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정부 탁상공론에 30만 임대아파트 부도"

[포럼] “한순간에 날아가는 주거공간, 누구 탓인가”

“정부의 정책으로 지원된 임대아파트의 부도사태는 전 세계 어떤 나라에도 일어난 예가 없다. 서민들의 피땀으로 건설자본만을 살찌우는 나라가 그래도 OECD가입국으로 선진국 대열에 끼어있다고 말할 셈인가? 주거권은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 권리 중 하나이다.”

21일 오후 3시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는 입주 예정이거나 이미 입주한 임대아파트의 부도로 인해 보증금을 떼이고 길거리로 내몰릴 처지에 놓인 60여명의 입주민들이 정부의 임대아파트 정책을 맹성토했다.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과 전국부도아파트공동대책위원회,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가 공동으로 주최한 ‘부도아파트 보증금최우선변제를 위한 민생포럼’에서 부도 임대아파트 입주민들은 “정부가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민간업자에게 공공임대아파트 건설권을 내주고 나 몰라라 하는 사이 서민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성난 민심을 표출했다.

외환위기 이후 급증하기 시작한 민간 건설 공공임대아파트의 부도사태가 현재까지도 끊이지 않으면서 서민들의 주거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정부 추진한 민간건설 임대아파트 공급정책, 30만호 부도로 돌아와

민간건설 임대아파트는 정부가 지난 1994년 이래 임대아파트 공급 확대 정책을 펴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돼 10여 년간 무려 40만호가 건설됐다.

하지만 국민주택기금의 지원을 받는 임대아파트 건설사업은 대부분 영세건설업자들의 자금부족 타개책으로 활용됐고 그 결과 무리한 대출과 사업자 부도가 잇달아 2006년 현재 30만 가구가 부도 상태에 빠졌다.

21일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부도임대아파트 보증금 최우선변제 등을 위한 민생포럼'ⓒ뷰스앤뉴스


건설교통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8월 11일 현재, 부도임대주택은 5만2천3백13세대에 달한다. 2000년 이후 일부 분양전환과 임차인 경락(경매 승낙)등으로 매년 신규 부도임대주택과 잔여주택이 줄어드는 추세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수다.

정부가 뒤늦게 임대아파트의 연쇄부도를 막기 위해 지난 2005년 임차인들의 피해를 막는 이른바 ‘6.7대책’을 내놓은 결과였지만 여전히 이 기간 신규 부도 사업장은 72개 아파트, 1만2천9백52세대에 달했다.

민간건설 임대아파트의 부도와 이로 인해 길거리로 쫓겨날 처지에 놓인 서민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더욱이 국민은행, 우리은행, 농협 등 정부 수탁금융기관들이 임대사업자에게 주택건설자금을 대출해주고 사업자가 부도를 맞게 되면 근저당으로 설정된 임대아파트의 경매를 통해 기금을 회수함에 따라 입주자들은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해있다.

게다가 그나마 줄어든 부도임대주택의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부도임대아파트의 현황은 줄어들었다기보다는 ‘봉합’됐다는 쪽이 적합한 표현이다.

부도임대아파트에 대한 정부의 조치는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부도사업장 정상화를 위해 분양전환시 저리 대출 및 우선분양권 허용이고 두 번째는 부도예방 차원에서 영세업체나 사업성이 부족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대출제한을 강화하고 이미 대출된 업체에 대해서는 사후 사업추진 과정을 집중 관리하는 것이다.

부도임대주택 입주자들 “정부 대책 탁상공론, 부실대책”

정부가 지난 해 내놓은 ‘6.7 부도임대아파트 종합대책’의 핵심 조치사항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현장과는 동떨어진 탁상공론이자 부실대책이라는 것이 입주민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실제로 정부의 대책 발표 이후, 소형 공공임대아파트 중심의 부도사태가 30평 이상의 중형대 공공임대아파트의 대규모 부도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전국부도아파트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해 말부터 올해까지 전북 군산 금강골드빌 3백세대, 충남 신창 창덕아파트 2백80세대, 전남 광양 창덕에버빌 2천세대, 전남 순천 금강메트로빌 5백세대, 경남 양산 3천세대, 경기도 양주 3백20세대 등이 신규 부도를 맞았다.

또한 6.7대책에 포함된 우선매수권이 적용된 전북 군산 부향 하나로 5차 아파트의 경우에는 총 2백21세대 중 20%도 안되는 40세대를 제외하고는 1백80여세대가 높은 분양가로 인해 쫓겨날 처지에 놓여있다.

이날 포럼에서 발제에 나선 장봉화 전국부도아파트공동대책위원회 정책국장은 이와 관련 “현행법으로는 이미 부도가 난 아파트 입주민의 보증금 손실을 방지할 수 없고 임대사업자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규정도 없다”며 “임차인들이 처한 현실을 무시한 부실대책”이라고 비판했다.

