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비리 등 사학재단의 일련의 비리를 폭로한 후 학교에서 쫓겨난 동일여고 조연희(국어. 42) 교사는 14일 오후 7번째 거리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한용운 님의 ‘님의 침묵’의 한구절을 낭독하고 있었다.
교육부 ‘해임’ 결정 통보 뒤 다시 거리에선 동일여고 파면교사들
그에게 이 날 거리 수업은 다른 때보다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지난 11일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조 교사를 비롯한 이 학교 음영소(체육. 48), 박승진(체육. 48) 교사 등 3명의 교사들이 낸 부당파면소청심사에 대해 조 교사에게는 ‘해임’을 나머지 두 명의 교사들에게는 ‘정직 3개월’ 판정을 내렸다.
앞서 법원은 지난 달 25일 이들 3명의 교사들에게 조연희 교사에게는 집시법 위반 혐의로 벌금 50만원을, 음영소ㆍ박승진 교사에게는 무죄를 결정했다. 법원은 학교측이 ▲명예훼손▲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들 교사 전원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럼에도 소청심위는 이들 교사 전원에게 ‘유죄’ 취지의 소청심사 결정을 내린 셈이다.
사실상 ‘영원히 학교로 돌아가지 말라’는 교육부의 통보 이후 가지는 첫 거리 수업. 조 교사에게 이번 거리 수업 주제로 ‘님의 침묵’을 선택한 까닭을 물었다.
“나를 믿고 나의 복직을 위해 마음속으로 응원해 준 아이들이 슬퍼할까봐 한용운 님의 ‘님의 침묵’을 선택했습니다. 님의 침묵에서 님과의 이별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기 때문이죠.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아이들과 나도 다음을 기약하며 슬퍼하지 말자는 의미에서 이 시를 골랐습니다.”
학생들이 세 명의 퇴출 교사들에게 보낸 엽서 편지 사이로 조연희 교사가 거리 수업을 하고 있다. ⓒ뷰스앤뉴스
“선생님, 우리들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워주세요” 아이들 눈물의 편지
동일여고 재학생 80여명은 이 날도 학교 부근 골목 길에서 조 교사의 수업을 경청하고 있었다. 조 교사 뒤편으로는 아이들이 조 교사를 비롯한 3명의 퇴출 교사들에게 보내는 엽서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선생님 지금은 파면되셨지만 언젠가는 저희 곁으로 돌아오실거예요. 힘내세요 화이팅^^ -동일여고 2학년 X반 김00” “힘드셔도 파이팅! 선생님 곁에는 사랑하는 제자들이 있잖아요. 항상 웃음 잃지 마세요. -동일여고 1학년 X반 이00” “정의는 정말 꼭 언젠가 승리한다는 거 잊지마세요. -동일여고 2학년 X반 박00”
수십장이 내걸린 엽서들마다 3명의 교사들을 위한 아이들의 살가운 정이 담겨있었다.
거리 수업이 파하자 한 학생이 거리수업교실을 정리하던 음영소 교사에게 음료수를 건넸다.
“선생님. 우리들 잊으면 안돼요. 항상 저희가 있다는 거 잊지 마시고 저희들을 위해서라도 꼭 싸워서 이겨주세요. 선생님 사랑해요.”
음 교사는 어느새 눈시울이 빨갛게 변했다.
거리수업이 끝난 뒤 조 교사는 “소청심위 결과를 받고 ‘학생들을 다시 만나러 학교로 가는 길이 이렇게 멀고 험한 길’임을 다시한번 느꼈다”며 “절망도 하게되고 눈물도 나지만 참을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희망을 말해주기 위해 ‘님의 침묵’을 거리수업 주제로 선택했는데 내가 먼저 절망하면 안되니까”라고 말했다.
조연희 교사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로부터 '해임' 결정을 받았다. ⓒ뷰스앤뉴스
교장까지 하교 지도... 거리 수업 참석 학생들 주시
한편 거리 수업이 한창이던 때 학교법인 동일학원 소속 교사들이 학생들의 하교 교통지도 명목으로 현장에 나와있었다. 그러나 동일전산디자인고 교장까지 나와 하교 교통지도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김 모 교장은 “선생들이 애들을 선동해 애들이 뭘 보고 배우겠냐”고 거리 수업을 이끄는 퇴출 교사들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또 김 교장은 지난 2003년 퇴출교사들의 재단비리 폭로와 그로인한 교육청 특별감사에서 재단비리가 확인된 것과 관련해서도 “급식비용이 남아 적립해 두었다가 나중에 아이들을 위해 쓸 것이었다”고 말했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인가? 교원탄압위원회인가?” 소청심위 비난
한편 ‘사립학교개혁국민운동본부’와 ‘동일학원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소청심위의 이번 결정을 강력 비난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재단의 비리를 폭로하고, 교육청의 특별감사를 끌어내기까지 세 분 선생님과 동일학원의 모든 선생님들의 용기 있는 결단에 기인한 것”이라며 “그 과정에 피치 못하게도 실정법을 위반한 부분(천막설치 등 집시법위반)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그것은 법원에서도 판단하였듯이 공익을 위한 행동으로 위법성이 조각된 것”이라며 “그런데도 이런 법원의 결정을 한 순간에 뒤엎어 버린 소청심사위의 결정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며 교육자의 양심을 저버린 만행”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들은 "도대체 선생님들을 보호하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인지 선생님들을 탄압하는 교원탄압위원회인지 분간이 안된다"고 소청심위를 비꼬기도 했다. 이들은 “학교를 희망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전제조건은 임시이사 파견”이라며 교육청의 동일학원 임시이사 파견을 강력 주장했다.
시민단체 회원들은 교청심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결정에 대해 소청심위를 강력 비난했다. ⓒ뷰스앤뉴스
"현판을 가려라" 소청심위 과잉 대응
한편 이 날 기자회견 직전 소청심위 직원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간에는 가벼운 실랑이가 있었다. 소청심위 측에서는 소청심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것을 막으며 시민단체들이 가지고 온 플랭카드를 소청심위 주위에 걸지 말것을 종용했다.
이에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플랭카드를 들고서 기자회견을 할 건데, 웬 과잉 행동이냐"며 따졌다.
잠시 뒤 기자회견이 시작되자 소청심위 일부 직원들은 공익근무요원들을 시켜 소청심위 현판을 가리도록 했다. 카메라에 찍히지 않도록 하려는 사전 포석(?).
소청심위 현판을 가리고 서 있던 3명의 공익요원에게 '거기 왜 서있나'고 물어보자 한 공익요원은 "나도 잘 모르겠다"며 웃었다. 이들 손에는 신문지와 테이프가 들려있었다. 현판 일부를 아예 신문지로 가리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기자회견이 진행되자 공익요원들은 현판을 둘러싸고 서 있기만 했을 뿐 현판 신문지 부착은 실행에는 옮기지 않았다. 현장의 한 소청심위 관계자는 공익요원들을 향해 "됐다"며 알 수 없는 신호를 보내자 이들 중 한명이 슬그머니 신문지와 테이프를 들고 소청위 안으로 들어갔다.
소청심위 관계자들은 공익근무요원들을 시켜 언론에 소청위 현판이 나오지 않도록 가리게 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뷰스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