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인수 및 대출과 관련한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금융브로커 김재록(46) 인베스투스글로벌 전 회장에 대한 첫 공판에서, 김 씨는 시종일관 여유있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며 검찰의 기소혐의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등 혐의 자체를 전면 부인했다.

오히려 김씨는 자신이 관여한 은행 대출 로비 혐의와 관련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대한민국 제1금융권은 완전히 무너졌다. 누가 부탁한다고 해서 제1금융권에서 대출해 줄 수 있는 상황이 못된다”며 “누가 그런 것을 부탁했을지라도 그건 전혀 의미 없는 것”이라고 검찰과 재판부에 ‘훈계’를 하는 듯한 대범함도 보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3부(문용선 부장판사)는 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311호법정에서 김씨에 대한 첫 공판을 열고 ▲2002년 6월, S투자평가원 정 모 대표로부터 신동아화재 인수 정부 로비 댓가로 1억6천만원을 받은 혐의 ▲2005년 5월, S업체가 W은행으로부터 5백억원의 대출을 받는 데 청탁한 혐의 ▲2005년 6월, W은행의 T쇼핑몰 업체에 대한 3백25억원 대출과정에서의 알선 혐의 등을 집중 추궁했다.

김재록 "기소사실 팩트만 맞고 정황은 전혀 달라"

그러나 김씨는 공판에 앞선 모두발언을 통해 “검사의 기소사실 팩트는 맞으나 정황은 매우 다르다”며 알선수뢰 혐의 자체를 전면 부인했고, 이어지는 검찰의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도 줄곧 “성공사례비가 아닌 ‘포괄적 경영 자문료’”라고 주장했다.

피의자 신문에 나선 대검 중수부의 윤대진 검사는, 먼저 지난 2002년 6월 S투자평가원의 신동아화재 인수 과정에서 피의자 김씨에 접근해 정부에 로비를 청탁한 사실과, 그로 인해 S투자평가원이 김씨에게 모두 3차례에 걸쳐 1억6천5백만원에 달하는 성공수수료를 전달한 사실을 추궁했다.

이에대해 김씨는 “신동아화재 문제로 받은게 아니라 다른 기업인수합병(M&A) 등 포괄적 경영자문 수수료로 받은 것"이라며 정부 로비성 대가의 돈이 아님을 주장했다.

또 검찰은 지난 해 6월, S업체의 W은행으로부터의 5백억원 대출과 관련, 당시 김씨가 개입해 W은행관계자에게 대출청탁을 넣고 그 대가로 김씨가 S업체로부터 11억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서도 추궁을 이어나갔다.

"성공사례비가 아닌 컨설팅 자문료일 뿐"... 기소혐의 전면 부인

그러나 이같은 혐의에 대해서도 김씨는 “S업체로부터 11억원을 지급받은 사실은 있으나 ‘성공수수료’로 받은 것은 아니”라며 “전체 자문료로 받은 돈”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김씨는 “은행 관계자에게 S업체의 자금흐름을 도와달라고 알선, 부탁한 댓가로 (11억원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검사의 추궁에 “아니다. IMF 이후 대한민국 제1금융권은 완전히 무너졌다. 누가 부탁한다고 해서 제1금융권에서 대출해줄 수 있는 상황이 못된다”며 “누가 그런 것을 부탁했을지라도 그건 전혀 의미없는 것”이라며 오히려 검찰에게 훈계하는 여유도 보였다.

또 쇼핑몰 사업체인 T사가 W은행으로부터 3백65억원을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김씨가 은행 고위관계자에 로비를 해 “2억원의 성공사례비를 받았다”는 검찰의 기소혐의에 대해서도 “그런사실 없다. T사 대표이사를 지금까지 만나본 적도 없다”고 발뺌했다.

그러나 그는 W은행 고위 관계자에게 쇼핑몰 리모델링 사업을 위해 대출을 잘 봐달라고 e메일을 보내고 전화통화한 사실에 대해서는 시인했다.

그는 당시 e메일의 내용과 관련, "당시 소비 부진으로 쇼핑몰이 위축돼 쇼핑몰에 담보제공을 자제하던 시기였지만, T사는 담보물건이 많았고 우리의 타당성 조사결과를 보면 대출이 가능할 것이라는 점에서 대출이 잘 되도록 해달라고 썼다.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low risk, high returnㆍ저위험 고수익)'이라는 구절도 넣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신동아화재 인수 로비건과 S업체 대출건에 대해서도 역시 “사례비를 받은 적은 없다. 단지 타당성 조사와 향후 사업전략 등이 포함된 전체적인 경영자문 컨설팅 대가로 경영자문 수수료를 받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김재록 수사, 아직 시작도 안했다'

한편 이 날 공판과정에서 변호인측은 “아직 검찰의 수사기록을 열람하지 못해 반대신문을 할 준비가 안 돼 있다”며 변론이 불가능함을 재판부에 호소했다.

김씨의 변호인단인 법무법인 ‘렉스’의 김동윤 변호사는 “검찰이 현재까지 기소한 4건의 기소건 이외 추가로 기소할 것이 있는 지 정확하게 얘기해 주어야 앞으로 변론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며 “그 부분을 검찰이 명확히 안해줘서 변론준비를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그 부분은 (재판부와 변호인단에게) 별도로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며 향후 김씨에 대한 추가기소 부분이 상당함을 암시했다.

이 날 김씨에 대한 첫 공판에서 김씨는 시종일관 여유있고 자신감있는 태도로 검찰의 신문에 또박또박 적극적으로 반론을 전개했다. 또 김씨는 공판이 끝나갈 무렵, 뒤편 방청석을 몇 번에 걸쳐 돌아보며 힐끗힐끗 누군가를 찾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씨는 지난해 5~6월 부실기업 인수와 대출 로비 명목으로 업체 3곳으로부터 14억5천만원을 받은 혐의(특경가법상 알선수재)로 구속 기소됐다.

다음 공판은 16일 오전 10시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