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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녀'들만 걱정하는 고위직 그들

<뷰스 칼럼> 자녀들, 병역면제후 외국계 취업 '승승장구'

미스테리한 아더앤더슨 무더기 취업

DJ정권 말기인 2002년 1월30일의 일이다.

한나라당의 안희석 부대변인이 이날 논평을 통해 “IMF사태 이후 정부와 정부산하기관의 용역을 대거 수주하면서 급성장한 아더앤더슨 한국법인에 재경·금융 분야의 고위층이 대거 몰려 있다”며 “정부의 용역 발주 및 수주 과정에서 이들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겠느냐는 의문이 든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한나라당이 이날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아더앤더슨 한국법인에 재직 중인 이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처조카 이정택씨와 이용근 전 금감위원장이 각각 이 회사의 고문과 상임고문으로 재직 중이었으며, 강운태 당시 민주당 제2정조위원장이 전직 회장을 맡았었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매각소위의 배용호 위원도 이 회사의 고문직을 맡았었다.

더욱 눈길을 끈 대목은 당시 고위 경제관료의 자녀들이 대거 아더앤더슨에 재직 중이었다는 사실이었다. DJ정부 시절 재정경제부장관을 지낸 강봉균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원장의 딸과 정건용 당시 산업은행총재 아들, 김진표 당시 재경부차관(현 교육부총리) 아들이 재직 중이었으며, 진념 당시 경제부총리의 아들도 한때 인터사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안 부대변인은 “누가 봐도 이 정권 고위층의 도덕적 불감증을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라며 “감사원의 특감 등 특단의 조치를 통해 의혹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병역 면제 받은 '부실한 아들들'의 출세

비슷한 시기인 2002년 대선 때의 일이다.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아들들의 병역 기피가 정치문제화하면서 다른 고위직 인사 자녀들의 병역 기피 문제도 함께 도마 위에 올랐다.

이때 공교롭게도 아더앤더슨에 근무 중인 고위 경제관료들의 자제들도 대다수 병역 기피자로 밝혀졌다.

김진표 재경차관 아들의 경우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가 훈련소 자체심사에서 정신과적 질병을 이유로 퇴소, 군면제를 받았다. 진념 부총리의 아들도 병역 면제를 받았고, 강봉균 전 장관 아들은 병역 심사요원에게 1천만원을 주고 병역을 면제받은 사실이 훗날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헌재 전 금감위원장의 아들도 아더앤더슨에 취업한 것은 아니나, 병역 면제를 받은 후 졸업과 동시에 즉각 홍콩에 본부를 두고 있는 외국계 금융기관에 취업했다.

이처럼 군대도 못갈 정도로 심신이 '부실한 아들들'이 어떤 일인지 사회에 나와선 일반 젊은이들이 '꿈의 직장'으로 여기는 아더앤더슨 등 외국계 금융기관들에 버젓이 들어가 억대연봉을 받는 기적을 잇따라 연출했다.

이헌재의 몇 가지 자녀 관련 구설수

IMF사태후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을 맡은 이헌재씨의 당시 별명은 '저승사자'였다. 기업-금융 구조조정을 총괄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그러나 금감위원장 시절, 그후 참여정부 들어 경제부총리로 발탁되면서 몇 차례 구설수에 올랐다.

김재록 게이트가 터지면서 세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연합뉴스


금감위원장 시절에는 딸의 외국연수 과정에 잡음이 일었다. 이씨가 금감위원장이던 시절 모 공중파 TV방송국에 재직하던 딸이 외국연수를 떠났다. 그런데 딸의 연수비용을 대준 곳이 다름아닌 LG그룹이 운영하던 재단이었다. 이에 대해 재단측은 "언론인들을 상대로 한 연수 지원의 일환으로 선정됐을 뿐, 이헌재 금감위원장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으나 주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참여정부 출범후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참여정부 들어 경기가 바닥을 헤매자 노무현대통령은 이헌재씨를 '경제 구원투수'로 발탁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문제의 이씨 딸도 청와대 비서로 발탁됐다. 주위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이씨 딸은 이씨가 부동산투기 의혹으로 부총리 직에서 물러나면서 함께 청와대에서 물러났다.

