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천여명의 수도권 학생들을 병원으로 실어간 사상 최악의 단체급식 식중독 사고와 관련, 보건복지부와 식약청이 노로바이러스의 감염원을 A식품업체의 ‘중국산 깻잎’으로 결론짓고도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이를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이같은 의혹이 사실일 경우 중국의 '동북공정' 등에 대해 미온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정부의 '대중국 저자세 외교' 논란이 더욱 증폭될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과정에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회에서 위증을 했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돼 일파만파의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고경화 "정부, 집단식중독 원인 알고도 은폐"
고경화 한나라당 의원(45)은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그동안 조사결과를 밝히며 이같은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이같은 사실은 같은 날 밤 KBS스페셜 '2006 식탁안전 프로젝트' 5편 공개되지 않은 보고서 - 바이러스, 학교 급식을 덮치다'을 통해서도 보도됐다.
고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6월 대규모 학교집단식중독 사고의 감염원을 밝혀내지 못해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던 사실과는 달리, 이미 그 전부터 보건당국은 노로바이러스의 감염원을 A식품업체의 ‘중국산 깻잎’으로 결론지었던 것으로 확인되어 정부가 이를 은폐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 의원은 이어 "식약청은 식중독 사고가 벌어진 후 22일이 지난 후에 수거한 엉뚱한 중국산 깻잎을 수거해서 검사를 하고서는 노로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를 했으며, 근본적 원인인 중국공장에 대해 현지조사조차 실시하지 않고 남아있던 깻잎은 폐기하도록 조치한 사실도 드러났다"고 폭로했다.
정부는 지난 8.8일 집단식중독 사고의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특정 식재료에서 식중독 매개의 통계학적 연관성이 추정되었으나, 역학자료 수집의 한계와 특정 식재료에서 노로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아 인과관계를 확인하지 못함”이라고 밝혔다.
고 의원은 그러나 "이같이 국민들에게 알려진 사실과 달리 질병관리본부는 이미 발표 2주 전에 이미 식중독 사고의 감염원은 A모 업체의 중국산 양념 깻잎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음이 밝혀졌다"며, 자신이 입수한 질병관리본부의 대외비 자료를 인용해 상세한 과정을 공개했다.
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기 2주 전인 지난 7월26일 질병관리본부가 대외주의 문서로 작성한 ‘수도권 집단식중독 역학조사 결과보고’에 따르면,식중독이 발생한 32개 급식소에 모두 공통적으로 문제의 ‘중국산 깻잎’이 공급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식중독이 발생한 모든 급식소에서 중국산 깻잎을 섭취한 후 2일 이내 설사가 발생했으며, 식단 조사에 응한 18개 학교 모두 공통적으로 납품된 식품은 문제의 중국산 깻잎밖에 없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 역시 “이 역학조사 결과만으로 충분히 이 중국산 깻잎이 감염원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으며, 이 업체에 대해 행정처분도 내릴 방침”이라고 시인하고 있다고 고 의원은 주장했다.
지난 6월 식중독 원인 은폐 의혹이 제기된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연합뉴스
사고 22일 후 엉뚱한 깻잎 수거해 검사하고 “바이러스 불검출” 발표
고 의원은 또 정부가 처음에는 노로바이러스 검사 방법이 없다고 거짓주장하다가 전문가들의 의혹 제기에 밀려 마지못해 검사를 했으며, 이 또한 '엉뚱한 깻잎'으로 조사를 실시해 은폐 의혹을 한층 짙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 의원에 따르면, 식약청은 지난 6월22일 최초 사건이 보고된 이후 40일이 지난 7월31일까지 "식품으로부터 노로바이러스를 검출하는 방법이 공식적으로 확립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검사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공식적인 방법이 없더라도 세계적으로 식품에서 노로바이러스 검출한 사례가 있는 만큼 시도는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자문 교수진 등의 지적이 잇따르자 뒤늦게 7월31일 노로바이러스 검출을 시도했다.
고 의원은 "그런데 이 검사에 식약청은 사건 발생 후 22일이 지난 7월14일에 해당 업체에서 수거한 깻잎을 시료로 사용했다"며 "따라서 22일간의 기간은 충분히 감염원이 된 깻잎이 모두 유통되버리고도 남을 기간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해당 업체가 문제의 시료를 인위적으로 폐기할 여유를 준 것이나 다름 없다"고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고 의원은 "더욱이 당시 창고에는 약 5천kg 상당의 깻잎이 보관되어 있었으나 식약청이 수거해 온 것은 달랑 2개의 샘플을 뽑아 서울대와 식약청에서 각각 검사를 했다"며 "어느 누가 보아도 검사의 대표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라고 재차 의혹을 제기했다.
