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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세 노정객'의 한마디 "의원들, 공부 좀 해라"

여야 모두, 그리고 율사출신 盧대통령을 부끄럽게 만든 조순형 의원

8일 오후 한나라당 의원총회장.

한 3선 의원이 “원내지도부가 준비를 어떻게 했기에 보좌관도 없이 혼자 준비한 조순형 의원 한 사람만도 못하냐”고 당 지도부를 질타했다. 율사 출신인 안상수 법사위원장은 “법률가로서 부끄럽다. 청문회는 열지 말았어야 했다”고 사과했다. 김형오 원내대표도 이날 밤 “우리나 전효숙이나 다 무식했다. 우리도 일찍 이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는데 잘못을 인정한다”고 사과했다.

의총장 밖 인사청문회장에서도 조순형 민주당 의원은 단연 돋보였다. 엄호성, 주호영, 김정훈 등 한나라당의 내로라 하는 변호사 출신 의원들이 연신 조 의원 곁에 모여들어 청문회 절차 등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조 의원은 서울대에서 법학을 공부하긴 했으나 법조인 출신은 아니다.

열린우리당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한길 원내대표 등이 연신 조 의원을 찾아 고개를 숙이며 협조를 요청했다. 절차상 문제가 있는 건 사실로, 앞으론 절대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할 테니 이번 한번만 봐달라는 식이었다.

이들 풍광에서 볼 수 있듯, 전효숙 인사청문회의 스타는 단연 조순형 의원이었다. 여야 모두가 조 의원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했고, 결국 그의 선택에 따라 전효숙 헌재소장 후보자 표결은 8일 무산됐다. "의원 하나 하나가 독립적 입법기관"임을 그는 스스로 입증해 보인 것이다.

인사청문회 첫날인 지난 6일 조 의원은 인사청문특위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의원 전원(12명)이 간과한 전 후보자 지명의 편법성을 논리정연하게 지적해 참석자들을 경악케 했다. 조 의원은 “헌재 소장은 헌재 재판관 중에서 임명해야 하기 때문에 재판관을 사퇴한 전 후보자는 (헌재 재판관으로) 재임명해 절차를 밟는 것이 적법하다”고 전효숙 인사의 결정적 맹점을 지적했다. 전효숙 후보의 임기를 6년으로 늘리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가 행한 '꼼수'의 법률적 맹점을 찾아낸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한나라당은 사흘간의 갈팡질팡 끝에 표결 불참 당론을 정했고, 민주노동당 등 다른 야당들도 '절차상 이유'를 명분으로 표결에 불참, 열린우리당과 청와대에 뼈아픈 좌절을 안겨주었다. 특히 조 의원의 법률적 문제 제기는 변호사 출신의 노대통령에겐 너무나 뼈아픈 일격이었을 게 분명하다.

8일 국회에서는 김형오 원내대표(가운데)와 율사 출신의 엄호성 의원(왼쪽) 등 한나라당 의원들이 조순형 의원 곁에 수시로 모여 자문을 구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됐다. ⓒ연합뉴스


주목해야 할 대목은 비법조인인 조 의원이 전효숙 임명의 법률적 맹점을 찾아낸 과정이다. 그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국회 도서관 법령자료실에서 법 자료를 뒤져 혼자 힘으로 이 맹점을 찾아냈다. 그는 인사청문회에 앞서 수시로 법령자료실을 찾아 전 후보자의 과거 판결문을 비롯해 헌법재판소 관련 법령과 서적 등을 열독했다. 그러던 중 전 후보자가 헌재 재판관 사퇴후 마땅히 거쳐야 할 재판관 재임용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치명적 맹점을 발견했다.

그는 평소에도 일주일에 서너번 도서관을 찾는다. 열람실에 사실상의 고정석이 있을 정도다. 의원 사무실에 있으면 방문객과 전화 때문에 집중을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번 들르면 서너 시간씩 공부를 하다 간다. 국회 도서관은 국내 최대의 온갖 자료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의원들의 발길은 뜸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 도서관에 조 의원은 더없이 고마운 존재다. 국회 도서관의 존립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6선 의원인 조 의원은 과거 의정생활도 남달랐다. 그는 지난 80년대 의원들 가운데 최초이자 유일하게 지역구 사무실을 없앴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라에서 주는 월급 갖고는 지역구 사무실을 운영하기에 벅차고, 그러다보니 남의 신세를 져야 하는데 이것이 부패의 원인이 된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그 대신 그는 주말마다 지역구 예식장을 찾아 '공짜 주례'를 서줬다. 많을 때는 주말에 열번 가까이 주례를 서기도 했다. 가난한 지역민들을 위한 자원봉사이자, 그만의 돈 안드는 '지역구 관리법'이었다. 이렇게 주말에는 지역구에서 몸으로 봉사를 하고, 주중에는 국회 도서관에서 본연의 임무인 '입법'을 위해 매진했다.

그가 7.26 재보선에 출마해 극적으로 당선되자 보수세력과 보수신문들은 "탄핵세력의 복권" 운운하며 마치 탄핵의 정당성이 뒤늦게나마 국민에게 확인된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었다. 실제로 일부 한나라당 탄핵주역들도 정치 재개를 위해 꿈틀댔다. 이때 김종인 민주당 의원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조순형은 다른 탄핵주역들과 아예 차원이 다르다"고 일갈했다. 김종인 의원은 조순형 후보의 부탁으로 7.26 재보선 선대본부장을 맡았던 인물. 조 의원의 선친 조병옥 박사와 자신의 조부 가인 김병로 선생이 생전에 오랜 기간 교우했고, 그러기에 오래 전부터 '인간 조순형'의 됨됨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김종인 의원이다.

조 의원은 표결 무산후 후배 의원들에게 딱 한마디를 했다.

“헌법을 가볍게 여기는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뿐만 아니라 국회의 책임도 크다. 젊은 의원들이 너무 공부를 안 한다.”

'71세 노정객'의 무게 있는 질책이었다. 앞으로 국회 도서관을 찾는 젊은 의원들이 목격될 지 지켜볼 일이다.
박태견 기자

댓글이 1 개 있습니다.

  • 1 3
    레티나

    김정일이 와서 교육시켜줄거여
    한미연합훈련후에는 항상 미군철수가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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