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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 정부요직 배출 '등용문'

[김진원의 로펌 이야기] <4> 강금실-김승규-천정배 법무장관 배출

25일 이임식을 끝으로 정치권으로 복귀한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은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법률사무소에서 오랫동안 기업변호사로 활약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국도 덜레스 전 국무장관 등 로펌변호사 출신 공직 진출 활발

1981년 사법연수원을 3등의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한 그는 판 · 검사 임관을 포기하고, 곧바로 김&장에 들어가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5공때인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판 · 검사 임명장을 받을 수 없다는 게 임관을 포기한 이유라고 한다.

김&장에서의 전문 분야는 외환 · 무역 · 조세분야. 꼬박 4년간 일한 후 85년 김&장을 나와 선배인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에 합류하기도 했으나, 얼마 안 있어 다시 김&장으로 복귀했을 만큼 김&장과의 인연이 깊다.

김&장에서 변호사로서의 기반을 닦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96년 15대 국회에 진출하며 정치에 본격 입문한 그는 이후 내리 3선을 하며 여권의 대권후보중 한 사람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 '꽁지머리 묶은 변호사'에서 "김&장에서 철저한 프로 정신을 배웠다"고 회고하고 있다.

천정배 전 법무장관은 "김&장에서 프로정신을 배웠다"고 말한다. ⓒ연합뉴스


천 장관과 함께 여권의 또다른 대권후보로 얘기되는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도 변호사 경력에서 로펌 관련 부분을 빼놓을 수 없다.

96년 서울고법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가 된 그는 2000년 4월 벤처로펌을 표방하고 설립된 법무법인 지평의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얼마전까지 지평의 대표변호사를 지낼만큼 전체 변호사 생활중 로펌에서 근무한 기간이 더 길다.

로펌 출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

설립 당시 14명의 변호사로 출발한 지평이 6년여만에 한국변호사만 42명이 포진한 중견 로펌으로 성장하게 된 데는 선장의 역할을 맡았던 강 전 장관의 기여가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003년 2월 지평의 대표에서 참여정부의 첫 법무장관으로 입각했던 그는 2004년 7월 장관에서 물러나자 지평의 대표로 복귀했다. 그러나 지난 5.31 지방선거땐 다시 지평의 대표를 사임하고, 열린우리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해 또한번 주목을 받았다.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 당선된 오세훈 서울시장도 중견 로펌인 법무법인 지성의 대표변호사 출신이다. 오 · 강이 맞붙은 서울시장 선거는 로펌 대표끼리의 대결로도 많이 얘기됐다.

로펌의 대표는 변호사 이전에 일종의 CEO란 측면이 강하다. 때문에 이런 점에서 따져볼 대목도 적지 않았지만, 본격적인 선거 쟁점이 되지는 않았다.

기업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로펌 출신 변호사들이 정부 요직에 잇따라 진출하고 있다.

국회의원에 이어 로펌 출신 서울시장이 나왔다.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도 있다. 법무법인 바른에 구성원변호사로 둥지를 틀고 있는 권영세 의원은 얼마전 한나라당의 최고위원으로 지명되기도 했다.

로펌이 재야 법조계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비중이 높아지면서 로펌에 법조의 인재들이 모여들고, 이들이 다시 정치권과 사법부, 행정부로 진출하는 일종의 '회전문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로펌의 뿌리가 깊은 미국의 경우 로펌변호사의 정부 요직 진출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됐다고 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때 국무장관을 역임하며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던 덜레스(John Foster Dulles) 전 장관은 국무성에 들어오기 전 미국의 유명 로펌인 설리번&크롬웰(Sullivan&Cromwell)에서 매니징 파트너로 활약한 로펌변호사 출신이다.

또다른 로펌인 'Davis, Polk & Wardwell'의 네임 파트너인 데이비스(John Davis) 변호사는 민주당 후보로 직접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이 두 로펌은 미국에서도 '톱 10'에 드는 세계적인 로펌들이다. 네임 파트너란 로펌의 상호에 자신의 성이 들어가 있는 파트너 변호사를 말하며, 대단히 영예로운 자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국 로펌들은 기업법무가 더욱 전문화되면서 최근엔 로펌변호사로 있다가 정부 관료 등으로 진출하는 게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반면 차츰 연륜이 쌓여가고 있는 국내 로펌들은 법조 인재의 풀(pool)로 기능하며, 활발한 대외진출이 러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최근 사법부 재조 진입에서 로펌 출신들 단연 돋보여