고 의원은 이어 "뿐만 아니라 보건당국은 노로바이러스 감염의 실질적인 근원지인 중국 현지 생산공장에 대한 실사조차 시도하지 않았다"며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산 깻잎이 감염원이라면 중국현지의 지하수 등 용수가 감염원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현지 조사가 원인규명에 있어 필수적이나 중국 현지 실사를 실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보건당국에 문의해도 '절차가 복잡해서…' 등의 이유로 얼버무리며 즉답을 회피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 의원은 또한 "식약청은 업체의 창고에 보관되고 있던 4천8백40kg의 중국산 깻잎을 모두 폐기하도록 조치하기도 했다"며 증거물 은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유시민 보건장관, 국회서 위증"
고 의원은 이 과정에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의 국회 위증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6월26일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상임위에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노로바이러스의 경우에는 아직 이것을 진단시약이라든가 등등 해서 사전에 음식물 속에서 찾아내는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 문창진 식약청장도 "현재의 기술여건으로는 식품 중의 노로바이러스를 검출할 수 있는 시험법이 없다"고 답했다.
고 의원은 그러나 "식품을 통한 노로바이러스의 검출 가능성에 대해 식약청이 미국대사관을 통해 미 식품위생국(FDA)에 질의한 결과 '유전자정량분석(qPCR)방법이 사용가능하며 바이러스의 생존여부에 대한 정보는 알 수 없지만 바이러스가 존재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검출이 가능하다'는 답변이 왔다"며 미 FDA 답변서를 공개했다.
고 의원은 또 "뿐만 아니라 지난 8.23일 질병관리본부가 주최한 식중독 사고 세미나에서 서울대 고광표 교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식품으로부터 노로바이러스를 검출한 사례들이 실제로 있었음이 보고되고 있다"며 역시 고광표 교수 발표자료를 공개했다.
고 의원은 따라서 "결국 국민의 식생활을 책임지는 유시민 장관과 문창진 식약청정이 이와 같은 사실조차 모른채 국회에서 허위보고를 했거나, 사실을 알았다면 위증을 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정부 눈치 보느라 국민 건강 도외시"
고 의원은 "한 국가의 수도에서 감염자 3천명에 달하는 대형 식중독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염원이 된 업체가 중국에 있다는 이유로 현지조사조차 실시하지 못하고 엉뚱한 시료를 가지고 검사를 했다는 생색만 내려했다면 이는 외국 정부나 업체의 눈치를 보느라 국민의 건강을 도외시한 조치라고 밖에는 볼 수 없을 것"이라며, 정부가 중국을 의식해 고의로 진상을 은폐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앞서 중국산 '기생충알 김치' 파동때 중국정부가 강력 항의를 한 뒤 우리 정부의 대응이 수동적으로 바뀐 게 아니냐는 의혹 제기다.
고 의원은 따라서 "국민들에게 진실을 은폐함으로서 책임을 회피하고 결과적으로 해당 기업을 보호하려한 유시민장관과 문창진 청장은 즉각 사퇴하고, 초기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아 원인불명의 사태를 유발시킨 담당자와 기관장들에 대해서도 엄중한 책임 추궁이 있어야 할 것"이라며 유시민 보건장관 등의 사퇴와 처벌을 촉구했다.
식약청 "추측만 갖고 중국 현지조사 어려웠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18일 고경화 의원 및 KBS가 제기한 의혹과 관련, 보도자료를 통해 서둘러 해명에 나섰다.
식약청은 우선 유시민 장관 등의 국회위증 의혹과 관련, "지난 6월 학교급식 식중독 발생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의심되는 식재료와 같은 일반적인 식품에서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노로바이러스 검출법이 확립되어 있지 않으며, 다만 굴의 경우는 노로바이러스가 농축되어 있어 비교적 검출하기 용이함에 따라 최근 캐나다, 일본 등에서 검출법을 확립하였다"고 해명했다.
식약청은 이어 노로바이로스 검출이 가능하다고 돼 있는 미 FDA 보고서와 관련해선, "주한 미대사관 문서에는 최근까지 FDA가 식품에 들어 있는 노로 바이러스 검사를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되어 있다"며 "현재 미국의 경우도 qPCR에 의한 노로바이러스 검사법은 굴에 대해서만 만들어져 있으며 아직 공인시험법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고 주장했다. 보건부는 "일반적으로 PCR 및 qPCR에 의한 노로바이러스 유무의 검사는 가능하지만, 노로바이러스의 경우 유전적 다양성, 농축 등 비효율적인 전처리법, 식품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방해물질 등에 의하여 공인된 시험법으로 확립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식약청은 또 감염원인 '중국깻잎' 조사 축소은폐 의혹에 대해선 "노로 바이러스를 검출할 수 없었으므로 과학적인 검사방법으로는 노로 바이러스의 오염원을 확인하기 어려웠다"며 "과학적 검사방법에 의한 객관적 사실 없이 단순히 오염원으로 추정된다는 근거만으로 수출국 공장에 대해 우리가 직접 현지 조사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해명은 보건복지부가 사상최악의 식중독 사태에 수동적으로 대응해 왔음을 보여주고 있어 은폐 의혹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