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한국의 궤멸을 원할 지도..."
<뷰스 칼럼> 한나라의 '전쟁 불사론'과 서방금융의 '중복과잉 해소론'
전쟁 발발 직전까지 갔던 지난 94년 1차 북핵위기 때 상황도 이런 주장의 한 근거가 되고 있다. "당시 유엔 안보리의 제재 움직임이 나타나니까 처음에는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북한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하며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했으나, 제재의 수위와 압박 상황이 강하게 돌아가자 안보리의 제재 분위기를 정확히 이해하고 북한은 미국이 요구하는 사찰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들고 나왔다." 전재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의 17일 말이다.
이렇듯 한나라당 일각의 '전쟁 불사론'은 나름의 논리와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에서 갈파했듯 "본디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이다. 그런 면에서 한나라당 일각에서 '전쟁 불사론'이 나오는 것 자체를 감성적 차원에서 비난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북한이 지금 핵무기라는 극한적 수단을 동원한 치열한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나라당의 '전쟁 불사론'이 과연 이 시점 한국의 국익, 한국의 생존을 위한 최고-최후의 선택인가이다.
"남한이 초토화하면 서방경제는 절대호황 맞이"
지난 십수년만 돌아보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전쟁 불사론'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94년 1차 북핵위기때도 우리 국민들만 몰랐지, 미국은 주한미군 군속까지 철수시킨 뒤 대북공격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었다. 2000년대 들어 미국에서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이 집권한 후에도 여러 차례 국내외 보수세력들 사이에서 전쟁 불가론이 나돌았었다.
'전쟁 불사론'이 나돌 때마다 사실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곳은 국내 재계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일이다. 다음 순서는 북한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이때 많은 이들이 "이라크에는 석유가 있으니 쳐들어가지, 북한엔 뭐가 있다고 미국이 막대한 물자와 인명을 희생하며 쳐들어가겠느냐"고 일축했다.
하지만 국내 재계 생각은 달랐다. 국내 대기업 산하연구소의 한 책임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국제금융계 일각에선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세계경제가 앞으로 십수년간 절대호황을 누릴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한국에서 전쟁이 나면 삼성전자도, 현대자동차고, 현대중공업이고, 포스코도 모두 한순간에 초토화될 것이다. 한국은 말 그대로 석기시대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세계경제는? 물론 한국 증시 등에 투자한 외국자본도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피해는 일시적이고, 시간이 흐르면 도리어 엄청난 반사이익으로 작용할 것이다. 세계 주요증시가 폭등하면서 세계 각국에 고르게 투자한 국제금융자본들은 막대한 투자수익을 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왜 미국 등 세계 주요증시가 폭등할까. 세계경제의 최대 뇌관인 '중복과잉' 문제가 일거에 해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GM 등 미국의 빅3는 밀려드는 한국-일본차들 때문에 파산 직전이다. 소니 등 일본 전자업체들은 삼성전자 때문에 죽을 맛이고, 일본 조선소들도 현대중공업 때문에 마찬가지다. 이런 마당에 한국의 대기업들이 잿더미로 변한다면, 이는 서방의 경쟁기업들에게는 더없는 낭보가 될 것이며 그날부터 이들 기업의 주가가 폭등하면서 서방경제는 십수년간 더없는 절대호황을 구가하게 될 것이다. 본디 1, 2차 세계대전이라는 것도 중복과잉 문제 때문에 발발한 게 아니던가.
이는 아무리 북한과 극한 대치를 하고, 북한이 하는짓이 괘씸하더라도 결코 우리 입에서 '전쟁 불사'라는 말이 나와선 안되는 이유이다. 우리 스스로 서방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천치 바보짓을 해선 결코 안된다."
이것이 당시 일부 보수세력의 '전쟁 불사론'을 바라보는 재계의 냉랭한 시선이었고, 지금도 변함없다.
제2차 한국전쟁의 결과는?
