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전대통령 추도식, 빗속 5만 인파 흐느껴
<현장> "담쟁이 하나,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애도의 물결
추도식 시작되자 빗줄기 거세져... 5만 인파 애도의 발길
이날 하루종일 비가 온 관계로 추도식을 주최하는 노무현 재단측 질서진행 요원들과 참석 시민들도 크고 작은 불편을 겪어야만 했지만, 주최측 추산 5만~6만명(경찰 추산 1만~3만명)의 시민들은 노란 우의와 우산을 저마다 받쳐 들고 봉하마을 입구에서부터 추도식장이 있는 묘역까지 2~3 킬로미터를 걸어 질서정연하게 이동했다.
사전 행사를 거쳐 오후 2시 공식 추도식이 시작되자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시민들은 그러나 모두들 착잡한 표정으로 자리를 뜨지 않고 비를 맞으며 고인을 애도했다.
추도식 사회를 맡은 방송인 김제동 씨는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꼭 하늘에서만 비가 내리는 게 아니라 땅에서도 비가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며 "비가 내리는 데도 비를 피하고 싶지 않은 여러분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여러분들의 마음을 모두가 이 비가 씻어주기를 바란다"고 울먹였다.
추도식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무반주 애국가 낭송으로 시작됐다. 노찾사는 고인을 기리며 5.10기념식장에서 정부에 의해 배제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낭송했고, 이를 듣던 권양숙 여사는 복받쳐오르는 설움이 참기 힘든 듯 아들 건호 씨의 손을 붙잡고 흐느꼈다.
곁에 있던 한명숙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도 추도식 내내 두 손을 모아 기도하듯 눈을 감고 흐느꼈고, 유족 뒷줄에 앉은 유시민 국민참여당 경기지사 후보, 안희정 민주당 충남지사 후보, 이광재 민주당 강원지사 후보 등 친노 인사들은 추도식 내내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이해찬 "폭군이 죽으면 폭정은 끝나지만 순교자가 죽으면 그 가치는 새롭게 시작돼"
이해찬 전 총리는 추도사를 통해 "이렇게 비가 오는 날, 우리는 이렇게 모였다"며 "우리들 마음속에 대통령님이 시간이 가면 서서히 잊혀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리움만 더 깊어져간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이 전 총리는 "폭군이 죽으면 폭정이 끝나지만 순교자가 죽으면 그 가치는 새롭게 시작된다"며 이명박 대통령을 정조준한 뒤, "제가 가까이서 모신 대통령님은 늘 한결 같았던 분이다. 수줍음이 많았기에 늘 자신에게 엄격했고, 언제나 정의로운 사람, 인간적인 사람, 바보 노무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마지막까지 당신은 진정 바보였다"며 "백배, 천배 죄 많은 자들은 웃고 있는데 당신은 많은 사람을 힘들게 했다고 자신을 버리라고 자신의 몸을 던져버린 바보였다. 바보 노무현을 우리는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울먹였다.
도종환 시인은 추도시를 통해 "혼자 남아있는 당신의 아내, 자전거 뒤에 타고 있던 당신의 손녀를 보고 있노라면 당신의 원칙, 당신의 고집이 미울 때가 있다"고 말해, 참석한 시민들을 울렸다.
그는 또 "치열하게 살았으나 욕되게 살 수 없어 벼랑 끝에 몸을 던진 당신을 이대로 보낼 수가 없다"며 "우리가 세웠던 세상은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세상처럼 한순간에 무너져 우리는 폐허의 한복판에 지금 서 있다"고 덧붙였다.
김제동 씨는 이에 "도종환 시인의 말처럼 벽은 허물고 물은 흐르게 하고 문을 열고 나아가 참여해야 한다"며 "이 땅의 역사를 공평하게 하고, 누구나 함께 어깨를 걸고 연대해서 나아갈 수 있는 역사를 만들 것이다. 여러분들의 발걸음이 포기하지 않는 역사를, 포기하지 않는 그분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담쟁이 하나,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시민 '박석' 1만5천개 헌정
영화배우 문성근, 명계남 씨는 시민들이 기부한 1만5천여개의 '박석'에 새겨진 추모 글을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울먹이며 소개했다.
"첫사랑 그대 편히 쉬세요", "가신 님 애달파 부엉이도 울고 꽃이 진 뒤에야 봄이었음을 압니다.", "내 마음속에 망명정부 있어 비바람 부는 날에는 망명한다. 내 마음속 대통령에게로", "제 심장이 뛰는 한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생의 마지막까지 그리울 이름 노무현, 노무현 내 심장을 일렁이는 세 글자", "난생처음 날 웃게 만든 정치인 노무현, 난생처음 날 울게 만든 정치인 노무현", "한시도 잊을 수 없습니다. 바람이 되셨나요? 전 바람개비가 되어 그 바람을 퍼뜨리겠습니다", "함께 가면 길은 등 뒤에 생긴다", "담쟁이 하나, 결국 그 벽을 넘는다"라는 등 박석 속의 글들은 참석자들을 흐느끼게 만들었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 씨는 추도사에서 "1년 전 오늘을 돌이켜보면, 비통함을 가눌 길이 없다"며 "검찰로 향하던 버스를 타시기 전 카메라 세례를 받으시던 모습, 마지막으로 잡초를 뽑으시며 허리를 펴시던 모습, 그리고 저 부엉이 바위와 가시기 전 마지막 모습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생생하지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비극의 기억이 있다"고 울분을 숨기지 못했다
추도식 공식 순서가 끝나자, 시민들이 기부한 1만5천여개의 박석을 대표해 시민 대표들이 마지막 박석을 놓는 의식이 진행됐다. 시민 박석 놓기로 묘역 완공식이 끝나자 권양숙 여사와 건호 씨가 묘역에 헌화했다. 권 여사는 헌화하는 내내 빗물과 함께 흐느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유족 헌화 뒤 고인이 서거한 5월 23일을 의미해 523 마리의 나비들이 빗속을 뚫고 날아갔고, 시민들은 나비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노무현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를 외치는 등 곳곳에서 고인을 애도하는 흐느낌이 이어졌다.
김제동 씨는 참석한 시민들에게 "우리는 지금 정치인 노무현을 기억하는 게 아니다. 앞에서 이끌던 노무현을 기억하는 게 아니다. 함께 어깨를 맞추고 눈높이를 맞추던 동반자 노무현을 기억하는 것"이라며 "진심으로 고맙다. 잊지 않겠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불거나 날이 맑고 개어 있든가 상관없이 언제든지 살아있다면 서로 아픔을 보듬고 함께 나아갈 것이다. 시민 여러분 진심으로 고맙다"고 답례했다.
이날 추도식은 50여분만에 끝났지만, 시민들은 곧바로 봉하마을을 빠져나가지 않고, 고인의 묘역에 들러 헌화하느라 또다시 줄이 길게 늘어져 있는 상황이다. 시민들의 헌화가 이뤄지는 동안 노 전 대통령이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직접 부른 <상록수>와 평소 즐겨 부르던 노래들이 묘역 주변에서 흘러나와 시민들의 마음을 더욱 아리게 했다. 특히 추도식 뒤에도 뒤늦게 수천여명의 시민들이 봉하마을로 들어오는 등 오고 가는 인파로 가득한 상황이다.
한편 이날 한나라당을 대표해 추도식에 참석한 김무성 원내대표는 일부 시민들로부터 "뭐야", "여긴 왜 왔어?"라는 항의를 받았다. 안홍준, 김정권 한나라당 의원 등과 함께 추도식 내내 자리를 지킨 김 원내대표는 헌화와 함께 곧바로 봉하마을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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