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의 선택, 잘한 걸까 못한 걸까
[이연홍의 정치보기] <9> 고건의 '무임승차'
물론 부담은 있었을 거다. 현실정치에 발을 빼고 1,2등을 달린 게 말이다. 그러나 1,2등을 달린 이유는 바로 현실정치를 안 한 덕분이다.
입장이 없으니 반대도 없었다. 언제나 중간에 서려하니 양쪽이 당겼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고건 씨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빨리 들어가라 했다. 입장을 밝히고 주장을 펴라 했다. 그것으로 경쟁력을 갖추라 했다. 그럼에도 고건 씨는 가만히 있었다.
지방선거를 기다렸던 거다. 열린우리당 참패가 예상되서다. 당연히 자기 중심의 정치 역학이 형성될 거라 본거 같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였다. 선거 전부터 연대 얘기가 나왔다. 열린우리당도 민주당도 그를 모셔가려 했다.
선거가 끝났다. 그가 중심에 섰다. 그러니 신당을 하겠다고 나선 거다. 7월중에 국민연대를 만든다고 했다. 독자 세력 추진이다.
하기야 특정정당에 가기는 어렵다. 가는 순간 지금의 지지도 상당분을 까먹어야 한다. 예컨대 열린우리당에 간다 치자. 고건씨에 대한 호감도가 열린우리당에 대한 비호감도보다 높아야 그에 대한 지지도가 유지된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고건씨는 김대중 김영삼씨가 아니다. 확고한 지지기반을 가지지 못했다. 양김같은 지지기반의 정치인은 없다. 당과 상관없이 사람을 쫓아다니는 지지자들 말이다. 그것이 지금의 정치 현실이다. 그래서 이미지 정치가 판을 친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가는 순간 지역 후보처럼 비쳐질지 모른다. 그가 호남이어서다. 전국적 이미지를 지향하는 그다. 그러니 민주당도 곤란하다.
그래서 혼자서 가겠다는 거다. 갈 테니 따라 오라는 신호다. 계산상으론 합리적 선택이다.
그러나 선거전에 그랬어야 했다. 자기 색깔을 냈어야 했다. 입당이든 창당이든 했어야 옳다. 아니면 그가 지금 하겠다는 국민연대라도 말이다. 선거에 후보를 안내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국정현안에 입장을 밝혔어야 했다. 그것을 통해 고건이 누구인가를 알려야 했다.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진 사람인가를 말이다. 대안이 될 수 있느냐를 말이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서비스다.
그랬다면 지지도는 떨어졌을지 모른다. 얼마 만큼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다져진 지지도는 훨씬 단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때문에 그의 지지도는 믿기지가 않는다. 모래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은 그도 이미지로 버티는 거다. 노무현 대통령과 반대되는 이미지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달라졌다.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거다. 물론 진작 했어야 했다. 정치를 할 거였다면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안했다면 계속 그래야 했다. 일관성의 문제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 설명을 해야 한다. 왜 지금까지 입장이 없었던 건지. 그동안 무수한 국가 현안이 있었다. 남북 문제, 부동산 문제, 사학법문제 등등. 왜 그런 현안들에 입장이 없었는지 말해야한다. 지나간 개별현안에 대한 입장을 말하라는 게 아니다. 입장이 없었던 이유를 대라는 거다. 그동안은 정치에 개입하기 싫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를 하겠다는 거다. 그렇다면 정치를 하기 위해 입장을 숨겼다는 말인가. 혹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게 될까봐? 결국 이미지만 관리해왔다는 말인가.
그도 이제 링에 올라왔다. 링 위에는 이미 난투극이 벌어진 상태다. 링 위의 전사들이 그를 놔둘 리 없다. 그도 공격을 받게 될 거다. 물론 잠깐은 지켜볼 거다. 혹시 자기편이 될 수 있을까해서다. 그러나 아니다 싶을 땐 달려들 거다.
어쩌면 쉽게 무너질지도 모른다. 이미지로 버텼다면 그럴 수 있다. 앞서도 지적했듯이 양김을 제외하곤 불변의 지지률을 가진 정치인은 없다. 그래서 떴다가 추락하는 정치인이 많은 것이다. 강금실이 좋은 예다.
물론 그는 흠 잡기 어려운 사람이다. 깨끗하다. 그리고 능력 있는 관료였다. 그만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 최고의 총리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국가 최고 지도자가 될 수는 없다.
어떤 상황,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떻게 대처했고 어떻게 처신했는지가 중요하다. 위기관리 능력을 보는 거다. 그 점에 있어선 뒷말이 많은 고건씨다. 그런 얘기들이 다시 나올 게다.
그래서 일관성을 유지했어야 했다. 정치에 거리를 둔 거 말이다.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거 말이다.
그 사이 정치판은 저절로 정리됐을 거다. 정계개편을 하든 뭐를 하든 말이다. 그 뒤에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그때도 자기 발로 나와선 안 된다. 국민이 끌어낼 때 나와야 했다. 그것이 일관성을 지키는 거였다. 그래야 지금까지 가만히만 있었던 게 설명이 된다. 나라가 가장 어지러웠던 지난 2년이었다.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갔다. 노무현 대통령도 반쯤은 쓰러졌다. 그러나 그는 그 기간을 무임승차했다.
어쩌면 지금 그 값을 내야 할지 모른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특히 정치세계에선 말이다. 그래서 애당초 이럴 거였다면 진작 나섰어야 했다는 거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