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20년전으로 대폭락. 농민들 빚더미에
정부의 쌀소비 촉진 정책에도 쌀소비 계속 급감
경남 고성군에서 벼농사를 짓는 김모(52) 씨는 최근 농번기를 맞아 다시 1년 농사를 시작했지만, 논에 나가 뚝 떨어진 쌀값을 생각하면 무거운 마음 뿐이다.
그는 "평생 농사를 지어왔지만 이렇게 쌀값이 계속 떨어지는 건 처음 겪어본다"며 "올해는 이상기온으로 시설농가들도 피해를 많이 본 터라 최근 농가 분위기가 어수선 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최근 쌀 재고 누적과 소비 감소 등으로 쌀값이 폭락하면서 농가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상황이 나빠지자 농민단체들은 농가 지원을 위한 조례제정을 청구하는 등 집단행동에 돌입하기도 했으며, 정부와 지자체도 쌀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나섰다.
◇쌀 재고 계속 늘어…"가격 20년전 수준" = 5일 각 지자체와 지역농협 등에 따르면 지역별 쌀 재고 현황은 지난해에 비해 큰 폭으로 늘어났다.
대전ㆍ충남의 경우 정곡 기준으로 3월말 재고는 20만6천800t으로 지난해 같은시기 15만4천t에 비해 34.3% 증가했다.
경기도에서도 재고량이 12만3천228톤을 기록해 전년 동기 1만6천톤(14.4%) 늘어났으며 경북 지역도 1년새 2만9천t 늘어난 15만2천t으로 조사됐다.
농협이나 민간업자 등이 보유한 쌀 재고량도 계속 늘어 전남의 경우 3월말 기준으로 작년 12월말에 비해 4개월 새 7천t이 증가한 16만t의 재고량을 기록했다.
이처럼 쌀 재고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재고미를 헐값에 계속 방출하면서 쌀값 하락세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80kg(정곡) 1가마의 도매 가격은 작년 이맘때 쯤 15만4천원이었으나 작년말 13만4천원 으로 하락했고 3월말 현재 12만원대까지 낮아진 상황이다.
특히 농민들이 RPC에 내놓는 쌀 산지출하가격은 현재 20㎏당 2만9천500만원에 거래되면서 '마지노선'이었던 3만원대도 이미 무너졌다.
이와 관련해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경남연맹 관계자는 "지금 쌀값은 20년 전 수준이며 거의 `쌀값 대란' 상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문제는 재고가 쌓여 손해를 본 농협 측이 올해 수확기에는 더 싼 가격에 구입하려고 하면서 가격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점"이라며 "안 그래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던 농민들에게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농민단체, 지자체 대책마련 나서 = 이렇듯 재고 누적과 쌀 가격 하락으로 농가들이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자 농민 단체들도 대응에 나섰다.
전농 경남연맹 등 경남지역 농민단체들은 최근 농가에 대한 경영안정자금 지원을 위한 조례 제정을 경남도에 청구했다.
전농 경남연맹 측은 "쌀값 하락으로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정부와 지자체는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농민들이 쌀값대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조속히 조례를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다른 지역 농민단체들도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 논의를 진행 중이다.
정부와 각 지자체들도 벼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고충이 클 것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달 말 쌀값 안정을 위해 2009년산 쌀 20만t을 추가로 시장에서 격리하기로 했다.
우선 5월에 적정한 시장 가격을 반영해 10만t을 먼저 매입한 뒤 쌀값 변동 추이를 봐가며 나머지 10만t을 추가로 사들이는 방식으로 가격을 조절하겠다는 의도다.
경기도는 경기미 판매 촉진을 위해 단위 농협과 시.군 등의 판매실적, 소비처 발굴 등을 평가해 총 5천800만원의 시상금을 주는 인센티브제를 시행하고 있다.
경북도는 쌀국수 산업을 육성하거나 막걸리용 쌀을 재배해 소비 촉진을 꾀하고 있으며 전남과 충남 등 다른지역에서도 농협과 민간 RPC 등이 다양한 쌀 판촉행사에 나서고 있다.
충남농협 관계자는 "정부에서 쌀을 추가로 매입하고, 각급 단체에서 지금처럼 쌀 소비촉진에 나선다면 수확기 이전에 상당한 재고를 소진할 수 있다"며 "쌀값의 추가하락은 어떤 식으로든 저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비해 전남농민회 정영석 사무처장은 "전국 재고미가 작년 80만t에서 올해 150만t으로 늘었는데도 정부가 내놓은 것은 고작 20만t 격리뿐"이라며 "대북지원 등 긍정적인 조치가 나오지 않는 한 쌀값하락은 올해 가을 쌀 수확기에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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