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영제국의 몰락 답습하고 있다"
<로이터> "19세기 파운드화 몰락 과정, 달러화 되풀이"
앨런 그린스펀 미연준 전의장은 이번 금융위기를 "100년에 1번 올까 말까한 심각한 것"이라고 말했으나, 이와 비슷한 유사한 일련의 사건, 즉 자유로운 자본이동(글로벌라이제인션), 자본이 과잉유입된 나라에서의 거품 조성과 파열, 금융위기, 중앙은행에 의한 구제는 19세기 후반 영국을 진원지로 이미 한번 일어났었다.
위기후 세계에서는 자본규제가 도입되고 국가의 경제개입이 증대되며 보호주의 물결이 몰아닥치고 두번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또 영국의 파운드화 지위는 약해지고 달러화가 대두했다.
베어링 위기와 현재의 위기
19세기 후반에 발생한 '베어링 위기'는 위기에 이르는 과정이 현재의 금융위기와 흡사하다. 그러나 중앙은행에 의한 투자은행 구제와, 금본위제라는 국제통화시스템이 당시는 존재했었다는 점은 다르다.
영국에서는 1800년대 중반에 면직물, 철강 등 주용수출품을 중심으로 국내투자가 왕성하게 행해지면 농업, 공산품 생산이 급증했다. 그러나 생산확대는 후반에 이르러 과잉 상태가 되면서 농산물, 공산품이 붕괴, 1873~1896년의 대불황에 빠져들었다.
금융 측면에서는 불황이라 자금 수요가 줄어들면서 영국국채 금리가 급락했다. 영국 지주 등 부유층과 금융기관들은 고금리를 찾아 해외증권투자에 앞다퉈 나섰다. 자본이동이 원칙적으로 자유로웠던 까닭에 저금리의 영국에서 자본유출(해외증권 투자)이 급속히 진행됐다.
주된 투자대상은 미국 및 라틴아메리카로, 특히 아르헨티나의 은행이 발행한 고금리 토지담보채권이 인기가 높았다. 돈이 넘쳐나던 영국 투자자와 자본 부족의 신흥국가를 연결시켜 주며 단단히 재미를 본 것은 당시 영국의 양대 금융파워였던 로스차일드와 베어링 브러더스 두 곳(현재의 투자은행)이었다.
영국 자금에 의존해 경제를 일으킨 아르헨티나는 거액의 외자유입으로 버블 붐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후 거품이 터지면서 아르헨티나는 외채 변제 비용이 수출의 60%에 이르게 됐다. 1889년 아르헨티나의 신규 채권 발행에 실패한 베어링 브러더스는 아르헨티나 채권을 다량 보유하고 있던 까닭에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파산 위기에 몰렸다. 이 '베어링 위기'가 발발하면서 영국채권시장은 패닉상태에 빠져들었다.
1890년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이 베어링 브라더스에 긴급 구제금융을 실시, 패닉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2차 글로벌 리세션 하의 정부개입
'베어링 사태'로 일컬어지는 제1차 글로벌 리세션(경기침체)후 세계는 자본규제를 강화하고 블록화를 추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쳐 지금의 IMF-GATT 체제를 구축했다.
1980년대 제2차 글로벌 리세션이 도래해 자본규제를 철폐하고 자유로운 자본이동이 다시 활성화되던 와중에 이번에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그리고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국가 경제개입이 진행되고 있다.
헤지펀드 제왕 조지 소로스는 "지금 시장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정부의 역할이 커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한 예로 도산위기에 직면한 GM 등 빅3는 미국정부로부터 140억달러의 추가 지원을 받는 대신 정부에 내년 3월까지 장기적인 재건계획을 제출해야 하며, 미 대통령은 빅3에 경영감시인을 지명해 파견하기로 했다.
또한 금융계에서도 구제금융을 받은 AIG를 비롯해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도 미연준의 규제감독을 받아야 한다.
미국은 지난 9월 인도의 제약회사로부터 수입하던 30개 약품에 대해 "미국의 안전기준에 맞지 않는 생산과정의 문제"를 이유로 수입을 정지시켰다. 미국의 무역상대국에서는 미국이 자국의 환경기준, 안전기준을 만족시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국제품의 수입규제가 확대될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달러화에서 유로화로
기축통화였던 영국 파운드화는 두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영국 경제기반이 취약해지자 1950년대 들어 수년간 통화위기를 겪으며 쇠락했다. 그러나 영국 파운드화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던 투자가와 국가들 때문에 명실상부하게 달러화가 기축통화가 된 것은 1960년대 들어서의 일이다.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점유율은 이미 낮아졌으며 유로의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으나, 다음 시스템, 즉 다음 기축통화로 이동할 때까지는 달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경제가 비상사태에 빠지면서 미연준은 스스로 달러화의 지위를 위협하는 선택을 잇따라 하고 있다. 예컨대 미연준은 미연준 채권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미연준법에는 통화 이외의 발행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미국재정적자가 천문학적으로 급증하면서 달러화는 퇴조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에 20세기 전반기에 파운드화와 달러화가 함께 사용됐던 것처럼 달러화가 퇴조하고 유로화가 부상하더라도 상당 기간은 두 화폐가 함께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번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스웨덴, 덴마크 등 유로권에 가입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나라들이 앞다퉈 유럽연합 가입을 서두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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