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서남표, 세계 어느 대학에 '징벌적 등록금' 있나"
"성적장학금을 내거는 대학들은 다음 레벨의 대학들"
이 교수는 이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이같이 반박한 뒤, "우리나라 대학과 미국 대학에는 '성적 장학금'이란 것이 있다. 이런 성적 장학금은 이른바 ‘톱 스쿨’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톱 스쿨’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모두 우수하기 때문에 이런 장학 조건을 내걸 필요가 없다. 이런 성적 장학금을 내거는 학교는 대체로 말해서 그 다음 레벨의 대학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미국에서도 하버드, 예일, MIT 등 사립 ‘톱 스쿨’에는 성적 장학금이 없다. 입학생이 모두 우수하기 때문에 성적 장학금으로 학생을 유치한다는 것 자체가 논센스"라며 세계 일류를 표방하는 서 총장을 거듭 힐난했다.
그는 '서남표 개혁'을 전폭 지지해온 보수언론들에 대해서도 “'KAIST 같은 엘리트 영재 교육만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언론도 있지만, 그런 언론일수록 대학을 중퇴한 빌 게이트와 스티브 잡스가 풍부한 상상력을 갖게 되어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을 창업했고, 그렇게 해서 인류 역사를 바꾸었다고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꼬집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KAIST 사태’를 보면서
KAIST 학생들의 연쇄 자살로 인해 일각에서 사퇴 요구가 나오고 있음에도 서남표 총장은 “자신도 미국에서 공부할 때 그랬다”는 등 전혀 후퇴하는 기미가 없어 보인다. 과학 교육에 대해선 나는 잘 모르니까 무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KAIST의 이른바 ‘징벌적 등록금’은 아마도 전 세계에 유례가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 대학과 미국 대학에는 '성적 장학금'이란 것이 있는데 이를 영어로 ‘merit-based scholarship’이라고 부른다. 이런 장학금에는 학점 평점 유지가 장학금 조건으로 붙어 있는데, 대개 B학점 수준이다. 이런 성적 장학금은 이른바 ‘톱 스쿨’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톱 스쿨’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모두 우수하기 때문에 이런 장학 조건을 내걸 필요가 없다. 이런 성적 장학금을 내거는 학교는 대체로 말해서 그 다음 레벨의 대학들이다. 우리나라에선 중앙대학교를 위시해서 한양, 경희, 건국 등에서 그런 장학제도를 볼 수 있다.
미국에서도 하버드, 예일, MIT 등 사립 ‘톱 스쿨’에는 성적 장학금이 없다. 입학생이 모두 우수하기 때문에 성적 장학금으로 학생을 유치한다는 것 자체가 논센스다. 이런 대학이 주는 장학금은 ‘경제적 이유에 근거한 장학금’인데, 영어로 ‘need-based scholarship’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사립 ‘톱 스쿨’에 지원할 때는 성적 등 입시 자료와 함께 학비 감당능력에 관한 진술서를 제출한다. “지원자가 연간 얼마의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으며 그 외는 대학이나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써 내는 것이다. 학교는 입학 여부를 결정할 때 지원자의 학비 조달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지원자의 성적 등 입시 요소만 검토한다. 입학을 허가하고 난 후에 개개 입학생에게 어느 정도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 줄 것인가를 판단해서 자체 기금과 정부의 대여장학금 등을 주선해 준다. 이렇게 해주기 때문에 하버드와 MIT에 입학한 학생들이 학비가 없어 학교를 못 다니는 경우는 없다.
하버드, 예일, 컬럼비아 등 유명사립대학들은 특별한 요소를 고려해서 입학을 허가하기도 하는데, 앨 고어가 하버드를 그리고 조지 W. 부시가 예일을 입학한 것은 그런 케이스라고 생각되고 있다. MIT 같은 이공계의 공부는 ‘살인적’이라서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도 나오고, 간혹 자살을 하는 학생도 생긴다.
이러한 장학제도 때문에 미국의 톱 레벨 사립대학은 부유층 수재와 가난한 집 천재, 그리고 유력가문 자제들이 다니게 되어 있다. 나는 그래서 이런 유명 사립대학 학생들이 과연 인성적으로 무난한지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생각을 하는 편이다. 만일에 내가 미국에서 대학 인문학부를 다시 다닌다면 차라리 좋은 주립대학을 다니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의 주립대학은 그 주(州)의 주민인 경우에는 학비가 싸기 때문에 돈이 없어 대학을 못 다닌다는 말은 나올 수가 없다.
아무리 ‘과학영재’가 국가적 자산이라고 하더라도 과연 국민세금으로 전액 지원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무료로 교육을 시키는 경우는 사관학교 같은 경우에 국한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런 경우는 학비가 무상인 대신에 의무 복무 조건이 붙는다. 반면 과학기술인재는 그러한 의무가 없기 때문에 그것이 과연 ‘형평의 견지’에서 타당한지 냉정하게 생각해 볼 일이라고 생각한다.
“KAIST 같은 엘리트 영재 교육만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언론도 있지만, 그런 언론일수록 대학을 중퇴한 빌 게이트와 스티브 잡스가 풍부한 상상력을 갖게 되어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을 창업했고, 그렇게 해서 인류 역사를 바꾸었다고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국민세금으로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되고, 영재교육은 절대적으로 국민세금으로 해야 한다는 논리도 조금은 그렇다.
쿠퍼 유니언
미국 뉴욕시 맨해튼 한 복판에는 ‘쿠퍼 유니언’(Cooper Union)이란 특이한 대학이 있다. 남북전쟁이 발발할 즈음에 생긴 이 학교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학교라고는 다니지 못했지만 사업을 일으켜서 성공한 피터 쿠퍼가 사재를 털어서 세운 것이다. 쿠퍼는 자기와 같은 가난한 학생들이 학비 걱정을 하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장학기금을 마련해 놓아서 오늘날에도 이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전원이 학비를 면제받는다. 쿠퍼 자신도 노예해방론자였고, 1860년 초에 링컨이 노예해방을 주장하는 유명한 연설을 쿠퍼 유니언 강당에서 한 바 있다. 쿠퍼 유니언의 입학경쟁은 매우 치열하며, 학교 평가도 대단히 좋은 편이다. 다만 뉴욕은 주거비 등 생활비가 비싸기 때문에 학비가 무료라고 해서 모든 것이 공짜는 아니다.
하지만 “쿠퍼 유니언에 다니는 학생들이 과연 행복한가”는 별개 문제다. 우리 생각 같으면 쿠퍼 유니언에 입학이 되면 당연히 거기를 다닐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쿠퍼 유니언은 맨해튼에 있는 건물 몇 개가 학교의 전부라서 캠퍼스가 없고, 미식축구 같은 대학 운동경기도 없어서 대학생활은 무미건조하다. 또한, 학생들이 등록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불평도 있다. 그런 쿠퍼 유니언이지만 성적이 조금 떨어졌다고 등록금을 내라고 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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