장 국장은 우선 정부의 대출 지원대책의 문턱이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했다. 장 국장은 “대출신청자격에 있어서 보증금 손실을 감수하고 퇴거당한 세대에 대한 대출지원 규정이 없고 이미 전세자금을 대출한 세대는 전액 상환을 전제 조건으로 하는 등 영세민들의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입자 “높은 분양가, 입찰 가격에 우선매수권 포기 잇달아”

장 국장은 또 정부가 내놓은 대책 중 가장 실효성 있는 조항이라는 ‘우선경매권’과 관련, “경매 시 부동산 경매업자의 고가 입찰로 인해 세입자가 우선매수권을 포기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입찰보증금이나 경락보증금 또한 동일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분양전환과 관련해서도 장 국장은 “임차인의 의사와 협의 절차를 무시하고 높은 분양가를 책정해 시세보다 높은 분양가에 ‘울며겨자먹기’식의 분양을 하게되면서 채무 증대 요인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밖에도 “지방자치단체의 분쟁조정 기능이 상실되면서 분양과정에서 일반분양 및 부분매각 등의 편법 분양이 이뤄지고 심지어는 임대사업자의 채무를 떠안는 조건을 제시하는 횡포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뒤늦게 내놓은 대책들이 현행법의 허점과 현장관리의 미비로 인해 전혀 대안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의 부도임대아파트 입주민들이 정부를 향해 후속대책을 요구하며 오는 24일 전국 동시다발 거리 투쟁을 준비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차인들이 요구하는 후속대책은 우선 현재 부도임대아파트를 정부가 전량 매입하라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가 발표한 국민임대주택 1백만호 건설계획과 관련해 “임대주택을 새로이 짓지말고 부도임대아파트를 전량 매입해 국민임대주택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임대주택사업사의 고의 부도로 인해 손실한 임차보증금의 전액 보장 ▲악덕임대사업자 처벌 강화 ▲대출지원 자격기준 완화 ▲국민주택기금 대출이자 인하 ▲부도아파트 피해고발 및 지원센터 설치를 골자로 한 ‘부도아파트 처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들 피해 임차인들이 말하는 근본적인 방지책은 임대주택정책에서 ‘민간건설사’를 제외하는 것이다.

“서민 주거권은 국가의 몫, 민간으로 떠넘긴 건 방임행위”

이와 관련 장 국장은 “저소득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는 국가가 책임지고 정책을 입안, 실행해야 할 공적인 부문의 몫”이라며 “이를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사업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국가의 기능을 저버리는 방임행위”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이처럼 전국 각지에서 영세 민간건설업체들의 부도가 잇따르고 이에 따른 서민 피해자들이 양산되면서 정부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임대주택아파트법’의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4월 국회에 입법발의한 임대주택아파트법 시행령 개정안은 ▲부도임대아파트에 대한 정기 실태조사 ▲부도 임대사업자 구속 의무화 ▲부도 임대아파트 매각시 허가제 적용 등 사전 예방책을 담고 있다. 현재 이 시행령 개정안은 4월부터 국회 본회의에 계류됐지만 아직까지 통과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정부의 대책은 이전보다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여전히 임차인들이 요구하는 임대보증금 손실 보전이나 대출 지원 강화 등 현실적인 피해 보상 대책들을 충분히 담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 해 8월 22일 서울 영등포 열린우리당사 앞에서 부도임대아파트 주민들이 항의집회를 열고 있다.ⓒ전국임대아파트연합회


이와 관련 포럼에 참석한 이재평 건설교통부 임대주택팀 사무관은 “입주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임대보증금 손실 보전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며 “시행령 속에서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향후 이 문제와 함께 부도임대아파트의 정부 매입을 통한 국민임대아파트로의 관리 등을 계속해서 검토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민노당 “부도임대아파트 지원 특별법으로 사전예방, 사후피해 보전해야”

민주노동당은 이와 관련, 정부 개정안과는 별도로 ‘부도임대아파트 지원 특별법’을 추진하고 있다. 특별법은 사전예방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정부 법안과 달리 이미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의 구제 조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부도임대아파트에 대한 공정한 분양전환가격을 산출할 민주적 기구 설립 조항을 구체화하고 있다. 특히 기존의 분양전환에 있어 철저히 외면당하며 고분양가를 수용해야했던 입주자들이 참여함으로써 지나친 부담을 최소화한다.

이밖에도 경매시 입주자들의 실질적 우선매수권 행사를 위해 법원의 행정적 지원을 확대하고 고가의 경매입찰로 차액이 발생할 경우 국민주택기금으로 결손처리한 후 임대사업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도록 조치하고 있다.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은 “기존의 법안에 행정서비스만 제대로 이뤄졌어도 사실상 피해 축소가 가능했지만 그게 안되면서 브로커가 난립해 주민들이 낙찰가격을 낮추면 그들이 알맹이를 빼가는 상황이 반복됐다”며 “정부.지자체가 나서 실태조사를 실시한 이후 특별법을 통과시켜 기존의 임대아파트 사태를 종결짓고 더 이상의 부도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최병성 기자

댓글이 0 개 있습니다.

↑ 맨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