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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주의 '영남후보론'과 2002년 盧風

[정치부기자 23년의 기억들] <12> 허주 김윤환과 나

나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정치인은 허주 김윤환이다. 세상 사람들은 DJ, YS를 정치 9단이라 한다. 그러나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허주가 그들을 능가한다고 본다. 그의 정치적 상상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추진력 또한 누구도 흉내낼 수 없다.

허주야말로 진정한 프로였다. 그는 언제나 혼자였다. 자신만을 믿었다. 양김처럼 사람들을 몰고 다니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다룰 줄 알았다. 세력은 없지만 세력을 다뤘다.

물론 허주에 대해선 여러 평가가 있다. 극과 극의 평가다. 그를 욕하는 사람도 많다. 너무 세속적이란 이유에서다. 반대로 그를 극찬하는 사람도 많다. 그의 능력과 인간성을 평가해서다. 나 보고 한쪽을 택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후자다.

나는 평기자 시절 그와 깊은 인연을 맺진 못했다. 전두환 정권 당시 문공부 차관을 할 때 처음 알게 됐다. 당시 나는 총리실 출입기자였다. 심심하면 기자들은 그의 방을 찾았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갈 때마다 그는 잠을 자고 있었다. 일을 하는 건지 잠자러 오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저 노태우 친구라는 이유로 잘나가나 싶었다.

별로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우선 게을러 보였다. 그러나 그를 만날 때마다 인상이 바뀌어 갔다. 얘기를 하다보면 배우는 게 많았다. 정치를 보는 안목이었다. 어린 기자의 눈에는 참 신기하게 보였다.

그는 조선일보 기자를 했다. 그래서 그가 쓴 글을 찾아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도 찾지 못했다. 온종일을 뒤졌는데 허사였다. 정치부 기자도 했고 워싱턴 특파원도 했는데 그의 글은 없었다. 그 정도로 기사를 쓰지 않은 기자였다.

기자를 하다가 국회의원 출마도 했고 낙선한 뒤 다시 기자로 돌아가기도 했다. 지금 같아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실패한 기자였다. 그럼에도 그가 그렇게 클 수 있었던 건 조선일보의 특별한 배려 때문 아닌가 싶다.

생전의 허주. 노태우,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만든 '킹 메이커'인 그는 세력은 없지만 세력을 다룬 인물이었다. ⓒ연합뉴스


내가 그와 가까와 진 건 내가 조선일보 정치부에 있을 때였다. 노태우 정권 때다. 그가 YS를 대통령 만들겠다고 나설 때였다. 거의 매일 같이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의 얘기가 듣고 싶었다.

밤만 되면 그의 서초동 집은 기자들로 붐볐다. 응접실 한복판에 술과 안주를 놔두고 오는 기자마다 마시게 했다. 술 한잔 마시며 12시가 넘도록 토론을 했다. 집 앞에는 음주단속을 하는 경찰이 있었다. 그러나 경찰들에게 허주 집에서 나오는 길이라고 하면 그냥 보내주었다. 물론 조금 더 가다가 걸리기 일쑤였다.

그는 한때 정말이지 잘나갔다. YS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니 그럴 만 했다. 그러나 그 때문에 YS의 견제도 많이 받았다. 늘 그는 그게 불만이었다. 더러는 나를 불러 “너 현철이랑 친하지? 조심하라고 해”라고 하기도 했다. 김현철씨와 허주는 관계가 좋지 않았다. 그러니 막판에는 YS와도 멀어졌다. 결국 YS뜻과는 달리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게 됐다. 그것이 그로서는 실수였다. 만들지도 못했고 얼마 뒤 이회창씨로부터도 버림을 받았다.

나와 절친해진 건 그때부터다. 나도 중앙일보에서 물먹고 있을 때였다. DJ정권 초창기 청와대 출입을 하다가 밀려났을 때다. 정치전문기자란 직함으로 ‘이연홍의 정치보기’란 고정 컬럼을 쓰고 있을 때였다. 겉보기엔 그럴 듯 했지만 실은 그렇지 못했다. 시간이 남아 돌았다. 그렇다고 회사에 우두커니 앉아 있기도 뭐했다. 그래서 자주 찾아 간 곳이 허주 사무실이었다. 그의 사무실은 시청앞 백남빌딩에 있었다. 프레지던트 호텔이 있는 곳이다.

