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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대단한 대한민국'이었다

<현장> 4천8백만이 만들어낸 '붉은 마법'

호주에 ‘히딩크의 마법’이 있었다면, 대한민국에는 4천8백만명의 붉은 악마가 뿜어낸‘붉은 마법’이 있었다.

2006 독일월드컵 대한민국과 토고전이 있던 13일 밤,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 22만명, 시청 앞 서울광장에 15만명, 상암월드컵 경기장에 7만명 등 서울에서만 50여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응원에 참여하는 등 전국에서 2백10여만명이 길거리에서 ‘붉은 마법’에 가세했다.

특히 6만6천석을 수용하는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 경기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마치 우리 선수들이 상암에서 경기를 하듯 열광적인 응원전을 펼쳤다. 이 날 오후 5시께부터 경기장을 찾은 시민들은 너나 할 것없이 붉은색 티셔츠를 챙겨입고 스탠드 곳곳에 앉아 대한민국-토고 전을 기다렸다.

13일 대한민국-토고전을 응원하기 위해 7만 시민들이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을 가득메웠다 ⓒ김동현


상암 7만 관중 “전광판 통해 애국가 따라 부르며 대~한민국”

이윽고 경기가 시작하는 밤 10시가 되자, 관중들은 상암경기장 내 배치된 대형 전광판 4곳에서 흘러나오는 애국가에 맞춰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애국가를 따라부르며 우리 선수들을 독려했다. 흡사 경기가 있던 독일 프랑크푸르트 월드컵경기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표정.

그러나 경기는 잘 풀리지 않았다. 우리 팀은 좀처럼 이렇다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고전하다 전반 31분께 토고의 모하메드 카데르(갱강)에게 선제골을 허용했다. 하프라인 오른편에서 길게 넘어온 공을 카데르가 날렵하게 무릎으로 볼을 툭 치며 문전 왼쪽으로 돌파, 대각선으로 강슛을 날렸다.

관중들은 전광판을 통해 카데르의 슛이 골키퍼 이운재의 손끝을 지나치자 일제히 머리를 감싸며 “안돼”라고 소리쳤지만 이미 공은 왼쪽 골포스트를 맞추고 골네트를 갈랐다. 순간 상암경기장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을 응원하던 관중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아쉬움의 탄식만 쏟아냈다.

그러나 이내 관중들은 전열을 정비하고 “대~한민국”을 다시금 외쳤고, 곳곳에서는 “괜찮아~괜찮아” 구호가 터져나왔다.

전반 31분, 토고 카데르에게 선제골을 허용하자 시민들은 "안돼"라며 안타까워했다 ⓒ김동현


붉은 마법, 대한민국의 동점, 역전골을 이끌어내다

드디어 후반전들어 박지성이 얻어낸 프리킥 찬스를 이천수가 오른발 인스텝으로 예리하게 감안찬 볼이 토고 골문 왼쪽 네트 상단에 정확히 꽂히자, 상암경기장을 가득메운 7만 관중들은 경기장이 떠나갈 듯 환호성을 내질렀다.

붉은 마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골만 더, 한골만 더”를 기원하던 7만 관중들의 기대에 보답하듯, 반지의 제왕 안정환이 후반 27분, 역전골이자 이 날 경기 결승골을 터뜨렸다. 순간 상암은 무아지경, 열광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저마다 서로 얼싸안고 “대~한민국”을 외쳤고 곳곳에는 감격의 눈물을 쏟는 이들도 눈에띠었다. 이윽고 90분간의 대혈투를 마감하는 주심의 휘슬이 울리는 순간, 7만 관중은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울부짖다시피했다.

경기관람 후 1층 통로를 통해 빠져나가던 시민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선창을 하면 일제히 “대~한민국”을 외치며 집으로 돌아갔다. 이 날 서울 시내 곳곳에서 응원을 하고 돌아가던 시민들은 지하철 내에서도 “대~한민국”을 외치는 등 잠못드는 밤을 지샜다.

안정환이 역전 결승골을 터뜨리자 7만 관중들은 상암경기장이 떠나갈 듯 환호성을 내질렀다 ⓒ김동현


대한민국의 이 날 승리는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못지않은 값진 승리였다. 무엇보다 지난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첫 출전한 뒤 52년만에 올린 ‘원정 월드컵’에서의 승리였다는 점에 붉은 악마들은 흥분했다.

또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19골을 터뜨렸는데 이 날 이천수, 안정환의 연속골로 한국은 20, 21호 골이라는 대기록을 월드컵 역사에 올렸다. 특히 결승골을 넣은 안정환은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서 통산 3골을 넣은 선수로 역사에 남게됐다.

원정 첫승의 신화, 역전 드라마에는 어김없이 4천5백만 붉은 악마의 ‘붉은 마법’이 곁에 있었다. 역시 '대단한 대한민국'이었다.

이 날 상암경기장에는 이색복장을 하고 응원전에 참여한 사람들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김동현


이렇게 해도 잘 보여요~ 한 꼬마가 상자모양의 응원모자를 쓴 채 전광판을 주시하고 있다 ⓒ김동현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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