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개편 주도권은 한나라가 쥐고있다
[이연홍의 정치보기] <8> '깨끗한 산업화세력' vs '유능한 민주화세력'
모두가 정계개편을 얘기한다. 기정사실화되어있다. 문제는 어떻게 짜맞추느냐다. 한쪽은 민주평화세력의 연대를 주창한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고건 세력과의 연합이다. 그럴듯한 조합이다.
그러나 성사 가능성은 높지 않다. 대통령이 반대해서가 아니다. '명분'이 없어서다. 대통령도 그래서 반대할 게다. 명분없는 개편은 오합지졸의 이합집산일 뿐이다.
정계개편은 동력이 필요하다. 지각변동의 힘 말이다. 과거엔 권력이었다. 권력으로 윽박질렀다. 그래서 짜 맞췄다. 금력도 있었다. 돈을 주고 사갔다. 그러나 그 시대는 이미 간 지 오래다. 그렇다면 남은 건 명분이다. 국민적 동의다.
그러나 지금의 개편론은 명분이 부족하다. 특히 열린우리당 개편론이 그렇다. 그들의 명분은 무엇인가.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자는 거다. 그것이 개편의 명분일 수 있을까. 상대당의 집권을 막자는 게 말이다. 국민 40%가 지지하는 정당을 말이다. 어림없는 소리다.
그럼에도 개편은 이루어질 거다. 정치권 내부의 잠재 동력 때문이다. 그것이 국민적 동의를 구해 낼 거다. 전혀 다른 형태가 될 지 모른다. 때문에 생각보단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
60년대 이후 우리 정치사를 보자. 두 부류의 주체들이 있었다. 하나는 산업화 세력이고, 또하나는 민주화 세력이다. 그러나 산업화 세력은 부패했고 민주화 세력은 무능했다. 그래서 부패한 산업화 세력을 무능한 민주화 세력이 대체했다. 국민의 선택이었다. 부패에 대한 반감으로 깨끗함을 골랐는데 무능이 따라온 거다. 그렇다면 지금 국민의 선택은 무엇일까. 우선은 무능에 대한 보상심리가 높다.
산업화 세력은 경험이 많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능하다. 한나라당 지지도가 높은 것도 그것을 반영한다. 그렇다고 국민이 부패를 원할 리 없다. 그렇다면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깨끗한 산업화 세력'이고, 또 하나는 '유능한 민주화 세력'이다.
우선 산업화 세력인 한나라당을 보자. 여전히 부패 이미지가 있다. 부패세력이 남아 있어서다. 그럴수록 그들은 능력과 경험을 중시한다. 업적을 내세운다. 썩은 걸 감추기 위해서다. 때문에 여당에 대해 과격하다. 그래서 극우쪽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그들이 전부는 아니다. 그들을 극복하려는 세력도 있다. 박근혜 대표가 지향하는 노선이다. 숫적으론 열세인지 모른다. 그러나 명분으로 무장되어 있다. 깨끗한 산업화 세력을 추구한다.
민주화 세력인 열린우리당을 보자. 여전히 무능해 보인다. 그럴수록 그들은 이념을 앞세운다. 그것을 개혁으로 포장한다. 무능을 감추기 위해서다. 그래서 과격하다. 때문에 진보쪽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그쪽 역시 그들을 극복하려는 세력이 있다. 정동영 김근태씨가 지향하는 노선이다. 유능한 민주화 세력이 되고자 한다.
결국 ‘깨끗한 산업화 세력’과 ‘유능한 민주화 세력’을 만들기 위한 몸부림이 정계개편의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제일 높다. 당위적인 측면이 있어서다. 정치권에 내재된 동력이다.
그렇다고 다른 형태의 정계개편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예컨대 극단이 판을 칠 때다. 극우 또는 극좌 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명분을 제공할 거다. 양자택일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한쪽만 기승을 부려도 마찬가지다. 반작용의 힘이 극으로 쏠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혀 다른 모습의 정계개편이 이루어질 게다.
그 균형추 노릇을 민주당이 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크게 보면 무능한 민주화 세력의 일원이다. 그러나 보기에 따라선 다르다. 상대개념 때문이다. 지금의 민주화 세력보단 부패했다. 그러니 부패한 민주화 세력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보단 유능했다. 집권 경험이 있어서다. 그러니 유능한 민주화 세력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한나라당에 붙는다면 깨끗함을 더하는 쪽으로 기능할 거다. 열린우리당쪽이라면 능력을 보탤 거다.
고건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깨끗한 산업화 세력의 일원이다. 깨끗함과 능력을 동시에 가졌다. 그래서 여야가 동시에 당기는 거다. 그런데 애당초 말을 잘못 탔다. 무능한 민주화세력에 편승했다.
문제는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다. 민주당이 열린우리당과 합친다 치자. 능력을 보탤 기회가 있을까. 없다고 봐야 한다. 민주당이 후보를 낸다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후보는 현 집권세력 몫이다. 그렇다면 이용만 당하게 된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다. 민주당도 그걸 안다. 그러니 미온적이다.
그러나 고건 씨는 좀 다르다. 그의 합류는 후보가 되는 걸 전제로 한다. 후보만 된다면 열린우리당은 그의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후보가 될 수 있을까가 문제다. 그걸 보장받고 싶을 게다. 그러나 누구도 보장할 수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입당을 하고 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40대 기수론'이 세를 얻을지 모른다. 이미 그런 조짐들도 없지 않다.
그래서 쉽게 결단을 못 내리는 거다. 결국 자기당을 만들려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래야 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연후에 협상을 펼칠 거다. 그러나 그때까지 지지도를 유지할지는 의문이다. 시간적 여유도 없다. 더군다나 그가 세력으로 존재한다고 보긴 어렵다.
정계개편은 결국 말만 무성할 거다. 곧 이루어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려울 거다. 열린우리당이 아무리 기를 쓴다 해도 말이다. 이미 주도권은 완전히 상실했다. 주도권은 한나라당이 쥐었다. 때문에 정계개편도 한나라당의 변화에 달려있다. 누가 대권후보가 되느냐다. 그것은 내년이다. 그러나 빠르면 가을쯤이면 우열이 가려질 거다. 거기서 낙오되는 누군가와 새로운 조합이 이뤄질지 모른다. 혹은 거기서 승리하는 자와 조합이 이뤄질지도 모른다. 확실히 이길 거라면 거기에 붙으려 할 것이다. 뒤집을 수 있다면 반대편에 붙을지 모른다.
결국은 '반(反)한나라당 전선'의 구축을 한나라당 누구가 저지할 수 있느냐다. 최소한 완화시킬수 있느냐다. 그에 따라 정계개편의 폭과 강도가 결정될거다. 대권의 향방도 그에 따라 결정될 거다. 가을까진 기다려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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