 법인택시 노동자들은 2백56개의 택시법인이 성업 중인 서울시의 경우, 전택노련 소속 20여개의 회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액사납금제를 채택하고 있다.
노동시간을 늘려도 월급은 제자리, 사납금 제도
사납금의 사전적 의미는 ‘회사에 바치는 돈’이다. 말 그대로 사납금 제도는 1일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회사에 납부해야 할 최소한의 그날 영업수익이다.
가령, 택시기사 김씨가 하루 영업이익으로 회사가 정해진 사납금액(평균 9만원)을 한달간 채우지 못하면 김씨는 그달 월급으로 50만원 내외에서 형성된 기본급여 외에는 가져가지 못한다. 그나마 부족한 사납금액을 자비로 채우고 나면 김씨의 급여는 그만큼 더 줄어든다.
철저히 영업 이익에 따른 인센티브제가 도입되는 셈이다. 이처럼 일일 입금액이 고정되어 있는 급여제도는 택시 노동자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수입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택시노동자들은 정해진 금액을 채워야하고 무리해서라도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납금제도를 운영하는 택시회사에서 일하는 한 택시노동자는 “요즘 ‘당신들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사납금을 맞추는지 신기하다’는 개인택시 기자들의 말을 자주 듣는다”며 “단 하루만 만근을 채우지 못해도 어마어마한 금액이 삭감되고 명절에 차례마저 지낼 수 없는 비인권적인 근로환경”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택시노동자는 “택시 운전대를 잡고 회사를 나서는 순간부터 오늘 벌어야 할 사납금을 걱정한다”며 “법정 근로 시간내에 9만원이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리한 운행, 연장근로까지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전형적인 사용자와 노동자의 착취 구조를 깨기 위해 택시 노동자들은 수년간 정부와 회사를 상대로 싸웠고 1994년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운수사업법) 개정, 1997년 전액관리제 전면 시행, 2000년 전액관리제 처벌 기준 강화 입법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 법안에 따라 수십년간 택시노동자를 옥죄던 사납금 제도 시행은 불법이 됐다. 전액관리제는 사용자가 정한 최소한의 입금이 아닌 전액을 납부하고 전체 수입에서 일정 월급을 가져오는 제도. 일정한 급여를 지급받는 월급제 임금체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액관리제를 도입한 회사는 10% 안팎에 그치고 있다.
사업주들이 급여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고정적인 전액관리제보다 수입을 가감하는 방식으로 노동자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사납금제도를 불법적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90%에 달하는 택시사업주들이 위법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두 급여 체계의 차이는 임금구조의 양극화를 통해 극명하게 대비된다. 대부분 전액관리제를 도입하고 있는 민주택시 서울본부는 사납금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전택노련)보다 50여만원(운송수입금 2백60만원 기준)이 많다. 그나마 이들의 평균 임금은 1백만원 안팎에서 결정된다.
기우석 민주택시노조 정책기획국장은 “택시노동자들은 대부분 장기노동자가 없어 1년 미만 노동자가 40%에 달한다”며 “열악한 노동환경과 개선되지 않는 불법적인 임금체계로 유독 노동자의 이직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97년 전액관리제 전면 시행, 2006년 현재 서울시 10% 그쳐
그러나 건교부와 서울시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사업주들에 대한 실태 파악에서조차 혼선을 빚고 있다.
최근 서울시가 건설교통부에 보고한 ‘택시운영실태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6월 30일 기준으로 전액관리제를 시행하는 업체는 2백50개 사업장에 달하고 미시행 업체는 6개 업체에 불과했다.
그러나 민주택시노조와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시의 2백56개 사업장 중 전액관리제를 시행하는 업체는 20여개에 머물고, 2백30여개 업체는 여전히 사납금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시 교통국 운수물류과 택시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전택노련 소속 20여개사를 제외하고 2백30여개의 사업장에서 사납금제도가 유지되고 있다”고 확인해 줬다. 서울시의 중앙정부 보고자료와 실무 관계자의 증언이 정반대로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운송사업자 명의의 회사차량을 운행하되 사납금을 제외하고 일정한 고정급 없이 초과 이익 전액을 운전자 개인수입’으로 하는 도급제, ‘자신의 차를 제공하는 대신 사업면허를 제공받아 일정 수입을 회사에 납부하는’ 지입제, ‘24시간 동안 정해진 사납금을 채워야하는’ 1인1차제 등 현행법으로 금지되어있는 불법 영업 형태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민주택시노조는 서울시 법인택시 2만3천여대 중 1만여대가 도급제를 비롯한 불법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 도급택시는 대부분 소득으로 집계되지 않아 사용자에게 차량 1대당 2백만원의 막대한 부당이익을 안겨주고 있다.
