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언제나 '좋은 숫자'를 원했다
<뷰스칼럼> DJ, 노무현, MB, 그리고 '눈치 빠른 관료들'
DJ의 '주가' 집착증
김대중 정권때 일이다. 주가가 연일 곤두박질치고 있을 때였다.
모 경제부처 차관이 방송사 심야토론에 나갔다. 경제 위기상황에 대한 토론회였다. 문제의 차관이 자신의 말을 한 뒤, 상대방이 하는 주장을 듣던 중 따분했던지 볼펜을 손가락으로 빙빙 돌렸다. 그 다음날, 난리가 났다. 김대통령이 TV로 토론을 지켜봤던 것이다. 대통령의 불호령이 떨어졌고 문제 차관의 출세길은 그것으로 막혔다.
김대중 대통령은 유독 '주가'에 집착했다. 주가가 경제의 거울이자, 정권의 성적표라는 인식에서였다. 이헌재 재경부장관이 주례 보고를 들어갈 때는 언제나 "요즘 왜 주가가 떨어졌냐"는 물음에 대한 답을 준비해가야 했다. 그러다보니 '주가 부양' '경기 부양'에 대해 관료들이 느끼는 압박감이 대단했고, 결국 정권말인 2001년 당시 진념 경제팀이 부동산경기 부양정책을 집행하며 망국적 부동산투기의 물꼬를 트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노무현-이성태, 정면 대립 일화
노무현 정권때도 엇비슷했다. 노대통령은 많은이들의 만류에도 김진표를 초대부총리로 발탁했다. 정권초 높은 성장률을 기대해서였다. 김 부총리는 노골적인 부동산경기 부양책을 폈고 아파트값이 폭등하며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장사를 하면 열배를 남는 경우도, 열배를 손해보는 경우도 있다"며 아파트투기를 강변, 정권 몰락을 자초했다.
노정권 후반부때 일이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까지 참석한 가운데 노대통령 주재로 경제대책회의가 열렸다. 당시는 곳곳에서 경제 적신호가 켜지고 있던 시점이었다. 당연히 재경부에서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고 노 대통령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성태 총재 생각은 달랐다. 부동산투기로 전국이 난리인 마당에 금리인하는 죽어도 할 수 없다고 버텼다.
노 대통령이 회의석상에서 직접 이 총재에게 '양보'를 요구했다. 이 총재는 그러나 "안 됩니다"라고 끊어 말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노 대통령은 한동안 말없이 이 총재를 째려보았고 분위기는 살벌해졌다. 노 대통령은 잠시 뒤 "내가 선배를 잘못 뽑았네"라고 푸념한 뒤, "그래, 이총재 말대로 합시다"라고 회의 결론을 냈다. 이 총재 고집에 꺾인 것이다.
이 총재는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2년 선배로, 노 대통령이 학창시절 가장 존경했다는 신화적 존재로 유명하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나, 고집 세기로 유명한 노 대통령은 이 총재 의견을 따랐고 그 결과 금리를 경기부양 수단으로 사용하는 최악의 잘못은 피할 수 있었다.
이명박과 강만수, 그리고 이한구
방미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각) 뉴욕 현지에서 교포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회 후진적 요소를 선진적으로 바꾸면, 미국은 0.5% 성장하지만 우리는 금년에도 목표에 가까운 성장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6% 성장에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전날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은 "6% 성장은 힘들어졌다"며 "747공약은 정치공약일뿐"이라고 말한 직후 나온 것이어서, 이 대통령 말을 국내의 관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보나마나였다. '경기 부양' 압박일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16일 강만수 장관, 최중경 재정차관의 '환율 개입' 정당화 발언과 경기 부양 발언이 잇따랐다. 강 장관은 인위적 환율 상승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사기꾼"이라고까지 비난했고, 최 차관은 우회적 표현을 빌긴 했으나 한은에 금리인하를 압박하는 동시에 이한구 한나라 정책위의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경예산 강행을 예고했다.
높은 숫자를 갈망하는 역대 권력의 '속성'과 관료의 '추종'이 읽히는 풍광이다. 성장의 대가로 물가가 희생되는, 보다 구체적 표현을 쓰면 서민-중산층의 희생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마지막 기대는 남아있다. 한나라당의 이한구 정책위의장이다. 그는 일관되게 강만수 경제팀의 환율개입이나 금리인하 압박, 그리고 추경예산 편성에 반대하고 있다.
