昌 "나 대통령 원하는 기자, 일어서 마셔"
[정치부기자 23년의 기억들] <11> 이회창 '창자론'과 나
창자 얘기는 97년 당시에도 문제가 됐었다. 그러나 그때는 결론이 안 났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이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5년 뒤에 다시 문제가 된 거다.
실은 나 때문이었다. 내가 어떤 매체에 글을 썼다. 당시 노무현 후보가 보수 언론사 두 군데를 거론하며 심한 말을 했다. 거의 욕설 수준이었다. 술좌석이었다. 그것이 문제됐다. 해당 언론사가 크게 반발했다. 술좌석 발언이라도 도를 넘었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술좌석 정치인 발언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 나는 이회창씨도 “창자를 뽑겠다”는 심한 말을 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형평의 문제를 지적했다.
노무현의 발언이 문제된다면 이회창의 발언도 문제라는 요지였다. 그러니 이회창의 발언이 술자리 발언이라고 봐줬다면 노무현의 발언도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실었다. 그러자 미디어 비평 언론이 그 부분을 발췌해서 보도한 거였다.
나는 그것이 그토록 파장이 클 줄은 몰랐다. 5년 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치면 10년 전이다. 그러나 그때 창자 얘기를 쓸 때도 모든 걸 쓰진 않았다.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언젠간 다시 쓰리라 생각했었다. 써도 괜찮다 싶을 때 말이다. 지금이 그때인 거 같다. 진상은 이렇다.
1997년 5월이었다. 이회창씨가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얼마 뒤 이회창씨가 기자들에게 밥을 샀다.
제일 먼저 각 언론사 정당팀장들과 저녁을 했다. 소공동 롯데호텔 지하 중식당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그 중국집의 이름은 아마 상하이였던 것 같다.
나는 약속된 시간에 그곳에 갔다. 이회창씨가 예약한 방을 안내해 달라고 했다. 그곳에는 방이 대여섯 개 정도가 있었다. 매 란 국 죽으로 이름 붙여진 방이었다. 종업원은 죽(竹 )이라는 문패가 붙은 방으로 안내했다.
나는 방문을 열며 피식 웃었다. 당시 이회창씨의 별명이 ‘대쪽 선생’이었다. 대쪽이니 방도 죽실을 예약했나 싶었다.
곧이어 기자들이 모이고 이회창씨도 도착했다. 술이 나왔다. 그런데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술이 ‘죽엽청주’였다. 대나무 잎으로 만든 중국술이다. 모든 게 설정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음식이 들어오고 잔술이 돌았다. 그러자 누군가가 폭탄주를 하자고 했다. 죽엽청주로 폭탄주를 하자 했다. 죽엽청주는 내가 알기론 위스키보다 독한 술이다. 그걸로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회창씨가 폭탄주 제조를 맡았다. 이회창씨의 폭탄주는 독하기로 유명하다. 독주도 맥주도 모두가 찰랑 찰랑 채워진다.
이 총재가 먼저 마셨다. 이총재는 그 전에 마신 잔 술 때문에 약간 취한 상태였다. 다음 잔을 만들었다.
옆으로 잔을 넘기기 전 이총재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상한 제의를 했다. 자기가 대통령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일어나서 마시라고 했다. 그리곤 오른쪽으로 잔을 돌렸다.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첫 번째 사람은 일어나서 마셨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모 방송사 선배 기자였다. 그 앞에 잔이 갔다. 그런데 그 선배는 술잔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리곤 “난 못 일어나”하는 거였다. 술도 마시지 않겠다고 했다.
분위기가 갑자기 썰렁해졌다. 누군가가 “선배는 이총재가 대통령 되기를 원치 않나보지?”라고 했다. 그러자 그 선배는 “그렇다”고 했다. 분위기는 더욱 냉랭해졌다. 그러자 다른 기자 한 사람이 그 선배 옆으로 갔다. 그리곤 옆구리에 팔을 끼워 일으켜 세우려 했다.
“분위기 깨지 마시고 그냥 드시지요.”
그러자 그 선배가 손을 뿌리치며 화를 버럭 냈다.
“뭐 하는 짓들이야?”
나는 그 선배 건너편에 앉아서 가만히 지켜봤다. 정말이지 분위기가 어색했다. 이회창씨는 가만히 지켜보다가 다시 술을 만들었다. 건너 뛰어 그 다음 사람에게 잔을 보냈다. 그때부턴 모두 앉아서 마셨다. 술잔이 세 바퀴쯤 돌았을 때였다.
이회창씨가 언론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심각하게 말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유독 특정 신문사를 지목했다. 이 총재 바로 건너편 오른쪽으로 두 번째 자리에 그 신문사 기자가 있었다. 듣다 못한 그 기자도 “총재님 그러시면 안됩니다”고 했다. 그렇다고 분위기가 험악한 건 아니었다. 모두들 농담조였다.
그러자 이총재가 그 기자를 지목했다.
“당신이 기사를 이상하게 써서 그래.”
“제가 뭘요?”
“계속해서 그렇게 쓰면 내 자네 창자를 뽑아 버릴 거야.”
“........”
농담이었다. 분명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듣는 순간 섬뜩했다. 잠깐이지만 아무도 아무 말을 안했다.
이 총재는 취했는지 계속 말했다.
“내 대통령 되면 당신네 신문사 회장 재미없다고 전해줘.”
“.......”
나는 그때만 해도 이 총재를 잘 몰랐다. 총재가 됐지만 한 두 번 인사한 정도였다. 나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이총재도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YS쪽과 친하다며 경계하는듯 했다. 기본적으로 기자 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나로서도 굳이 잘 보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자기가 싫으면 그만이지 하는 정도였다.
