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와 스티브 마빈, 그리고 '애널의 숙명'
<뷰스칼럼> "애널의 생명은 '시장'이 결정한다"
1
검찰이 문제삼은 대목은 지난해 12월29일자 정부가 은행 등에 환율개입을 지시하는 공문을 보냈다는 글이다. 검찰 조사가 맞다면 분명 미네르바 잘못이다. 당시 정부가 연말 환율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부심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숱한 경제기사가 같은 지적을 했다. 실제로 연초 환율은 급등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직접 '보지 못한 공문'을 보냈다고 쓴 것은 추정일뿐이지 팩트와는 거리가 멀다.
요즘 경제관료들은 '공문' 같은 증거를 절대 남기지 않으려 한다. '변양호 현상'의 산물이다. 론스타로의 외환은행 매각때 변양호 당시 재정부 금정국장은 자신의 사인을 남겼다. 주위 부하직원들이 만류했으나 변 국장은 "내 판단에 자신있다"며 개의치 않았다. 그러다 곤욕을 치루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후 관료들은 절대로 '공문 기피'다. 그런 면에서 미네르바는 결정적 실수를 했다.
신분을 여러 가지로 바꾼 것은 '위장전술' 정도로 넘어갈 문제다. 이 또한 엄격한 잣대로 보면 '과잉' 측면이 있다. 특히 막판에 월가의 파생상품 설계 참여 운운은 도를 넘어섰다. 물론 이는 검찰이 잡은 미네르바가 진짜 미네르바라는 전제하에서 하는 지적이다.
2
이 두 대목을 빼고, 미네르바를 보자. 그를 유명세 타게 만든 것은 세가지다.
서브프라임사태가 한국에도 치명타를 입힐 것이란 전망.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미국발 금융공황이 발발할 것이란 전망.
한국 주가와 집값이 폭락할 것이란 전망, 세가지다.
세가지 전망 모두 맞았다.
물론 미네르바만 이런 전망을 한 건 아니다. 미국의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같은 경우는 이미 2년전에 미국발 금융공황 발발 및 위기 전개과정을 귀신같이 맞췄다. 루비니 교수는 지난해 1월 다보스포럼에서 같은 주장을 폈다가 주류들로부터 "외계인 같다"는 등 온갖 모멸을 당했다. 그러나 지금 루비니를 대하는 세계 시선은 싹 바뀌었다. 미국의 저명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P)>는 지난해말 루비니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 오피니언 리더'로 선정하기도 했다. 루비니외 적잖은 세계석학들도 같은 우려를 했고, 국내 일각에서도 같은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이런 우려가 제기될 때, 그리고 인터넷상에서 미네르바가 같은 경고를 할 때 한국의 주류는 과감히 "NO"라고 말했다. 이들이 "NO"라고 말한 이유는 두가지로 추정된다. 하나는 위기 도래를 알면서도 세간의 위기감을 심화시키지 않기 위해서일 게다. 다른 하나는 정말로 위기가 오는 줄 몰라서였을 것이다.
한국 주류들도 자신들이 '전자'였다고 말하고 싶어할 것이다. 하지만 '후자'였던 세력도 많다는 게 객관적으로 입증됐다. 한 예로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직전일 때, <조선일보>는 리먼을 지금 헐값에 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민유성 산업은행 행장은 리먼 매수에 적극 나섰다. 하지만 리먼을 샀었다면 한국은 이미 초토화됐을 것이란 게 객관적으로 입증됐다. 한국 주류의 실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례다.
이런 한계를 보여준 주류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있기에 미네르바의 주장은 네티즌들에게 상대적으로 돋보였을 것이다.
3
미네르바 유명세가 정점으로 치닫던 시점, <신동아> 12월호가 장문의 미네르바 기고문을 실어 언론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신동아>의 놀라운 '접근력'에 경탄했다. 경쟁 월간지들은 땅을 쳤고, 기자들은 엄청 깨졌다는 후문이다. 미네르바와 어떻게 선을 댈 수 있을지, 최근까지 동분서주했다. 미네르바는 모두다 탐내던 '뉴스메이커'였다.
문제의 <신동아> 기고문에서 미네르바는 주가 500, 다우지수 5000, 집값 반토막을 단언했다. 지금 주류언론 등이 집중적으로 융단폭격을 가하는 대목이다.
지난해말 미국의 경영전문지 <포츈>은 '2009년 8개의 시나리오'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실었다. 내로라하는 경제전문가 8명에게서 2009년을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기고문을 받아 실은 것으로 여기엔 루비니 교수를 비롯해 짐 로저스, 조지 소로스 등이 모두 참여했다.
비관론이 우세한 가운데 특히 상품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 같은 경우는 "향후 2년간 신용 버블이 월가를 완전 초토화시킬 것"이라며 "현재 8,000대인 다우지수가 4,000 아래로 대폭락할 것"으로 예언했다. 그는 더 나아가 "GM의 펀더맨털은 치유불능이며 씨티그룹의 펀더맨털도 마찬가지"라며 미국 제조업-금융을 대표하는 양대그룹의 몰락을 단언하기까지 했다. 씨티그룹 등의 입장에서 보면 펄쩍 뛸 일이나 씨티가 이를 문제삼았다는 외신은 아직 접하지 못하고 있다.
4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번은 맞는다."
IMF사태 발발전 1년전 IMF사태 발발을 정확히 예견했던 대표적 비관론자였던 영국 자딘플레밍사의 스티브 마빈 이사가 했던 전망과 달리, 유동성장세로 IMF사태 1년후쯤부터 주가가 반등할 때 한 국내 애널리스트가 썼던 비아냥성 표현이다.
하지만 1997~1998년 마빈의 위세는 대단했다. 그는 1998년 5월 보고서를 통해 주가 300 붕괴를 예견했고 열흘뒤 실제로 300선이 붕괴됐다. 그의 명성은 국내외에서 대단해 홍콩의 <아시아머니>지가 아태 지역 펀드매니저 7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그는 2년 연속 '최우수 애널리스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성가를 날리던 그도 IMF가 한국에 대한 정책을 초고금리에서 저금리로 바꾸면서 돈이 증시로 몰리면서 주가가 폭등하자, 국내외 애널들의 비아냥속에 쓸쓸히 한국을 떠나야 했다.
원래 시장이란 이렇게 냉혹한 것이다. 미네르바도 '여론의 시장'에 맡겨놓았다면 어땠을까.
마빈은 유명세가 절정이던 1998년말 펴낸 책 <한국에 제2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서문에서 애널의 숙명을 이렇게 기술한 바 있다.
"한국에서는 분석의 목적과 본질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진정한 분석에는 도덕도, 동정심도, 어떤 감정도 들어설 여지가 없다. 분석가는 설득을 통하여 투자가들을 행동에 나서게 함으로써 잠시 시장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분석이 그릇된 것이라면 시장은 곧 이전 수준으로 회귀하고 말 것이다. 주가는 제 갈 길을 가게 마련이고, 분석가는 투자가들을 독려해 더 빠른 행동에 나서게 함으로써 그 과정을 촉진할 뿐이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