당시 허주는 한나라당 공천 헌금 사건으로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 그러니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을 때였다. 어쩌다 박희태 의원 정도가 마주쳤다.

나는 그와 어떨 땐 서너 시간씩 이야기를 나눴다. 허리가 아프다며 누워서 얘기했던 허주였다. 콩팥이 나빠서 허리가 아픈 걸 디스크로 착각했던 거다.

그는 나와 얘기하면 4분의 3은 이회창씨에 대한 얘기를 했다. 이회창씨가 자기한테 이럴 순 없다는 얘기였다. YS로부터 갖은 협박을 다 당하면서 이회창씨를 대통령 후보로 만들었는데 자기를 버릴 수 있느냐는 얘기였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다음번 대통령선거에서 낙선시키고 말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민국당을 만들어 총선에 참여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그 분노가 정말이지 대단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것이 병을 불렀던 거 같다.

그는 내게 많은 얘기를 해주었다. 친구인 노태우를 대통령 만든 얘기, YS를 대통령 만든 얘기, 그리고 이회창을 후보로 만든 얘기 등등등. 그 뿐만이 아니다. 재벌들과의 관계까지도 말해주었다. 하나도 빠짐 없이 다 얘기해주었다. 그러나 그가 고인이 된 마당에 그 얘기를 여기에 옮기진 않겠다.

그는 나한테 자기가 해준 얘기를 자기의 회고록 형태로 써 달라 했다. 녹음기를 가져오라고 몇 번이고 재촉했다. 책으로 내면 베스트 셀러가 될 거라 했다. 그러나 내가 거절했다. 기자가 남의 회고록을 써줄 순 없다는 이유를 댔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급히 그가 나를 찾았다. 시간여유를 많이 가져오라 했다. 점심을 먹고 바로 그의 사무실로 갔다. 그가 먼저 물었다.

“니는 여당에서 누가 다음 대통령후보가 될 거 같노?”
“현재로선 이인제 아닌가요? 권노갑의 후원도 받고 있고 이렇다 할 다른 후보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니도 더 배워야겠다.....이인제가 나가면 이회창을 누를 수 있으리라고 보노?”
“글쎄요. DJ의 후원이 있으면 한번 해 볼 수도 있겠지요.”
“니 이인제가 경복고 선배라 그러는 기가?”
“그런 건 아닙니다. 저와는 선후배 사이지만 그리 친하지 않습니다. 제 스타일과는 잘 맞지도 않고요.”
“내 말 잘 들어라.누구에게도 말하면 안된다이”

그러면서 그는 차근차근 말했다. 우선 DJ가 대통령이 된 배경부터 얘기했다. YS가 이회창이 되는 걸 싫어했기에 가능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이인제가 끝까지 후보로 남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권력의 힘이라 했다. 야당이 자력으로 정권교체를 이루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다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DJ가 원하는 대로 정권은 창출될 거라는 논리였다. 문제는 누구를 내세우냐는 것으로 집약됐다. 그때 그가 한 얘기가 '영남후보론'이다.

“호남이 미는 영남후보인기라. DJ의 호남표에 절반의 영남표만 얹히면 무조건 당선인기라.”

나는 깜짝 놀랐다. 그때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기발한 상상이었다.

“DJ가 어떻게 얻은 정권인데 그걸 영남한테 주겠습니까?”
“그 다음에 찾아오면 되지. 호남이 밀어준 영남후보인데 대통령이 된들 무슨 세력이 있겠노? 당을 나와 호남인맥이 장악하고 있다가 그 다음에 영남대통령이 밀어주는 호남후보로 나서면 되는 거지.....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된다 아이가. 어떻게 세상이 변할 줄 누가 아노?”
“DJ가 밀어줄만한 영남후보가 누가 있습니까?”
“몽준(정몽준)이도 있고.....”
“정몽준씨는 안되지요. DJ가 평생을 서민을 위해 살아왔다고 하면서 재벌을 밀어줄 수는 없잖습니까?”
“박근혜는 어떻노? 3김 연합 공천도 가능하지 않을까? 김영삼이나 김종필이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노.”
“박근혜씨는 본인이 거부할 겁니다. 그런 식으로 정치 하는 걸 체질적으로 싫어할 사람입니다.”
“노무현이도 있지.....”
“에이, 무슨 말씀을.....인지도가 너무 떨어지잖습니까. 사람들이 웃습니다.”
“그래서 니가 정치 공부를 더 해야 된다는 기다. 어쨌든 영남후보여야 한다.”