특히 사법부와 법무 · 검찰의 경우 재야 법조에서의 재조 진입은 최근들어 로펌 출신이 단연 돋보이고 있다. 그만큼 로펌에서 활동하는 쟁쟁한 변호사들이 많다는 현실적인 사정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전부터 로펌엔 대법관과 법원장, 검사장 등을 지낸 중량급 변호사들이 모여들면서 대형 로펌의 경우 법원과 검찰청 못지않은 맨파워를 갖추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강금실-김승규-천정배로 이어진 참여정부의 법무장관은 세사람 모두 로펌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지난해 6월 천 장관에게 바톤을 물려주고 국가정보원장으로 영전한 김승규 전 장관은 법무차관과 대검차장 등을 지낸 검찰 출신이다. 그러나 로펌의 변호사가 돼 약 1년5개월간 중견 로펌인 법무법인 로고스의 대표로 활약하다가 법무장관에 발탁됐다.

그는 또 로펌 대표를 역임한 최초의 국정원장이란 프로필도 이어가고 있다.

DJ정부때도 로펌변호사에서 법무장관이 나온 적이 있다.

2001년 5월. 법무차관을 끝으로 변호사가 돼 김&장에서 활약하던 최경원 변호사가 51대 법무부장관이 됐다. 다음해 1월말 장관에서 물러난 그는 다시 김&장으로 되돌아가 후배들을 지휘하고 있다.

최 장관이 물러나기 약 열흘 전. 이번에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명재 고문이 신승남 총장에 이어 31대 검찰총장이 됐다.

그도 총장이 되기 얼마전 서울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난 검찰 출신이다. 국내 굴지의 로펌인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후배들을 지휘하다가 총장에 발탁된 것이다.

그때의 에피소드 하나.

이명재 고문 이하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여러명 포진하고 있던 태평양의 검찰팀은 당시 수십건의 형사사건을 맡아 자문과 변호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고문이 총장이 된 마당에 태평양이 이들 사건을 계속해서 변호해야 하느냐가 고민이었다고 한다. 이 총장이 몸담고 있던 태평양이 변호하는 게 혹시나 일선 검찰청의 수사를 총지휘하는 그에게 누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태평양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만한 사건의 변호인에서 사임하고, 의뢰인에게 수임료를 되돌려 주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후문이다.

이 총장은 1년 10개월간 총장으로 있었다. 서울지검에서 조사를 받던 피의자가 수사관에게 맞아 숨지는 사고가 나 2년의 임기를 불과 두 달 남겨둔 2002년 11월 총장에서 물러났다.

이후 다시 태평양으로 돌아와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로펌 출신 공직진출 잇따르는 가운데 인사 편중 우려도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을 지낸 이종남 전 감사원장도 법무법인 세종에서 대표변호사 등으로 활약하다가 감사원장이 된 케이스. 99년부터 2003년까지 감사원장을 지낸 후 다시 세종으로 되돌아와 고문으로 있다.

로펌변호사는 헌법에 관한 최고 재판기관인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도 진출했다.

고법부장을 끝으로 법원을 떠나 법무법인 화우의 구성원 변호사로 활약하던 조대현 변호사가 2005년 7월 첫 테이프를 끊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법시험 동기이기도 한 그는 열리우리당 추천을 받아 국회몫으로 재판관이 됐다. 헌재재판관은 대통령과 대법원장, 국회가 각각 3명씩 선출 권한을 갖고 있는데, 그는 국회가 재판관으로 선출한 것이다.

로펌변호사에게 아직 문호를 개방하지 않은 곳이 있다면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대법관 자리를 들 수 있다. 개인변호사 등으로 활동하다가 대법관이 된 사람은 있으나, 로펌에서 활동하던 변호사가 대법관이 된 적은 없다.

그러나 로펌 출신 대법관이 나올 날도 멀지 않은 것일까. 5명의 대법관이 교체된 지난 6월의 대법관 제청땐 여러 명의 로펌변호사가 대법관 후보 추천을 받아 눈길을 끌었다.

로펌이 이처럼 인재의 산실로 기능하고 있는데 대해 긍정적인 의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로펌들이 사건을 휩쓰는데 이어 인사까지 로펌으로 편중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비판론자들은 특히 로펌이 기업 관련 사건을 많이 다루고 있는 현실에 주목한다. 로펌에 사건을 맡기는 기업들이 로펌의 이런 배경을 덕보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펌 변호사들이 정부 요직으로 진출하면 진출할수록 이런 면을 되돌아보는 노력 또한 더욱 배가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진원 리걸타임즈 대표

댓글이 1 개 있습니다.

  • 7 6
    진남철

    매우 유익한 기사
    로펌 말로만 듣던 법률회사에 대해 쉽게 설명해서 좋았다.
    앞으로도 필자의 글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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