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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자 폭행에 장애인 차량까지 몰수

[폭발직전의 대한민국] <3> 불법채권추심에 시달리는 서민들

#사례① 채무 사실 회사에 알려지자 해고당해

강원 춘천시에 거주하는 김지훈(가명. 64)씨는 IMF 환란으로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난 뒤 최근까지 자동차정비공장에서 경비일을 하며 근근히 살아왔다. 그러나 김 씨는 지난 2002년부터 S카드사, L카드사, K은행 등을 통해 빌려 쓴 5천만원을 갚지 못해 밤낮으로 채무 독촉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1천만원을 대출받은 L카드사는 다니던 회사에 까지 전화해 “빚을 갚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 사실을 안 인사과장은 김 씨에게 당장 회사를 그만 둘 것을 요구해 김 씨는 하는 수 없이 3년간 경비를 보아왔던 이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났다.

김 씨는 이후 다시 춘천 일대의 한 공장 경비로 취업했지만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또다시 해고됐다. L카드사 채권팀 직원은 다시 김 씨의 새 직장에 전화를 걸어 김 씨의 채무사실을 회사 관계자에 알렸다.

이 사실을 알게된 인사과장은 어려운 형편의 김 씨의 처지를 감안 이를 눈감아 주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L카드사의 독촉 전화가 회사로 걸려오는 바람에 회사 임원이 이를 알게됐고 끝내 김 씨는 해고처리됐다.

김 씨는 “어떡하든 일단 내가 월급이라도 벌어야 빚을 갚을 게 아니냐”며 “무조건 빨리 갚으라고 동네 방네 소문 다 내는데 내가 무슨 수로 일을 할 수 있겠냐”고 하소연했다. 김 씨는 현재 월세 12평짜리 영구임대아파트(보증금 4백만원. 월세6만원)에 거주하고 있지만 이 아파트 보증금 마저도 얼마 전 채권사들이 법원에 압류 신청을 내 이제는 거리에 나앉게 될 날만 기다리고 있다.

거리 곳곳에 나부끼고 있는 대출 광고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사례② 빚 안갚는다는 이유로 백주대낮에 동네 끌고 다니며 폭행

경북 구미에서 택시 운전을 하고 있는 이정호(가명. 45)씨는 아직도 두 달 전 일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 잠을 이룰 수 없다. 이 씨의 아내는 5년 전, 집 근처에 작은 슈퍼 하나를 열었다.

슈퍼를 여는데도 만만찮은 돈이 들었다. 보증금 1천3백만원에 필요한 자본금만 3천만원. 여기다 권리금 2천5백만원과 매월 임대료만 70만원이 들어갔다. 이씨 부부는 이 은행 저 은행 전전하며 최대한 대출을 받았으나 딱 1천만원이 부족해 할 수 없이 사채 1천만원을 끌어쓰기로 했다.

그러나 5년간 운영한 슈퍼는 불경기 탓에 빚만 늘어났다. 문제는 사채였다. 이 씨는 지난 3년동안 사채 이자로만 원금의 4배에 가까운 3천6백만원을 사채업자에게 상납하다시피했다. 아직도 원금 1천만원은 그대로 채무로 남아있다.

사채업자는 이자가 밀리는 날이 잦아지자 이 씨 부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수시로 건장한 남자들이 슈퍼에 찾아와 빚 독촉을 하는통에 그나마 슈퍼를 찾는 단골까지도 험악한 분위기에 눌려 발길을 끊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 6월 사채업자는 직접 슈퍼를 찾아와 이 씨 아내의 허리춤을 부여잡고 “빚을 안 갚을거냐”며 백주대낮에 동네를 이리저리 끌고다녔다. 하지만 이 씨는 택시운전 일 때문에 이 사실을 전해들을 길이 없었다. 이 씨는 일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와 몸저누운 아내를 보고서야 아내가 당한 사실을 알게됐다.

현재 이 씨 부부는 폭력혐의로 사채업자를 경찰에 고소한 상태지만 아내가 받은 마음의 상처는 쉽사리 치유되지 않고 있다. 결국 이 씨 아내는 최근 극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여 정신과 치료를 받고있다.