나는 그의 사무실을 나와 건물 1층 로비 커피숍에 갔다. 들은 얘기를 머릿속으로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지나면 잊어 버릴까봐서였다. 내 습관이다. 지금 그때 얘기를 쓰는 것도 메모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때 기억해둔 내용들이다.

나는 그 다음 주 컬럼에 ‘영남후보론’을 썼다. 여권이 구상중인 다음 후보는 '호남이 미는 영남후보'라고 소개했다. 사실상 특종인 셈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하기야 그럴 만도 했다. 당시로선 좀 웃기는 얘기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영남후보론은 힘을 받기 시작했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허주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랬는데 박지원씨를 먼 발치서 봤다. 당시 박지원씨는 청와대 공보수석에서 밀려나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허주에게 물었다.

“박지원씨가 오늘 여기 다녀갔나요?”
“응.....박지원이 내 사무실 옆방에 지 사무실 냈다.”
“옆방에요?”
“지 아는 사람 사무실이라나 뭐라나....당분간 지가 쓰기로 했다고 인사왔더구먼.”
“두 분이서 합작으로 영남후보를 만드시려나 보군요...”
“어디서 그런 소리하면 안된다이....될 일도 안돼...박지원이도 나한테 신신당부하더라.”

내 예상이 맞았다. 나중에 허주한테 들은 얘기지만 영남후보론은 두 사람에 의해 추진됐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허주는 소외됐다. 영남후보라는 컨셉만 심어놓고 밀려났다. 후보를 누구로 하느냐는 문제는 DJ진영 내부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박지원씨는 보안을 문제 삼았다 한다. 허주가 나와 친한 것까지도 문제제기를 했다는 것이다.자꾸 기사화된다는 얘기였다. 허주가 나한테 직접 해준 얘기다. 그래서 나중에는 허주도 누가 후보로 되는지는 감만 있었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노무현이 되는 거 아니겠노? 나는 그렇게 본데이. 영남후보는 확실한데 박근혜는 본인한테 말도 꺼내기 어렵고...몽준이는 여러 가지로 DJ와는 상충하고.....노무현이밖에 더 있겠노.....영남후보는 누가 나와도 이기는 논리니까 인지도야 지금 좀 떨어진 들 어떻겠노....”
“DJ가 시키려해도 당내 경선이 있잖습니까. 이인제가 지금까지 얼마나 대의원들한테 공을 들였는데요. 권노갑씨는 아직도 이인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는데요.....”
“권노갑이야 이인제 안심시킬려고 괜히 그러는 걸 테고.....경선? 야 그거 하나 움직이지 못하면 그게 권력이가? 대의원들 그게 누구 꺼고? DJ 꺼지.......”

모든 건 허주의 예상대로 착착 진행됐다. 결국 대통령까지 노무현이 먹게 됐다. 다시 한번 최고의 킹메이커임을 확인시켜 준 허주였다.

다시 한번 그에게 놀랐다. 선거가 끝나고 얼마 뒤였던 거 같다. 하루는 허주가 자기 집에 저녁을 먹으러 오라고 했다.

나는 서초동 그 집인줄 알았다. 청구빌라다. 그런데 이사를 했다며 집들이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어디로 갔냐고 물으니 방배동이라고 했다.

풍수지리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허주였다.그래서 정치하는 사람은 절대로 평창동쪽으로 가서는 안된다는 그였다. 최형우도 평창동으로 이사한 뒤 쓰러졌고 현철이도 평창동으로 이사한 뒤 구속됐다던 그였다. 심지어 이회창씨도 그쪽으로 이사한 뒤 낙선했다며 정치인은 평창동쪽으로 가면 안된다고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따지면 방배동도 비슷했다. 김우중씨도 방배동으로 이사한 뒤 망했다. 정치권에 돌아다니는 몇몇 선례들이 있었다. 풍수하는 사람들은 지세가 세서 그렇다고들 했다. 그런 곳엔 검사 의사 판사등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기 센 직업의 사람들이 가야한다고 말한다. 정치인이나 장사하는 사람들과는 안맞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걸 그렇게 따지는 허주가 그리로 이사갔다는 게 이상했다.

