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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C사장이 '위안부결의안' 결실 맺게해

[김동석의 뉴욕통신] 댄 버튼 의원이 코리아코커스 의장이 된 사연

미국 연방의회(미국 연방 상.하원)는 ‘미국의회’라기보다는 ‘전 세계의 의회’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걸맞을 정도로 각 나라의 이익관계가 민감하게 걸려있는 곳이다. 연방의원들은 각 상임위별로 미국의 시민을 보호하고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 시키는 일에 골몰한다. 상원은 각 주별로 무조건 2명씩 모두 100명이다. 하원은 인구비례로 총 435명이다.

같은 기능을 갖고 있지만 바닥민심을 기초로 입법 활동의 제 기능은 역시 연방하원(House of Representatives)이 맡고 있다. 미국이 대단히 넓은 대륙이고 동시에 전 세계의 이슈가 걸려있기 때문에 의회는 일년 내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래서 "토요일 의원회관엔 보좌관은 없어도 의원은 일한다"란 이야기가 있다. 게다가 2년마다 선거를 치뤄야 하기 때문에 일년내내 선거운동을 겸해야 한다. 지역구 사무실은 65만 이상의 지역구민들의 민원을 챙기느라 거의 전쟁 수준이다.

그래서 의원들은 자신의 워싱턴 의정활동을 지역구 유권자들에게 알리는 일에 대단히 민감하다. 자신의 지역구내 미디어라고 하면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만사를 제껴 놓는다. 심지어 다른 나라의 정상을 만나는 자리에 있다가도 달려 나오곤 한다.

지난해 7월, 의회도서관에서 ‘독도명칭’문제가 불거졌다. 불과 3일후에 편집회의를 거쳐서 ‘독도’라는 한국식 명칭을 중간이름으로 바꾼다는 방침을 알게됐다. 정치적으로 막지 않으면 방법이 없는 그야말로 분초를 다투는 긴박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외교위원회내 거물 정치인을 겨냥했다. 그 지역 한인들의 자녀들을 50여명 동원해서 워싱턴으로 의원을 만나러 달려갔다. 현직의원을 직접 만나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의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안인 예산심의가 있음에도 해당 의원이 달려나왔다.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추진할 때도 의원들의 공통된 반응은 전달받은 서명용지가 100% 자기지역의 주민인가를 확인하고 응한다는 것이다.

우선 한인들로부터 서명을 받아서 지역별로 분리하여 해당 지역구의 의원을 접촉하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어느 한인교회로부터 53명의 결의안 촉구 서명을 받은 용지를 전달받았다. 필자는 그 서명지를 들고 워싱턴서 해당의원을 만났고, 그 의원은 자기지역의 주민을 확인하고서는 결의안에 지지하는 서명을 해 주었었다. 아주 정확한 공식이었다. 위안부결의안을 한창 추진할 때 어느 슈퍼마켓에서 만 여명 이상의 서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 후에 그 서명용지가 어떻게 분리되어 누구한테 전달이 되었는지, 그리고 어느 의원이 그것에 반응을 보였는지 아직까지 확인할 방도가 없다. 한국과 미국간 비자면제 프로그램을 추진할 때에도 필자는 국토안보위원회 위원장인 롱아일랜드의 피터 킹 의원을 만나러 갈 때에 롱아일랜드 한인회장과 동행했다. 킹 의원의 반응이 빨랐고 작동은 정확했다.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비로소 민주당이 뉴욕시를 완벽하게 석권했다. 뉴욕시 12개 연방하원 의석 중에서 유일한 공화당 의석이었던 스테이튼 아일랜드를 민주당이 차지했다. 5선의 비토 퍼셀라 공화당 의원이 지난해 워싱턴서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체포되었고, 그로 인해 숨어서 연애를 해 왔던 워싱턴의 숨겨둔 내연녀도 들통이 났다. 비토 퍼셀라 의원의 낙마로 민주당은 명실상부하게 뉴욕시의 연방하원석 12개를 완벽하게 석권했다. 스캔들로 인하여 낙마한 공화당의 비토 퍼셀라 의원은 연방하원에서 오랫동안 코리아 코커스의 공동의장을 지내왔다.

