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영화 ‘남경대학살’ 로 日역사왜곡에 맞서
중국정부 허가로 다음달 촬영개시, 연말까지 완성
일본정부의 역사왜곡에 맞서 중국정부가 지난 1937년 발생한 남경대학살을 다룬 영화 '남경! 남경!'의 제작을 허가했다.
일본군에 의해 35만여명 살해된 비극 70주년
29일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국가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 총국이 이날 남경대학살(南京大虐殺) 70주년을 맞아 중국의 루주안(陸川) 영화감독이 준비해온 영화 '남경! 남경!’에 대한 제작허가를 내렸으며, 이에 따라 4월에 촬영이 개시될 전망이다
중국인들과 국제사회의 분노를 일으켰던 남경대학살의 70주년을 맞아 남경 및 남경대학살을 제재 및 주제로 한 영화제작이 무수하게 계획되어 있지만, 중국 당국의 허가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과거 남경에 있는 인민해방군 국제교육원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경험을 갖고 있는 루 감독은 “학살에 관한 기록을 2년간에 걸쳐 모았다. 이 영화로 국가와 국가의 사이의 갈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사건에 대한 진실, 즉 역사를 확실하게 알리고 싶다”라고 밝혔다.
<신화통신>은 ‘남경! 남경!’의 제작비가 2억위안 이상으로 예상되고 있다며, 지린(吉林)성에 30년대의 남경을 재현하는 세트를 만들 계획이며, 남경대학살이 일어났던 12월까지 이 영화를 완성시킬 계획이라는 제작자의 말을 전했다.
루 감독은 1970년에 태어난 30대의 신예감독으로, 2004년 작품 <코코실리(可可西里) 마운틴 패트롤>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2003년에는 <사라진 총> 등을 발표했다.
남경대학살은 1937년 12월∼1938년 1월 당시 중국의 수도 남경과 그 주변에서 일본의 중지파견군(中支派遣軍) 사령관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휘하의 일본군이 자행한 중국인 포로와 일반시민 학살사건으로, 당시 일본군은 남경으로 진격하면서 약 30만 명을 살해하였고 남경 점령 뒤에 약 4만 2천명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전후 극동군사재판에 제출된 자료에 의하면, 2개의 자선단체가 난징에서 매장한 유기시체만도 15만 5천3백37구(어린이 8백59구, 부녀자가 2천1백27구)였고, 양쯔강에도 대량의 시체가 버려졌으며, 학살은 기총(機銃)에 의한 무차별사격과 생매장, 휘발유를 뿌려서 불태워 죽이는 등 극히 잔학한 방법으로 자행됐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부녀자에 대한 강간과 약탈.방화로 남경 시내의 약 3분의 1이 소실됐고, 피해는 중국인에게만 그치지 않고 미국.영국.독일 등의 외교관 저택에서도 일어났으며, 중국인 피난민을 구조하였다는 이유로 미국인이 경영하는 병원.학교.교회 등도 약탈됐다.
제2차 세계대전 뒤의 극동군사재판에서 당시의 총사령관인 마쓰이가 이 대학살의 책임자로서 사형에 처해졌으며, 당시 제6사단장 하세 히사오(長谷壽夫)를 포함한 여러 명이 난징의 법정에서 전쟁범죄자로서 사형된 가운데 잔학상이 지나쳐 중국 정부는 그동안 영화 촬영 허가를 대부분 내주지 않았었다.
일본군에 의해 35만여명 살해된 비극 70주년
29일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국가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 총국이 이날 남경대학살(南京大虐殺) 70주년을 맞아 중국의 루주안(陸川) 영화감독이 준비해온 영화 '남경! 남경!’에 대한 제작허가를 내렸으며, 이에 따라 4월에 촬영이 개시될 전망이다
중국인들과 국제사회의 분노를 일으켰던 남경대학살의 70주년을 맞아 남경 및 남경대학살을 제재 및 주제로 한 영화제작이 무수하게 계획되어 있지만, 중국 당국의 허가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과거 남경에 있는 인민해방군 국제교육원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경험을 갖고 있는 루 감독은 “학살에 관한 기록을 2년간에 걸쳐 모았다. 이 영화로 국가와 국가의 사이의 갈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사건에 대한 진실, 즉 역사를 확실하게 알리고 싶다”라고 밝혔다.
<신화통신>은 ‘남경! 남경!’의 제작비가 2억위안 이상으로 예상되고 있다며, 지린(吉林)성에 30년대의 남경을 재현하는 세트를 만들 계획이며, 남경대학살이 일어났던 12월까지 이 영화를 완성시킬 계획이라는 제작자의 말을 전했다.
루 감독은 1970년에 태어난 30대의 신예감독으로, 2004년 작품 <코코실리(可可西里) 마운틴 패트롤>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2003년에는 <사라진 총> 등을 발표했다.
남경대학살은 1937년 12월∼1938년 1월 당시 중국의 수도 남경과 그 주변에서 일본의 중지파견군(中支派遣軍) 사령관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휘하의 일본군이 자행한 중국인 포로와 일반시민 학살사건으로, 당시 일본군은 남경으로 진격하면서 약 30만 명을 살해하였고 남경 점령 뒤에 약 4만 2천명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전후 극동군사재판에 제출된 자료에 의하면, 2개의 자선단체가 난징에서 매장한 유기시체만도 15만 5천3백37구(어린이 8백59구, 부녀자가 2천1백27구)였고, 양쯔강에도 대량의 시체가 버려졌으며, 학살은 기총(機銃)에 의한 무차별사격과 생매장, 휘발유를 뿌려서 불태워 죽이는 등 극히 잔학한 방법으로 자행됐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부녀자에 대한 강간과 약탈.방화로 남경 시내의 약 3분의 1이 소실됐고, 피해는 중국인에게만 그치지 않고 미국.영국.독일 등의 외교관 저택에서도 일어났으며, 중국인 피난민을 구조하였다는 이유로 미국인이 경영하는 병원.학교.교회 등도 약탈됐다.
제2차 세계대전 뒤의 극동군사재판에서 당시의 총사령관인 마쓰이가 이 대학살의 책임자로서 사형에 처해졌으며, 당시 제6사단장 하세 히사오(長谷壽夫)를 포함한 여러 명이 난징의 법정에서 전쟁범죄자로서 사형된 가운데 잔학상이 지나쳐 중국 정부는 그동안 영화 촬영 허가를 대부분 내주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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