그래서 집에 들어서자마자 물었다.

“왜 이곳으로 이사하셨나요?”
“어쩔 수 없어서 왔다. 사위가 이 집을 샀는데 너무 크다고 해서 내 집이랑 바꿨다.”
그러나 얼마 뒤부터 허주는 보이지 않았다. 사무실을 찾아가도 언제나 부재중이었다. 몸이 불편하시다는 비서의 대답이었다.

나도 처음엔 그냥 몸이 좀 불편한 정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 게 아니었다. 암이었다. 허리가 아프다며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까지 했던 그다. 그러나 허리엔 이상없다고 퇴원시켰다. 그런데 실은 종양이 있었던 거다. 허주는 미국까지 가서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허사였다. 일산 암병원에도 한동안 입원했었다. 그러나 치료에 실패했다. 모든 시도가 허사가 된 뒤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있을 때 내가 그를 찾아갔다. 정말이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 그를 문안하고 나온 나는 그를 문병했던 상황을 글로 남겼다. 중앙일보에 ‘노트북을 열며’라는 컬럼을 통해서였다. 이렇게 썼다.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가 2003년 12월16일 허주 김윤환 전의원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영안실을 찾아 분향한뒤 가족들을 위로하고있다. ⓒ연합뉴스


그 잘 생긴 얼굴은 어디로 갔는가. 그 훤칠한 키는 어디에 감췄는가. 그 당당하던 기세는 어디로 숨었는가.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두꺼운 이불 밑에 잠겨 있었다. 말라버린 얼굴은 해골이었다. 눈은 천장만을 응시했다. 얼음장 같은 손 위엔 거미줄 같은 핏줄이 솟아 있었다. 간간이 고통을 호소하는 "아" 하는 소리만이 그의 영혼이 남아 있음을 알리는 듯했다.
별세하기 얼마 전, 허주(虛舟) 김윤환의 모습이다. 두 명의 대통령과 한 명의 대통령 후보를 만든 그다. 노태우.김영삼.이회창씨가 그의 손을 거쳐 갔다. 한 시대를 호령하고 풍미했던 허주였다. 한국 정치의 또다른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모습에서 어떤 한 순간의 역사도 묻어나오지 않았다. 그 모든 영욕을 품고 떠나려는 듯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사람의 손에 거세당했다. 바로 이회창씨다. 그는 허주를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4년 전이다. 나름의 정치적 당위성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허주는 배신의 아픔에만 빨려들었다. 아마도 그 미움이 스스로의 생을 재촉했는지 모른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에게 물었다.
"이회창씨가 사과를 하던가요?"
감은 듯 뜨고 있던 그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드러났다. 그의 대답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의 비서에게 물었다. 얼마 전 이회창씨가 찾았을 때의 상황을 들었다. 이회창씨는 허주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한다.
"미안합니다."
그러나 허주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천장만 바라보며 듣기만 했다고 한다. 그날 따라 허주는 아침부터 이상했다. 기력이 돌아왔다. 면도도 하고 세수도 했다. 그리고 이회창씨를 맞았다. 그러나 허주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의미였을까. 그토록 기다리던 사과였는데 말이다. 떠난 허주만이 그 의미를 알리라. 허주의 방을 나선 이회창씨 부부는 차 한잔을 마셨다. 허주 부인 이절자씨가 차를 내왔다. 그 자리에서 한인옥씨가 말했다. 이절자씨를 향해서다.
"용서해 주세요."
그러나 이절자씨는 아무 말을 못했다. 용서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은 허주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회창씨와 허주의 관계는 그렇게 끝났다. 사과는 있었지만 용서는 없었다. 공교롭게도 이회창씨의 검찰 출두 10분 뒤에 허주는 숨을 거뒀다. 두 사람은 살아서는 다시 만날 수 없게 됐다. 용서의 기회마저 영원히 사라졌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오늘의 우리를 생각케 한다. 무엇이 우리를 살리는가를. 무엇이 우리를 죽이는 것인가를. 함께 살고 함께 죽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이다. 한 사람의 증오가 상대를 이길 수는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이기지는 못했다. 증오는 본인의 아픔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증오를 키우면 그만큼 스스로는 허물어져 갔다. 허주가 지었던 미소의 의미도 그것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증오를 심었다면 거둬야 한다. 아픔을 주었다면 풀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스스로를 살리는 길이다. 동시에 상대도 살린다. 이회창씨가 일찍이 허주에게 사과를 했다고 치자. 용서를 빌었다 가정하자. 그랬어도 허주는 세상과 등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을 것이다. 그보다는 그를 보내는 이회창씨 마음이 더 가벼웠을 것이다. 그를 지켜보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감정은 두 사람 모두에게 불행이었다. 그것이 우리를 안타깝게 만든다. (이하생략)


