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이호-김동진, 아드보카트는 히딩크가 아니다"

박지성-이영표 빅리그 진출모델 재현 기대하기 어려워

딕 아드보카트를 사령탑으로 하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일원으로 2006 독일월드컵에 참가했던 이호(전 울산현대)와 김동진(전 FC서울)이 아드보카트를 따라 러시아 1부리그 제니트 상트 페테르부르크 클럽으로 이적했다.

2002년 히딩크의 박지성-이영표 영입과 닮은꼴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직후 당시 대표팀 감독이던 거스 히딩크가 네덜란드 PSV아인트호벤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이영표(토트넘 핫스퍼)를 데리고 갔던 모습과 유사한 모양새다.

박지성과 이영표는 사부 히딩크의 지도아래 무럭무럭 성장, 현재는 세계 최고수준의 리그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으며, 이번 2006 독일월드컵에서는 한국대표팀의 키플레이어로서 그동안 빅리그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박지성은 현재 이탈리아와 월드컵 우승을 놓고 맞붙게될 프랑스팀에 유일한 필드골을 뽑아낸 선수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기도 하다.

아드보카트 감독과 함께 러시아행 비행기를 탄 이호와 김동진의 머리속에는 히딩크와 박지성, 이영표의 성공사례가 이미 그려져 있을 것이다. 아드보카트 입장에서도 재능있는 두 선수와 동행, 유럽리그의 경험을 쌓게하고 빅리그 진출을 도움으로써 한국축구의 발전과 한국대표팀의 전력향상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작용했을 수 있다.

아드보카트와 히딩크의 계약내용과 구단에서의 지위 질적으로 달라

2002년 한일월드컵 직후 히딩크의 부름을 받고 네덜란드 리그로 이적,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로 활약중인 박지성 ⓒ연합뉴스


그러나 아드보카트의 이런 구상이 그리고 이호-김동진 두 선수의 빅리그 진출의 꿈이 박지성과 이영표가 거쳤던 그 과정과 유사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지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히딩크의 경우를 살펴보면 아인트호벤이라는 팀 자체가 히딩크의 조국인 네덜란드의 클럽팀인데다가 히딩크는 과거 아인트호벤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경력을 가지고 있는터였다. 그만큼 클럽은 물론이거니와 아인트호벤 클럽을 둘러싼 지역에 탄탄한 자기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2004년 초 히딩크는 감독겸 구단 CEO 를 겸직하게되며 구단운영의 전권을 행사하는 위치에 서게된다. 구단의 재정 등 축구와 직접 연관되지 않은 부분을 제외한 선수영입, 경기관련 사항 등 구단운영의 모든 부분을 장악하는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박지성, 이영표 히딩크의 보호아래 프리미어리거 자질 쌓아나가

따라서 히딩크는 주위의 우려섞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박지성과 이영표를 꾸준히 경기에 출전시키며 때로는 방패막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채찍질을 가하며 그들이 유럽리그에서 살아남는 법을 익히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박지성이 일본 J리그에서 활약하다 네덜란드리그로 옮긴 직후 적응에 문제를 겪으며 경기에 나설때마다 관중들로부터 심한 야유를 받는 등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지만 히딩크는 믿음을 거두지 않고 꾸준히 박지성을 경기 투입, 결국 박지성이 세계 최고의 축구클럽이라고 일컬어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을 입는데 '대부'의 역할을 해냈다.

이영표의 경우도 별로 다르지 않다. 그는 박지성 보다 빨리 그리고 안정적으로 리그적응에 성공하고 팀의 부동의 왼쪽 윙백으로 활약하면서 선진축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결국 2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가 되었다. 이 경우도 역시 히딩크의 공로를 무시할 수 없다.

아드보카트 '제 코가 석자' 이호-김동진 출장기회 꾸준히 얻을 수 있을지 의문

이호와 김동진을 자신이 감독으로 부임하는 러시아 제니트 구단으로 이적시킨 아드보카트 전 국가대표팀 감독 ⓒ뷰스앤뉴스


그러나 러시아 제니트와 계약한 아드보카트의 경우는 히딩크의 경우와 내용적인 측면에서 아주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아드보카트는 팀의 CEO로서 구단운영의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한 히딩크와는 달리 팀을 훈련시키고 경기를 치르고 하는 감독 고유의 임무 이외의 부분에 관해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든 그야말로 '월급쟁이 감독'이라고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따라서 팀의 성적에 따라 선수기용과 운용이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이호와 김동진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월등한 기량을 보여준다면 주전자리가 보장되겠지만 비슷하거나 그 기량의 우위가 다소 높은 수준이라면 결코 이들 두 선수가 출장기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드보카트도 취임기자회견에서 "한국에서 같이 온 선수라고 해서 출장시간에 혜택이 주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히딩크도 인터뷰에서는 그런 비슷한 표현으로 말했지만 결국 히딩크는 주위의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고 이들 두 한국선수를 꾸준히 출장시켰지만 아드보카트의 말은 진담일 가능성이 높다.

아드보카트의 1년 6개월짜리 단기계약도 언론으로부터 냉소적 반응

특히 아드보카트의 계약기간이 1년 6개월에 불과, 성적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긴 안목으로 이들 두 선수에게 꾸준한 출장기회를 주며 빅리그 진출에 적응기간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러시아의 현지 언론들도 아드보카트의 계약기간을 지적하며 "선수파악에만도 1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할 수 있는데 1년 6개월의 계약기간을 가지고는 그에게 크게 기대할게 없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제니트에는 K리그에서 활약하다 이적한 현영민이 소속되어 있다. 그는 김동진과 같은 수비수로서 나름대로 팀에 잘 적응했지만 이호와 김동진이 팀에 가세함으로써 이들과 출전시간 확보를 위해 경쟁을 펼쳐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결국 누군가는 경쟁에서 밀려 벤치를 지켜야할 것이고 벤치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감각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물론 이호-김동진 두 선수가 구단의 다른 선수들에 비해 현저한 특혜를 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두 선수가 다른 팀들을 마다하고 굳이 아드보카트와 함께 러시아의 클럽으로 동반이적한 이유는 9개월간 호흡을 맞췄던 '사부'와 동고동락 하면서 좀 더 낯설지 않은 상황에서 유럽리그 적응력을 높이고 빅리그 진출을 노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애제자'로서의 융통성 있는 혜택정도는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 두 선수가 그런 기대를 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4년전 히딩크를 따라 네덜란드로 간 박지성-이영표 콤비나 그로부터 4년 후 아드보카트를 따라 러시아로 간 이호-김동진 콤비의 모양새가 서로 비슷해 보이기는 하나 내용적인 면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2006 독일월드컵에 출전한 한국대표팀의 대표적인 '젊은피'로서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바로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그들에게 기대에 찬 시선보다 우려의 시선을 보내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재훈 기자

댓글이 0 개 있습니다.

↑ 맨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