#사례③ 허위로 법원 서류 작성 후 장애인 차량까지 끌고 가

염한용(가명. 46)씨는 지난 20년동안 지체장애인(장애2급)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없는 살림 탓에 정식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다. 결혼식 한번 제대로 못한 것이 못내 미안했던 염씨는 지난해 9월, 20년만에 아내와 정식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결혼식 전 달인 지난 해 8월, 염씨 아내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염씨의 아내는 2002년 국내 굴지의 A캐피탈에 5백만원을 대출받았다. 결혼식이 있기 3~4달 전부터 A캐피탈측은 밀린 원금을 빨리 갚으라며 독촉장을 보내왔다. 그때까지 이자를 포함해 4백만원 넘게 채무를 상환했지만 아직도 2백만원의 원금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A캐피탈측은 법원에 염씨 아내가 타고다니는 승용차를 가압류신청을 냈다. 그러고선 A캐피탈은 “법원에서 경매 결정이 났다”며 장애인 아내의 다리와도 같은 승용차를 강제로 끌고 가 버렸다. 염씨의 아내는 그 후 자동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발을 헛디뎌 다리를 다쳤고, 그렇게 학수고대했던 결혼식 당일, 깁스 상태로 목발에 의지해 드레스를 입어야 했다.

그러나 염씨는 뒤늦게 A캐피탈의 조처가 불법인 것을 알았다. 장애인의 거동 목적의 자동차는 법적으로 경매에 붙일 수 없는 것. 염씨는 “그쪽(채권자)에서 법원 서류처럼 생긴 걸 들고와서 ‘경매로 넘어가게 됐다. 차 내 놓아라’ 그러기에 그런가보다 싶었지. 우리같은 까막눈이 뭐가 뭔지 뭘 알겠나? 그저 빚 못 갚은게 죄지...”라며 한숨을 쉬었다. 얼마 후 한 지역 장애인 단체는 염 씨 사연을 듣고 A캐피탈측에 강력항의했고 그제서야 업체측에서는 채권팀의 착오였다며 자동차를 돌려주었다.

금융채무사회책임연대는 지난 17일 불법채권추심에 시달리던 채무자들과 연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불법채권추심 관련 인권침해 진정을 제기했다. 이들이 인권위에 도움을 호소한 것은 사금융피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금감원이 되레 이들의 진정 사실을 채권기관에 알리는 등 관계 당국이 서민들의 금융피해를 막아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뷰스앤뉴스


“도둑이야! 신고했더니, 되레 경찰이 도둑에게 ‘신고 들어왔다’ 알려줘”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2004년 12월 현재 신용불량자는 3백61만명에 이른다. 지난 해부터는 신용불량자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금융채무불이행자로 통칭해서 부르며 당국에서도 공식 통계를 발표하지 않는다. 다만 가장 최근의 신용불량자 재경부 공식 통계는 지난 해 8월 국정조사에서 밝힌 3백21만명 수준.

재경부는 올 들어 개인회생제도와 파산제도 활성화로 인해 금융채무불이행자 수가 2백60만명 선으로 줄어들었다고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재경부 추산대로라도 금융채무불이행자들의 부양 가족들을 전부 합산하면 어림잡아 대한민국 국민의 약1천만명 가량이 과중채무에 시름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사채업자나 금융기관의 불법채권추심 행위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채권자에게 독촉전화를 하거나 심할 경우 폭언ㆍ폭행으로까지 이어지는 이같은 채권추심 행위는 엄연히 불법이다. 가족ㆍ친지를 포함해 제3자에게 채무사실을 알리는 것 또한 불법이다.

채권추심행위를 규율하고 있는 현행 ‘신용정보의이용및보호에관한법률’(신용정보법)은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거나 ▲채무자의 채무에 관한 사항을 정당한 사유없이 그의 관계인(채무자 친족ㆍ직장동료 포함)에게 알리는 행위 ▲심야방문 등 사생활 침해 행위(동법 26조) 등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서민층을 상대로 한 불법채권추심행위는 좀처럼 시정되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1년 4월부터 2005년 3월까지 사금융 피해로 접수된 신고건수만 총 1만3천4백44건이다. 이 중 29%는 대기업 카드사ㆍ저축은행 등과 같은 제2금융권과 제3금융권으로 불리는 등록대부업체로부터 받은 피해였다. 특히 신고 건수의 16%는 불법채권추심이 차지했고, 29%는 고금리에 따른 것이었다.

법이 있어도 이를 운영하는 당국이 단속에 손을 놓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금융감독원의 태도다. 지난 달 11일, 불법채권추심행위에 시달리던 피해자 12명은 ‘금융채무사회책임연대’의 주선으로 금융감독원에 집단 진정을 제기했다.

그러나 금감원에서는 이들 진정인들의 민원 사실을 채권회사에 이첩했다. 결국 이들 채권사들은 협박과 회유로 이들 진정인들의 진정 철회를 요구했다. 불법채권추심 피해를 신고받는다는 금감원이 오히려 채권사들에게 채무자 동향 정보를 알려준 꼴이 돼버린 것이다.

