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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형 '대형로펌 시대'의 개막

[김진원의 로펌 이야기] <1> 변호사 1만명 시대

자주 접하면서도 실제로는 잘 알지 못하는 전문 직역중 하나가 변호사들이다. 문턱이 많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변호사들의 세계는 여전히 생소하고 낯선 곳으로 통한다. 5.31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로펌 대표 출신인 오세훈-강금실 후보가 격돌하면서 로펌에 대한 신비감이 더욱 깊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듯 갈수록 역할과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로펌들에 대해 피상적 내용만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기업을 대신해 국제화시대의 첨병으로 활약하고 있는 로펌과 로펌변호사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변호사 제도의 발전을 위해서도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있는 법이다. 7년전 <로펌>이란 책을 써 화제를 모았던 김진원 <리걸타임즈> 대표가 변호사 업계의 급변하는 모습을 시리즈로 연재한다.<편집자주>


<1>변호사 1만명 시대

대한변협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변호사제도는 1906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1906년 7월 등록한 홍 모 변호사가 국내 변호사 1호로 전해지고 있다. 올해가 딱 1백주년인 셈이다.

파란만장한 헌정사 못지않은 영욕의 역사를 거쳐 온 변호사들은 그 수가 이미 8천4백명을 넘어 머지않아 1만명 시대 도래를 바라보고 있다.

수만 늘어난 게 아니다.

변호사시장으로 압축되는 국내 법률시장의 규모 또한 비약적인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변호사중엔 월급쟁이만도 못한 어려운 형편의 변호사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으로 발전한 우리나라다. 전혀 새로운 유형의 사건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데다 사건의 볼륨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기업 · 경제관련 사건의 급팽창을 빼놓을 수 없다. 경제전쟁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기업간 분쟁은 법정에서의 송사를 통해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대형 법률사무소의 전문변호사들이 고문 기업의 용병이 돼 경쟁기업을 몰아 세우고,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법률대리전이 쉴새없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전선은 국제적으로도 확대돼 외국 기업이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국내에서의 사업 자체가 쉽지 않다. 국내 기업도 변호사를 앞세워 해외 시장에 진출할 만큼 변호사들의 활동 영역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외국 변호사들은 '지구상 마지막 남은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한국 변호사시장을 지칭하며, 시장개방의 빗장이 열리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이 국내 변호사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한 세기를 넘기게 된 변호사 제도의 역사는 양적인 성장 못지않게 구조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개업 형태의 변화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고 해야 할 만큼 변호사 업계 전체를 뒤바꿔놓고 있다.

우리의 변호사 사무실은 원래 개인변호사 사무실이 원형(原型)이라고 할 수 있다.

변호사 사무실하면 으례 판, 검사를 역임한 지긋한 나이의 변호사가 사무장, 여직원과 함께 의뢰인을 기다리는 10~20평 규모의 개인변호사 사무실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지금도 서울의 서초동 등 법원과 검찰청사 앞에 가 보면 이런 유형의 개인변호사 사무실이 크고 낮은 빌딩들을 따라 홍수를 이루고 있다. 손수건 흔들 듯 창밖에 내걸린 간판은 크기도 비슷하고, ‘변호사 000 법률사무소’라는 쓰여진 상호의 내용이 거의 천편일률이다.

그러나 현재의 변호사시장은 수십, 수백명의 변호사가 회사 형태의 조직을 갖추고 조직적으로 법률서비스 제공에 나서는 로펌(law firm)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기업이 관련된 사건이나 '좀 된다' 싶은 사건을 뒤져보면 대개 로펌의 이름이 소송대리인란에 올라 있는 것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로펌 시대가 개막되면서 덩치를 키우기 위해 법무법인끼리 합병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2002년 이뤄진 법무법인 우방.화백 통합 선언식. ⓒ연합뉴스


법원에 제기된 송사만 그런 게 아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나 채권 및 증권 발행, 국내외 투자 등 이른바 자문업무로 불리는 분야는 로펌이 개발해 거의 독식하고 있는 새로운 시장으로 통한다.

최근에는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중인 대형 기업 사건 등도 대개 대형 로펌 위주로 변호인단이 꾸려지고 있다.

검사장 등을 지낸 중량급 형사변호사가 더러 변호인으로 선임되기도 하지만, 대형 로펌이 아니면 명함을 내밀기 힘든 게 요즈음의 서초동 풍경인 것이다.

'법률회사'로 직역할 수 있는 로펌은 원래 영국과 미국에서 발달한 서구식 법률사무소의 형태이다. 영, 미에는 1,2백년의 역사를 가진 로펌들이 적지 않다. 또 소속 변호사가 1천명이 넘는 로펌들도 수두룩하다.

개인변호사 사무실 위주로 변호사업계가 형성돼 온 우리나라엔 1950년대 후반 처음으로 로펌 형태의 법률사무소가 소개되기 시작했다. 이어 3공화국 이후 정부의 고도성장 정책과 맞물리며 로펌 형태의 법률사무소가 초고속으로 성장해 왔다.

국내 최대 규모인 김&장법률사무소의 경우 국내외 변호사가 3백명이 넘는다. 이어 법무법인 광장, 태평양, 세종, 화우, 율촌 등 변호사가 1백명 이상 포진한 메이저 로펌만 10곳 안팎에 이를 만큼 국내 로펌업계는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변호사업계가 개인변호사 사무실 위주에서 로펌 형태의 기업형 법률사무소로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엔 이른바 1세대 주자들로 불리는 로펌의 창업주들이 판, 검사의 평탄한 삶을 뒤로 한 채 해외유학길에 올라 선진 외국의 기업법무시스템을 국내에 접목시킨 게 밑거름이 됐다. 반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주요 로펌의 남다른 창업과 성장 스토리는 현재의 업계 판도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변협에 따르면 6월22일 현재 법무법인 등 로펌 형태의 법률사무소는 모두 3백40여곳. 이들 법률사무소에 소속된 변호사만도 전체 개업변호사의 절반에 육박하는 약 3천5백명에 이른다. 그러나 수임료로 표현되는 로펌의 매출이나 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이 이같은 외형을 훨씬 넘어선다는 것을 부인할 변호사는 거의 없다.

변호사 업계에선 또 새로 법무법인이 생겨나고, 변호사를 영입해 규모를 키우는 핵분열 과정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 뺨치는 기업형 대형 로펌으로의 발전은 앞으로 더욱 폭넓게 진행될 것이란 게 국내 변호사업계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유력한 관측이다.

필자 소개

김진원 리걸타임즈 대표. ⓒ 리걸타임즈


김진원 리걸타임즈 대표(jwkim@legaltimes.co.kr)는 서울대 법대와 동대학원 법학과를 졸업했다. <중앙경제신문> 사회부를 시작으로, <중앙일보> 정치부, 사회부, 전국부, 산업부 기자를 역임했다. 법률 전문 인터넷신문인 <리걸타임즈> 대표를 맡고 있다.


이 기사는 법률 전문 인터넷신문 <리걸타임즈(www.legaltimes.co.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김진원 리걸타임즈 대표

댓글이 2 개 있습니다.

  • 16 8
    청량한

    흥미로운 글입니다.
    로펌에 관심이 많았는데 관심이 가는 글입니다.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 18 6
    지선이

    앞으로 기대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앞으로도 재미있는 이야기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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