건교부.서울시 단속책임 서로 회피 급급
현재 도급제는 건설교통부의 훈령과 시행령으로, 사납금 제도와 지입제, 1인1차제는 운수사업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되어있지만 건설교통부와 서울시 등 지방정부의 단속은 미흡하다 못해 흉내만 내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소속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이 건설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도급제 및 전액관리제 적발 및 행정처분 현황’에 따르면 서울시가 올해 6월까지 도급제 위반에 대해 단속한 건수는 34건, 행정처분 건수는 33건에 그쳤다. 전국을 통틀어도 단속 52건, 처분 39건이었다.
전액관리제 적발 및 행정처분 현황은 올해 6월 기준으로 단속 19건(전국 55건), 처분 23건(서울 1백20건)이었다.
전체 법인택시의 90%가 전액관리제를 시행하지 않고 도급 및 불법영업 택시가 1만대에 달한다는 노동계의 주장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조치다. 그나마 건설교통부의 훈령에는 지휘감독을 강화하도록 되어있지만 처벌규정이 따로 마련되어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건교부와 서울시는 도급택시에 대한 통계에 대해 “정확한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며 정확한 실태조사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행법상 도급제는 명확한 법적금지 사항이 아니고 시도 사업개선명령를 할 수 있을 뿐”이라며 “건교부의 처벌 기준을 강화하지 않는 한 도급택시 단속에는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다.
결국 해결방안은 건교부의 법제도 개선과 지방정부 단속 강화
결국 해결방안은 이번 국감에서 이낙연 의원과 이영순 의원이 입을 모아 강조했던 건교부의 위반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제도적 개선과 이를 통한 서울시의 실질적인 단속 강화에 있다.
이와 관련 이영순 의원은 13일 건설교통부 국정감사에서 “건교부가 이러한 택시 불법도급운영에 대해 단속과 처벌을 강화해야하지만 현재상황은 오히려 택시업체들의 불법 도급운영을 방치, 확산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낙연 민주당 의원은 23일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중앙정부의 법제도 개선과 별도로 지방정부의 단속 의지가 뒤따라야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서울시는 택시발전 방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또 12월 마무리를 목표로 연구용역을 주고 택시정책시민협의회를 통해 택시정책 개선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노조가 입수한 서울시의 연구용역 보고서는 택시노동자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현행 법률의 수입금전액관리제 폐지와 사납금제 자율화 ▲일당도급제를 리스제로 제도화 하는 조항을 포함시켜 노동자들이 수십년간 요구해왔던 요구안에서 대폭 후퇴했거나 독소적인 조항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택시 “법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정책개선은 실효성 없어”
민주택시노조는 “택시의 수급불균형과 경쟁력 상실, 사납금 부담.도급제.1인1차제 증가가 운전자 과로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미 교통사고율이 50%를 넘어 사회적 흉기로 전락했는데도 서울시는 무책임한 택시행정을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연구용역 보고서는 민관의 다양한 의견을 검토하는 수준”이라고 해명하며 “12월까지 노사, 민간 위원과의 논의를 통해 최종 결정하게 될것:이라고 밝혔다. 또 서울시 관계자는 택시운수업체 경쟁력 제고 방안으로 업무택시, 택시카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우석 정책기획국장은 “법으로 명시된 전액관리제도 조차 지키지 않는 정부.지방자치단체가 새로운 정책을 만든다고 해서 사용자들의 불법영업행위가 그치는 것이 아니다”라며 “선심성 정책보다 법제도 개선을 통해 처벌 기준을 강화해 지자체의 단속을 강제해야한다”고 반박했다.
한편으로는 지방자치단체와 택시회사간의 유착의 고리를 끊어야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9월, 서울시 교통국 6급 공무원이 도급택시 운영 사업주에게 4천여만원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아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서울시의회 앞에서 만난 15년 경력의 택시노동자 서강봉씨(52)는 “우리가 아무리 투쟁을 해도 건교부와 서울시는 철옹성”이라며 “건교부 서기관이 퇴임 후 택시회사의 요직에 앉는 경우도 있고 알게 모르게 업체와 공무원이 유착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택시노동자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민주택시는 11월 총파업과 차량시위 등 전면적인 대정부 투쟁을 경고하고 있다. 구수영 위원장은 “택시노동자가 생존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열악한 처지에 놓여있는데도 사용자들은 불법에 불법을 더해 수천억원의 이득을 가져가고 정부와 서울시는 이를 방치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들의 무능력을 강력한 투쟁을 통해 바로잡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980년대 택시노동자의 투쟁을 시작으로 26년간 20여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사납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부담으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택시노동자들의 삶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다. 2002년 67만원이던 월 평균 임금은 2005년 72만원으로 5만원이 늘었을 뿐이고 사납금 부담은 지난 해보다 두 배가 가중됐다.
누군가는 그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택시노동자들의 핵심 요구안을 담고 있는 운수교통법 개정안(이호웅 전 열린우리당 의원 대표발의)은 2004년 상정된 이후 2년째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우선은 건설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국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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