미국 네오콘들의 '전쟁 불사' 발언이 한창이던 지난해초 정부 고위관계자에게 들은 얘기도 있다. 당시 언론에는 "남북간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4백50여만명의 한국 민간인이 사망할 것"이라는 미국측 시뮬레이션 결과가 공공연히 보도되던 삼엄한 시절이었다. 이 관계자는 "시뮬레이션 결과는 사실"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덧붙였다.
"남북간 전면전이 발생하면 수백만명이 죽는 것은 물론, 한국의 주요산업시설이 모두 궤멸적 타격을 입는 것으로 나온다. 최소한 한국경제가 10년이상 전으로 후퇴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때를 대비한 시나리오도 작성돼 있다.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관으로부터 1천억달러 정도를 빌어 한국경제를 재건한다는 것이다. 세계은행 등이 돈을 빌어준다 할지라도 재건까지는 피를 말리는 고난의 세월을 거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때 기자 생각은 달랐다. '과연 세계은행 등이 뭣하러 한국에 돈을 빌려줄까'라는 근원적 의문 때문이었다.
'세계경제의 뇌관인 중복과잉 문제를 해소했는데 굳이 한국에 돈을 빌려줘 또다시 중복과잉 문제를 재연시킬 필요가 있을까.
IMF사태때 긴급구제금융 5백억달러를 잠시 빌리면서도 온갖 불평등 조약에 시달려야 했는데, 1천억달러를 빌린다면 지금의 기간산업도 모두 외국에게 내줘야 하지 않을까.
만에 하나 세계은행 등이 돈을 빌어준다 할지라도, 지금처럼 기술력이 분초를 다퉈 진화하는 시대에 과연 한국이 치열한 국제경쟁을 뚫고 나가 오늘날과 같은 국가경제 재건에 성공할 수 있을까.'
도달한 결론은 단 하나,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이런 상황이 도래해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지금 부시는 일본의 엔화 약세를 묵인하고 있다"
17일 오전 한 경제전문가와 전화 한통을 했다. 국제금융계 움직임에 정통한 금융기관 최고책임자다. 그는 작금의 사태를 대단히 우려하고 있었다. 특히 전날 원-엔 환율이 8백원선이 무너지며 7백원대에 진입한 것을 크게 걱정했다. 그는 이같은 기형적 원-엔 환율을 "부시의 작품"으로 해석했다.
"일본이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에 절대지지를 천명한 이래 미국정부는 미국의 무역적자가 연일 사상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위안화에 대해서만 절상압력을 가할뿐 일본 엔화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다. 미국 정책에 적극 호응하고 있는 있는 일본에 대한 부시의 선물인 셈이다.
그결과 엔화는 달러에 대해 1백20엔까지 오른 반면, 원화는 위안화 등에 연계되면서 거의 제자리를 유지하면서, 원-엔 환율이 7백원대에 진입하기에 이르렀다. 해외에서 한국제품보다 싼 일본제품이 나올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런 추세가 고착되면 일본제품과 경쟁하던 중소기업들은 거의 초토화될 것이다. 현대자동차 등 일본제품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대기업들의 경우도 시간차가 있을 뿐 오십보백보다. 현대차보다 싼 도요다차를 사지, 현대차를 살 외국 소비자가 어디 있겠나.
부시 대통령은 한국에 대해 대북제재 동참이라는 군사적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엔저(低) 묵인'을 통한 경제적 압박을 동시에 가하고 있는 양상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미국의 군사압박보다 경제압박이 더 가공스럽다. 한국의 근간을 밑둥부터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처한 상황은 이처럼 삼엄하다. 기분 내키는대로 "전쟁 불사"를 외치거나 정반대로 "우리끼리"를 외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우리의 생존을 결정짓는다는 긴장감으로 상황에 대처해 나가야 하는 살얼음판 상황인 것이다. 특히 의원이나 정부 관계자 등 공인들일 수록 이런 자세가 더욱 요구된다. 주변국 모두가 자칫 우리가 치명적 실수를 할 경우 박장대소할 것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외교를 잘하는 민족이 돼야 한다"는 최근 김대중 전대통령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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