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머니의 사냥터' 자초한 한은-정부여당
미국 금리 올려도 내년 4월 총선때까지 한국은 동결, '좋은 먹이감'
중앙은행에 노골적으로 금리 압력을 가하는 것은 '금기 사항'이다. 명백히 한은법에 금리 결정권은 한은에 있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의 노골적 압박은 분명한 현행법 위반이다. 과거 정권들은 이에 압력을 가해도 우회적으로 가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법치주의 확립'을 외치면서도 법을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문제는 미국이 국제경제계에서 예상하듯 빠르면 석달 뒤인 오는 6월 금리를 인상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최소한 내년 4월말까지는 금리를 1%대로 고정할 확률이 대단히 높다는 사실이다. 이는 내년 4월에 총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와 세금은 내릴 때는 기립 박수, 올릴 때는 돌맹이 세례"라는 말이 있다.
지난해말 1천90조에 육박한 가계부채는 올해도 연초부터 폭증을 계속하면서 1천100조 돌파는 초읽기에 들어갔고, 추가 금리인하로 가속이 붙을 경우 1천200조 돌파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가계부채 1천100조를 전제로 계산을 해보면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이자부담은 11조가 늘어난다. 가계에 살인적 추가부담이 아닐 수 없다.
정권과 의원들의 사활이 걸린 총선을 앞두고 과연 정부여당이 과연 유권자들의 아우성을 무릅쓰고 한은의 금리인상을 허용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장담컨대 한은 총재를 갈아치우는 일이 있더라도 용납치 않을 거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12일 금리인하후 기자회견에서 '그럴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 총재는 기자들이 1%대 저금리를 언제까지 유지할 생각이냐고 묻자 "미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시점을 이르면 6월 아니면 9월로 보고 있다"며 "미국이 현제 제로(0)금리라 인상한다 해도 국내 금리를 바로 인상할 상황이 아니다. 1%대 금리는 물가 안정세와 경기 회복세가 본격화할 때까지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1%대 초저금리를 앞으로 상당기간 유지할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문제는 정부여당이나 한은 계산대로 미국이 금리를 올리더라도 우리만 금리를 동결한 채 버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벌써부터 국제금융계는 미국의 조기 금리인상에 따른 미국자금의 본토 회귀 우려에 달러화를 뺀 모든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주가는 맥을 못추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연일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고 주가는 빠지고 있다. 12일 한은의 깜짝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상승하는가 싶던 주가가 막판에 외국인이 매도로 돌아서면서 폭락한 것도 국제금융계가 지금 얼마나 불안해 하는가를 보여주는 증좌다.
본디 금리, 환율, 주가 등 3대 경제지표는 권력이 개입해선 안된다. 개입한다 해도 시장의 호된 부메랑을 맞을 뿐이다. 하반기에 미국이 금리를 인상했을 때, 우리만 권력이 개입해 금리를 묶으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당연히 증시, 채권 시장 등에서 외국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그대신 '국제 핫머니'들이 상어떼처럼 몰려들어 한국 금융시장을 놓고 풀배팅을 할 것이다. 죽어도 금리를 올리려 하지 않는 한국의 '패'가 읽힌 이상, 핫머니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쉬운 게임도 없다. 백전백승을 자신할 것이다.
MB정권 초기인 2008년말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환율 주권'을 주창하던 강만수 당시 기재부장관은 수출을 살려야 한다며 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끌어올렸고 이 과정에 강만수의 패를 읽은 외국자본들은 짭짤한 재미를 봤다. 그러다가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외국자금이 대거 이탈하면서 물가가 폭등하고 주가가 폭락하자 강만수는 당황해 거꾸로 환율을 잡겠다고 갈팡질팡을 거듭했다. 당시 위기는 국제통인 이광주 당시 한은 부총재보가 미연준 부총재와 담판을 해 '300억달러 스왑'을 따내면서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한은에는 그런 역량이 있는지 의문이며, 정부여당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예상대로 오는 6월 금리를 인상하고, 우리는 예상대로 내년 4월 총선때까지 금리를 동결할 경우 그 '10개월 동안'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아찔할 따름이다.
우려대로 '경제대란'이 벌어지면 책임자들은 면피에 급급할 것이다. IMF사태때 그러했듯, "국제시장이 그런지 몰랐다"거나 "정책은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강변할 게 뻔하다.
이주열 한은 총재만 해도 이날 금리인하후 가계부채가 더 폭증하는 게 아니냐는 기자들의 추궁에 "금리를 인하하면 대출을 늘리는 쪽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가계부채에 관해서는 비단 이번 금리 인하때문이라고 보기보다 국내 경제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며 한은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식의 답변을 해 눈총을 자초했다. 물론 가계부채가 한은만의 책임은 아니나, 한은의 책임이 엄중하다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그룹 맥킨지는 최근 한국을 '세계 7대 가계부채 위험국' 중 하나로 꼽았다. 이렇게 국제적으로 적신호가 켜진 마당에 보란듯이 가계부채를 폭증시키는 '선택'을 한 한국 당국의 배짱이 두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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