법원 서류 형식을 띤 계고장. 최근 대기업 카드사들이나 신용정보기관과 같이 채무를 대행하는 기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문제가 공문서 위조다. 이들은 마치 법원에서 날라온 서류 인냥 꾸며 채무자에 심리적 압박을 가한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집단 진정을 주도한 김인수 금융채무사회책임연대 대표는 “불법채권추심에 시달리는 금융피해자들이 경찰(금감원)에 신고했는데 오히려 경찰이 피의자(불법채권추심 채권사)에게 신고 내용을 알려준 것과 같다”며 “이런 코미디가 어딨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금감원 뿐만 아니라 법집행을 담당하는 경찰 역시 불법채권추심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 동작구에서 사는 김준형(가명. 52) 씨는 “지난 달, 남산만한 건달들이 우리 집에 찾아와 빌려간 돈 갚으라고 멱살을 잡고 위협하고 갔다. 그래서 경찰에 무단침입과 폭력행위로 이를 신고했더니 경찰이 ‘아저씨가 빚을 낸 건 맞지 않느냐? 빚부터 갚으라. 안그러면 해결 안난다’는 말만 들었다”고 푸념했다. 정책 당국도, 이를 집행하는 공권력도 일단 빚 문제에 있어서는 빚을 갚지 않는 채무자 쪽에 ‘무한 책임’을 묻는 것이 애석한 작금의 현실인 셈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고금리, ‘이자제한법’ 부활 절실

하지만 불법채권추심을 유도하고 서민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로는 연 200%에 달하는 고금리가 꼽힌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해 10월부터 올 2월까지 사금융 이용 경험이 있거나 이용하려는 일반인 5천1백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돈을 빌린 사람 중 75%이상이 정부의 이자 상한율( 연 66%, 이 이상을 초과하는 이자율은 무조건 불법이다)보다 더 높은 금리로 돈을 빌린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설문조사를 토대로 추정한 사금융의 평균금리는 무려 연 204%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나마 2004년 같은 조사(연 228%) 보다 수치가 약간 낮아졌다는 데에서 위안 아닌 위안을 찾아야 할 지경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법무부는 지난 1998년 폐지됐던 이자제한법(연40%로 이자상한선을 제한하는 제도) 부활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재경부를 비롯한 금감원, 재계에서 이를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이들의 반대 논리는 무리하게 이자율을 끌어내릴 경우 대부업이 음지로 숨어들어가 서민 피해가 더 늘어난다는 것.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은 이같은 반대 논리에 대해 “터무니 없다”는 반응이다. 이헌욱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실행위원장은 “98년 이자제한법 폐지 전에도 이자제한법의 제한이율을 넘는 고금리의 사금융이 존재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사금융의 평균 금리는 연 24%~36% 정도로 지금의 200%대에 이르는 고금리와는 도저히 비교가 안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불법채권추심과 고금리 시장의 음성화를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 당국의 강력한 단속과 처벌로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경부-금감원-재계, ‘금융 귀족들’의 커넥션

한발 더 나아가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은 이자제한법 부활을 가로막고 서민들의 사금융 피해를 방조하는 것은 재경부-금감원-재계로 이어지는 ‘금융 귀족들’의 커넥션 때문이라는 주장을 편다.

이 본부장은 “금감원이 출범 초기부터 위치설정이 기본적으로 잘못 돼 있다”며 “금감원에 월급을 주는 곳이 어디인가? 바로 금융기관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반인들은 흔히 금감원 직원들이 국민의 녹을 먹고 사는 줄 알지만 사실은 금감원 직원들의 월급은 시중은행과 같은 금융기관들이 낸 협회비를 통해 나온다”며 “결국 금감원이 자신에게 월급 주는 사람(금융기관)의 말을 듣지 서민 말을 듣겠냐”고 꼬집었다.

이 본부장은 금감원 내 설치돼있는 ‘사금융 피해상담신고센터’ 문제에 있어서도 “진정인이 A카드사로부터 불법채권추심을 당했다고 금감원에 신고하면 A카드사에서 파견나온 상담직원이 이에 대한 신고를 접수받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제대로 민원이 처리되겠냐”고 지적했다.

또 이 본부장은 “고수익을 내는 대부업체들의 정치권과 재경부를 향한 로비는 엄청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가까운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이들 대부업계가 정계를 좌지우지 할 정도로 이들의 수입이 정치자금으로 고스란히 흘러들어간다”고 주장했다.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본부장. ⓒ뷰스앤뉴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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