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MB,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
<인터뷰> 심상정 "서민들 정말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747 등 예전 공약은 국제금융공황이 발발하기 이전의 것으로, 이미 실현 가능성이 사라졌다. 때문에 이 대통령이 이 모든 것을 없던 일로 한다 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지금은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중요한 때다. 이 대통령이 국민에게 진솔하게 지금 처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낱낱이 밝히고 국민의 협조를 구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최근 유럽을 둘러보고 귀국한 김종인 전 경제수석이 식사를 같이하며 한 말이다. 이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잃어버린 국민적 지지를 되찾기 전엔 위기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이었다.
김종인 "100조 공적자금 조성해 즉각 투입해야"
김 전수석은 현재 경제팀의 미봉책 갖고선 작금의 공황적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교과서적 해법이 통하지 않는 초유의 대위기 상황이다. 과거의 경험 갖고 찔끔찔끔 대응했다간 될 일이 없다. 아직 은행이 괜찮다구? 뭐가 괜찮은가. 외채 만기연장도 거의 안되고, 은행채도 안 팔리리고...지금 은행은 한국은행 지원없인 살 수 없을 정도로 완전 마비상태 아닌가. 그러다보니 돈이 돌지 않아 기업들도 다 죽을 판이고. 이럴 때엔 100조 정도 공적자금을 조성해 일거에 투입, 은행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
김 전수석은 강만수 경제팀의 '감세'와 무차별적 재정경기부양에도 비판적이었다.
"독일에 가보니 메르켈 총리가 야당들로부터 욕을 많이 먹고 있더라.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처럼 재정을 동원해 과감한 경기부양책을 펴야 하는데 미온적이란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메르켈은 재정 건전성을 지켜야 한다며 쉽게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누가 옳은가는 나중에 역사가 말해주겠지만, 내가 봤을 때 메르켈이 맞는 것 같더라."
"미국 손실 8조5천억달러...달러 폭락은 시간문제"
김 전수석은 향후 글로벌 위기가 더 심화되면서 장기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미국의 장래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이번에 돌아보니 유럽도 죽겠다고 하나 미국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프랑스, 이탈리아는 그럭저럭 견딜만해 보였고 독일도 넘쳐나는 돈을 간수 못한 은행들이 서브프라임에 물리는 등 사고를 쳤지만 자동차산업 빼고는 괜찮다고 했다. 문제는 미국이라는 게 유럽의 공통된 견해였다.
유럽에서는 미국이 이번 사태로 입게 될 손실을 최대 8조5천억달러로 추산하며 앞으로 4~5년 미국경제는 바닥에서 헤맬 거로 보고 있더라. 특히 미연준이 계속 금리를 내린 결과, 곧 제로(0)금리가 되면 미국이 쓸 수 있는 수단은 사실상 없어진다.
당장 미국정부는 내년에 1조달러 재정적자가 불가피하다. 그러면 미 정부는 재무채권(TB)을 발행하고 이를 외국이 사줘야 하는데 문제는 이것을 사줄 나라가 없다는 데 있다. 중국, 일본 등이 사줘야 하나 모두 제 코가 석자다. 그렇다면 남은 해법은 하나다. 윤전기를 돌려 달러화를 찍어내는 수밖에. 달러화 폭락은 이제 시간문제다."
미국은 아직도 세계최대 소비시장이다. 이런 미국이 장기간 패닉적 상황에 빠져들면 한국경제가 얼마나 큰 타격을 입게 될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김 전수석이 둘러보고 온 세계경제 상황, 그리고 한국이 직면할 위기상황은 이렇듯 간단치 않았다.
"오바마의 미국, 글쎄..."
김 전수석은 '오바마의 미국'에 대한 유럽의 회의적 시각을 전하기도 했다.
"유럽에선 오바마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오바마가 경제팀 인선을 하는 걸 보고선 실망스럽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더라. 재무장관에 발탁된 가이스너나 국가경제회의(NEC) 고문이 된 서머스나 모두 이번 금융위기에 책임이 있는 인물인데, 이들을 중용한 데 대한 실망감이었다."
김 전수석은 오바마 당선자가 반드시 살리겠다고 한 GM 등 자동차 빅3의 회생 여부에 대해서도 극히 부정적이었다.
"미국 제조업은 이미 끝났다. 뭐 하나 멀쩡한 게 어디 있나. 2차 세계대전후 미국은 세계 GDP의 70%를 차지했었다. 미국것이 최고였고, 만들기만 하면 다 팔렸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GM도 그렇고, 경쟁력 있는 제조업이 미국에 하나도 남지 않았다. 착각에 빠져 오만하게 지내다가 다 무너진 거다. GM도 이미 죽었다."
오바마가 아무리 자신의 지지기반인 자동차노조를 위해 GM를 살리려 해봤자,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것이란 진단이었다. GM이 살아나지 못하면 미국경제는 또한차례 크게 요동치고, 세계경제 역시 크게 휘청거릴 것이다.
심상정 "정말 서민, 영세상인, 비정규직 벼랑끝...안전망 시급"
김 전수석을 만난 뒤 오래간만에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를 만났다. 심 대표는 대불황에서 고통 받을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서민들에 대한 걱정이 컸다.
"미용실 주인이 '손님들이 예전에 머리 하러 세번 오던 것을 지금은 한번밖에 안온다'고 하더라. 미용실도 그렇고 동네 음식점도 그렇고 영세 자영업자, 서민들이 정말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비정규직들도 줄줄이 직장을 잃고 있다. IMF사태때처럼 기업에 치이고, 정규직에 치이며 최우선적으로 희생이 될 게 보나마다.
문제는 이들 영세상인들도 그렇고, 일용직이나 비정규직도 그렇고, 벼랑끝에 몰린 이들을 돌볼 사회안전망이 우리 사회에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정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심 대표다운 고민이고 걱정이었다.
세밑 분위기가 더없이 얼음장이다. 희망은 안보이고 절망만 넘실댄다. 혹자는 "위기를 기회"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세간 분위기는 "위기, 또 위기"다. 그 어느 때보다 국가지도자의 역할이 절실히 요구되는 정말 중차대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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