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왜 여전히 국민의 '관심밖'인가
<뷰스 칼럼> '정체성'은 어디 가고, 서푼 무게 '당권'싸움만
통합민주당 사람들을 찍은 요즘 사진들을 보면 한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손학규 대표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있고, 옆자리 박상천 대표 얼굴은 느긋해 보인다는 거다. 한쪽은 뱃지를 다는 데 실패했고, 한쪽은 성공했기 때문일까.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얻은 81석은 박재승 전 민주당 공심위원장이나 박경철 공심위원이 "예상보다 많은 의석"이라고 말했듯, 대선직후 궤멸적 상황과 비교하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하지만 엄격히 말해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숫자'이기도 하다.
지금은 한나라당 수뇌부가 "친박연대가 아닌 민주당이 국정동반자"라고 말하며 민주당을 치켜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한나라당 내부 권력투쟁의 일시적 현상일뿐, 범보수진영이 헤게모니 싸움을 끝내고 하나로 똘똘 뭉치면 민주당이 설 땅은 없어진다. 범보수진영이 2백석이상을 장악한 상황에서 민주당이 설 공간은 없기 때문이다.
더욱 안쓰러운 것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이라는 방향성조차 안 보인다는 점이다. 호남이란 안전지대에서 거의 뱃지를 줍다시피 한 인사들은 '민주당 서울 전멸' 결과를 놓고 '386 탓'만 하며, 앞으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식 처방을 앞세워 당권을 노리고 있다.
당연히 이에 대해 비호남권 인사들은 "수도권에 나오랬더니 비겁하게 죽어도 그럴 수 없다고 버텨 호남에서 출마해 뱃지를 달고선..."이라고 울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러기에 민주당은 총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패자에게 쏠리는 여론의 '동정심'조차 얻지 못하고 여전히 국민의 '관심밖'인 것이다.
'정체성 부재'의 산 증거, 뉴타운 공약 따라하기
오세훈 서울시장이 14일 "뉴타운 추가지정은 절대 없다"고 말하자, 민주당은 "총선때 사기를 당했다"고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민주당이 박빙의 경합을 벌이던 서울에서 궤멸적 참패를 당한 데는 한나라당의 뉴타운 개발공약이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총선 직후에도 민주당은 서울 참패의 근원인 뉴타운 공약임을 밝힌 바 있다. 유인태 최고위원은 지난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신도 뉴타운 공약을 내세웠음을 밝히며 "뉴타운 공약은 국회의원 공약이 아닌 시.구의회의 공약인데 서울에 출마한 국회의원 99%가 이를 공약했다. 우리 후보들도 따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우리 정치가 뒤떨어진 것이다. 참담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대다수 민주당 서울 출마자들이 공감한 자아비판이었다. 그러다 오세훈 시장이 "뉴타운 추가지정은 없다"고 밝히니, 민주당이 펄펄 뛰고 나서는 것도 이해가는 일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앞다퉈 한나라당을 흉내내 뉴타운 공약을 내세운 것도 따지고 보면 민주당의 '정체성 결여'의 산물이었다. 뉴타운 공약은 기본적으로 자그마한 집이라도 가진 사람을 겨냥한 공약이었다. 뉴타운 개발을 하면 집값이 왕창 오를 테니, 내게 표를 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청와대와 서울시를 장악한 한나라당에게 유리한 공약이었고 한나라당다운 공약이었다.
이때 민주당에게 정말 '서민-중산층 정당'이란 뚜렷한 '정체성'이 있었다면 심각한 고민을 했어야 했다. 서울시민중 46%에게 집이 없다. 이들에게 뉴타운으로 비강남권 집값이 폭등한다는 것은 제 집 장만이 더 힘들어진다는 얘기다. 은행 빚 내서 자그마한 집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도 집값이 오른다는 건 조금 넓은 집으로 옮겨가기가 더 힘들어진다는 얘기다. 집값이 뛰게 만드는 뉴타운 정책은 '서민-중산층'을 대변한다는 민주당에게는 한나라당과 대립각을 만들기 딱 좋은 소재였다.
하지만 민주당은 한나라당 따라하기에 급급했고, 총선이 끝나자 "사기를 당했다"고 펄펄 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오세훈 시장의 이름을 팔아 뉴타운 추가지정을 약속받았다고 주장한 한나라당 인사들은 사법적 처리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동시에 민주당 스스로도 자신의 '정체성 부재'를 통렬히 곱씹어야 마땅하다.
민주당, 한나라당에 판판이 깨지다
앞으로도 민주당에게 기회는 많을 것이다. 내년 4월 재보선도 있고, 내후년 지방선거도 기다리고 있다. 그때마다 반전의 계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기회가 주어줘도 과연 반전할 수 있을지 지극히 의심스럽다. 물론 '반사이익'만으로 재기할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연일 죽만 쑨다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나무밑에서 사과 떨어지기만 기다리다간 단언컨대 민주당에게 미래는 없다.
지금 민주당은 자신들이 주장해야 할 의제들을 한나라당에게 빼앗기고 있다. 한 예로 총선직전 한나라당이 표를 의식해 내놓은 생활필수품 부가가치세 면제는 정체성만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면 민주당이 먼저 내놓어야 할 주장이었다. 이 정책의 원조는 80년대초 프랑스 좌파 미테랑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당시 미테랑은 보수야당이 극심한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부양책으로 대기업의 법인세 인하를 주장하자, "우리는 서민-중소기업을 우선 돌봐야 할 사회주의 정권"이라며 서민들과 내수 중소기업에게 혜택이 돌아갈 생필품 부가가치세 인하를 선택했다.
청와대가 꺼내든 '365일 상시 개원'도 민주당이 먼저 치고 나왔어야 할 의제였다. '일하는 정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이명박 정부에 맞서, 365일 국회를 열어 모든 국정현안을 성실히 다루겠다는 맞대응 의지를 보여야 마땅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판판이 의제를 빼앗기고 있다. '정체성'도, '전투력'도 결여된 탓이다.
야전침대 정신
무엇을 할 것인가. 민주당에게 던져지는 마지막 질문이다. 답은 와신상담이다. 우선 청와대가 꺼내든 '365일 상시개원'부터 적극 수용해야 한다. 민주당이 보인 '포퓰리즘 운운' 따위의 소극성을 버려야 한다. 적극 찬성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 의원들이 하고 있듯, 야전침대부터 하나씩 의원실에 갔다 놓고 의원실에서 24시간 불을 밝히고 지내야 한다.
이들이 만나는 사람도 힘없는 서민-중산층이어야 한다. 이들의 어려움을 뼈속 깊이 절감하고 이들을 위한 입법활동, 의정활동을 펼쳐야 한다. 청와대에서 폭탄주 마실 때, 민주당 의원들은 서민들과 포장마차에서 닭발 구워놓고 이들의 아픔과 시름을 온몸으로 빨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서푼 무게도 안 나가는 그 잘난 '당권'을 놓고 구태만 재연한다면, 민주당이 그렇게 우려하는 '한국판 자민당 독주시대'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이런 보수 독주시대를 개막케 만든 원천적 책임도 영원히 벗지 못할 것이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