나는 그가 사망한 뒤 조문을 갔다. 허주의 영정앞엔 십자가가 있었다. 사망하기 며칠 전까지도 신부님이 그를 찾아갔지만 믿기를 거부했던 그였다. 일산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침대옆에 놔둔 성경책을 보곤 어디서 힘이 솟았는지 소스라치게 놀라며 “저거 치워라”고 소리치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사망 몇시간 전 소식을 듣고 달려온 후농 김상현씨와 신부님앞에서 아무 말없이 주루룩 눈물을 흘리며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아마도 모두를 용서하고 모두로부터 용서받고 싶은 심정이었던 거 같다.
그러나 내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씁쓸했다. 여기 누워있는 그가 바로 허주 김윤환 아닌가. 당대 최고의 킹메이커 말이다. 옛 말이 생각났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사람이 넘쳐도 정승이 죽으면 사람이 없다’ 그의 마지막은 그런 모습이었다. 정말이지 세상은 잔인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이연홍

댓글이 18 개 있습니다.

  • 1 1
    밑에 대한민

    허주는 킹메이커고 대한민은 이길 것 같은 사람만 골라 찍는 박쥐지 ㅋㅋ 이회창을 300억 비자금때문에 찍지 않았다는데 ys때 민자당 4000억 비자금은 보이지 않나??

  • 34 26
    사나이

    진짜사나이
    허주를 예전에 알았던 기억보다 매우 다른 면이 엿보인다.
    그 분의 큰 그릇을 이 글로써 알게되어 이전의 생각을 고치려 한다.
    이런 글들이 발굴되어 세상에 나옴으로써 삭막한 정치판이 순화되리라 본다.
    진솔한 감동스런 정치인의 모습을 다시금 보게되어 기쁘다.
    자주 이런 글들을 대할 수는 없을까?
    언론들이 그런 필자들을 발굴하면 많이 있지 않을까?

  • 26 37
    돈줘야잘써주지

    허주 장학생 이연홍
    허주의 장인이 일본에서 많은돈을 벌었고 꽤 많은 재산을 갖고있지......
    그래서 허주가 장인덕을 톡톡히 보고 상당한 촌지를 기자들에게 많이 줬는데.....ㄷ
    허주가 돈 준것을 밝혀라.
    이연홍이 난 허주 한테 얼마 받았다.........고 밝히란 말이다.

  • 32 26
    나도 기자

    맞습니다.맞고요
    정리자님의 생각이 나도 맞다고 봅니다.
    화염병님의 생각처럼 글을 쓰라는건
    조선일보 김대중씨처럼 반대편을
    무자비하게 갈구며 쓰라는 얘기지요.
    회염병님은 아마도 제일 싫어하는 기자가
    조선일보 김대중일겁니다. 민주와 개혁을
    좌익으로 매도한다고 보기 때문일겁니다.
    반대로 김대중씨같은 분은
    화염병님같은 분을 제일 싫어할겁니다.
    건전한 보수를 수구꼴통이라
    매도 한다고 할겁니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팩트입니다.
    그 팩트를 읽고 우리가 판단하는 겁니다.
    기자들은 그래야 한다고 저는 봅니다.
    운동가와 다른 점이지요.

