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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칼'에 계약해지, 서러운 특수고용노동자

삼성 에스원, 경찰청 유권해석 하나로 영업전문직 무더기 계약해지

현행 노동법 어디에도 ‘특수고용노동자’라는 규정은 없다. 이들은 말 그대로 특수한 고용 형태 아래서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법적으로는 고용관계가 아닌 대등한 계약관계를 맺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경제적 종속관계에 놓여있는 이들.

90년대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직고용의 부담을 덜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존의 정규직 업무를 자사업무에서 떼어내고 도급의 형태로 만들어낸 직종이 이른바 특수고용노동자들이다.

최근 정부는 노동계의 숙원 중 하나인 특수고용노동자를 노동법이 아닌 공정거래법을 통해 보호하는 것을 골자로 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오는 25일 발표할 예정이다.

대책에 포함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직군은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레미콘 기사 등 4개 업종에 불과하다. 6년째 정부와 재계가 노동계를 배제하고 더디게 논의한 결과였다.

6년 걸린 특수고용보호대책, 보호는 극히 일부

그러나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회 곳곳에서 특수고용직종을 만들어냈고 노동계가 파악하는 직종만 13개에 달한다. 정부의 보호대책은 이들 직종 대부분을 또 다시 ‘사업형 노동자’라는 틀에 가뒀다.

삼성에스원은 최근 경비업체의 영업전문직 1천7백여명(회사 측 5백60명)에 대한 대규모 계약해지를 강해해 노동계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사진은 19일 삼성본관 앞에서 열린 삼성 에스원 규탄 기자회견.ⓒ최병성 기자


경비회사 삼성에스원에서 영업전문직으로 일하던 김대성씨(35)도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고 회사와 일대일 계약을 맺은 ‘사업형 노동자’다. 90년대 말 경비회사 캡스가 도입한 이 직군 역시 2003년 이후 활성화된 신종 특수고용직군이다.

지난 8월 9일, 아내와 두 딸을 둔 가장으로 삼성에스원에서 정규직, 영업전문직으로 10년 가까이 일했던 김씨는 회사로부터 내용증명 한 통을 받았다.

기계경비업법에 대한 경찰청의 유권해석에 따라 더 이상 김씨와의 계약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귀하의 업무 파트너로서 당사 발전에 여러 가지 노력을 아끼지 않으신 귀하께 감사 드립니다’로 시작되는 내용증명서는 ‘다시 한번 귀하의 노고에 감사 드리며, 계약종료에 대해 유감의 뜻을 전하는 바입니다’로 간단히 끝을 맺는다.

일자리 잃은 세콤영업직 “우리가 노동자 아니라는 사실 이제야 알았다”

내용은 간단하지 않았다. 삼성에스원은 지난 7월 19일 서울 남대문경찰서로부터 영업전문직 계약이 경비업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계경비업법 관련 질의회시’ 공문을 받는다.

공문에서 경찰 측은 ‘익명의 개인’으로부터는 질의를 받고 “기계경비시스템을 설치하도록 권유.주선하는 딜러 업무는 기계경비업무의 일부에 해당하며 기계경비업무의 일부를 떼어내 하도급하는 것은 경비업법상 불가능하다”는 내용의 질의회시를 업체에 내려보냈다.

현행 경비업법상 경비업체가 관할 감독기관의 행정지도를 거부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삼성에스원은 공문을 접수하고 법률자문을 받은 후에 영업전문직 560명(노동자연대 추산 1천7백여명)에게 일괄적으로 계약해지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영업전문직 노동자들에게 내용증명 외에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

노동자연대 “감시와 미행”, 삼성에스원 “지나친 과장, 명예훼손 소송”

길게는 4년 가까이 일해 온 일터를 잃어버리는데는 ‘누군지 신원을 확인해주지 않는 개인’의 질의와 이에 대한 경찰청의 자의적 유권해석, 그리고 고분고분 이를 받아들인 삼성에스원의 발빠른 계약해지면 충분했다.