이회창씨 진영은 기자들에 대해 예민했다. 일종의 피해의식 같은 게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잘못 주입시킨 거였다. 기자들을 기자 그대로 보지 않았다. 색안경을 끼고 봤다. 거의 정치인으로 대했다. 그러다보니 자꾸 편을 가르는 분위기였다. 나는 그런 분위기가 싫었다. 그러다보니 이총재와 나는 따로 만나 얘기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성격이나 스타일 같은 건 거의 몰랐다.
때문에 나로선 충격이었다. 아무리 농담이지만 창자를 뽑겠다니....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충청도에선 흔히 쓰는 얘기란다. 그래도 그렇지....나는 이회창씨를 다시 보게 됐다. 자기 감정에 대한 절제가 안되는 것 같았다. 즉흥적인 면이 있었다. 보기와는 딴판이었다.
특히 이 총재는 자기는 농담이라고 하는 말이 듣는 사람 가슴에 못을 박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말이지 썰렁한 농담들이었다. 분위기를 못 맞췄다.
그런 일이 있고 이틀인가 사흘 뒤였다. 밖에서 술 한잔 걸치고 밤늦게 집에 들어가 막 자려는 순간이었다. 중앙일보 김교준 차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11시 30분쯤 됐던 거 같다. 술 취한 목소리였다.
“지금 이회창이랑 현장 반장급 기자들과 저녁을 했는데.....”
정당팀장과의 만찬에 이은 반장들과의 만찬이었다. 기자들이 워낙 많다보니 그렇게 나눠서 했던 거다.
“그래서?”
“그런데 창(이회창, 기자들은 이총재를 보통 그렇게 불렀다)이 우리를 암적 존재라고 말하는 거 있지.”
“뭐? 자세히 얘기해봐. 엊그제에도 창자를 뽑아버리겠다고 하더니 암적 존재는 또 뭐야?”
“아니 글쎄, 내가 아직 창이랑 인사를 안했거든...그런데 폭탄주 잔을 나한테 주는데 옆에서 대변인이 ‘중앙일보 김교준 차장입니다. 이차장과 둘이 워낙 오래 동안 신한국당을 출입했습니다’고 하자 창이 ‘알어, 이것들 암적 존재들이야’라고 하잖아.”
“그 얘기 듣고 가만있었어? 무슨 소리냐고 그 자리에서 따져야지.”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냥 듣고 말았어.”
“알았어.”
전화를 끊고 시계를 보니 거의 12시였다. 나는 이회창씨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따질 심산이었다. 아마 집에서 일해주는 아주머니였던 거 같다. 아무리 바꿔달라고 해도 바꿔주질 않았다. 별 거짓말을 다하며 급하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아마 그때 전화를 바꿔줬다면 나도 무슨 말을 했을지 모른다.
나는 고흥길 특보에게 전화를 했다. 중앙일보 출신으로 이회창씨가 영입해간 인물이다. 잠자는 고 특보를 깨웠다. 그리곤 김 차장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그대로 해줬다. 그리곤 거세게 따졌다.
“대통령 되겠다는 분이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셔도 되나요?”
한 20분정도 혼자 떠들어댔다. 그러자 고 특보는 내일 아침 다시 애기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보통 때처럼 당사로 출근을 했다. 당사를 막 들어서려는데 문 앞에 이총재 비서가 나와 있었다. 그리곤 나를 보자마자 “총재님이 급히 찾으십니다. 지금 바로 총재실로 가시지요”하는 거였다. 총재실이 있는 6층에 올라갔다.
이총재는 총재실 안에 잇는 조그만 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문을 열자 그는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앉으라 했다.
“미안허이. 고 특보한테 얘기 들었네. 오해가 있었던 거 같아. 나는 두 사람이 워낙 신한국당에 오래 출입해서 모르는 게 없다는 의미로 그런 표현을 썼던 거였어. 뭔가 통달한 사람을 귀신같다고 하질 않나. 그런 의미였네...... 그렇잖아도 박찬종이가 나보고 주사가 있다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닌다는데....나 원 참.....내가 실수를 한 것 같아. 그래서 술을 좀 줄일 생각이야.”
나는 화가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얘기 안했다.
“알았습니다. 그런 뜻으로 얘기하셨다면 그렇게 알겠습니다.”
그리곤 방을 나섰다.
그러나 이 총재의 취중 말 실수는 이후에도 한동안 지속됐다. 그것 말고도 몇 가지가 더 있다. 그러나 내가 듣고 보지 않은 얘기라서 여기에 옮기지는 않겠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취중 말 실수가 끊어졌다.
정말 큰 실수를 했기 때문이다. 특정 고등학교 출신들을 향한 발언이었다. 광화문 향원이란 한정식집에서 술 먹으며 한 말이었다. 마침 옆방에 한 기자가 있었고 그 기자가 화장실 가는 길에 들었다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기자실에 난리가 났다. 쓰느니 마느니로 설전이 벌어졌다. 대부분이 쓸 기세였다.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 발언을 들었다고 전한 기자의 말이 오락가락했다. 이회창씨 진영은 딱 잡아뗐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이다. 그러니 쓸 수가 없었다.
이후부터 이 총재의 취중 말 실수는 사라졌다. 된통 홍역을 치렀던 거 같다. 이후로 그가 취중에 실수를 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없다.
한 가지만 덧붙이고 싶다. 단언컨대 이회창씨처럼 언론의 덕을 많이 본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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