  • 35 29
    정리자

    지난번에 정리했던 사람인데 나도 한마디합시다.
    지난번에도 한번 댓글에 설전이 붙어 내가 한번 정리를 햇던 사람입니다.아마도 밑의 분은 운동권출신이신것 같군요.어쩌면 민주화 운동을 하시다가 감옥도 갔다 오신분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당신 같으신 분들 때문에 우리 모두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점 감사드립니다.그러나 세상을 꼭 그런식으로만 보진 마세요.그런 눈으로 보면 감동이 없을겁니다. 선생의 눈에는 세상 정치인이 모두 미친논미요 도둑놈으로 보일겁니다. 노무현 대통령같으신 분은 위대해 보이실 겁니다.그러나 이렇고 저렇고 하는 우리 모두의 판단의 눈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그건 이연홍의 글같은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읽고 어떤 사람은 어떤 정치인을 나쁜놈이라 할거도 또 어떤 사람은 같은 사람을 좋은 놈이라 할겁니다.이연홍의 글은 그 판단의 근거를 제기하는 데에서 그쳐야 합니다. 기자의 글은 판단을 읽는 독자가 하게끔 해야 합니다.선생이 말하시는 것처럼 글속에서 누군가에 대한 주관적 평가를 함부로 내리며 수구보수 꼴통으로 매도해서는 안되지요. 반대로 똔 누군가를 좌익 뺄갱이로 매도해서도 안되지요. 그저 읽는 사람이 편안히 읽으며 과거를 느끼고 각자가 거기에 대한 나름의 평가를 해주게끔 하는 글이 옳은 글입니다.제 생각은 그렇습니다.그래서 아래 선생께 한마디 드립니다.

  • 33 25
    박지송해요

    올해들어 말이 없어진 두사람은 노무현과 노홍철
    두분이 말이 너무 없어지셨던데
    두분의 활발한 입담이 그리워지네요

  • 33 32
    중도우파

    노대통령과 수구세력들 들으시오
    정치란 무엇일까를 생각케 하는 글이다. 권력무상이란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것 같다.
    허주는 명암이 뚜렷한 정치인이었다. 이글에서 나온대로 가장 세속적 정치인이었지만 그야말로 최고의 정치 기술자였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어떨까. 아마도 너무 초라한 모습일지 모른다. 세상이 너무 너무 변해있기 때문이고 아마도 그는 지금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을것이다.
    이글에서 가장 매역적인 대목은 증오론이다. 누구를 미워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를 죽이는 것임을 일깨워주었다. 제발 노무현 대통령이 명심했으면 한다. 그만 좀 미워하라고....그것이 스스로를 죽이는 길임을 알았으면 좋겠다.그가 남을 미워해서 얻은게 무엇이 있는가.결국 자기를 잃은것 말고 무엇이 있는가.그점에 있어서 야당다운 야당이 되라고 한나라당을 비난하는 수구세력들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다. 당신들이 하라는대로 했다간 영원히 한나라당은 다시 살아날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고......미움은 스트레스를 해소할순 있어도 진정한 승리를 얻어낼순 없다.진정한 승리는 자기 페이스대로 국민을 상대로 정치를 펼칠때 얻을수 있는것이다.

  • 24 30
    오상희

    이연홍기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안녕하세요..
    지난번 거친 댓글을 남긴 "리영희이상호"입니다.
    앞으로는 "오상희"라는 말로 글을 쓰렵니다..
    세명의 언론인(이었던)인 오동명, 이상호,리영희를 조합한 말입니다..
    이번글을 꼼꼼히 읽어봤는데 궁금한것이 있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지난 대선때 김윤환은 선거막판에 이회창을 지지하고 난뒤에 정계은퇴를 선언한것으로 알고있는데 그 얘기는 왜 빠뜨린거지요?
    노무현과 정몽준 단일화 이후에 김윤환은 이회창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왜 그렇게 된건지 아무런 설명이 없네요..
    그리고 노무현은 지난 대선때부터 지금까지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하고는 적대적관계입니다. 그것이 조선일보출신인 김윤환에게도 영향을 끼친것인지 궁금합니다.
    제 상상력을 동원하면 아마도 "정몽준"으로 단일화되었더라면 정몽준을 지지했을텐데
    "노무현"으로 단일화되니까 이회창을 지지한것이 아닌가합니다..
    이기자님이 아주 중요한 것을 빠뜨리셨네요...

