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만이 할 수 있는 '역할'
[이연홍의 정치보기] <12> 민생대장정 중인 손학규씨에게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기독교인이란 점을 감안했다.
손 지사의 오늘을 보라고 했다. 생각보다 더 온 건 지,아니면 덜 온 건지를 말이다. 덜 왔다고 느낀다면 기준 시점을 훨씬 거슬러 올라가라 했다. 어렵게 민주화 투쟁을 하던 학창시절로 말이다. 경기지사가 될 거라 생각도 못한 시점 말이다. 대권후보군에 낄 거라 상상도 못하던 그때 말이다. 그렇다면 생각보다 많이 왔을 것이다.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를 물었다.
그는 그저 듣기만 했다. 내가 묻고 내가 답했다. 첫째는 본인의 능력이라고 했다. 능력이 있었으니 오늘까지 온 것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운(運 )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도 그 점을 인정했다.
나는 거기서 다시 물었다. 그 운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말이다. 우연이 그렇게 자주 좋은 방향으로만 찾아 올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내가 대답했다. 하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 때문이라고 했다. 그걸 믿느냐고 물었다. 기독교인인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물었다. 하늘이 왜 당신을 여기까지 데려왔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물었다. 여기서 버리려고 여기까지 데려왔겠느냐고 물었다. 그건 아닐 거라고 내가 답했다. 갈 길이 남아 있음을 믿으라고 했다. 그랬기에 오늘을 주신 거라 했다. 다만 그 길이 무엇인지 찾아보라고 권했다. 그것이 여기까지 데려오신 하늘에 대한 보답이라고 얘기해줬다. 당신이 하늘이라 여겨보라고도 얘기했다. 그리고 손지사 당신을 내려보라고 했다. 오늘을 준 하늘의 입장에서 말이다. 손 지사의 어떤 모습이 하늘의 입장에서 마음이 드는지를 말이다.
좀 주제넘은 소리였다. 술 기운이니까 가능했던 거 같다. 그러나 그에게 힘이 되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는 한참을 골몰히 생각했다. 수첩을 꺼내더니 뭔가 메모도 했다. 그러더니 자기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일깨워 주었다고 했다. 그것이 어떤 대목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우리 둘은 아주 기분 좋게 헤어졌다.
이후 나는 그의 변화를 유심히 지켜봤다. 얼마뒤 부터 그의 언행이 달라짐을 느꼈다. 물론 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을지 모른다.
아주 작은 변화였다. 보통은 느끼지 못할 만큼 말이다. 그러나 뚜렷한 변화였다. 적극적 자세로 바뀌었다. 할 얘기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웬만해선 하기 어려운 얘기도 그는 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이명박 시장에 대한 비판이었다. 황제 테니스 사건이었다.
같은 당 대권후보인 이시장이다. 함부로 비판하면 역풍을 맞을지도 모른다. 한나라당 누구도 아무 소리 안했다. 손 지사도 그걸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적절한 수위로 적절한 지적을 했다. 이후에도 한 두 번 지적할 건 지적하고 넘어갔다.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그걸 달리 해석했을 것이다. 3등의 공격이라 여겼을 것이다. 원래 3등은 그래야 한다. 여론을 업고 튀어야 한다. 일정 시점에선 1,2등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해야 한다. 주목을 받자면 어쩔 수 없다. 그래야 인기를 만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말만 한 게 아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구속을 반대했다. 공개적으로 말이다. 인기만 생각하면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랬다. 그러니 지지도가 크게 오를 리 없다.
그는 3등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렇다. 2등하고 차이 나는 3등이다. 지역 기반이 없어서다. 그러나 그는 1등이다. 정치부 기자들이 뽑은 대권후보 1등이다.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이 그를 인정한다. 남다른 매력 때문이다.
나는 나름대로 짐작해 본다. 나와 헤어지며 한 말이 있어서다.
“내가 진정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찾아 보겠소.”
나는 이제 그가 자기 길을 찾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전의 그는 대권만을 향해 달렸다. 목표를 정해놓고 무조건 달렸다. 경기 지사 4년동안 말이다. 그러니 제자리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자기 길을 만들어 가려는 듯하다. 그렇게 가다보면 대권과 마주칠 수도 있다는 식이다.
오늘의 그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처럼 말이다. 오려고 한 길이라기보단 오다 보니 와 있는 길이다.
요즘 들어 그가 부쩍 학창 시절을 상기하는 것도 그런 연유라 본다. 초심을 찾으려는 노력인듯 하다. 자리보다는 역할 말이다.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경기지사를 그만두면서다.
“민주주의가 필요할 땐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고 일자리가 필요할 땐 일자리를 위해 싸웠다.”
앞으로도 그러겠다고 했다. 말 그대로 역할론이다. 대의적 상황에 충실하겠다는 거다.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나라당에 필요한 건 뭔가. 그가 생각하는 시대적 필요는 무엇인가. 정권교체다. 그도 그 점을 인정했다. 그 속에서 그는 역할을 하려는 것 같다.
100일간의 민심대장정도 역할의 일환이다. 제일 먼저 호남을 찾은 것을 봐도 그렇다.
그러다보면 역할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작은 역할의 성공이 큰 역할을 부여하게 만든다. 3등이 1등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역기반이 모자라도 말이다.
그러나 큰 역할만 하겠다고 나선다고 가정하자. 작은 역할을 할 수 없다. 계속해서 3등이다. 지역 기반도 없어서다.
그렇다면 그가 해야 할 역할의 첫 번째는 무엇일까. 3등의 역할 말이다. 1,2등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거다. 한나라당의 분열 가능성을 막는 거다. 2등이 뛰쳐 나갈 가능성을 봉쇄하는 거다. 여권이 가장 바라는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는 거다. 3등만이 나서서 할 수 있다. 3등이니까 압박할 수 있는 거다.
두 번째 역할은 무엇일까. 민주화 세력과의 관계개선이다. 한나라당 1,2등은 산업화 세력의 일원이다. 그러나 손 지사는 민주화 투쟁경력의 소유자다. 한때 산업화 세력과 싸웠던 사람이다. 피해자 중 하나라면 하나다. 따라서 민주화 세력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거다. 한나라당을 대표해서 말이다. 호남도 그 대상 중 하나다. 광주를 찾아가 광주 항쟁도 얘기해야 한다. 사과도 해야 한다. 한나라당 지지자로부터 비난을 받더라도 말이다.
아직은 정확히 모르겠다. 손 지사가 자신의 역할을 어디까지 설정해 놓고 있는지 말이다.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적극성을 띠어야 한다. 역할을 하다보면 2등도 할 수 있다. 1등을 하지 말란 법도 없다. 그것이 손지사가 가야할 길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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