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선진국 금리인상으로 46개 개도국 위기 봉착"
"선진국 인플레 대책은 개도국 희생시키는 '경솔한 도박'"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3일(현지시간) 발간한 2022년 무역개발보고서에서 선진국의 통화, 재정 정책이 전 세계를 장기 침체로 몰아넣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때보다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특히 금리 인상에 의존해 물가를 낮출 수 있다는 선진국의 믿음은 개도국을 위협해 세계 경제를 해칠 수 있는 '경솔한 도박'이라고 지적했다.
선진국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은 주로 에너지 등 원자재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인상에 기인하지만, 개발도상국의 고물가는 공급부족 속에 자국 통화가치가 떨어져 수입품 가격이 치솟은 데 원인이 있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잇달아 큰 폭으로 끌어올려 달러 가치가 급격하게 뛰면서 개발도상국이 미국 등에서 수입하는 상품가격이 치솟고 달러로 갚아야 하는 부채의 상환 부담도 커졌다는 점을 주목했다.
올해 약 90개 개발도상국의 통화가 달러 대비 약세를 보였으며, 그중 3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국가의 통화가치는 달러 대비 10% 이상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올해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중국을 제외한 개도국의 미래 소득이 약 3천600억 달러(약 516조원) 감소하고 그런 어려움을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뿐만 아니라 개도국에서는 경제 여건의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별도의 비용을 들이고 있기도 하다.
개도국은 환율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올해 3천790억(약 543조5천억원) 달러가량을 썼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이 개발도상국 지원 등을 위해 할당한 신규 특별인출권(SDR)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보고서는 작년 4분기 이후 개발도상국의 재정 상황이 악화해 자금흐름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에 자금을 지원하는 꼴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46개 개도국이 복합적 경제 문제에 심각한 수준으로 노출됐으며, 또 다른 48개국의 상황도 긍정적이지 않아 글로벌 경제 위기의 위협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현재 개도국의 상황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나 기타 국제 금융회의에서 논의되는 것보다 훨씬 열악하다면서 글로벌 금융 안전망에 대한 논의가 점점 더 현실과 동떨어지고 있다고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UNCTAD는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세 가지 제안을 내놨다.
선진국 중앙은행이 경로를 바꿔 금리인상에 의존해 물가를 낮추려는 유혹을 버리고 긴축정책을 자제하며 개발도상국이 폭넓은 재정적 재량과 공정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도록 다자 국제기구의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베카 그린스판 UNCTAD 사무총장은 "불황의 끝자락에서 한 걸음 물러날 시간은 아직 있다"면서 "우리는 인플레이션은 진정시키고 모든 취약계층을 지원할 방법을 가지고 있고 이는 정책 선택과 정치적 의지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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