  • 30 18
    저편에

    그 시대에 꼭 필요한 분인거 같아여...
    제가 올해 나이가 34살니
    허주 김윤환 의원님은 제 아버지뻘 되는 분이시네여
    가금 티브이로만 봤는데...
    양지로만 찾아다니는 정치인이라는 평과
    조정과 타협의 명수라는 애칭이 있었던거 같습니다.
    정치라는 것은 결국 어느 접합점을 찾아가는 것이라면
    수많은 이해관계에서 그분의 정치적인 행동은 의미가
    있었다고 봅니다.
    특히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 많은 학생들이 구속됐을때나
    한겨레 사태를 포함한 여러사안들에 대해서 포용적인
    자세를 견지했던 걸로 압니다.
    약자에 대해서도 배려를 할줄 알고...
    유리한 상황에서도 밀어부치지 않고 불편한 상대를 돌볼줄 아는..
    강파른 격랑의 시대 속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그 시대를
    헤쳐나가고자 했던 분인걸로 기억하겠습니다.

  • 39 31
    대한민

    이연홍님 선거에 출마하시나보네요?
    이연홍님 선거에 출마하시나보네요?
    김윤환 예찬론인가요?
    본인의 글 PR인가요?
    김윤환이 킹 메이커면 나도 킹 메이컨데.
    YS찍었더니 YS가 당선됐고
    DJ찍었더니 DJ가 당선됐고
    노무현찍었더니 노무현이 당선됐죠.
    이회창이 국세청장에게 국민의 혈세를 300억이나 달래서 비자금으로 썼는데도 그를 찍었다면
    그건 아마 영남 사람이나 한나라당의 텃밭 강남 송파 분당일대의 사람들,
    아니면 정치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 일 겁니다.
    킹 메이커는 김윤환이 아니고 국민 들이죠.

  • 37 26
    금정산

    참 따뜻한글이네요
    언제봐도 이기자님의글은 인간미를느낍니다

  • 25 31
    착한사람

    무지 반갑네요.
    넘 오랫만에 글을 남기신것같네요.
    하루에도 몇번씩 들어왔는데...
    허주의 말년 너무 쓸쓸했네요.
    그분 인간성은 좋았다고들 하던데요.
    권력무상...
    말년에 깨달았을것 같네요.
    사실 우리네 서민들은 권력은 잘 모르지만
    속이고 속이는 그네들 보면 씁쓸하네요.
    암튼 고인이 되신 허주의 명복을 빕니다.
    행복하세요.

  • 37 29
    갈매기

    많은걸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잘읽었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나그네 길이지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사라지는

  • 30 34
    무당눈깔

    김윤환이가 망한 진짜 이유
    풍수지리를 안지켰기 때문인기라
    이사 가지 마라고 하는 곳은
    절대 안가야되는데 이런 &#52202;&#52202;

  • 39 26
    허주

    아들들 어디에 있노
    정치부 기자중에 허주 아들로 불리던 사람들이 두사람있지요.조선일보 김민배 연합통신 한동윤.그러나 그들은 말년에 허주를 찾아가지도 않았던 걸로 알고있습니다.참 비정한 세상임에 동의합니다.

  • 32 40
    허주 싫음

    이름 그대로의 허주..
    허허실실이라는 말이 있죠..
    있어도 없는듯..없어도 있는듯..
    허주는 능력과 철학이 있는 정치가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자신의 신념도 변화시키는 처세가였지요.
    그렇기 때문에 생전에는 권력을 쥐었을망정 사후에는 존경을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말하자면..예쁜 여자를 꼬시는 기술이 뛰어난 능력있는 정치적 카사노바라고 할까..
    이런 류의 특징은..
    자신이 이러한 사람이라는 걸 모든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어느 결정적인 순간 조강지처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팽' 당한다는 겁니다.
    '팽' 당하는 순간까지 자신의 전략이 성공한 줄 알지요..
    결국 이런 사람의 지혜는 빌릴지언정 믿음을 주지 못한다는 게 이러한 류의 인간의 불행이지요....

  • 27 35
    풍수지리

    킹메이커
    우리정치사에 허주만한 킹메이커가 어디있을까? 그립다! 허주! 그런역할을해줄사람이 지금은 누구인지?

  • 29 31
    서울시민

    글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오늘 복 많이 받는 하루 되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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