비토 퍼셀라를 대신할 코리아 코커스의 의장이 누가 될 것인가? 한국과 한국인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세계의 각 나라들은 연방의회 내에서 자신들을 대신해서 일해 줄 의원들을 그룹화 하면서 코커스를 만들고 있는데 서로 거물들을 끌어 들이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한인들이 많은 지역구를 갖고 있는 의원들을 설득해서 코리아 코커스를 구성하고 있다. 그동안 코리아 코커스의 공동의장은 LA한인타운의 다이안 왓슨(민)과 에드 로이스(공화), 매사추세츠의 마이크 ?푸아노(민), 그리고 뉴욕 스테이튼 아일랜드의 비토 퍼셀라(공화)였다. 그래서 공화당의 비토 퍼셀라를 대신할 외교위원내의 중진급 의원을 끌어 들이는 것이 목표였다.

지난 11월 하순, 공석이 된 공화당측의 연방하원 코리아 코커스의 공동의장으로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환경소위 간사인 14선의 ‘댄 버튼’ 의원이 내정되었다. ‘댄 버튼’은 하원 외교위에서 아시아쪽을 전담하고 있는 발언권이 강하기로 소문난 거물이다. ‘댄 버튼’은 연방하원 외교위원회내 23명의 공화당 소속의원중에 랭킹3위인 거물이다. 그는 1982년 인디애나주의 제5지역구에서 처음으로 연방하원에 진출한 14선의 고참 의원이다. 그의 지역구엔 한인들이 거의 없다. 한국계 기업도 없다.

그의 지역구는 아니지만 인디애나폴리스의 인디애나 주립대학에 한인유학생이 많은 것 말고는 별로 한국이나 한인들과 관계가 없다. 오히려 중국인들은 그의 지역구에 적지 않은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으며 일본계는 일본계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는 ‘댄 버튼’의원이 코리아 코커스에 동의해준 그 배경에는 특별한 스토리가 있다. 필자는 지난 1월6일 댄 버튼 의원의 초청으로 111회기 의회 개원식에 참가했었다. 버튼 의원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왜 일본도 중국도 아닌 코리아 코커스에 동의를 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2007년 1월15일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위한 하원외교위에서 청문회를 개최했다. 일본이 얼마나 잔혹하게 전쟁범죄를 저질렀으며. 특별히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는 생생한 기록과 피해자들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음에도 부정과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을 피해자 할머니들이 직접 외교위에 나와 통곡을 하며 증언을 했다. 그럼에도 대다수 공화당 소속의 의원들은 미국에 대한 일본의 중요성을 들먹이면서 요지부동이었다.

일본의 극성스런 로비의 영향이 컸다. 외교위원회 공화당쪽의 리더인 플로리다의 로스 레트넨, 그리고 인디애나의 댄 버튼 의원을 움직여야 했다. 로스 레트넨 의원은 비교적 빨랐다. 그녀는 쿠바 출신으로 전쟁범죄에 대해서나 군사파시스트의 만행에 대해서는 민감하고 단호한 입장이었다. 더구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서는 같은 여성으로써 결의안에 적극적으로 동의해 주었다.

이어 공화당 서열2위인 댄 버튼 의원을 찾아갔다. 수차례 면담신청을 했지만 번번히 거절당했다. 그를 직접 붙들어서 담판을 지으려고 의원실 앞에서 하루종일 죽치며 그를 기다렸다. 나흘째에 문앞에서 그를 만났다. 보좌관이 막았기 때문이지, 실제 그는 부드러운 사람이었고 비교적 적극적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필자는 뉴욕에서 찾아왔고 만일에 인권과 평화의 편을 들어주면 무엇을 원하든지 들어 주겠다고, 그리고 일본의 10배는 우리가 정신문명이 앞선다고 장담하면서 애걸복걸했다. 당신을 뉴욕으로 초청해서 유권자센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회발전에 기여하는지를 보여줄 수도 있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그가 결의안에 동의해 주었다.

