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클샘', '왕서방'에게 무릎 꿇다!
미연준 '국채 직매입'에 달러 폭락, 달러기축체제 휘청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18일(현지시간) 향후 6개월내 3천억달러 규모의 장기 국채를 직접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윤전기를 돌려 새로 달러화를 찍어 정부가 경기부양 및 금융지원을 위해 발행할 미 국채, 즉 재무채권(TB)을 직접 사들이겠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말해 국채를 통한 자금 조달을 위해 기존의 '강한 달러' 정책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미연준 결정은 오바마 정부의 압력에 따른 것으로 알려진다. 미연준은 국채 직매입에 강력 반대해왔다. 미연준이 직접 국채를 사들일 경우 그만큼 돈이 시중에 풀리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미연준은 지난 6일까지만 해도 국책 직매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었다.
하지만 그후 상황이 급변했다. 원자바오 중국총리는 지난 13일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미 국채 보유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미 국채) 투자가 안전하다는 것을 보증받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미 국채 최대 보유국인 중국이 정면으로 딴지를 걸고 나선 것이다.
오바마 미대통령은 앞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베이징으로 보내 미국이 새로 발행할 국채를 중국이 사주기를 호소했었다. 하지만 중국이 매몰차게 '추가 보장조치'를 요구하고 나섰고 미국은 피눈물을 흘리며 미연준을 설득, 국채 직매입을 발표토록 하기에 이른 것이다.
미연준의 국채 직매입이 의미하는 바는 중차대하다. 미국의 강한 달러 포기를 뜻하고, 이는 곧바로 '달러 기축통화체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빚쟁이 나라 미국이 세계 최대 현금보유국인 중국의 압박에 굴복했다는 의미다. 엉클샘이 왕서방에게 무릎을 꿇은 모양새다.
시장은 즉각 민감하게 반응했다. 국채값은 치솟고 달러 가치는 폭락했다.
미연준 발표가 전해지면서 이날 오후 뉴욕 채권시장에서 10년만기 국채의 수익률은 0.5%포인트나 폭락한 2.52%를 기록했다. 이번 낙폭은 주가가 폭락했던 지난 1962년이래 47년만에 최대치다. 2년 만기 국채 수익률도 0.83%로 0.24%포인트 떨어져 리먼 브러더스 사태 발발 직후인 작년 9월17일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30년 만기도 3.59%로 0.24%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달러화는 지난 2000년 9월 이후 8년6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급락했다. 이날 오후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유로 환율은 1.3498달러까지 올라 3.6%나 급등(달러가치 하락)하면서 2000년 9월 이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엔-달러 환율도 96.28엔으로 2.4% 떨어졌다. 여타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지수는 84.573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였던 윌리엄 풀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미연준 결정은 미국경제가 어느 곳에서도 바닥에 도달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의미"라며 "미연준이 마지막 수단으로 대규모 돈풀기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최근 씨티, BOA 등이 실적이 호전됐다며 월가의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뻥튀기 전략을 구사하면서 주가가 반등하는 등 겉으론 상황이 호전되는듯 보이나 실상은 실업이 폭증하고 카드연체율이 급증하는 등 경제가 나락으로 곤두박질치자, 미연준이 인플레라는 거센 후폭풍을 감수하면서 당장 발등의 불끄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더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 과정에 달러 기축통화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전인대에서 달러 기축통화체제는 이미 수명을 다했다며 위안화를 새로운 기축통화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뜻을 받들어 원자바오 중국총리는 공개리에 미국을 압박했고, 오바마는 결국 무릎을 꿇어야 했다.
위기에는 현금을 쥔 쪽이 왕임을 지금 격동하는 세계가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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