금융계에서는 이밖에 이씨 아들 이야기도 떠돌았다. 이씨가 외국계 금융인 등과의 사적 모임에 아들을 데리고 나오는 게 구설수의 근원이었다. 외국계 금융회사에 다니던 아들의 '인맥'을 넓혀주려는 부정(父情)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으나 그리 좋아 보이지 않더라는 게 당시의 지배적 평가였다.

'1가구 2주택 보유자' 통계 공개 반대한 경제관료들

노무현 정부 출범초기 아파트값이 폭등하면서 민심이 들끓던 2003년 후반의 일이다. 이른바 '10.29 대책'이 나오기 전, 경제부처 내부에서는 '1가구 2주택 보유자'부터 중과세를 할 것인지, '1가구 3주택이상 보유자'부터 중과세를 할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당시 만난 고위 경제관료는 이 논란과 관련, "요즘처럼 아파트값이 많이 오른 상황에서는 자녀들을 위해 현재 살고 있는 집외에 집 한 채를 더 사두는 경우는 용인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정부내에 많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들 경제관료는 "1가구 2주택이상 보유자의 통계를 공개하라"는 국민요구에 대해 "그런 통계는 정부내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이런 주장은 불과 며칠 뒤 이주성 당시 국세청장이 국회의원들의 추궁을 받고 "1가구 2주택이상이 1백58만 가구에 달한다"는 2002년 통계를 공개함으로써 거짓말로 증명됐다.

공무원은 언필칭 '공직자'다. '사익'보다 '공익'을 중시하라고, 국민들이 세금을 내 월급을 주고 정년까지 보장해주는 자리다. 때문에 이들은 '자기 자녀에게 물려줄 또한채의 아파트'를 걱정하기보다는 아파트값 폭등으로 제집 장만이 힘들어진 자녀 또래의 젊은이와 서민들을 위해 고심해야 마땅하나, 이들에게선 그런 공인 의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떵잉차오 여사의 유훈

오래 전인 지난 1992년 7월11일의 일이다. 중국인들이 지금도 가장 존경하는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의 부인 떵잉차오(鄧潁超) 여사가 별세했다. 생전에도 검박한 생활로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떵잉차오 여사는 다음과 같은 유훈을 남겨 중국인들을 숙연케 했다.

“내가 죽으면 일체의 장례식이나 추모행사를 하지 말고, 내 유해는 의학실험으로 해부한 뒤 화장해 그 재를 조국의 산하에 뿌려 달라. 이는 남편 생전에 약속한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국가소유인만큼, 저우언라이와 내가 살던 집이라 하여 기념관 등으로 보존하지 말고 인민에게 돌려주라."

떵잉차오 여사는 특별히 자신의 친인척에 대해 엄한 부탁을 했다.

"남편 친척이나 나의 혈족이라 하여 조직원칙이나 기율에 벗어난 배려를 하는 것은 지하에 있는 저우언라이나 나에 대한 모독이다.”

물론 떵잉차오 여사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황태자당'이라는 말도 있듯, 중국 관료나 정치권 인사들 사이에도 '내자식 챙기기'는 존재한다. 그러나 중국에는 떵잉차오 여사 같은 지도자가 있기에 있기에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이다.

'내자식 챙기기'에 여념없는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깊게 곱씹어볼 대목이다.
박태견 대표/편집국장

댓글이 1 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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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의 결론은?
    이헌재 졸라리 싫다,는 이야기로구만.
    뭘 빙빙 돌려서 이야기하냐?
    그런데 이런 기사가 헤드라니
    수준이 훤히 보인다.
    이제 공부 좀 하고 기사 질 좀 업그레이드하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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