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BC, '10만명 1천억달러' 탈세 방조. 한국계좌도 20개
'스위스리크' 파문, 10만명 명단 전부 유출
ICIJ는 스위스 제네바에 소재한 HSBC PB사업부의 내부 문서를 프랑스 르몽드 등과 협력해 입수, 140여명의 언론인 회원들을 동원해 심층 분석한 결과 이 은행이 국제범죄자, 부패한 정치인과 기업인들에게 계좌를 개설해준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ICIJ가 입수해 분석한 문서는 HSBC PB사업부의 2007년 이후 고객 관리 현황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다.
HSBC PB사업부는 203개국의 개인과 법인 명의로 개설된 10만여개의 계좌를 통해 1천억 달러(약 109조5천500억원)에 이르는 자산을 관리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8년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일부 계좌주의 이름이 공개됐으나 10만여 전체 고객들의 명단이 외부에 노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별 금액은 스위스(312억 달러), 영국(217억 달러), 베네수엘라(148억 달러) 미국(134억 달러), 프랑스(125억 달러) 순이었다.
고객 수로는 스위스(1만1천235개 개인 및 법인), 프랑스(9천187개), 영국(8천844개), 브라질(8천667개), 이탈리아(7천499개) 순이었다.
한국은 조사대상 203개국 가운데 140위로 2천130만달러(232억원)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계좌 수는 20개였다.
ICIJ는 분석 결과를 담은 보고서에서 "HSBC는 박격포탄을 아프리카의 소년병에게 공급한 무기상, 제3세계 독재자들의 자금 운반책, 피묻은 다이아몬드 거래인, 기타 국제적 범법자들과 거래해 이득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공개된 이 은행의 고객들은 일부 국가의 왕실 인사와 코카인 밀매상, 테러혐의자, 외교사절과 선출직 공무원, 기업체 중역, 유명 연예인과 체육인 등 각종 직업군이 망라돼 있다. 채권자와 과거의 배우자, 정적, 사법 당국으로부터 돈을 빼돌리기 위해 비밀계좌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명단에는 크림 반도 강제 병합을 이유로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른 러시아 재벌 겐나디 팀첸코가 포함돼 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다.
그 외에 2011년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 붕괴 당시 국외로 도피한 라치드 모하메드 라치드 전 통상장관, 아이티의 악명높은 독재자 장 클로드 뒤발리에의 측근인 프란츠 메르세론,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측근인 라미 마클로프, 인터폴(국제경찰기구)의 수배를 받고 있는 피묻은 다이아몬드 거래인 모제스 빅터 쾨니히, 케네스 리 악셀 로드, 모델 엘 맥퍼슨, 축구선수 디에고 포를란의 이름도 올라가 있다.
왕실 인사로는 모로코 국왕 모하메드 6세, 수십명의 사우디 왕족들, 바레인의 살만 빈 하마다 알 칼리파 왕자 등이 HSBC 계좌를 갖고 있다는 사실도 아울러 밝혀졌다.
HSBC PB 고객들이 낱낱이 공개된 것은 은행비밀주의를 등에 업고 막대한 수익을 챙기던 스위스 프라이빗 뱅킹 시스템에는 다시 한번 치명타가 될 전망이다.
원래 이번 문서의 존재는 이 은행의 전산직 요원이었던 에르브 팔치아니가 2008년 퇴직하면서 내부 자료가 보관된 5개의 디스크를 들고 나오면서 밝혀진 바 있다.
산업스파이와 은행비밀주의법 위반 혐의로 스위스 사법당국의 형사 처벌 위협을 받고 있는 팔치아니는 이를 크리스틴 라가르드 당시 프랑스 재무장관(현 국제통화기금 총재)에게 전달했다.
라가르드 장관은 2010년 이른바 '팔치아니 리스트'를 외국 정부와 공유했다. 그 덕분에 벨기에와 그리스, 아르헨티나 등의 세무당국이 탈세를 단죄하고 세금을 추징하는데 도움을 줬다.
미국 법무부와 국세청(IRS)은 스위스의 양대 은행인 UBS와 크레디트스위스에 형사처벌과 법적 제재로 압박, 거액의 벌금을 물고 고객 명단을 넘기도록 하는 성과를 거뒀고 스위스 정부가 완강하게 지켜왔던 은행비밀주의 원칙을 사실상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범죄와 부패, 탈세 혐의를 받고 있는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고객은 합법적으로 계좌를 개설한 경우에 속한다. 영국 출신의 록스타로 현재 스위스 시민이 된 데이비드 보위가 그중 한 명으로, ICIJ는 그의 잘못을 따지지는 않았다.
HSBC는 ICIJ의 보고서와 관련해 과거의 법률 준수 노력이 미흡했다고 인정하면서 2007년 이후 과감한 개선을 취해 현재는 훨씬 엄격한 신고 절차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HSBC는 고객들이 법률을 준수하고 세금을 내도록 하는 한편 이를 따르지 않는 고객들의 계좌는 폐쇄하는 것이 은행으로서의 일부 책임으로 받아들인다고 덧붙였다.
HSBC는 70여개국에서 영업을 하고 있으며 PB사업부는 제네바에 두고 있다. 은행측은 성명에서 제네바의 PB사업부가 2007년 이후 고객 기반을 거의 70%가량 축소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