삼성그룹 계열사 삼성에스원은 경비업 분야 점유율이 50%에 달하는 업계 1위 기업. 이번 계약해지와 관련해서도 캡스,KT텔레캅 등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최병성 기자


김씨를 비롯한 23명의 ‘전국 삼성에스원 영업전문직 노동자연대(노동자연대)’ 소속 회원들은 한 동안 자신들이 왜 계약해지를 당해야했는지도 모른 채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다.

김씨는 “이번 계약해지 사태 전까지 비록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아 일해 왔지만 내가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며 “경찰청의 자의적인 유권해석 하나로 1천7백여명의 노동자를 부당하게 해지한 것”이라고 분개했다.

이들을 더 분노하게 만든 것은 이후 삼성에스원 측이 보여준 태도. 노동자연대에 따르면 사측은 처음에 계약해지를 할 때는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다가 이들이 조직적인 투쟁을 준비하자 온갖 회유책을 동원했다.

연대측은 “수많은 감시와 미행이 이뤄졌고 조합원의 부인만 혼자 있는 집에 무단 침입해 몇 시간씩 머물다 가고 조합원들의 개인정부를 수집해 인신공역을 일삼았다”며 “말로만 듣던 삼성공화국을 실감하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법 때문에 불가피했다는 삼성에스원, 경쟁업체는 고용보장대책 마련 중

이에 대해 삼성에스원 측은 ‘경찰청의 유권해석에 따른 적법한 계약해지’였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배홍건 삼성에스원 홍보과장은 “부당해고가 아니라 계약해지였고 현행법상 적법한 틀안에서 진행됐다”고 강조했다.

배 과장은 노동자연대가 주장하는 ‘감시와 미행’과 관련해서도 “협상을 하기 위해 만나려고 한 것을 그쪽에서 과장한 것”이라며 “이와 관련해서는 명예훼손 혐의로 소송을 진행 중에 있다”고 말했다.

'전국 삼성에스원 영업전문직 노동자연대' 소속 23명의 노동자들은 사측의 계약해지에 맞서 민.형사 소송과 1인시위, 항의집회 등으로 맞서고 있다.ⓒ최병성 기자


그러나 경비업 분야 1위 삼성에스원의 ‘불가피한 계약해지’는 타 경쟁업체들의 발 빠른 대응전략에 따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90년대 후반, 업계에서 최초로 영업전문직을 도입한 ‘캡스’와 영업전문직의 실적이 정규직의 절반에 달하는 ‘KT텔레캅’은 공문이 내려 온 7월부터 전담팀을 구성하고 영업전문직 직원들과 대화에 나섰다.

경찰청의 질의회시에 따라 계약해지는 불가피했지만 해지에 앞서 직원들과 향후 대안을 함께 고민한 케이스다.

배경호 캡스 홍보팀장은 “우리는 공문을 받은 후 바로 전담팀을 구성해 개인별로 직원 면담을 가졌고 일단 정직원은 힘들지만 계약직으로 일을 할 별도의 새로운 영업팀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오재록 KT텔레캅 홍보차장도 “일단 유권해석을 받았기 때문에 이를 어기기는 힘들다”면서도 “우선 계약직으로 영업전문직을 전환시킨 뒤 실적에 따라 정규직으로 채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두 업체 모두, 계약직 전환이나 정규직 채용의 규모에 대해서는 아직 ‘검토중’이라고 답해 향후 삼성에스원과 마찬가지로 직장을 잃게되는 노동자가 생겨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삼성에스원은 “정규직 채용 계획은 없으며 그분들이 원할 경우에는 계약직 채용도 고려할 수 있다”면서도 “우선 그분들이 1인 시위, 집회를 멈추지 않는 한 명예훼손 소송을 진행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찰청 유권해석은 무조건 적법? 애초 잘못된 계약 책임은 누가 지나”

이에 맞서 노동자들도 “경찰청의 유권해석은 현행 경비업법에 대한 지나친 자의적 해석”이라며 법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와 관련 노동자연대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남송 김용환 변호사는 “서울남대문경찰서의 해석은 경비업법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기인한 것으로 법리적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신규고객의 발굴, 계약체결, 대금 청구 등 영업전문직의 업무는 기계경비업무 본연의 활동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찰청의 잘못된 법률 해석을 바탕으로 내려진 삼성에스원의 계약해지 또한 ‘법률상.계약상 근거가 없는’ 부적법 행위라는 것이 김 변호사의 주장이다.