그것은 사건이었다. 만일에 외교위에서 토론을 한다면 외교위원장 왼편의 상석에서 일본이 아닌 우리의 입장을 옹호할 것을 생각했고, 성공에 대한 확신이 섰다.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은 당해년도(2007년) 6월 26일 외교위를 통과해서 7월30일에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결의안이 통과되고 필자는 댄 버튼 의원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으며 동시에 뉴욕을 꼭 방문해 줄 것을 함께 요청하기도 했다. 빈말 정도의 인사로 그렇게 했는데 정말로 댄 버튼 의원이 뉴욕을 방문했다.

2008년 1월 어느날이었다. 갑작스런 전화를 받고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한인으로서 기업으로 성공한 K회사의 C사장님 내외를 댄 버튼 의원에게 소개를 했다. 맨해튼 한인식당에서 댄 버튼 의원의 부부와 그리고 C사장 부부와 함께 다섯이서 만났다. C 사장은 독실한 불교신자이고 그분은 불교와 관련해서 체계적으로 공부를 할 목적으로 본국의 불교학교에 입학해서 학업에 열중하는 중이었다. 댄 버튼 의원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그는 인디애나 주립대학을 신시내티 바이블 신학대학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댄 버튼 의원과 C사장은 인사를 나누고 불교와 기독교에 관련된 깊이 있는 대화를 하게 되었다.

결국 이들은 부부끼리 친구가 되었고 나중에 C사장은 댄 버튼의원의 선거 때 격려편지와 함께 정치기금까지 마련해서 보냈다. 이에 대해 버튼 의원은 정성스런 감사의 답을 보냈고 서로 좋은 친구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다. 필자는 지난 7월30일 독도명칭 변경문제와 관련해서 다시한번 댄 버튼 의원을 만났었고 버튼 의원은 C사장의 안부를 물으면서 무엇이든 자신의 역할이 있으면 나서겠다고 오히려 필자보다 적극적이었다.

지난 1월6일, 111회기 연방의회 개원식에서 댄 버튼 의원은 “ 나의 성실한 친구 C사장 ”의 안부를 물으면서 한국측에서 자신에게 코리아 코커스 의장직을 요청해 왔을 때 한국친구 C사장을 생각하면서 이를 승낙하게 되었다고 했다. 필자는 지난 2년동안 우리의 요청을 성실하게 들어준 것에 감사한다고 감사장을 전달했다. ‘댄 버튼’ 의원은 한국인들과 정말로 좋은 인연이라고 하면서 C사장이 보내준 새해인사의 카드를 보여주면서 오히려 필자에게 좋은 친구를 소개해 주었다고 고마워 했다.

사람을 대할 때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한 C사장의 역할이 한국인들과 한국에게 얼마나 큰 기여를 하게 되었는가를 생각하게 한 사건이었다. 애국적인 행위가 별도의 특별한 다른 방법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성실과 신뢰는 태산도 움직이고, 진실한 땀 한 방울이 바위를 뚫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많은 한인동포들과 고국의 동포들이 함께 나누어야 할 이야기꺼리이자 깊은 인생의 교훈인 셈이다.

김동석 소장과 C사장 부부 및 댄 버튼 의원 부부가 작년 1월 뉴욕에서 함께 만나 우의를 다지는 장면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친해진 C사장 부부 및 댄 버튼 의원 부부가 작년 1월 함께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이 지난 6일 미 의회 제111회 개원식에서 댄 버튼 의원에게 감사장을 전달하고 있다.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필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6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다. 최근에는 미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 2008년 미국 전역에서 열린 대선 현장을 모두 찾아 대선 현장을 생중계하고, 이를 한국과 한인들의 미국내 정치력을 높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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