그는 오는 18일 강만수 경제팀과 당정협의를 앞두고 있다. 과연 이한구 정책위의장이 '시장의 대변자' 역할에 성공할지, 아니면 강만수 경제팀에 꺾일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김대중 정권때 일이다. 주가가 연일 곤두박질치고 있을 때였다.
모 경제부처 차관이 방송사 심야토론에 나갔다. 경제 위기상황에 대한 토론회였다. 문제의 차관이 자신의 말을 한 뒤, 상대방이 하는 주장을 듣던 중 따분했던지 볼펜을 손가락으로 빙빙 돌렸다. 그 다음날, 난리가 났다. 김대통령이 TV로 토론을 지켜봤던 것이다. 대통령의 불호령이 떨어졌고 문제 차관의 출세길은 그것으로 막혔다.
김대중 대통령은 유독 '주가'에 집착했다. 주가가 경제의 거울이자, 정권의 성적표라는 인식에서였다. 이헌재 재경부장관이 주례 보고를 들어갈 때는 언제나 "요즘 왜 주가가 떨어졌냐"는 물음에 대한 답을 준비해가야 했다. 그러다보니 '주가 부양' '경기 부양'에 대해 관료들이 느끼는 압박감이 대단했고, 결국 정권말인 2001년 당시 진념 경제팀이 부동산경기 부양정책을 집행하며 망국적 부동산투기의 물꼬를 트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노무현-이성태, 정면 대립 일화
노무현 정권때도 엇비슷했다. 노대통령은 많은이들의 만류에도 김진표를 초대부총리로 발탁했다. 정권초 높은 성장률을 기대해서였다. 김 부총리는 노골적인 부동산경기 부양책을 폈고 아파트값이 폭등하며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장사를 하면 열배를 남는 경우도, 열배를 손해보는 경우도 있다"며 아파트투기를 강변, 정권 몰락을 자초했다.
노정권 후반부때 일이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까지 참석한 가운데 노대통령 주재로 경제대책회의가 열렸다. 당시는 곳곳에서 경제 적신호가 켜지고 있던 시점이었다. 당연히 재경부에서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고 노 대통령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성태 총재 생각은 달랐다. 부동산투기로 전국이 난리인 마당에 금리인하는 죽어도 할 수 없다고 버텼다.
노 대통령이 회의석상에서 직접 이 총재에게 '양보'를 요구했다. 이 총재는 그러나 "안 됩니다"라고 끊어 말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노 대통령은 한동안 말없이 이 총재를 째려보았고 분위기는 살벌해졌다. 노 대통령은 잠시 뒤 "내가 선배를 잘못 뽑았네"라고 푸념한 뒤, "그래, 이총재 말대로 합시다"라고 회의 결론을 냈다. 이 총재 고집에 꺾인 것이다.
이 총재는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2년 선배로, 노 대통령이 학창시절 가장 존경했다는 신화적 존재로 유명하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나, 고집 세기로 유명한 노 대통령은 이 총재 의견을 따랐고 그 결과 금리를 경기부양 수단으로 사용하는 최악의 잘못은 피할 수 있었다.
이명박과 강만수, 그리고 이한구
방미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각) 뉴욕 현지에서 교포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회 후진적 요소를 선진적으로 바꾸면, 미국은 0.5% 성장하지만 우리는 금년에도 목표에 가까운 성장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6% 성장에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전날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은 "6% 성장은 힘들어졌다"며 "747공약은 정치공약일뿐"이라고 말한 직후 나온 것이어서, 이 대통령 말을 국내의 관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보나마나였다. '경기 부양' 압박일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16일 강만수 장관, 최중경 재정차관의 '환율 개입' 정당화 발언과 경기 부양 발언이 잇따랐다. 강 장관은 인위적 환율 상승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사기꾼"이라고까지 비난했고, 최 차관은 우회적 표현을 빌긴 했으나 한은에 금리인하를 압박하는 동시에 이한구 한나라 정책위의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경예산 강행을 예고했다.
높은 숫자를 갈망하는 역대 권력의 '속성'과 관료의 '추종'이 읽히는 풍광이다. 성장의 대가로 물가가 희생되는, 보다 구체적 표현을 쓰면 서민-중산층의 희생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마지막 기대는 남아있다. 한나라당의 이한구 정책위의장이다. 그는 일관되게 강만수 경제팀의 환율개입이나 금리인하 압박, 그리고 추경예산 편성에 반대하고 있다.
그는 오는 18일 강만수 경제팀과 당정협의를 앞두고 있다. 과연 이한구 정책위의장이 '시장의 대변자' 역할에 성공할지, 아니면 강만수 경제팀에 꺾일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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