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이는 한나라당의 '호남 구애'
[이연홍의 정치보기] <11> 한나라당 '우파연합론'의 맹점
차라리 지역감정의 해소가 옳다. DJ의 말처럼 말이다. 구태의연해 보여도 그게 낫다. 논리적으로 맞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질 않는다. 뭔가 그럴듯하게 포장해보려는 것이다. 좀 나쁘게 얘기하면 장삿속이다. 선거 때문이다.
진실성이 없어 보인다. 소장파도 같은 얘기를 한다. 적어도 소장파라면 좀 다를 줄 알았다. 그러나 다를 게 없다. DJ를 매도하는 건 반(反 )한나라당적 행위라고 했다. 남경필 의원이다. 그러니 매도하지 말자는 것이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선거만 염두에 둔다면 말이다. 호남의 지지가 필요할 게다. 구색이라도 맞추자면 말이다. 더군다나 현정권과 호남의 관계가 나쁘다. 지방선거 결과가 그렇다. 그 기회를 노릴 만하다.
그러나 그건 자기들끼리 모였을 때 할 얘기다. 그동안 DJ를 쉼없이 비난했던 그들 아닌가. 그렇다면 그 점에 대한 언급부터 있어야 한다. 적어도 국민앞에선 말이다. 그래야 진정성을 보이는 거다.
영-호남 연합은 그렇게 풀 문제가 아니다. 이용만 하려 해선 안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진정성이다.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존재를 인정하는 거다. 어떻게? 상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는 거다. 어려운 게 아니다. 진정성만 있다면 말이다.
한번 짚어보자. 호남의 90%가 지지한 정권이 있었다. DJ정권과 현 정권이다. 현정권은 호남정권이 아님에도 그랬다. 오직 DJ때문이었다.
두 정권의 일관된 정책은 무엇이었나. 가장 핵심적인 정책 하나만 꼽자. 대북 유화정책이다. 이름 하여 햇볕정책이다. 그것은 한나라당이 일관되게 반대해온 정책이다. 이름하여 대북 퍼주기 정책이다. 좌파 정권이라 불린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재평가가 있어야 한다. 우파 연합을 원한다면 말이다. 그것 없이 어떻게 우파 연합이 성립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한나라당 입장을 포기하란 게 아니다. 북한한테 퍼주기만 한 측면도 없지 않아서다. 그러나 본질을 보자는 거다. ‘왜 그랬을까’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에서 끝나야 한다. 한나라당은 이렇게 말할 게다. 북한한테 퍼주기 위해서 시작했고 결국 핵을 보유케 만들었다고 말이다. 물론 보기 나름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상만 본 거다. 본질은 아니라고 본다.
이해를 위해 한 교수의 얘기를 옮겨 본다. 오래 전에 들은 얘기다. 학문적 가치가 있는 분석은 아님을 밝혀둔다. 그러나 흥미로운 시각이다.
그 교수는 70년대 남북한을 비교했다. 그때 남한에는 고속도로가 만들어졌다. 여기저기 길이 뚫렸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도 그때다. 그때 북한은 어떠했는가. 지하시설이 개발됐다. 주요 시설은 모두 땅속에 숨겨두었다. 전방엔 땅굴도 팠다.
그 교수는 그걸 전쟁의 기억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전쟁의 공포 때문이란 것이다. 모두의 마음속에 알게 모르게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설명하자면 이렇다. 남한 사람들은 전쟁하면 무엇부터 연상할까. 피난이다. 인민군을 피해 도망가는 모습이다. 끊어진 한강다리 사진이 연상된다. 1.4후퇴도 생각난다. 수십리를 걸어서 도망쳤던 기억을 되살린다. 교과서마다 실린 전쟁 사진들이다.
반면 북한 사람들은 무엇부터 떠오를까. 폭격이다. B-29의 융단 폭격말이다. 방공호를 찾아 헤맸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것이 70년대 국토개발 정책에서 나타났다는 게 그 교수의 얘기였다. 그래서 한쪽은 고속도로를 만들었고 또 한 쪽은 땅을 팠다는 분석이었다. 그 정도로 전쟁의 공포가 모두의 잠재 의식 속에 자리잡혔다는 주장이었다. 양쪽 모두 말이다. 그럴 듯한 얘기였다. 물론 다른 견해나 반론도 있겠지만 말이다.
사실 15년만 거슬러 가자. 이따금씩 휴전선엔 총격전이 벌어졌다. 총 몇 발만 쏴도 신문은 대서특필했다. 그러면 동네 쌀가게 쌀이 떨어졌다. 부탄가스가 동이 났다. 라면이 없어졌다. 사재기를 했던 거다. 전쟁의 공포 때문이었다. YS 정권 때까지 그랬다.
그러나 불과 4년 전을 보자. DJ정권때다. 서해 교전이 벌어졌다. 사실상의 국지전이었다. 양쪽 합쳐 수십명의 전사자가 나왔다. 그러나 사재기는 없었다. 쌀도 부탄가스도 라면도 수퍼엔 그대로 있었다. 전면전으로 갈 거라 본 사람이 없었다. 전쟁의 공포에서 어느덧 벗어나 있었던 거다. 알게 모르게 말이다. 햇볕정책의 결과다.
문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라는 점이다. ‘불바다’ 발언에도 꿈쩍 않는다. 핵무기를 가졌다고 해도 그렇다. 미사일을 쏜다 해도 그렇다. 남쪽을 향하지 않을 걸로 본다. 오히려 외국 언론이 한국을 이상하게 본다. 무감각하다고 말이다. 문제는 문제다. 그러면서 미국과도 멀어졌다.
그것이 햇볕정책의 명과 암이다. 그 점에선 한나라당도 일정 부분 수혜자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어떠했는가. 오직 부정적 측면만을 공격했다. 퍼주기만 얘기했다. 핵이라는 결과만을 얘기했다.
한나라당이 우파 연합을 논하려면 그것부터 정리해야 한다. 어물쩍 덮어놓고 갈 문제가 아니다. 공과를 평가해야 한다. 모두를 과오로 돌려선 연합이 될 수 없다.경제 문제도 마찬가지다. IMF 상황부터 말해야 한다.
그때 한나라당이 집권했다 가정해 보자. 저마다의 견해가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나 개인적으론 훨씬 혼란스러웠을 걸로 본다. 계층간 갈등도 심화됐을 것 같다. 노동자 농민 이익 대변 정권은 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일정 시점 출현하는 게 낫다고 본다. 다만 집권 기간의 문제는 보기에 따라 다를 것이다.
결국 DJ정권 5년에 대한 종합적 평가를 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호남과의 연합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안할 거라면 연합 운운조차 말아야 한다.
한나라당 누구는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50%를 호남에 공천하겠다 했다. 그런 식의 접근은 곤란하다. 거래하는 것처럼 비쳐진다. 심지어 한나라당내에는 호남 연합론을 두고 이상한 얘기까지 나돈다. 김덕룡 의원의 복귀설이다. 거의 유일한 호남출신 중진이란 이유에서다. 그래서 속이 훤히 보인다는 거다. 진정성을 의심 받는 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정성이 요체다. 그렇지 않으면 역효과만 날 지 모른다. 결국은 대권주자들이 앞장설 문제다. 당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말이다. 누가 그 진정성을 보여주느냐다. 그것이 당내 경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번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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