노동자연대는 이 같은 내용의 이의제기 문건을 지난 8월 29일 에스원에 보냈고 현재 민.형사상 법적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권 보장 없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일”

이들이 법정으로 공방을 끌고간다고 해도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대법원 판례는 단 한번도 특수고용노동자의 편에 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수년전부터 노조를 설립하고 단체교섭을 진행해 온 학습지노조에게 대법원이 ‘일반사업자로서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없다’고 한 판례는 이들에게도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설령 경비업법에 대한 경찰 측의 유권해석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밝혀내 이들이 재계약을 한다 해도 삼성에스원은 이후 계약기간 만료 시점에 이들과의 계약을 자유롭게 해지할 수 있다.

민주노총 법률원 권두섭 변호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결국 삼성에스원의 고용형태는 직접고용을 회피하고 노동자를 사업자로 위장해 고용하는 특수고용직의 남용”이라며 “삼성에스원이 직접고용을 통해 영업전문직 직원들의 고용을 보장해주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사태가 위장 사업자로 일하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 문제로 직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권 변호사는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들은 보수적인 대법원의 판례와 기업들의 악용으로 피해받는 특수고용직에 대한 노동자 개념을 수정.보완할 때만 해결이 가능하다”며 “대기업의 횡포를 보장하는 수준의 최근 정부대책을 수정해야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가 내놓은 특수고용직 보호방안은 골프장 경기보조원.학습지 교사.레미콘 기사.보험설계원 4개 직종만을 대책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마저도 노동권 보장은 중장기 과제로 빠져있고 이들을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약관법 적용을 통해 업체간 ‘불공정 거래 행위’로 보호하려 하고 있다. 여전히 이들은 현행법상 노동자의 지위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법적인 개념으로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며 “ 때문에 법적 모델이 노동권 보호를 분명히 명시하거나 전향적인 법원 판결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정착시켜야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자연대의 요구안. 그러나 삼성에스원은 이들 노동자를 대상으로 명예훼손과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최병성 기자


삼성에스원 노동자연대 “우리는 노동자다”

삼성에스원 노동자연대 소속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두 가지다. 우선 삼성에스원 측이 영업전문직 노동자에 대한 계약회복을 통한 고용보장에 나서야한다는 것.

이후 경찰청의 유권해석의 법률적 타당성을 떠나 향후 고용보장이 가능한 업무형태로 영업업무를 계속할 수 있게 제도적인 틀을 다시 짜야한다는 것이 노동자연대의 주된 요구다.

이밖에도 그동안 노동자연대를 회유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감시와 미행, 탄압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에스원 측은 노동자연대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소송과 ‘근로자’를 연상시킬 수 있는 용어를 금지토록 하는 가처분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노동자연대는 “우리가 현행법의 보호를 못 받는 신분이라 해도 갑작스러운 계약해지의 명분은 될 수 없다”며 “삼성 에스원은 범법자로 내몰린 영업전문직 노동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킬 때까지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9월 4일부터 삼성 본관, 삼성 에스원 본사, 경찰청, 한국방송공사, 문화방송 사옥,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오고 있다. 지난 10월 19일에는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 본관 맞은편에서 첫 번째 항의집회와 기자회견을 열었고 이들의 싸움에는 민주노총 경기본보, 민주노동당, 다산인권센터 등 노동사회단체들이 연대하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서대문 경찰청 국감장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노동자연대 소속 노동자.ⓒ최병성 기자
최병성 기자

댓글이 1 개 있습니다.

  • 16 5
    혈사로야

    인간과 짐승의차이
    기자님 여기저기 전화다해보셨네요 고생하셨습니다.
    타사의 통화내용만 봐도 누가 잘못인지 확연히 들어 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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