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트릭...'제2의 러시안 룰렛' 도래
<분석> 월가, 부실 숨기고 거짓말하고...헤지펀드만 신나
한달 새 뭐가 달라진 게 있나. 딱히 없다. 세계위기 진원지인 미국은 집값이 계속 폭락하고 있고 실업률은 치솟고 있다. GM 등 자동차 빅3는 파산처리 초읽기에 들어갔으며, 대다수 기업들도 실적악화로 신음하고 있다. 그런데도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왜?
월가의 작품이다.
월가의 '3월 트릭'
1~2월 월가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다우지수 6,000 붕괴까지 우려될 정도였다. 오바마 새정부가 아무리 대책을 쏟아내도 백약이 무효였다.
3월초 기묘한 풍광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파산설에 휘말린 씨티, BOA가 "1~2월에 큰 이익을 냈다"고 주장했다. 부실에 따른 대손충당금 등을 쌓지 않는 한, 영업이익을 내는 게 당연하다. 대손충당금을 쌓고도 이익을 냈는지가 중요한 거다. 하지만 이때부터 월가 등 세계주가는 반등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세계위기의 또다른 뇌관이던 동유럽 디폴트 위기설도 싹 사라졌다. 동유럽 위기는 날로 심화되고 있으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식이었다. 세계 주가는 더 뛰었다.
3월말이 되자, JP모건 등이 묘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3월 들어 다시 나빠지고 있다."
분기 결산기가 다가오자, 찔리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있다가 뚜껑을 열어야 하는데, 찝찝했던 거다. 애당초 1~2월 좋아졌다는 것 자체가 거짓말이었다. 실업자는 폭증하고 성장률은 마이너스 폭이 커지는데 나빠지는 게 정상이지, 애당초 좋아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오바마 정부 가세...시가평가제 폐기
거짓말이 들통날 위기에 몰리자, 이번엔 월가 출신들이 경제팀을 장악하고 있는 오바마 정부가 월가를 감싸고 나섰다.
2일 미국 금융회계기준위원회(FASB)가 '시가평가제'를 무력화시켰다. '시가평가제'가 뭔가. 부실을 그때 그때 반영하는 제도로, 80년대이래 월가가 '투명성 강화'를 명분으로 한국 등 전세계에 호되게 강요해온 제도다.
하지만 월가와 미국기업들의 대규모 부실 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가자, 서둘러 시가평가제를 없애 버렸다. 부실을 베일로 덮기로 한 거다. 당연히 씨티의 리처드 파슨스 회장 등은 "좋은 결정"이라고 환호했고, 월가 주가는 또 급등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속 보이는 트릭이 먹힐까. 미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지냈던 아서 레비트가 한마디 했다.
"현재 미국 경제가 처해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여론으로부터 신용을 얻는 것이다. 정계 및 월가의 압력으로 인해 이뤄진 시가평가제 기준 완화가 기업의 회계 투명성을 저해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투명성이 사라진 시장...러시안 룰렛
투명성이 사라진 시장에선 투기자금이 설치게 마련이다. 지금 세계금융시장에선 헤지펀드들이 공격적 투자행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요즘 우리나라 주식을 공격적으로 사들이며 주가를 끌어올리는 외국계도 헤지펀드로 추정되고 있다.
여의도의 큰 자산운용사 대표는 "요즘 시장에서 주목할 대목은 고객예탁금이 급증하고 주식형펀드엔 돈이 안들어온다는 점"이라며 "큰손들이 직접 투기적 공세를 펴고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지난해 큰 손실을 본 대형 자산운영사가 지금 투기적 몰빵 투자를 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투기적 행태가 지배하는 시장은 요동치게 마련이다.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며 실물경제를 골병들게 할 위험성이 농후하다. 베트남전 패망 당시 미국의 '정신적 공황'을 다룬 <디어헌터>에 나온 러시안 룰렛이 재현되는 양상이다.
주범은 월가다. 월가가 점점 자충수를 두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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