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숭례문 화재를 보는 것 같다"
<뷰스칼럼> 위기는 급속히 심화되나 연일 미봉책만...
"1997년초 한보를 시작으로 대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자 정부가 부도유예협약이란 걸 만들었다. 은행을 비롯해 제2금융권, 제3금융권까지 모두 참여해야 했다. 채권단 회의에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수백명의 채권단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회의에 부도위기에 처한 기업들이 하나씩 안건으로 올라왔다. 해당 기업의 부채 만기를 연장해주자고 하면 큰 이견없이 손을 들어 찬성표시를 했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문제기업에 돈이 떨어져 신규자금을 지원해주자고 하면 모두가 고개를 싹 돌렸다. 당장 제 코가 석자인지라 아무도 추가대출을 해주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 정부가 나서 교통정리를 하곤 했다. 돈을 꿔준 비율대로 추가대출을 해주라는 식이었다. 모두가 입이 튀어 나왔으나 정부 말을 안 따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액수는 정부 요구보다 크게 줄었다. 500억원을 해주라면 겨우 100억원만 해주는 식이었다. 그러면 한달뒤쯤 그 기업은 예외없이 부도가 났다. 이런 식으로 1997년 무수한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져갔다.
지금 정부와 은행이 추진하고 있는 대주단협약이라는 것도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제2의 부도유예협약이 될 공산이 농후하다."
1997년 당시 정부당국의 한 관계자로 부도유예협약 회의에 무수히 참석했다가 지금은 민간금융계에 몸을 담고 있는 한 고위급 인사의 최근 증언이다.
금감원의 꼼수, '대출 면책 공문' '채권안정기금'
금융감독원이 26일 각 은행들에 '대출 면책 공문'을 보냈다. 나중에 부실이 나더라도 책임을 따지지 않을 테니, 대출을 해주라는 얘기다. 하두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안해주니 나온 꼼수다.
그런데 은행 돈이 어디 정부 돈인가. 은행이 펑펑 대출해줬다가 은행이 큰 손실을 입으면 누가 피해를 보나. 은행에 돈을 맡긴 고객과 주주들 아닌가. 더욱이 현 예금자보호법은 5천만원까지밖에 보상해주지 않고 있지 않나.
나중에 부실이 나면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된다고? 공적자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나. 국민 혈세 아닌가. IMF사태때 투입한 공적자금도 아직 절반밖에 회수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정부가 정말로 은행이 대출을 펑펑 해주도록 하려면 '대출 면책 공문'이 아니라 '대출손실 정부보증 공문'을 보내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이같은 공문은 국민 허락을 얻을 수 없기에 못 보내지 않고 있나.
정부가 요즘 하는 블랙코미디는 이뿐이 아니다. 한 예로 10조원의 채권시장안정기금만 해도 그렇다.
할부금융사, 카드사들이 "우리도 죽겠다. 왜 은행채만 사들이나. 우리 채권도 사달라"고 아우성치자, 정부는 채권안정기금을 만들어 제2 금융권 채권 등을 사주기로 했다. 그런데 10조원 가운데 8조원을 은행보고 떠맡으라 하고 있다. 달러화, 원화 모두 부족해 한국은행의 도움으로 연명하고 있는 은행들보고 제2 금융권을 살리라는 얘기다.
이러고도 은행들이 펑펑 기업들에게 대출해주길 바라니, 블랙코미디란 소리를 듣는 것이다.
"남대문 화재 참사를 보는 것 같다"
이헌재 전 금감위원장이 28일 "요즈음 초기 진화에 실패한 남대문 화재의 참상이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마저 든다. 화재를 초기진화했다면 기왓장 몇장만 불탔겠지만, 결국 다 타고 말았다"며 작심하고 현정부를 질타했다.
그는 연일 시중금리 인하 및 대출확대 지시를 내리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도 "옛날 국가주도적 시대에 대통령 명령이면 통하던 시장이 아니다"라고 힐난한 뒤, "은행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은 움직이도록 원인을 찾아서 걸맞는 대책을 강구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전 위원장도 경제위기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위치는 아니다. 참여정부 경제부총리 시절 '골프 경기부양론' 등 부동산경기 부양책을 펴며 지금 한국경제의 최대 시한폭탄인 부동산거품을 키우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제2의 숭례문 참사'를 걱정한 그의 지적은 유의미하다.
우리나라는 순채무국으로 전락했고 단기외채는 급증하고 있으며, 외국계는 우리 시중은행들로부터 계속 달러를 회수해가고 있다. 시간이 정말 별로 없다. 이명박 대통령도 초조함을 느끼는지 경제참모 등을 질타하고 있다 한다.
기업-금융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미봉책으로 시간만 질질 끌다간 정말 숭례문, 아니 한국경제가 다 타 버려 폭삭 주저앉을 절체절명의 위기다.
능력이 안되는 사람을 자꾸 닦달한다고 뾰족한 해법이 나오는 게 아니다. 능력 되는 사람으로 빨리 바꿔야 한다. 그리고 '전권'을 줘야 한다. "내가 모든 걸 책임질 테니 소신껏 하라"고 대통령이 힘을 실어줘야 한다. 시시콜콜 간섭도 말아야 한다.
사람을 찾기 힘들다고? 그런 말마라. 사람 많다. 찾으려 하지 않으니 안보일뿐이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인재가 없는 나라가 아니다. 주위만 둘러봐도 많고 많은 게 인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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