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민들 분노, 폭발 직전"
[김동석의 뉴욕통신] 거대세력들끼리 등 긁어주다 금융공황
미국 주류사회에 대한 '두려움과 짝사랑'이라는 혼돈의 와중에 있던 한인커뮤니티도 누구보다도 테러범 소탕과 이라크 전쟁의 후원에 몰두했다. 미국사회를 주도하는 주류들에게 일단은 '애국심 표시'를 하면서 잘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지식인층의 양심적인 발언이나 유럽계 이민자들의 전쟁 반대의 목소리가 맨해튼을 뒤엎고 있음에도 한인동포사회는 전쟁지지와 전쟁 후원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란리본 달기와 이라크에 위문품 보내기에 앞장섰다. 순식간에 백수십만 달러를 모금하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모금액을 갖고서 9.11 현장에서 당시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을 면담하려고 반복해서 시도하기도 했다.
동포사회 한켠에선 북한도 하나의 조국이라는 목소리와 함께, 미국이 북한에 대해 ‘선제공격’이나 ‘악의 축’ 대상에선 제외해 줄 것을 요청하는 서명운동도 일어났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한인사회 전쟁지지 세력으로부터 그만 벌겋게 물들었다는 비판과 함께 수세에 몰리고 말았다.
그런 가운데 3년여의 세월이 흘러 부시가 재집권했고 그렇게 8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너무 빠르게 그때의 전쟁이 잘못 되었다는 결론이 나고 있다. 그러한 잘못된 전쟁에 몰두하느라 조지 부시 행정부는 정치.사회.문화뿐 아니라 경제에 있어서도 심각한 실패를 했다. 그 실패의 정도가 ‘경기불황’의 정도가 아니고 1920년대 대공황 수준의 혼란이라고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전쟁의 뒤치다거리에 나서느라 국가 재정이 고갈돼 은퇴한 시민들에게 사회보장 혜택도 줄 수 없게 되었다. 겨우 한다는 정부의 이야기는 은퇴 연령 연장이니, 연금조기수령 금지니, 사회보장 민영화니...라는 표현으로 시민들을 달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연로한 사회학자들은 사회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월가의 금융쇼크로 1990년대 경제 호황이 사기 행각에 세워진 사상누각이었음이 드러났다. 수백만달러의 보너스를 자랑하던 20대 초반의 젊은 펀드 매니저들, 투자의 귀재라 불리면서 고액연봉을 자랑하던 투자회사의 증시브로커들이 거리의 홈리스로 내몰리기 시작했다. 그중에 빠른 눈치를 갖은 이들은 싱가포르, 두바이, 홍콩 등지로 달아나 버린지 오래다. 레이건 정부 출범 때부터 시작된 규제 완화는 1994년 ‘깅그리치 혁명’으로 정점에 이르렀고 그 이후 민주.공화 양당은 공히 투자회사(투자은행)들의 성화에 못 이겨 분식회계에 대한 책임을 회계법인과 로펌에 돌리지 않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가진 자들의 이같은 경제적 상징조작과 실제 법안 통과를 통해 월스트리트가 요동을 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부시 정부의 긴밀한 정경유착으로 이어졌다. 서민보호 조치는 소멸되었고 노동자 보호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생산이 없어도 통화가 늘어나는 경기 이상 현상이 10여년 이상 방치되어 왔다. 미국 경제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은 선택을 잘 하든 못하든 간에 부유해지는 한편 나쁜 선택의 결과는 노동자와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떠넘어오게 되었다.
미국 민주주의의 본질 자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증거도 속속 드러났다. 수백만 시민들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둥바둥대는 가운데 거대 기업과 거대 회계법인, 거대 로펌, 거물 정치인들이 서로 등을 긁어 주는 양상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맨해튼의 월스트리트와 워싱턴 DC정치권의 유착은 전쟁이란 커튼으로 인해서 그동안 잘 은폐되어 왔던 것이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부실경영의 손실을 수도 없이 국민세금으로 막아왔다. 중산층 이하의 납세자들은 ‘안보위기’란 명분에 숨을 죽이고 모른 체 해야만 했던 것이다.
미국시민들의 분노가 폭발 직전에 왔다. 그러나 분노가 터지면 함께 망하고 만다는 우려로 인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인내하면서 ‘변화’의 돌파구를 찾는 형편이다. 그것이 2008년 대선전의 ‘변화’이다. "대통령 후보가 흑인이든, 이슬람이든간에 진정한 변화의 기미가 보이면 그것이 대통령감"이란 목소리가 최근 미국사회의 민심이다. 공화당의 존 맥케인 후보도 결국엔 ‘변화’를 외치게 되었다. 맥케인의 변화는 설득력이 없다는 이유로 도무지 국민들의 시선이 모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부통령 러닝메이트인 ‘새라 페일린’이다.
페일린 효과가 나면서 맥케인에게 희망이 드리워지나 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의 쓰나미로 미국사회의 심각한 신뢰붕괴 현상이 심각하게 몰아닥치고 있다. '페일린 신드롬'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미국 경제의 기초는 확실하게 든든하다"고 부시 대통령과 함께 합창을 하던 맥케인이 당황했다. 맥케인이 주장하는 미국 경제기초의 튼튼함이 어디에 있냐고, 모든 미디어가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오바마는 “월급봉투는 얇아지고 주택가치는 하락하고 있다”라고 비판하면서 “부시=맥케인”이라고 맥케인의 동반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국민이 투자한 자금과 연금을 보호하는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규제완화’로 기업들과 유착한 공화당의 부시와 맥케인을 싸잡아 비판하고 나섰다.
분명한 것은 2008년 대선전의 이슈는 '경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월스트리트 쓰나미 앞에서 오바마든 맥케인이든, 뾰족한 방도나 정책이 없다. 이제 50일도 채 남지 않은 2008년 미국대선의 향배는 책임을 묻고 고통에 동참한다는 의견을 누가 더 솔직담백하게 발표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 같다.
필자
김동석 미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겸 본지 편집위원은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권리 찾기와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 높이기를 목표로 93년 뉴욕 등 미 동부 대도시에 ‘한인유권자센터’를 만들어 15년째 활동해온 대표적인 정치 비정부기구(NGO) 운동가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높여온 김 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93년 당시 7%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평균 투표율은 2004년 25%로 뛰어올랐다. 최근에는 미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와 한국국민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워싱턴 정가에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한국인 출신 시민운동가로 꼽히고 있다. 2008년 미국 대선이 열리는 코커스와 프라이머리 현장을 모두 찾아 대선 현장을 생중계하고, 이를 한국과 한인들의 미국내 정치력을 높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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